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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 단편19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17 441회 0건




최윤하 (23) : 대한대 건축학과 4학년

황해리 (21) : 명화여대 영어과 2학년
황영철 (23) : 윤하의 고교 동창. 황해리의 친오빠.

윤은경(25) : 황영철의 여직원

박혜주(34) : 의정부 한정식집 앞마당 사장
강희영(34) : 박혜주의 여고 동창. 보험 아줌마.

이하영(22) : 덕수대학 컴퓨터공학과 2학년
유건상(28) : 황영철의 선배. 박혜주에게 작업 중.

김수연(33) : 여우들 세상 닷컴 마케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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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윤은경의 폭로


[1]
황영철은 심장 혈관을 확장시키는 수술을 받았다. 그는 수술 후 얼마 후에 퇴원을 하기는 했지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는 자주 누워서 쉬어야 했다. 먹는 약의 개수도 많아졌다. 이제 그는 우리 사무실에는 아예 나오지 않는다. 그 대신 돈을 쏟아 붓는 일은 계속 한다.

황해리는 복학해서 학교에 다닌다. 그러면서 주말에는 사무실에 와서 이하영에게 일을 배운다. 이하영과 황해리는 사이가 좋은 편이다. 물론 이들 위에는 윤은경이 여신처럼 군림하고 있다.



[2]
이제는 9월 말이다. 추석도 얼마 남지 않았다. 한 낮의 더위는 제법 누그러들고, 아침 저녁으로는 선선한 바람도 불어온다. 많은 김치를 택배로 배송해야 하는 우리에게 더위는 참으로 골치덩어리였다. 이제는 이런 걱정거리는 약간 줄어든다.

웰빙 식품의 김치 판매는 완전 풀가동이다. 여우들 쪽에서나 우리 홈페이지에서 들어오는 주문량을 소화하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업소 고객도 갈수록 늘어난다. 그런데 이하영은 가정집의 경우에는 한 번 주문했던 고객이 다시 주문하는 재주문도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일이 이렇게 커진 데에는 우리 모두 열심히 일했지만, 아줌마 부대의 힘이 컸다. 그녀들이 받아오는 주문도 엄청난 양이다. 이들은 서울과 경기도에서 가정집 뿐만 아니라 업소까지 주문을 받아온다. 이들에게는 인터넷보다는 입소문이 정말 무서웠다.

우리가 김치 공장에서 김치를 싣고 오는 일을, 전에는 냉동탑차 한 대가 일주일에 두 번 했는데, 이제는 이틀에 한 번 정도로 간다. 매일 가야 할 때도 많다.

그러니까 우리에게 배달을 전담할 직원을 더 고용해야 하는 문제가 또 생겼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줌마 부대가 팔을 걷고 배달에 나섰다. 처음에 왔던 8명의 아줌마들 중에서, 2명은 차가 없어서 소극적이지만, 6명은 자기 차로 배달까지 하는 것이다. 물론 우리는 배달 수당을 따로 지급하기로 했다. 여기에 6명이 더 붙었다. 이제는 아줌마들도 대가족이다. 강팀장은 앞으로 더 늘어난다는 얘기를 한다. 나는 겁이 난다.

그러니까 아줌마들은 아침에 보험회사에 들러서 얼굴 도장을 찍고, 곧바로 우리 사무실로 몰려오는 것이다. 그녀들은 어차피 영업을 나가야 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라고 한다. 강팀장이 그 아줌마들을 지휘한다.

그래도 윤은경은 어쩔 수 없다면서 냉동탑차 두 대와 김치냉장고 다섯 대를 더 구입해야 했다. 이제 우리는 제밥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요새는 더위가 한풀 꺾이는 바람에, 김치를 아이스 박스에 담아서 아줌마들이 승용차로 배달하는 문제가 약간 수월해져서 다행이다. 과연 내년 여름까지 우리가 살아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만일 그렇게 되면, 엄청난 일이 터질 것 같다.

내가 처음에 아줌마들에게 약속한 대로 우리는 김치 공장을 방문하는 일도 했다. 이제는 김치 공장에서도 우리가 제법 큰 고객에 속한다.

그래도 나는 김치공장의 여사장에게 꽃다발이나 와인을 선물로 보내는 일을 꾸준히 계속했다. 또 아줌마들과 자주 식사도 같이 하고, 노래방에도 다녔다. 이것도 일종의 작업이라면 작업이다. 그런데 노래방에서는 아줌마들이 나에게 덤벼들어서 성추행을 한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노래방을 나와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시치미를 뚝 뗀다.

이제는 또 사무실도 문제이다. 지금은 우리가 오피스텔 두층, 그러니까 모두 4개를 사용한다. 그런데 강남 논현동에서 오피스텔 4개를 사용한다는 것은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래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자는 말이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우리가 아직은 강남을 뜰 정도로 성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조금 더 견디기로 했다. 완전 울며 겨자 먹기이다. 비싼 강남 땅에 사무실을 갖고 있어야 고객이나 제휴업체들에게 믿음을 더 준다는 서글픈 진실이다.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을 치며 발악을 해도, 매출은 올라가지만, 비용도 따라서 올라가기 때문에, 아직은 적자를 면하지 못한다.




[2]
영철이 말에 의하면, 황해리도 어렸을 때 병치레를 많이 했었다고 한다. 게다가 초등학교에는 한 해 일찍 들어가서, 공부도 제대로 못했다고 한다. 그래도 집에서는 해리가 그냥 건강하게 학교에 다니는 것 만으로도 만족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리가 고등학생이 되자 문제가 달라졌다. 고딩때 영철이는 공부를 거의 나랑 비슷하게 했지만, 해리에게는 전망이 보이지 않았다. 해리도 4년제 대학에는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철이가 해리를 나에게 맡긴 것이다. 우리가 과외라는 게임을 시작했을 때, 나는 대1, 해리는 고2 였다. 내가 영철이 남매와 맺은 이 질긴 인연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고, 앞으로도 더 가까워지기는 하지만, 멀어질 것 같지가 않다.


그런데 해리가 여고생이 돼서야 발육이 제대로 일어난 것 같다. 야윈 체형이지만, 가슴이나 엉덩이도 여성스러워지고, 같이 공부할 때는 제법 노출을 하기도 한다. 나를 보며 멍때리다가 걸린 적도 많다.

해리가 대학생이 되자, 이제 과외라는 것을 끝냈다면서 나한테 도전장을 내민다. 신촌에도 가고, 클럽에 가서 나한테 엉덩이를 들이밀고 부비부비를 하기도 했다. 대학로나 이태원에서 맥주, 칵테일, 그리고 와인 마시는 것도 나한테 배웠다는 말을 한다. 해리는 나에게 안기기도 하고, 기분이 좋으면 내 입술을 빨기도 한다.

그런데 내 마음에 있는 해리는 아직도 여고생이다. 나도 해리를 안고 키스는 하지만, 그 이상은 도저히 손이 나가지 않는다.

나와 해리는 같이 동해안 속초나 강릉에 가서 같은 모텔방 침대에서 같이 보낸 적도 있다. 또 미국에서는 두 달 동안을 매일 같은 침대에서 자야 했다. 그 때가 나에게는 몸과 머리가 분열되는 시간이었다. 그럴 때마다 해리가 덤벼든 적도 부지기수이다.



"오빠. 왜 그러는데? 내가 오빠 눈에는 아직도 고딩으로 보여?"
"어. 나는 너랑 사고칠 마음이 없거든요."

"돌겠다. 이제는 사고칠 때도 됐구만."
"그럼 엄마, 아빠, 오빠한테 허락 받아와."

"우리 둘이 여기 가는 것을 허락한 것이 벌써 허락 아닌가?"
"해리야. 이 허락은 그분들의 믿음이야. 왜 이 세상을 비뚤어지게 보니?"

"오빠가 나 말고 다른 년들이랑은 다 하면서 .."
"그래도 너는 아니야."

"왜 아니냐고."
"아니니까 아니지."



나는 그 때마다 옛날에 여자들이 바늘로 허벅지를 찌르며 참았다는 말을 생각한다. 얼마나 참기 어려운 것을 참으면서 고통스러워했는지, 나는 백프로 이해한다.

요새도 해리는 야망을 접지 않는다. 사무실에서는 안 그런데 어쩌다 그녀의 아파트에만 가면 영철이나 다른 사람들이 있건 없건, 나를 안고 쭉쭉 빨아대는 통에 내 입장이 참 곤란해진다. 특히 이하영이라도 같이 있는 날에는 나는 머리카락이 곤두설 지경이다. 이하영은 그런 장면이 연출될 때마다 화장실에 자주 들락거린다. 욕실의 문을 여닫는 소리도 유난히 크게 난다.

한번은 해리가 나에게 물었다.



"왜 안 하는데?"
"엄마, 아빠, 오빠한테 허락 받아오라고 했거든!"

"참나. .. 그걸 말이라고 하냐?"
"해리 네가 말도 안 되는 짓을 하려고 하니까, 나도 말이 안 되는 소리를 할 수 밖에 .."

"왜 말이 안 되는데?"
"나한테 묻지 말고 엄마, 아빠, 오빠한테 물어보라고."

"하하하."




이런 해리의 야망을 다독거리는 일은 아무도 모르는 나 혼자만의 고충이다.


그런데도 시간만 생기면 이하영은 자기가 입고 있는 팬티 색깔을 알아 맞추라는가 등등 ..





[3]
그런데 그 때 여우들 세상 닷컴 말고도 다른 인터넷 쇼핑몰들이 우리에게 제휴를 하자고 덤벼든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런데 내가 그들을 직접 방문해서 둘러 보면 너무 딱해서 말이 안 나올 정도이다.

그들은 운영자들이 걸려있는 이름과는 다르게 하나같이 퉁퉁하고 해괴망칙한 아줌마들이고, 서울도 아닌 시흥이나 안양, 일산, 의왕 등에 위치하고 있다. 그들은 건물의 반지하층을 세로 얻어서, 주로 의류와 악세사리 들을 취급하는 쇼핑몰들이었는데, 너무 열악하고 영세하다.

그들은 아마도 우리 김치 때문에 자기들이 커보려고 하는 것 같다. 나는 이런 실정을 파악하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중이었다.

여우들도 일일 접속자수를 증가시키는 문제를 해결했다. 그것은 우선 이하영이 고안해낸 것으로 가능했다고 한다. 게시판에 동영상 모듈을 첨가시키는 방법이었다. 그들은 거기에 다른 이벤트 행사도 같이 열기도 했다. 그래서 그 회사의 주식도 안정세로 끌어올린 모양이다. 나는 이런저런 일 때문에 여우 팀장과 전화를 자주 하면서, 우리는 상당히 가까워졌다. 그 팀장 여우는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여자였다.

토요일 오후였다. 그 날도 해리는 내가 보는 앞에서 하영이에게 주문서를 처리하는 과정을 하나하나 배우고 있었다.

그런데 여우 팀장이 나에게 보고 싶다며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녀는 무슨 일이 있으면 꼭 보고 싶다는 말로 시작하기 때문에 내 궁금증은 더 커진다.




"까칠아. 누나 생각 안나니?"
"보고 싶기는 해도, 여기가 요새 엄청 바빠져서. .."


"잘 나가네?"
"그럼 뭐해? 아직 적자거든요."

"얼마 안 남았으니까 우리 까칠이 힘 내라고. 오늘 저녁에 어때?"
"나 좀 늦는데. 그래도 괜찮아?"


"나도 지금 엄청 열 받는 중이야. 끝나면 전화해. 내가 치맥 쏠게."
"무슨 일로 또 열 받는데?"

"너네 아직 적자라며? 적자 대표보고 쏘라고 할 수 있냐? 내가 쏴야지."
"그니까 무슨 일로 보자고 하냐고."

"어라? 생각하면 모르겠니? 그거야 당연히 우리 까칠이가 보고 싶으니까 그러지."





망할놈의 까칠이.
통화가 끝나자 해리가 눈을 깜빡이며 내게 묻는다. 그런데 대답은 이하영이 한다.




"오빠. 그 여자 누구야?"
"내 생각에 보나마나 여우야."

"여우? 그게 뭔데?"

"여우들 세상 닷컴에 김팀장. 오빠가 저렇게 짜증까지 부리면서 까칠하게 전화 통화를 하는 사람은 여우밖에 없어."

"그 여우는 왜 오빠한테 꼬리를 치는데?"
"하하하. 여우니까 꼬리를 치죠. 너도 참."

"오빠는 토요일에 우리랑 나가야지 왜 여우랑 나가?"

"아직은 우리가 여우네 한테 신세를 지고 있는 입장이거든. 또 저 두 사람이 역적모의도 같이 하고 그래."

"그럼 여우가 오빠한테 갑질하나?"
"대놓고 갑질은 오빠가 하지. 너도 나중에 두고 봐. 저 둘이 진짜 완전 꿀잼이야."




우리는 그 날 저녁 8시쯤에 여우의 회사 근처에 있는 치맥집에서 만났다. 그녀는 자기가 누나라고 해버리기 때문에, 만나도 나에게는 전혀 부담이 없다.

그런데 여우라서 그런지 말은 엄청 거침없이, 완전 여우처럼 한다. 나는 아마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그녀만의 방법이겠거니 해둔다. 사실 그녀의 마케팅 얘기를 들어보면 그녀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케팅은 하지 않는다고 다짐을 한다. 그렇지만 지금은 내가 다 하는 입장이니, 이것 저것을 가릴 수가 없다.



나는 여우 팀장과 만난 이 자리에서 그런 열악한 쇼핑몰들과 손잡는 일들을 그녀와 의논했다. 내 말을 들은 그녀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나야 뭐. .. 거기랑 손 잡으면, 나중에 골치는 좀 아플 거야."
"왜? 이 사람들이 사기라도 치나?"

"그 사람들이 앞으로 얼마 넘기지 못하고 문을 닫을 것 같아 보이지 않니? 까칠이 너도 해봐서 알겠지만, 그렇게 해서 이 바닥에서 살아 남을까?"

"아무래도 식품이 아니고 옷이니까, 유효기간도 없고 .."

"옷에 유효기간이 없다고? 그럼 철 지난 옷이 팔린단 말이니? 그 옷들은 전부 중국에서 사들여와서 파는 거야. 제 철에 안 팔리면 한 물 간거고, 80% 세일해도 안 팔려. 그러면 결국은 리어카에서 파시는 분들한테 보따리로 넘겨야 한다고."

"으음. .. 그렇겠네."

"까칠이 너는 이 누나랑 손잡은 것을 진짜 다행으로 알아야 해."
"나도 늘 로또 탔다고 생각하고 있어."

"그런데 첫날부터 완전 까칠하고 말이야 .."
"첫날만 쫌 그랬거든요."

"그래? 그럼 뽀뽀!"
"아이. 또 왜 이래?"

"거봐라. 너는 나한테 아직도 까칠하지."
"누나. 내가 누나 같은 노처녀랑 뽀뽀하면 진짜 슬퍼지거든요."

"해본 적은 있고?"
"아니. 아직."

"너, 나한테 자꾸 그렇게 까칠하면, 내가 언젠가는 딴다."

"누구 맘대로?"
"당근 내 맘대로."




여우가 말은 이렇게 하지만, 아직 우리는 키스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요새 나는 점점 불안해진다. 그 이유는 여우가 우리 싸이트에 자기네 상품 몇 가지를 입점시켜 달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러다가 무슨 일이 터질 것만 같다.



"우리도 너네 김치 무료로 입점 시켜줬으니까."
"누나. 우리는 아직 5만도 안돼."

"김치 한 가지만 갖고 한두 달만에 하루에 5만 끌어오기가 쉽냐? 너나 하니까 하는 거야. 이 해만 넘기면 너네 분명 10만은 거뜬히 넘을 거잖아? 아니면 내 손가락에 장을 지진다."

"그건 동영상 때문이고 .. 누나네도 20만 넘었거든?"
"그래서 내가 너를 만나는 거지. 너 때문에 우리 안 잘렸다고 우리 팀 애들이 너 엄청 좋아해."

"안그래도 다들 나를 엄청 좋아해. 하하."
"으이구우. 무슨 말을 못해요. 아무튼 너랑 너네 전산하는 여자애 있지? 우리가 스카웃 할거야. 조심해."

"딴다. 스카웃 한다. 진짜 말로만."
"따는 건 조만간이야. 나 이번 생리 끝나면. 히히."

"누나 술 됐어?"
"나 아직 500 첫잔이거든요. 하하."

"그럼 맨정신으로 나한테 그런 말을 막 한다고?"
"야! 내가 오늘 갈 수도 있는데, 생리 때문에 안 된다고. 우리 사이에 이 정도도 못할 소리냐?"

"누나는 그런 말은 꼭 미리 하더라. 그런데 정작 갈 때가 되면 슬그머니 넘어간단 말이야. 앞으로는 아예 확실하게 날을 잡아서 가자고 해."

"날 잡으면 가기는 갈거니?"
"다른 사람은 안돼도 누나는 특별히 봐준다."

"으음. .. 그럼 이거 생각이 달라지네."
"왜?"

"오늘 생리 .. 그거 뻥이거든."
"그럼 가시죠? 빨랑 나가자."

"기다려. 계산은 하고 가야지."




여우는 말은 그렇게 해도, 정작 집에 갈 때는 그냥 찢어져서 간다.




"오늘은 닭을 먹어서 도저히 안되겠다. 다음에 한우 먹고 가자."
"한우? 우리나라에서 더 이상 안 나온대."

"그럼 중국에서 수입이라도 하거든."
"한우를 중국에서 수입한다고? 그럼 그게 한우냐? 중우지."

"야. 요새는 한국에서 먹으면 다 한우야. 원산지 표시를 다들 속이는데 어떻게 믿냐? 한국산 요새 다 중국에서 수입해오거든? 한우라고 못할 것 같냐?"

"오케이. 그럼 당장 한우 먹으러 가."
"방금 닭 먹고 또 한우 먹자고? 오늘 왜 이렇게 서둘러? 나 지금 생리라고!"

"뻥이라며?"
"뻥도 생리는 생리야."




이것이 여우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아무튼 여우랑 만나면 재미는 있다. 우리가 일하면서 가져온 스트레스를 서로 주고받는 입담으로 풀기 때문이다. 그녀와 이렇게 헤어지고 나서, 나는 밤에는 신예진이 아프다고 사정할 때까지 박아댄다. 물론 머리 속으로는 여우를 띄워 올리면서.



여우가 나를 딴다고?

두고 보삼.
내가 여우 너 꼭 딸거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니가 보류중이거든.
하여간에 너만큼은 내가 꼭 딸거임.




[4]
다음날 일요일에 사무실로 출발하려고 하는데 윤은경이 나에게 전화를 했다.



"윤하씨. 어제 여우 만났다며?"
"와아아. 스토킹 해?"

"징그럽게 무슨 스토킹? 해리가 그러던데? 그건 그렇고 저녁에 좀 보자. 청담동으로 올래?"
"알았어."

"그런데 해리나 하영이에게는 비밀로 해줄래?"
"무슨 일인데? 심각해?"

"이따 얘기해."
"사무실에는 못나와?"

"하루 종일 본사에 있어야 해."



윤은경은 한 여자의 몸으로 몇 가지 일을 완벽에 가깝게 해내는 무서운 여자다. 내 롤모델이라고나 할까?



그 날은 나와 이하영 둘이서 월요일 아침 배달 준비를 모두 끝냈다. 해리도 있었지만, 해리는 아직 심부름이나 하면서 일을 배우는 정도이다. 윤은경이 없는 빈 자리는 너무도 컸다.

저녁때 나는 하영이와 해리를 차에 태워서 차례로 집에 데려다 주었다. 해리는 같이 올라가자고 했으나, 나는 윤은경에게 간다는 것을 숨기느라고, 학교 친구들과 약속이 있다는 거짓말을 했다.



나는 윤은경과 미리 전화를 하고 그녀의 아파트로 갔다. 벨을 누르자 문을 열어주는데, 그녀는 막 샤워를 했는지, 머리에는 아직 물기가 그대로 있고, 옷도 얇은 슈미즈만 걸치고 있다. 속이 그대로 다 비친다. 그녀의 온 몸에서 향기가 내 코를 찌른다.



"뭐야아. 혈기 왕성한 남자를 오라고 해놓고, 이러고 나오면 나보고 어쩌라고?"
"미안. 나도 방금 왔거든. 몸이 찌뿌뜨한 것이 꼭 아플 것 같아서 .."




그런데 윤은경은 나에게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으라고 하더니 저녁을 안 먹었다면서 배달음식을 주문하자고 한다. 그녀는 전화를 해서 치킨을 주문했다. 나에게는 잔과 와인을 내주고 옷을 입고 오겠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윤은경이 도대체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는지 나는 엄청 궁금했다. 지금까지 같이 일을 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TV를 켜놓고 와인을 홀짝거렸다. 방 안에서는 머리 말리는 소리가 난다.


한참 후에 그녀가 슈미즈 위에 얇은 반팔 가디건 하나를 더 걸치고 거실로 나온다. 우리는 같이 소파에 앉아서 와인을 마셨다. 또 피자가 도착해서 내가 돈을 주고 받아왔다. 그녀는 접시에 나이프와 포크를 얹어서 들고 왔다.

그녀는 피자를 먹고 와인을 마시기만 할 뿐, 도대체 말이 없다. 답답한 사람은 나였으므로, 하는 수 없이 내가 말을 시켰다.



"누나. 몸이 안 좋으면, 내가 마사지라도 해줄까?"
"마사지? 할 줄은 알고?"

"나 요가 경력이 3년인데."
"됐어. 개도 안걸리는 여름 감기가 오나?"

"그럼 찜질방에 갈래?"
"아니야. 지금은 휴식이 필요해."

"그런데 왜 나를 오라고 했어? 그냥 조용히 쉬지."
"윤하씨가 있어야 휴식이 되겠어서 그러지 .."



윤은경이 촉촉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그녀의 미모는 내가 자칫하면 실수할 정도이다. 지금도 내 옆에 거의 닿을 정도로 나란히 앉아있어서 내 심기가 그리 편한 것은 아니다. 오늘따라 그녀의 얼굴에 슬픔이 가득한 것 같다.

그녀가 한숨을 내쉬더니 와인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신 후에 입을 열었다.



"하아. .. 윤하씨. 나 이번에 완전 대실망이야."
"왜? 나 때문에?"

"자기가 나한테 뭘 했는데? 이거 다 과장님 때문이지."
"무슨 일인데?"

"의사가 그러는데, 주사 했었대."
"주사?"

"마약."
"뭐야? 영철이가?"

"지금 심장도 완전 엉망이래. 그 나이에 판막도 위험해서 인공 판막을 넣어야 한대. 합병증도 당뇨가 왔대. 자기는 친구라는 사람이 그러는 것을 어쩜 그렇게 전혀 모르고 있었어? 그러고도 둘이 친구냐?"

"글쎄 .. 걔 성격이 .. 어려서부터 나한테 자기 약점을 숨기는 애라서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해리 생각을 해서라도 어떻게 그럴 수가. .. 에이. .. 완전 나쁜 녀석이네."

"과장님한테 그렇게 말도 못 하지. 이게 다 일 때문이야. 불안하니까 밤에 잠을 못 잤나봐. 처음에는 수면제를 한두 알 먹고 자다가, 나중에는 그게 안되니까 거기 손을 댔나봐."

"일? 무슨 일인데? 그 가짜 석유 파는 일?"
"어머. 자기 알고 있었니?"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 말이 튀어나와버렸다. 후회를 했지만 이미 늦었다. 나는 어떻게든 수습을 하려고 말을 주저리주저리 내뱉는다. 상대가 윤은경인데 무슨 소용이 있다고.



"눈치로만. 지난번에 병원에서 나올 때 뉴스에 나오는데, 누나 안색이 확 바뀌더라고 .."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

"누나네 회사에 무슨 비자금이 많이 필요하다고 그런 일까지 한대? 나이도 어린 애가 그런 일을 하니, 밤에 잠이나 제대로 오겠어? 그 녀석도 그렇지. 밤에 잠이 안 오면 여자를 안고 자든가 할 일이지, 왜 약에 손을 대냐고."

"참나. .. 우리 착한 윤하씨. 다 알고 있었네."

"나야 짐작만 했지. 말도 못하고 두고 보기만 하면서 얼마나 답답했는 줄 알아? 말이나 속 시원히 해봐. 도대체 뭔데 영철이가 그렇게 망가지는데?"

"알았어. 이렇게 된 것 .. 말할게."



그녀는 다시 와인을 마신 후에 두 눈을 지긋이 감고 한참 생각을 한다.



"내가 이 말을 하면 비밀은 지켜 줄거지?"
"지금처럼 모르는 척 하고 입 다물고 있을게."

"좋아."



나는 그녀의 눈치를 살피면서 와인을 마셨다. 내 목이 완전 타는 것 같다.



"우리 사장님이 내년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려고 해. 그러려면 돈이 엄청 들어간단 말이야. 우선 내년 연초에 당으로부터 공천을 받아야 하거든. 아직은 한참 전이기 때문에 공천 위원이 누가 될 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뻔하잖아. 그러니까 지금 줄서기를 잘 해야 한단 말이야. 그 때 가서 하면 너무 늦고, 단속에 걸리기도 쉽거든. 그래서 지금부터 돈을 엄청 발라야 해요. 지금이 차떼기철이라고 보면 돼."

"그 돈을 영철이랑 누나가 만드는 거네?"

"선거 운동도 그래. 선관위에서 정한 선거운동은 그 때 가서 하는 거고. 우리 사장님은 자기가 나가려는 지역구에 가서 지금 미리 손을 쓰는 거야. 그 대신 표 안 나게. 공사도 해주고, 환경 운동이나 복지 쪽도 지원하고, .. 이게 다 돈이잖아. 지금 하는 거는 명목상으로는 지역 후원 사업이지, 선거운동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뭐라고도 못해."

"선거는 국민의 심판인데 돈으로 해결한다고?"

"지금 교과서 외우냐? 우리 나라가 겉은 번지르르해도 속은 간나하잖아. 가난한 국민한테 민주주의가 우선이냐? 아니면 당장 돈이 우선이야?"

"그럼 그 사장이라는 인간은 이번에 얼마 정도를 써야 하는데?"
"거기는 서울이 아니라서 우리 계산으로는 한 300억 정도? 서울 같으면 그런 돈으로는 어림도 없지."

"지금 있는 돈은?"

"거기 들어갈 돈은 다 있어. 그런데 돈 들어갈 데가 어디 그게 다냐? 사람들 챙겨야 하고, 나중 일도 미리 준비도 해야 하고 .. 300억 정도가 더 있어야 하는데, 지금 거의 다 해결한 상태야."

"그 많은 돈을 가짜 석유 팔아서 만들었다고?"

"그건 아니지. 우리가 여기 저기 부동산에도 엄청 손을 대잖아. 지금 우리 뿐이 아니야. 내년 선거에 나갈 사람들 너나 할 것 없이 다들 지금 돈 만드느라고 박터져. 제일 만만한게 가짜 석유야. 그건 근거도 남지 않고, 짧은 시간에 크게 할 수 있으니까 엄청 유리한거지. 내가 아는 것만 해도, 우리 말고도, 크고 작은 덩어리가 10개는 넘어. 지금 다들 너무 많이 하니까, 경찰은 호구가 아닌데, 개무시 당하고, 그러니까 그냥 손 놓고 구경만 할 수는 없잖아? 그래서 이번에 촌구석에 있는 피래미 하나 잡아 넣은 거야."

"그 사장은 왜 그런 정치를 꼭 하려고 하는데?"
"그건 사장님 탓이 아니거든요. 회사가 살아남아야 하고, 앞으로 더 키우려니까 어쩔수 없어."

"정치 안 하면 회사를 못 키우냐?"

"힘없는 사람이, 이름 없는 회사를 키우잖아? 그런데 만일 같은 업계에 있는 다른 힘있는 회사가 그걸 그냥 두고 보겠어? 자기 경쟁자니까 제끼려고 할 거잖아. 어차피 우리나라 시장이야 빤하니까 나눠먹기를 해도 빤하거든요. 지금까지 아무 힘 없이도 이름 없는 회사를 저 만큼 키운 것도 사장님이랑 과장님 능력이지."

"그럼 영철이는?"

"우리가 지난 2년 동안에 만든 돈이 500억 가까이 된단 말이야. 그 중에서 100억 정도를 과장님이 해냈다고 보면 돼. 나는 과장님 옆에서 시키는 심부름이나 한 거고. 우리 과장님은 나이는 어린데, 땅 보는 눈, 사람 보는 눈, 돈 줄을 보는 눈은 진짜 세계 최고 같아. 완전 천부적이라니까."

"그럼 사장님은 영철이한테 나중에 한 자리 주나?"

"지금 과장님은 우리 회사에서 사장님 다음이야. 오른 팔이고. 앞으로라고 달라지겠어? 우리 사장님 재산이 얼마인지, 과장님이 말 안 하면, 사장님은 몰라. 그 중에서 과장님이 몇 억 빼돌린다고 해도 누가 알겠니? 과장님은 절대로 그런 짓 안 하니까 사장님은 오른 팔로 붙잡아 두는 거고."

"그래서 병원에 있을 때도 VIP실에 있었나?"

"그것도 내가 한 것이 아니야. 나는 모르고 있었는데, 사장님이 직접 와서 전부 다 시키고 갔어."

"돌겠네. 그러면 뭐하냐고. 애가 저 모양인데."
"그니까. 내 말이. .. 그렇게 힘들면 나한테 말을 하지. 왜 약에 손을 댔냐고."

"누나한테 말 하면?"

"같이 술은 못 마셔도, 저녁에 같이 있어줄 수는 있잖아. 어차피 퇴근하고 나면 나도 혼잔데. 내가 자기보고 뭐랬어? 여자 나오는 술집에 과장님 좀 데리고 가라고 했지? 자기 내 말 들었어? 씹었잖아?"

"그게 .. 아직. .. 지금까지는 너무 바빴잖아. 누나도 다 알면서."

"그래. 그건 그래. .. 우리 사장님도 지난 번에 콘도에서 잘빠진 탈렌트, 걸그룹, 배우 여자애들 불러다가 술자리를 열었어. 과장님도 그 자리에 초대 받았거든. 그런데 과장님은 그 날짜에 제주도나 이런 데로 출장을 잡고 가버려. 그런 자리에 절대로 안가.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니야. 그래서 내가 보다 못해서 자기보고 하라고 했는데, 자기는 도대체 .."

"그러니까 누나랑 같이 가자니까."
"이제 별 수 있니? 윤하씨가 나보고 같이 가자고 하면 가야지. .. 하하."

"저 몸에 술을 부으면 어떻게 되는 줄 알고 하는 소리야?"
"자기 진짜 바보니? 아니면 순진한 척 하니? 여자 나오는 술집에 가면, 술은 안마시고, 여자만 건드려도 되잖아."

"어이구우. .. 무슨 일이 이 모양인지 모르겠다. 그럼 누나는 영철이랑 잤어?""

"뭐야?"
"영철이랑 섹스 했냐고."

"우리는 그런 일 절대 안 하기로 한 것이 계약 조건 1번이었거든. 과장님이 내 몸에 손끝 하나라도 대면, 난 바로 사요나라야. 나, 지금 이 회사 아니라도, 아직은 잘 팔려. 지금 받는 돈보다 더 주겠다는 데도 네 군데나 있어. 그거 함부로 거절하기도 쉽지 않아."

"하긴. .. 그 미모에, 그 실력이면 .. 누나야말로 완전 천부적이야. 타고났다니까."

"나랑 과장님은, 내가 일하면서 보면, 진짜 명콤비 환상이야. 그래서 내가 과장님이랑 일을 주욱 하는 거고."

"이제 영철이 쟤를 어째야 해?"

"아직은 나도 모르지만, 이제 일 년도 안 남았으니까 이대로 쭈욱 갈 것 같아. 하도 속이 답답해서 터질 것 같아서, 병이 날 것 같았다니까. 그래서 오늘은 자기 오라고 한 거야. 그런데 원래는 이것도 반칙이야. 우리 같은 프로는 이러면 안되거든. 과장님처럼 혼자 삭혀야지."


영철이의 이 일은 해결책이 있을까?



- 다음 회에 계속?? -





** 이거 다 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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