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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남긴 흔적 - 단편54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18 485회 0건

** 앞에 올린 글에 정보원이 등장하는 바람에 깜짝 놀라신 것 같네요.
이 부분을 넣을까 말가를 고민했는데, 괜히 넣는 바람에 분위기만 깨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장르의 변화는 전혀 없습니다. .. - Ja"dore -





54. 나 오빠한테 시집가면 안돼?



[1]
까뜨린느의 차가 골목길을 완전히 빠져나가고, 나는 서둘러서 내 오피스텔로 올라갔다. 바로 노트북을 켜놓고 부팅이 되는 동안에 와인을 잔에 따라서 들고 왔다. 나는 와인을 마시면서 셀린에게 이메일을 쓰기 시작했다.





To : Celine Bourdelle

엠마를 서울에 데리고 온다니. .. 나는 정말 셀린에게 감동이야. 내가 엠마에게 서울에 오라는 말을 몇 년째 하지만, 엠마는 내 말을 무시했거든. 너는 그 고집통을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설득했니? 너희가 도착할 인천 공항 대합실에서 내가 아름다운 너희 둘을 만나면 기절할 지도 모르겠다.

아직은 사업 계획을 구체적으로 세우는 중이야. 그런데 내가 이 분야를 너무 모르니까 답답해하고 있었어. 네가 휴가를 내서까지 와준다니 너무 고맙다.

혹시 가능하면, 올 때 몽오쥬(Montrouge) 공장 구조를 그린 도면을 부탁해.

엠마에게 내가 엄청 기다린다는 말을 꼭 전해줘. 내가 파리에서 너희들을 만났던 것처럼, 이번에는 내가 서울에서 너희들을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린다.

From : Sang-Su Nam



셀린이 온다고 내가 구상하는 일이 뭐가 달라질까? 업무상으로 본다면 지금은 나에게 셀린보다는 며칠 후에 나타난다는 원기룡씨가 훨씬 더 기다려진다. 나는 이메일을 전송했다.



와인을 마시면서 나는 정말로 엠마가 서울에 올까 하는 생각을 했다. 엠마가 소속해있는 "국경없는 의사회"의 일 때문이 아닌데도 서울에 온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 오늘 만난 까뜨린느도 엠마가 온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한마디 말도 없었다. 아직 모르지는 않을텐데.

나는 셀린과 엠마와 오면 같이 할 일들을 생각해본다. 그런데 괜히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려서 별로 생각나는 것도 없다.



[2]
나는 옷을 모두 벗어 던지고 욕실로 가서 샤워를 했다. 내 몸에 더운 물과 찬물을 교대로 쏟아 부으니까 마음이 가라앉는 것 같다. 샤워를 끝내고 나오는데, 전화기에서 컬러링이 울린다. 주연이에게서 전화이다.



"오빠. 뭐해?"
"연주 생각."

"어? 왜 연주 생각을 해? 주연이 생각이 아니고?"
"아. 맞다. 주연이 생각. 하하."

"나도 오빠 생각나서 전화했는데."
"내 생각을 했다고? 믿어지지가 않아."

"진짠데. 지금 엄청 보고 싶어."
"무슨 일 있니?"

"아니. 그냥 오빠가 너무 보고 싶어. .."
"혜화동이니? 전화 끊고 기다려. 내가 그리로 갈게."

"나 지금 오빠 집 앞인데?"
"뭐야아? 어디?"

"엘리베이터 앞."
"그럼 빨리 올라오지 왜 전화했어?"

"오빠가 다른 여자랑 같이 있을까봐. 하하."
"당장 올라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벨소리가 났다. 액정 화면에 야구모자를 눌러 쓴 주연이의 모습이 비친다.





[3]
나는 알몸에 재빨리 목욕가운을 걸치고 문을 열어주었다. 주연이가 들어오더니 나에게 와락 안긴다. 짧은 반바지, 그리고 깊게 파인 브이(V)넥. 나는 주연이의 머리에 얼굴을 묻고 향긋한 냄새를 맡으면서 그녀의 등을 토닥거렸다.



"엘리베이터 앞이라며? 저 아래라는 줄 알았잖아."
"여기 올라와서 전화했어."

"저녁은 먹었니?"
"아직. .."

"지금 9시야. 이 시간까지 왜 밥을 굶고 이러고 다녀?"
"나 완전 미치겠어. 오빠가 보고 싶고, 오빠랑 같이 먹으면서 얘기하고 싶고 .."



주연이가 고개를 들고 나에게 입술을 내민다. 우리는 서로의 입술을 빨았다. 주연이의 손이 내 목욕가운 속으로 파고든다. 손을 넓게 펴서 내 가슴을 쓰다듬는다. 주연이의 다른 손은 허리끈의 묶음을 풀어버린다. 가운의 앞섶이 열린다. 주연이의 손은 가슴에서 내려와서 배를 지난다. 내 숲으로 내려와서 헤치고 다닌다. 아직 잠자고 있는 내 남성을 손으로 잡는다. 주연이는 갑자기 입을 떼어내고 웃었다.



"히히히."
"왜?"

"오빠꺼 완전 쪼그맣네. 하하."
"다행인 줄 알아라. 안그러면 또 불이 붙을텐데."

"나 하고 싶어."
"주연아. 우선 너 밥부터 먹어야겠다. 나가자."

"하이이잉. .. 어청 땡긴다니까. .. 이잉. .."



나는 주연이를 소파에서 기다리게 하고, 옷방으로 가서 옷을 입고 나왔다.




[4]
우리는 밖으로 나와서 상가 쪽으로 걸어 갔다. 주연이는 내 손을 꼬옥 잡고 걸으면서 간판을 유심히 살핀다.



"먹고 싶은 것이 있어?"
"생선."

"저쪽 끝에 횟집이 있는데. 어때?"
"그래? 그럼 거기로 가."

"회 좋아해?"
"회는 없어서 못먹지. 헤헤."




우리는 나란히 앉았다. 나는 모듬회를 중간 크기로 주문했다. 주연이이는 화장실에 갔다온다. 식탁이 푸짐하고 가득하게 세팅된다. 이것저것 나오는 것이 정말 많다. 이렇게 장사해서 돈이 벌릴까?

우리는 회를 먹었다. 나에게는 별로 당기지 않았으나, 소주를 마셔가면서 조금 먹었다. 그런데 주연이는 열심히 맛있게 먹는다. 가금씩 상추에 싸서 내 입에 넣어주기도 한다.

그런데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로부터 레이저가 느껴진다. 주연이가 머리를 노란색으로 물들였기 때문에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와 주연이의 나이 차이가 너무 난다는 사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자꾸 쳐다보는 것 같다.




[5]
나는 주연이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저 나이 때에는 한참 공부하고, 발랄하게 놀을 때인데, 세상살이라는 짐을 어깨에 메고 있는 주연이가 너무 안타깝다. 내 시선을 느낀 주연이가 내게 물었다.



"오빠는 안먹어?"
"아까 저녁 먹었어."

"그럼 다행이다."
"왜? 뭐가"

"오빠가 회를 안좋아하는데도, 나 때문에 일부러 여기로 온 줄 알았어요."
"아냐. 그런 것 없어. 맛은 있니?"

"오빠랑 같이 먹으니까 엄청 맛있어요."
"오랜만에 먹는 것은 아니고?"

"아니거든요. 사장 언니랑 일주일쯤 전에 먹었는데?"




주연이는 말을 해도 너무 귀엽게 한다. 주연이가 나를 보고 싶다고, 저녁을 나랑 같이 먹고 싶다고, 나랑 같이 먹으니까 맛있다고 한다. 이 모든 말들이 내 마음에 걸린다. 자기 또래의 남자친구를 사귀고, 연애도 하고 그럴 나이인데, 어쩌자고 나이 먹은 나한테 이러는지 ..

주연이가 가냘픈 저 어깨에 지고 있는 세상살이라는 묵직한 짐 속에 들어있는 것들을 모두 꺼내서 불태우고 싶다.



"주연아. 너 오늘 무슨 일 있었지?"
"아까 사장 언니가 일 나오라고 부르네."

"그럼 지금 거기 가야 하니?"
"아니야.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안갔어."

"그러게 일을 빼먹어도 돼?"
"오빠가 너무 생각나고 보고 싶어서, 도저히 갈 엄두가 안나."



이 말에서 내 가슴이 먹먹해온다. 눈물이 날 것 같다.




"진짜?"
"진짜. .. 완전 진짜. .. 내가 뭐하러 오빠한테 거짓말을 해?"





주연이는 입에 음식을 넣고 입을 오물거리면서 맛있게 먹고 있다. 이런 주연이의 모습을 보면 주연이가 가진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을 한다. 또 꿋꿋이 어려움을 극복하며 살아가는 주연이에게 어떻게 해서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럴 능력이 나에게 부족한 것이 정말 안타깝고 부끄럽다.




나는 너를 생각하지 않았는데, 나는 너를 보고 싶거나 그리워하지 않았는데, 그런데도 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이 되어 내 옆에 있구나.

나는 꽃이 아닌데, 너는 현란한 날갯짓을 하면서 나에게 날아온 나비이구나.

너는 너의 길을 잘 못 들은 것 같다.
너도 알고 있지?

나비는 꽃을 찾아서 너의 길을 계속 가야 하지만, 지금까지 날갯짓을 하면서 여기까지 날아 오느라고 피곤하고 지쳐있지? 그래서 내 어깨에 기대고 잠시 쉬고 가려는 거지?




내 눈물은 기어코 흘러나왔다.



"오빠, 울어?"
"너무 매워."

"하아. .. 남자가 왜 이 모양이래? 빨리 물 마셔."




[6]
바람이 분다.
이 바람은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분다.
너, 나, 소, 풀, 나무, 집, 돌멩이, 흐르는 물, 심지어는 하늘의 구름에게까지 ..

바람은 모든 것들을 흔들면서 지나간다.
바람은 같은 바람이지만, 이 바람을 맞는 것마다 다르게 흔들린다.

지나가는 바람에 흔들리면서 변화라는 흔적이 남는다.
이 흔적은 그냥 단순한 흔적일 뿐이다.
그런데 받아들이는 누구에게는 좋은 흔적, 또 다른 누구에게는 나쁜 흔적이 된다.

누군가는 행복해하고, 누군가는 가슴 아파한다.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돌아선다.
누군가는 성공하고, 누군가는 실패하여 좌절한다.


주연이에게 바람이 불어서, 주연이도 흔들릴까?
주연이에게도 변화가 일어날까?
그 변화는 주연이에게 어떤 흔적을 남길까?



나는 소주를 들이켰다.



"나 때문에 일 안해도 괜찮니? 그러다가 미움 받으면 어떻게 하려고?"
"이제 그 일 고만 하려고."

"아직 부채가 남아있다며?"
"그것은 천천히 갚아도 돼요."

"한 달 정도 지나면 우리 회사에 새로운 사업 분야가 생기거든요. 그래야 그 쪽에 우리 주연이 자리를 만들 수 있을텐데 .."

"오빠. 나 때문에 걱정하지 마세요. 당장 일할 데가 없는 것도 아닌데 .."
"월세나 공과금은 밀리지 않았니?"

"지난 번에 오빠가 준 돈으로 다 해결했어."
"부족하면 또 말해."

"부족하긴? 아직 남았어."




[7]
우리는 매운탕까지 다 먹고 횟집을 나섰다. 주연이는 그 매운 매운탕도 맛있다며 엄청 잘 먹는다. 주연이의 얼굴이 완전 버얼겋다.



"고마워. 잘 먹었어. 배가 엄청 부르네."
"매운 것도 잘 먹네?

"이 정도로 맵게 먹으면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것 같아."
"다행이야."

"그런데 쫌 그렇네."
"뭐가?"

"오빠랑 얘기하면서 천천히 먹고 싶었는데, 워낙 맛있으니까 금방 먹어치웠잖아."
"그게 그렇게도 아깝니? 하하."

"엄청. 하하."
"너무 아까워하지 마. 다음에 또 사줄게."

"쌩유. 오빠 노래방 싫어하지?"
"시끄러워서. 왜?"

"한바탕 악을 쓰고 싶은데. .."
"일 가면 노래 안하니?"

"손님 앞에서는 트로트를 불러야 하잖아. 내가 부르고 싶은 것도 못하고."
"가고 싶으면, 가자."

"그래 주면 고맙고. .. 그런데 오늘은 말고, 다음에."





[7]
우리는 내 오피스텔로 돌아왔다. 나는 주연이를 안았다. 주연이도 나를 안았다. 나는 주연이의 입술에 키스하려고 했다. 그런데 주연이가 도리질을 친다.



"회 먹었잖아. 양치 해야지."
"안해도 돼."

"안돼. 내가 싫어."
"내가 괜찮다는데, 뭐가 싫은데?"

"냄새만이라도 오빠한테는 좋은 것을 주고 싶단 말이야."
"너한테서 나는 냄새는 다 좋거든."

"아이. 참. 어린애처럼 왜 이래? 생선 비린내가 뭐가 좋다고. .."




주연이는 나를 데리고 욕실로 간다. 나는 주연이에게 새 치솔을 꺼내 주었고, 우리는 양치를 했다. 내가 먼저 끝내고 거실로 나와서 소파에 앉았다.




[8]
주연이가 나와서 내 옆으로 앉는다.



"오빠. 나 오늘 여기서 자고 가도 돼?"
"될 것 같은데?"

"불안해."
"뭐가?"

"한참 자다가 어떤 여자한테 머리채 잡혀서 끌려나가는 일이 생기면 어쩌지?"
"설마."

"그 설마가 사람 잡을 것 같은데 .."
"그럼 내가 주연이한테 가서 잘까?"

"내일 아침에 출근하려면 번거로울 것 같은데?"
"뭘. .."




[9]
나는 옷방으로 가서 내일 아침에 갈아입을 옷들을 챙겨서 쇼핑백에 넣었다. 주연이도 따라와서 구경을 한다. 주연이는 흥분해서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노래방에 가자고 했을 대 같이 가줄걸.

그런데 전화가 왔다. 주연이가 빨리 가서 내 전화기를 가져온다. 오미현이다.




"오빠. 집이야?"
"아니. 왜?"

"지금 나한테 올 수 있어?
"지금은 곤란한데. 왜 그러는데?"

"아영이가 오빠 보고 싶대. 우리가 잠시 들를까?"
"아영씨 지금 장사 안해?"

"몸이 안좋다고 일찍 들어왔대나봐. 지금 나한테 와서 같이 저녁 먹었어."
"어쩐다? 내일 아침 일찍 회의가 있거든."

"그러니까 우리가 오빠한테 갈게."
"아니야. 나 지금 밖이라니까. 내가 잠시 들를게."




나는 종이 팩에 담은 옷들을 제 자리로 놓으며 주연이에게 사과했다.



"주연이 완전 쪽집게네."
"거봐. 어쩐지 내 예감이 .."

"갔다가 금방 올께 여기서 기다려."
"오빠 안오면 나 어떡해?"

"늦게라도 와. 안오면 내일 아침에 어쩌게?"




우리는 서로를 안고 키스했다. 그런데 주연이가 나를 밀어낸다.




"어떤 여자인지는 모르지만, 빨리 갔다 오세요."
"내 친구들. 대학 친구, 회사 친구."

"같이 잤어?"
"아니. 얘네는 커플이야."

"그럼 남자도 있네?"
"그렇다니까."

"하아. .. 그럼 안심이다."
"왜?"

"오빠는 여자한테 가면 꼭 자고 가는 것 같아서 .."
"너한테서나 그러지. 빨리 갔가 올게."



나는 주연이에게 키스하고 밖으로 나갔다.



[10]
나는 급히 밖으로 나가서 택시를 탔다. 한참 가는데 오미현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온다.



"출발 했어? 오래 걸려?"
"15분 후 도착"

"콜."



택시는 벌써 오미현의 아파트 단지에 들어서고 있다. 지금 나는 유아영이 있다는 곳에 다 와 간다. 유아영이 아프다는데 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가는 길이다. 그런데 가슴이 조금도 설레이지 않는다.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하여야 할 지 고민이다.




[11]
나는 오미현의 아파트로 올라가서 벨을 눌렀다. 그런데 문을 열어주는 사람은 오미현이 아니라 유아영이다.



"아영이?"
"오빠. 들어오세요."

"이 집 식구들은?"
"안에 있어요."

"아영이 아프다며?"
"에이. 아까 머리가 쫌 띵 했었는데, 그걸 언니가 오바 했나봐."

"이젠 괜찮고?"
"전혀. 말짱해요. 저녁은 어떻게 하셨어요?"

"먹었지. 지금 시간이 몇시인데?"



조상훈은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다. 우리도 소파에 앉았는데, 주방에서 해리가 거실로 나온다.




"형부. 나도 있거든요."
"그래. 해리도 아픈데 없지?"

"나야 뭐. 철로 된 여인 아니겠어? 하하."
"그래. 건강해야지."

"형부, 있잖아요. .. 아까 낮에 신촌에 갔는데 ..."



유아영과 오미현이 주방에서 와인을 가져왔다. 유아영이 준비했다면서 닭고기와 소스도 내온다. 우리는 와인을 마시면서 닭고기를 안주 삼아 먹었다. 유아영은 운전한다며 와인을 마시지 않는다. 나는 지난 번에 꿈 사건 때문에 이들 두 자매를 보기가 엄청 민망하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을 했다.

오미현이 나를 방으로 데리고 가서 설교를 시작한다. 아영이한테 전화도 문자도 카톡도 안하고, 그냥 지내면 자기 입장이 뭐냐면서 따진다. 나는 바빠서 미안하다는 말 밖에 할 말이 없었다. 밖에서 해리가 우리를 나오라고 불렀다.

우리는 이야기를 끝내고 밖으로 나와서 자리에 앉았다. 조상훈이 입을 열었다.




조상훈 : "우리가 이렇게 모인 이유는 .."
나 : "뭘 저렇게 거창하게 시작한대?"

조상훈 : "제주도로 놀러 가자고."
나 : "제주도? 그럼 아영이도 갈 수 있어?"

유아영 : "저는 못가요. 해리가 너무 답답해하는 것 같아서. .."

오미현 : "꼭 제주도가 아니라도 주말에 1박2일이라도.
정 안되면 당일치기라도."

나 : "어떡하지? 나는 주말에 프랑스에서 손님들이 오시는데."
조상훈 : "일요일에도?"

나 : "열흘 정도는 매여있어야 해. 한국에 처음 오는 사람들이라서."
오미현 : "에이. 괜히 모였네."

나 : "나는 안가도 안되나? 꼭 내가 있어야 해?"
유해리 : "아무래도 형부가 있어야 재미있지."

나 : "한동안은 새로 시작하는 일거리 때문에 어려울꺼야."
오미현 : "이번에 유럽에서 한 건 건져오셨다는 말인가?"

나 : "그건 아니고. 내가 저녁때 해리랑, 언니랑 같이 시간 내는 방향으로 해볼께."
조상훈 : "그 프랑스 사람들 가고 나야 시간 난다며?"

나 : "글쎄 . .. 지금은 아직 뭐라고 할 말이 없다."

유해리 : "그럼. 그 사람들 만날 때 나도 같이 만나면 인되나요?
내가 불어 제법 하니까 통역 해드리면 안돼요? 히히."

유아영 : "너는 낄 데나 안낄 데나 막 들이대냐?"

유해리 : "그럼 어떡해? 어떻게 다음달까지 기다려?
형부가 보고 싶고, 형부 옆에 있고 싶은데. 헤헤."

오미현 :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소리 함부로 하면 나중에 오해 받는다."
유해리 : "예. 언니. 알았습니다."



나는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큰 죄라도 짓는 기분이다.



자정이 넘어서까지 우리는 이야기하고 놀다가 헤어졌다. 유아영은 해리와 함께 나를 자기 차에 태워서 집에까지 데려다 주고 갔다.





[12]
내가 오피스텔에 들어갔는데, 주연이가 아직 자지 않고 TV를 보면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씻고 자러 들어갔다. 주연이가 내게 안기며 말했다.



"오빠. 갑자기 .. 나 시집가고 싶다."
"하하하. 진짜 엉뚱하네. 갑자기 왜 그런 생각을 하지?"

"오늘, 오빠랑 저녁 먹고, 집에 오는데, 너무 좋아.
마음도 편안하고, 완전 행복해.
이게 다 나한테 오빠가 있기 때문이잖아?"

"그런 소리 하지마.
나한테 주연이가 있어서 내가 주연이한테 고맙 읍. .. 으읍."




주연이가 갑자기 내 입술을 빨면서 키스했다. 잠시 후에 입을 들어내고 또 이야기한다.




"아니야. 아까도 그래.
오빠 나가고 나서, 지금까지 오빠를 기다렸잖아?
완전 와이프가 남편 기다리는 기분을 이해 하겠더라니까.
나한테 오빠가 있어줘서 나 너무 행복해요. 정말 너무 고마워요."




주연이의 양쪽 볼이 버얼겋게 상기되어있다. 이야기 하느라고 흥분해서 열을 올리는 것인지 ..
오늘은 주연이가 나를 울리려고 작심을 한 것 같다.
내가 있어서 행복하고 고맙다는 이 착하고 순진한 주연이 때문에 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는 주연이를 품에 안았다. 주연이도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주연이는 마음이 이렇게 착해서 결혼해도 잘 살을 것 같다."

"오빠. 그럼 .. 우리 둘이 결혼할래?
나 오빠한테 시집가면 안돼? 내가 오빠한테 엄청 잘 할께."

"아이쿠. 이건 또 뭔 일이래? 하하.
너 지금 나한테 프로포즈 하는거니? 하하하."

"그..런..가?
"죽었다 깨어나도, 하늘이 무너져도, 나는 주연이랑은 결혼 못해."

"왜? 왜 안되는데?
나는 여자고, 오빠는 남자잖아? 우리 둘이 결혼하면 안돼?"

"아아. .. 주연이 말 하는 것이 너무 귀엽다. 하하."

"하아. .. 오빠한테 나 김주연은 안되는구나.
그럼 오빠랑 결혼할 여자 따로 있어?"

"아직은 없지."
"그럼 내가 소개해줄까?"



주연이가 결혼하자는 말에 내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렇지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바로 그 즉시 아니라고 부정해서 말하는 바람에 주연이가 실망할까 생각했지만, 주연이는 전혀 그렇지 않아보인다. 몸 뿐 아니라 정신도 건강한 것 같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고,
우리 주연이는 대학 졸업만 생각해요. 알았지?"


"알았어요. 하하. 오늘 내가 맛이 간 것 같다."
"무슨 그런 소리를?"


"남자랑 같이 이렇게 하루 저녁 같이 있어본 것은 오빠가 처음이야.
나 요새 진짜 완전 꿈꾸는 것 같아. 너무 행복해 미치겠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니까.
오빠는 지금 이런 내 마음을 이해 못할거다."

"그래. 그렇게 행복하다고 느끼는 그 때가 가장 행복하대더라.
그런 순간들은 엄청 짧은 것이 문제라더라."

"맞아. 김주연, 이러다가 나무에서 떨어질 날이 곧 오겠지?"
"그건 .. 너야말로 오바하는 거다. 뭐가 떨어 읍. .. 으읍. .."




또 갑자기 주연이가 자기 입으로 내 입을 덮어버렸다. 그 순간부터 우리는 우리만의 밤을 시작했다. 그 밤은 시간이 갈수록 뜨거워지고, 격렬해진다. 나나 주연이에게 마찬가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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