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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르는 강물처럼 - 단편28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3 01:17 492회 0건


** 오늘 글은 교통정리를 쓰려고 했는데, 빗나갔어요. 그래서 수위도 별로 없고. 그래도 성인용은 성인용이거든요. 봐주십쇼. .. [꾸뻑]



지난 번에 댓글 써주셔서 너무 감사해요.

** 밤나루1900님께 그런 비밀이 .. 완전 악당들이네요. ㅋㅋ
** 파랑새40님, 저도 서툴거든요. 이렇게 글쓰면서 연습중입니다. ㅎㅎ
** 흰트라제4님, 기대 이상이시라면, .. 도대체 어떤 기대를 하셧는지가 궁금 .. ㅋㅋ
** 새털구름들님, 딱걸렸네요. 고수님 손바닥이라니까. .. ㅋㅋ
** tokki님 때문에 이번 글 서둘러서 올렸어요.
** 김수와무님, 지금 세지 않으셔도, 다음에 요점정리 올릴때 ..
** 김샌맥주님, 설마 3000 까지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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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기적을 기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야.



[1]
주식회사 "여우들 세상 닷컴" 마케팅부의 기획팀장 김수연은 11월 중순에 자신에게 가해진 성희롱 사건을 회사 내 전 직원에게 사내 메신저를 통하여 공개했다. 김수연 팀장은 회사 뿐만 아니라 고용노동부, 여성가족부, TV 지상파 3사, 강남 경찰서에 이메일로 동시에 알렸다.

그런데 문제는 김수연 팀장 뿐만 아니라 다른 여직원들도 이와 같은 성희롱 사건들을 당하면서도 그 동안 비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들도 이제는 진실을 밝히겠다면서 일제히 말문을 연 것이다. 그런데 그날 점심 시간 이후에 디자인부 3명, 전산부 2명, 마케팅부 2명, 관리부 3명이 더 나타났다. 모두 11명의 여직원들이 김수연의 뒤를 따라서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들은 가해자인 남자 상사가 누구라는 것까지 실명으로 공개해버렸다. 늦은 오후가 되자 가해자는 고위직에 있는 남자들만 아니라, 중간 관리자들도 마찬가지였고, 피해자는 갈수록 늘어났다. 이미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난 여직원들 중에도 상당수가 연관되어 있는 것도 알려진다.

처음에는 회사에서는 자기들과 고용노동부만 일고 있는 줄 알았다. 그리고 고용노동부에 재빨리 중재를 요청해놓고 합의를 들고 나오면서 회유하려고 시도를 한다. 물밑으로는 거액의 합의금을 제시한다.

회사는 합의를 강력하게 추진했다. 이 많은 직원들이 동시에 빠져나가면, 빈 자리로 새로 직원을 고용하더라도 시스템에 익숙해질 때 까지는 한두 달 동안 업무의 공백을 피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각 분야에서 능력 있는 팀장급들 여직원이 4명이나 연루되어있는 것이다. 이 회사의 팀장이라면 차장이나 부장이다.



누가 무슨 말을 해도, 가장 큰 어려움을 가진 사람들은 피해 여직원들이다.

이 일이 세상에 알려지면, 그녀들이 다른 직장에서 근무한다는 것은 이 나라에서는 불가능해진다. 그녀들은 이 사회에서 완전히 생매장을 당하는 것이다. 회사, 가정, 친구 등등. .. 비록 이 사회가 피해 여성들을 받아준다고 해도, 그녀들 스스로가 떳떳하게 나서지 못하는 것이 암담한 현실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이 나라에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가들은 누구나 다 선거 때마다 일자리 창출을 말하지만, 선거구호가 실현되는 것이 몇개나 되나? 일자리는 기업이 창출하는 것인데, 왜 정치가들이 나서지? 그러니까 될 리가 없다.

그들이 만드는 일자리는 고작 인턴이나 비정규직들이다. 이들에게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실낱 같은 희망이 있기는 하지만, 바로 이 문제가 이들에게는 가장 큰 약점이 된다.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명하에서 그들은 갑과 을을 분명하게 가리고, 갑은 을을 절대로 그냥 두지 않는다. 갑이 저지르는 갑질 중에 성희롱이나 성폭력이 없다고 누가 자신있게 말할 수 있나?

원래 법이란 강자가 약자를 어떤 방식으로 지배하더라도, 약자가 자기들의 불만을 합법적으로 표출하라고 있는 것이 아닐까? 강자가 약자를 지배하는 것을 정하는 법이 이 세상에 있을까? 강자가 언제 법대로 살았나? 오늘날 이 사회에서 누가 강자인가? 법을 피해갈 수 있는 능력, 재력 그리고 권한을 가진 자들이 강자가 아닐까?



여우들 세상 닷컴이라는 회사에서는 피해 여성들이 갖고 있는 이러한 약점과 이 나라의 사회 구조를 악용하여 합의에 자신을 갖고 있었다. 그렇지만 퇴근 시간이 가까워지자 이 사건은 전혀 다른 국면을 맞게 된다.


회사는 특별 감사팀을 꾸려서 오후 2시에 협상 테이블로 피해여직원들을 불렀다. 그리고 그녀들은 일치단결하여 일단은 협상에 순순히 응해주는 척 하고 연기를 한다.


그런데 오후 4시가 된다. 김수연이 처음에 기자들과 약속한 시간이 오후 4시였다. 그녀는 기자들에게 그 때 까지는 비밀로 해달라고 요구했었다.


약속 시간이 되자 갑자기 지상파와 종편 TV 방송국들의 취재차랑들이 이 회사로 나타났다. 다른 신문과 TV 라디오 방송들의 취재진들도 속속 도착했다.

이 때 김수연과 피해 여직원들은 이 시간에 로비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수다를 떨었다. 겉에서 보면, 그녀들이 힘든 협상을 넘기고, 쉬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그녀들은 취재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의 1층 로비는 물론 건물 밖의 도로까지도 갑자기 야구모자와 마스크 차림으로 나타난 피해 여직원들, 그리고 갑자기 나타난 취재진들로 붐빈다. 취재차량들은 미처 주차장에 주차를 하지 못하고 인도와 차도를 점령했다. 그것도 퇴근 시간에.

그러니까 길을 가던 사람들도 볼거리가 생겼다면서 몰려든다. 한마디로 이 회사 건물 일대는 순식간에 인산인해가 되어버린 것이다.


기자회견이 약 30분 정도 진행된다. 회사의 임원들과 관리자들은 입도 벙긋 못하고, 나서지도 못하고, 행인인 척 하고, 구경만 하는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는 다른 직원들도 나와서 구경했다.




기자 회견이 시작되자 언론이 문제가 아니었다. 언론보다도 구경하는 시민들이 더 먼저 이 사건을 터트렸다.

시민들의 SNS에는 동영상과 사진, 그리고 추측성의 기사들이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인터넷에서는 퍼나르기를 하면서 포털사이트에까지 올라갔다. 누가 뭐래도 대한민국은 IT강국이었다.

이제는 언론사들이 보도를 하지 않으면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 TV 방송국들은 벌써 뉴스 속보를 통해서, 또 그날 저녁 6시 뉴스부터 이 사건을 보도했다.



그제서야 고용노동부나 여성가족부는 그 무거운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고 일어서서 움직여야 했다. 소위 말하는 진상파악 또는 대책마련 어쩌고 하면서. .. 그렇지만, 저들의 진상파악이나 대책마련은 어디까지나 공무원들이 서류를 작성하기 위한 작태이지, 피해여성을 돕기 위한 일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월급을 받으니까, 서류라도 제대로 작성하여야 하지 않을까?


언론과 SNS 또 각 파워블로거들이 앞을 다투어 이 사건을 보도하는 바람에 이 나라는 시끄러워졌다. 그 회사의 사이트에는 해명하는 글이 계속해서 올라오지만, 누구 하나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없다.


그 회사의 주가는 순식간에 바닥을 쳐버린다. 투자자들은 투자금 회수에 들어갔다. 이 회사의 인터넷 쇼핑몰의 방문객은 하루에 100만을 넘어선다. 이들은 호기심 때문에 클릭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매 실적은 갈수록 떨어진다. 뿐만 아니라 입점해있는 점주들도 빠져나간다.


그 회사는 회복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끝내 실패했다. 12월로 넘어오면서 그 회사는 온라인에서는 자취를 감춘다. 거의 2주만에 그 회사는 부도를 선언하고 폐업신고를 한 것이다.



여우 팀장 김수연이 우선 11월 말에 그 쪽 회사에서 데리고 온 여직원들은 모두 12명이다. 그러니까 여우팀장까지 합하면 13명이다. 마케팅 기획과 전산 분야에서는 모두 실력이 빵빵한 여자들이다. 비록 불법이지만, 우리는 그녀들에게 비밀리에 알바 정도의 낮은 보수로 일자리를 제공해서 그녀들이 길바닥에 나서는 것을 막았다. 겉으로는 그녀들이 실업자들이기 때문에, 그녀들에게는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김수연 팀장과 그 회사의 웹팀 직원들은 여우들 세상 닷컴에 있는 김치페이지에 팝업창으로 특별 공지를 해두었었다.



"만일 어느날 갑자기 이 사이트가 문을 닫으면 웰빙 라이프로 오십시오.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상품 특별 할인판매를 12월 5일부터 시작합니다."



그렇고 그런 사건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났기 때문에, 우리 웰빙라이프에는 엄청난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우리 쇼핑몰을 방문하는 방문자는 매일 70만을 넘어선 것이다. 이하영과 웹팀 멤버들은 매일 손뼉을 친다.

그렇다고 해서 매일 70만명이 전부 우리 고객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지금은 여우들 세상 닷컴 때문에 호기심을 갖고 건너오는 사람들이 절반은 될 것이다.

이제 저 70만명 중에 우리가 고객으로 20만 정도를 붙잡을 수 있느냐가 문제였다. 여기에 우리 웹팀은 도전을 한다.


하루 20만 방문자는 나와 김수연이 고민하던 일이었다. 처음에는 이 일을 김수연 혼자 고민했었다. 웰빙이 20만이라는 마의 숫자를 넘게 하고 나서 그만두느냐? 아니면 그냥 그만두고 그 일을 가능하게 만드느냐? 결국은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는 순서의 문제였다. 이 순서 때문에 몇 날 며칠을 김수연이 머리아파 했었다.

그러다가 나와 그녀가 처음으로 한 몸이 되던 날, 그날은 우리 둘이 같이 고민했다. 우리가 그날 밤에 내린 결론은 "우선 터트리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김수연은 일요일 하루를 꼬박 투자하여 엄청 철저하게 계획을 세운 것이다. 그리고 다음날 월요일부터는 실행에 옮겼다.

이렇게 해서 김팀장의 이 착한 고민은 우리에게 기적을 만들어내기는 했다.

그렇지만 이 기적은 우리 웨링라이프를 또 한번 사활의 위기로 몰아넣는다. 참으로 냉혹한 세상이다. 그러나 김수연은 나에게 키스하며 말했다.


"자기야. 꿈꾸는 자들에게는 기적을 맞이할 자격이 있어. 그렇지만 이 기적은 결코 공짜로 오지 않아. 기적을 기적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 자신이야. 이제부터 자기는 유식한 생각은 고만 하시고, 우리를 찾아 오는 기적을 맞이할 준비를 하는 거야. 알았지?"

"와아아. 누나도 엄청 유식하고 고상해졌잖아?"

"그래야 우리 자기가 나를 예뻐하지. 내가 자기한테 맞추는 수 밖에 더 있어? 내가 요새 황새 걸음을 따라가느라고 가랭이가 찢어진다니까. 하하."

"흐음. .."

"하아. .. 어떡해? 이번은 쫌 그렇지? 역시 난 어쩔 수 없나? 하하."





[2]
김수연이 제일 먼저 문제로 삼은 것은 우리가 쓰고 있는 오피스텔 네 개가 너무 좁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김치 창고, 다른 상품들과 포장 용품의 창고 등등. 지금 아침 저녁으로는 발 디딜 틈이 없다. 여기에 여우들이 몰려들면 진짜 답이 없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었다. 나는 이번 기회에 이 문제에 손을 대서 해결책을 찾아보기로 마음먹었다.


나와 윤은경 그리고 황영철은 이 문제로 자리를 같이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사무실을 옮기자는 고집을 부렸다. 윤은경과 황영철은 내가 고집을 부리자 사태의 심각성을 받아들이고 동의했다. 그런데 황영철은 김치공장으로 이전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을 꺼냈다.



"우리 건물이고, 주차장도 넓고, 비어있는 방이 6개나 있는데."
"컴퓨터 혼자 일하냐? 거기로 누가 출퇴근 하냐?"

"아아. 맞네. 그렇다고 이 오피스텔 건물을 통째로 다 쓸 수도 없고, .."
"여기는 공짜로 줘도 안돼. 주차장이 제일 큰 문제라니까."



그렇지만 오피스텔을 나가자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꿈일 뿐이었다. 금싸라기땅 강남에서 건물을 산다는 것은 말이 안되고, 빌딩을 임대한다는 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월세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넓은 주차장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황영철은 며칠 동안을 여기 저기 바쁘게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나와 윤은경을 데리고 양재동 구석으로 갔다. 그 곳에는 오래된 공장 건물이 있었다. 주차장으로 쓸 수 있는 공터도 넓고, 3층짜리 건물도 있다. 첫눈에 욕심이 간다. 이 건물을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뭐지? 여기서 전에 무엇을 했었는데?"

"윤하 마음에 들면, 어떻게든 당장 손을 써볼게. 무슨 플라스틱 공장이었다는데, 몇 년 전부터 비어있대"

"흐으음. .. 욕심은 가는데, ..."
"우리 윤하씨 여기에 꽂혔구나. 어떡해? 그렇게 마음에 들어? 그런데 어째 귀신 나올 것 같지 않니? 하하."

"건물이 너무 낡았어. 일이 진짜 장난 아니게 많겠다. 이 정도면 워낙 넓어서 임대료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 .."

"윤하가 한다고만 하면, 우선 급한 대로 사무실 쪽을 먼저 수리하고 이사해. 임대료 문제는 보증금을 올려 주고, 월세를 낮춰달라고 해볼게."

"주인이랑은 잘 알아?"
"나는 모르고,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



그는 말 끝을 얼버무린다. 그가 말한 것은 아니지만, 내 느낌으로는, 과거에 이 건물에서 비밀리에 유사휘발유를 만들었었던 것 같다. 구석구석에 먼지에 덮인 기름통들이 건물의 안과 밖에 눈에 띄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황영철에게 이 말을 하지는 않았다.



"법적으로 아무 하자 없지?"
"그런 데를 너한테 쓰라고 하겠냐?"



그는 곧바로 계약을 한다고 했다. 나는 인테리어 회사 4개를 동시에 불렀다. 공사는 건물을 거의 다시 짓는 수준이었다. 건물의 외부에 단열재를 덧붙이고, 지붕 공사도 다시 했다. 창문도 단열 삼중창으로 모두 교체했다. 크고 작은 방들이 모두 20개가 넘게 나왔다.

이렇게 사무실 부분을 공사하는 데에만 꼬박 10일이 걸렸다. 우리는 12월 초에 이 건물로 이사를 한다. 또 창고 공사까지 모두 끝내고, 1월 중순에는 이사를 완전히 끝냈다.




[3]
김수연 팀장은 사건을 터트리고 나서, 바로 우리에게서 일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거의 매일 밤 나와 김영숙을 그녀의 아파트로 불렀다. 우리는 그녀의 아파트에서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에 특별 할인 판매 행사를 기획했다. 우리는 할인 행사용 상품을 수입해 들여왔다. 그야말로 엄청난 물량이어서 나는 겁이 났다. 그렇지만 김수연과 김영숙은 당연하다는 듯이 해치운다.



"대표오빠, 이번에 또 부족하면 어떡하지? 추가 준문은 안 통해. 그 쪽도 없어서 못 팔거든."

"그럴 일이 없도록 여유있게 주문해야지."

"이러다가 나 때문에 회사 망한다는 소리 나올까봐 살떨린다."

"우리 작년에 우리가 해치운 물량이 여기 있거든. 영숙이 너는 쓸데없는 걱정 하지 말고 내가 시키는 대로만 해."

"언니는 덩치는 작은데, 저 배짱이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야?"
"궁금하면 500원. 하하."



강희영 팀장이 이끄는 아줌마부대도 이제는 거의 40명에 가깝다. 그런데 12월이 되자 가정용 김치는 수요가 눈에 띄게 줄어들기 시작한다. 그래도 업소용 김치는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이하영은 각 대학의 취업보도실에 연락하여 알바생을 모집했다. 그런데 그 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시급은 다른 회사들보다 훨씬 높지만, 까다로운 자격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저가판매라는 전략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때문에 우리는 적자를 면하지 못한다. 게다가 이제는 인건비 부담이 갑자기 커져버린다. 우리에게 춥고 배고픈 겨울이 시작된 것이다.


지난 11월 말부터는 연말 상품을 기획하는 일 때문에 신예진이 매일 와서 사진 촬영을 했다. 그렇지만 내가 너무 바빠서 그녀의 침대에 갈 수는 없었다. 신예진은 불만이야 엄청 많지만, 자기가 직접 보기 때문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김하늘은 이번 학기에 졸업 준비와 취업 시험 때문에 바빠서 한 달에 한 번 정도 밖에는 만날 수 없었다. 박혜주와는 내년 정초까지는 만나지 말기로 약속을 했다.



그 때 촬영을 하면서는 모델들이 엄청 많아졌다. 저녁에는 김수연도 와서 모델을 같이 했다. 그래서 해리는 모델에서 빠졌다. 해리도 출국하는 데에 준비할 일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촬영 스튜디오에서는 나도 신예진을 도와야 했가. 조명이나 캠코더를 조정해주고, 나중에 사진 고르는 일도 같이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진이가 나에게도 직접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둘이, 카메라 두대로, 좌우에서 동시에 찍기로 계획을 세웠다.




"오빠. 이번이 마지막 촬영일지도 몰라."
"왜? 어디 가니?"

"유학. 그림은 아무래도 밖에 나가서 그려야 할 까봐."
"그렇다고들 하던데. .."

"나도 잘은 못해. 내 생각으로는 오빠도 분명 나 만큼은 하거든. 오빠한테는 경험만 없을 뿐이야. 그러니까 이번에 나랑 열심히 같이 해보자."




그런데 그 때 우리는 아직 이사하기 전이었다. 스튜디오로 쓰는 오피스텔에는 장소가 좁아서 옷을 갈아입는 곳과 촬영장을 분리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니까 내가 뻔히 보는 앞에서 윤은경, 김영숙, 김수연, 그리고 다른 여직원들이 벌거벗은 몸으로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그래서 내 바지에는 항상 텐트가 쳐있다. 그러면 그녀들은 나를 놀린다.



"어머. 어머. 어떡해? 대표오빠꺼 엄청 화났다. 하하."
"윤하씨. 그 고통이야 이해하지만, 참아. 하하."
"신이 내리신 이 미모를 어쩌겠어?"



그러면 보고 있던 신예진이 버럭질을 한다.



"집중하시라고 했거든요!"





그 자리에 해리가 없어서 다행이었다. 밤에는 윤은경이나 김수연과 같이 잔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에는 꼭 지각을 한다. 그러면 미리 와서 기다리던 신예진이 투덜댄다.



"뭐야아. 대표님께서 친히 약속 시간을 안 지키시면 어쩌라고?"
"미안. 어제 밤에 너무 늦는 바람에 .."

"이상하네. 어제 9시에 퇴근하는 것 봤거든?"
"퇴근 후에도 일이 많아서 .."

"퇴근 후에 여자랑 밤에 하는 일 .. 아휴. .."





가끔씩 윤은경은 일 때문에 나와 의논할 일이 있다면서, 다른 오피스텔의 욕실로 나를 데리고 간다. 그리고 입으로 빨아서 해결해주기도 했다.




"자기꺼 이렇게 서 있는 것을 여자애들이 보면, 걔네들이 이상한 생각을 하거든."
"에이. 설마 그럴까?"

"아니야. 수연이 언니가 팬티 갈아입는 것을 내가 봤단 말이야. 왜 그랬겠어? 그 언니도 자기랑 같이 있으면 엄청 흐르나봐."



김수연 여우는 윤은경의 이런 행각을 눈치채버린다. 그녀는 이런 애기를 나에게 직접 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까 나갈 때는 분명 볼록했었거든. 들어오는데 보니까 안 그러네. 왜 그런대? 자기 혹시 혼자 손으로 했어? 자기 손은 아닌 것 같고 .. 윤은경 그 여자 손이지? .. ㅋㅋ"




특히 여성용 속옷, 란제리들을 찍은 사진들은 성인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는 19금 은꼴사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였다. 오히려 우리가 찍은 사진들이 훨씬 더 야했다. 다른 남자들이 이 사진을 볼 때 어떨 지 모르겠다. 소문에 의하면 란제리 카탈록을 클릭하는 사람들은 여자보다 남자들이 훨씬 많다고 한다. 남자들이 여자에게 선물한다고 클릭할 리는 없을텐데. ..

나는 여자들이 아슬아슬하게 가리고 있는 사진을 보면서 흥분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래서 신예진과 함께 이 사진들을 골라낼 때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도 신예진은 나를 보며 놀렸다. 그녀는 내 귀에 소근거린다.




"오빠, 괜찮아?"
"뭐가?"

"이 사진 보면서 안섰어?"
"하루 종일 서있더니, 지금은 괜찮아졌어."

"오빠는 속옷 취향이 아닌가? 패티쉬 이런 것 없어?"
"까불고 있어. 빨리 일이나 해서 이것 빨리 끝내자."

"내일은 정 힘들면 나한테 말해. 위층에 올라가서 빨아줄께."
"그래도 또 설텐데?"

"하긴 오빠는 한번 시작하면 몇 번을 싸니까."




신예진도 딱 한번 빨았던 적은 있다. 그런데 예진이는 빠는 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예진이는 욕조에 두 손을 짚고 엎드린 채로 엉덩이를 뒤로 내밀고, 뒤에서 박아달라고도 했다. 그러면 예진이는 수건을 입에 물어야 했다. 예진이의 신음 소리가 거의 울부짖는 비명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내가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거미줄 쳐서 그렇단다.



그런데 진짜 곤란한 일이 터졌다. 여성용 팬티를 촬영하여야 하는데, 팬티를 입고 그 부분만 사진을 찍었을 때, 조개가 가장 섹시하게 나오는 사진은 아무래도 김수연이었다. 김수연이 팬티를 입었을 때, 조개부분이 볼록하게 솟아서 탄력도 제법 있어보인다. 그래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김수연은 음모가 제법 있는 편이다. 균열의 위쪽으로는 제법 무성하고, 옆으로 균열 좌우로도 약간 있다. 또 그 팬티는 앞이 너무 좁은 것이 문제였다. 그러니까 도끼자국이 가려지면서, 둔덕의 상당 부분은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윤은경이 그 팬티를 입었을 때, 둔덕 좌우로 털이 나있는 것이 문제였다.

그런 일이 몇 번 일어나자 신예진뿐만 아니라 김수연도 짜증이 났다. 그러자 김수연은 차라리 그 부분을 제모를 하자고 했다. 내 등뒤에서 김수연과 신예진이 이야기를 하고 있다.



"많이는 말고, 여기랑 여기, 옆으로 조금만 하면 되지 않을까? 위에 긴 것도 짧게 자르고."
"그럼 나중에 굵어진다는데요? 그래도 괜찮으시겠어요?"

"뻥 같은데? 윤하씨 오라고 해. 남자들은 수염 때문에 면도하니까 잘 알겠지."

"오빠, 여기 좀 봐줄래?"




나는 돌아서서 그들에게로 갔다. 김수연은 의자에 앉아서 두 다리를 M자로 해서 들어올리고, 신예진은 손가락으로 김수연의 둔덕 둘레에 나있는 음모를 가리켰다.




"오빠. 이거 면도하는 것처럼 약간 밀어도 괜찮을까?"
"그럼. 괜찮아. 해도 아무 일 안 생겨."

"나중에 굵어지지 않냐고."
"남자들 수염이나 여자들 다리, 겨드랑이에도 제모 하거든?"

"하아. .. 그럼 오빠가 할래?"
"면도기랑 다 사와야 하는데?"

"편의점에서 금방 사오면 돼. 그런데 오빠는 여자 여기 제모도 해봤어?"
"내가 언제 그런 걸 해보니?"

"오빠 지금 언니 여기 처음으로 보잖아? 그런데도 아무렇지도 않아?"
"텐트 쳐져 있거든요."

"그거야 요새 계속 그렇고. 목소리가 떨린다든가, 얼굴이 빨개지든가 .. 전혀 안 그래?"
"아니."

"이상하다. 꼭 잘 아는 것처럼 이러네. 혹시 오빠랑 언니랑?"
"이상한 소리 고만하고, 빨리 가서 면도기, 세이빙 폼, 가위 사와."





나는 김수연의 그 부분에 나있는 음모를 가위로 자르고, 일부는 면도기로 밀어내야 했다. 신예진은 옆에서 나를 도왔다.



"이상하네. 오빠 손도 안 떨려?"
"내가 수전증 걸린 줄 알아?"

"아무리 그래도 여자의 속살인데? 보여주는 언니도, 보는 오빠도 너무 태연해."
"그런 일로 살떨릴 때는 지났거든요? 너도 나이를 더 먹어봐."

"참나. 몇 살이나 더 드셨다고. .. 아무래도 둘이 수상해."
"조용히 좀 해라. 너 자꾸 말 시키면, 내가 잘못해서 여기 상처라도 나면 어쩔래?"

"아아. 미안. 쏘리."



그 일이 있고 나서 나중에도 나는 김수연의 제모를 몇 번 더 해준다. 물론 촬영과 상관없이, 그리고 김영숙의 눈을 피해서 모텔에 있는 욕실에서 했다. 김수연이 해달라고 엄청 졸랐기 때문이다.




"자기가 안 해주면 누가 한대? 미장원에 가서 해달랠 수도 없잖아?"
"그걸 왜 꼭 하려고 해?"

"단정해야, 자기가 거기도 예뻐하지."
"누나 거기는 아무래도 예쁘다니까."

"시끄러워. 이러고 있으니까 다리에 쥐나거든. 빨랑 하기나 해!"







[4]
드디어 12월로 들어선다. 우리에게는 죽음의 12월이었다.

우선 김수연은 12월에 6명을 더 데리고 온다. 그녀들은 퇴직금을 받았다면서 나에게 자기들 월급 때문에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그녀들도 일에 덤벼들었다. 김수연이나 김영숙 그리고 그녀들의 다른 동료들은 실업자 급여 문제로 아직 우리에게는 허수들이다.

여우들 닷컴에서 철수한 쇼핑몰들 중에서 몇 개가 우리에게 입점을 하자고 했다. 김수연은 윤은경에게 그들을 심사하고 그들과 계약하면서 주의할 점을 가르쳤다. 그래서 8개의 쇼핑몰이 서로 중복되지 않는 상품으로 우리와 입점 계약을 한다. 이들도 우리가 하는 할인판매 때문에 서둘러서 우리에게 온 것이었다.

우리는 새 건물로 이사를 끝내고 12월 5일부터 특별 할인 판매를 시작했다. 고객들의 주문량은 엄청나게 늘어난다. 이번에는 물량을 충분히 사들였기 때문에 부족해서 매진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생각없이 주문하는 고객들도 많아서 취소와 교환 그리고 환불도 부지기수이다. 이런 일들은 모두 김수연팀에서 해결한다.

아줌마부대와 알바생들이 모두 덤벼들어도 일손이 부족하다. 기획팀과 전산팀도 와서 같이 일을 도와야 했다. 김수연을 따라온 직원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도 문을 닫을 뻔 했다. 김수연이나 김영숙은 이 정도면 엄청난 대박이라면서 나를 향하여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이렇게 죽음의 행진을 하니까, 우리는 모두 사람 사는 꼴이 말이 아니다. 나는 동숭동과 양재동을 왔다갔다 할 힘이나 시간도 없어서 사무실에서 자는 날도 많았다. 물론 어머니의 불만은 해리가 애교를 부리면서 해명하기 때문에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황영철은 이 장면을 보고 논현동에 있는 오피스텔 한 개는 반납하지 않고 나보고 쓰라고 했다. 물론 황해리는 기를 쓰고 반대했다. 그렇지만 영철이가 해리를 끝까지 설득해서 해리도 결국은 받아들인다. 그래서 너무 늦는 날에는 동숭동 집으로 가지 않고 논현동 오피스텔에서 잔다.


나는 신예진, 김하늘, 박혜주에게는 얼씬도 하지 못했다. 그 대신 윤은경의 아파트에는 들렀다. 김수연의 아래층에서는 김영숙이 살기 때문에, 김수연과 밤을 보내는 날에는 모텔로 가야 했다.





[5]
그런데 황해리가 크리스마스 이브를 우리 집에서 같이 보내자고 한다. 해리는 장을 보고, 음식을 한다고, 하루 종일 우리 집에서 어머니와 같이 있었다. 나와 황영철 그리고 윤은경은 밤 10시까지 일을 하고 우리 집으로 갔다.

황영철은 우리 집에 옛날에 고딩때에는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그 후로는 처음이다. 윤은경은 우리 집에도 처음이고, 우리 어머니와도 처음 만난다.

어머니께서는 우리를 반갑게 맞으시지만, 불만을 늘어놓으신다. 그런데 잘 들어보면 불만이 아니라 걱정이다.



"일도 좋지만 밤 11시에 저녁을 먹게 하면, 기다리는 우리는 어떻게 하니?"
"죄송해요. 그래도 다음 달까지는 어쩔 수 없어요."

"그래. 그래도 크리스마스인데, 집에도 못 가고 .."
"어머니. 여기 미국 아니거든요."

"어느 나라에서건, 크리스마스나 신정 연휴는 가족이랑 보내면서 쉬고, 재충전을 해야지."




어머니께서는 낮에 해리에게서 영철이가 아프다는 말과 집안 얘기를 들었기 때문에, 영철이와 그의 부모님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셨다. 그런데 마지막에 해리를 완전 깜짝 놀라게 하신다.



"크리스마스 지나면, 날 잡아서 해리랑 같이 시골에 가서 해리 부모님을 뵙고 와야겠다. 해리도 가기 전에 부모님께 인사는 드리고 가야지. 안 그러니?"

"와아앙. .. 어머니. 감사해요. 오빠도 인사하러 가야 하니까, 모레 가요. 우리가 모시고 갈게요."
"윤하도 가면 좋은데."

"윤하오빠는 지금은 하늘이 무너져도 안돼요. 그냥 우리끼리 가요."
"할 수 없지. 그렇게라도 하자."

"어머니. 그럼 이번이 상견례 맞죠?"

"글쎄? 윤하 아버지는 여기에 없고, 신랑감 녀석은 일 때문에 같이 못 가고 .. 이래도 상견례 맞나? 나는 모르겠다. 어쨌든 서로 같이 만나니까, 상견례인가? 하하하."

"에휴우. .. 우리 아빠가 쪼끔만 건강하시면, 이럴 때는 서울에 오셔도 되는데. .. 우리 집 남자 둘이 이래서 원. .."

"해리야. 아무리 그래도 환자분들께 그런 얘기를 함부로 하면 안 된다."
"예에. 어머님. 죄송합니다. .. 아이 참."

"쪼그맣던 고등학생이 벌써 저렇게 커서 상견례라는 말을 하네. 세월이 참 빠르다."
"하아. .. 어머니."




어머니는 해리의 머리를 뒤로 쓸어 넘겨주고, 해리는 어머니의 그 손을 잡고 식탁으로 놓는다.




"어머니. 어쩜 손이 이렇게 고우세요?"
"곱기는 뭐가 곱다고 그래? 이제 다 늙어서 쭈글쭈글이지."

"아녜요. 제 손이랑 똑같아요. 보세요."
"에이. 똑같기는? 나도 젊었을 때 워낙 고생을 많이 해서 .."




해리가 어머니 손 옆으로 자기 손을 나란히 놓는다. 그렇지만 해리가 한 말은 분명히 뻥이었다. 내 눈에는 전혀 똑같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윤은경도 해리에게 맞장구를 쳐준다. 여자들 셋이 똑같다. 그렇지만 나나 황영철은 바라만 보고 있다.


저녁을 먹고 치운 후에 와인을 마시다가, 어머니께서는 피곤하다면서 들어가셨다. 영철이와 은경이도 피로에 쩔어서 집에 간다고 갔다. 그런데 해리는 오늘은 여기서 자고, 내일 어머니와 같이 갈 데가 있다면서 남겠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래서 해리는 결국 남았다. 우리 집에는 손님이 잘 수 있는 방이 따로 있어서 해리가 잘 방은 따로 있다. 해리는 그 방으로 가고, 나는 욕실로 갔다.


그런데 내가 샤워를 하고 나오니까 해리가 내 방에 와있다. 내 잠옷을 꺼내서 침대에 놓고, 내게서 목욕 가운을 받아 든다. 꼭 내 아내처럼 한다.

그러더니, 자기한테서 음식 냄새가 너무 난다면서 욕실로 갔다. 나는 책상에 앉아서 컴퓨터로 사이트를 체크하고 있었다. 할인행사 때문인지 요즈음은 계속 방문객이 하루에 25만이 넘는다. 그런데 김수연은 나에게 속지 말라고 경고를 했다.



"이런 행사 때에는 한 사람이 여러 번을 중복해서 계속 들어온단 말이야. 작년 이맘때 저쪽 회사는 최고 50만까지 갔었던 적도 있거든. 우리도 한 번이라도 40만에 가면 좋은데 .."



나는 다른 쇼핑몰들이나 백화점이 하는 할인행사도 구경하면서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해리가 와있다. 해리는 물을 쟁반에 받쳐와서 내 책상에 두고, 그녀의 전화기와 충전기를 연결했다. 그리고 내 어깨에 손을 얹는다.



"오빠. 피곤할텐데, 안 잘거야?"
"어? 자야지."




나는 고개를 돌려서 해리를 쳐다보았다. 벌써 잠옷으로 갈아입고, 머리까지 다 말렸다. 그새 시간이 꽤 지났나보다. 나는 해리의 손을 잡고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자리에서 일어서서, 두 팔을 들고 기지개를 크게 켜는데, 해리가 나를 안는다. 나도 해리의 등으로 팔을 둘러서 꼬옥 안아주었다.



"오빠. 오늘은 나랑 같이 자자. 알았지?"
"얌전히 잘 자신 있어?"

"글쎄. 그건 장담 못하겠는데? 헤헤."
"자신 없으면, 작은 방으로 가."




나는 해리에게서 떨어져 나와서 내 방을 나왔다. 집 안을 한 바퀴 둘러보면서 전기, 가스, 욕실, 문단속 등을 살폈다. 해리도 팔짱을 끼고 따라다닌다.

나는 다시 내 방으로 와서 우리 둘의 전화기를 충전기에 꽂아놓고 침대에 누웠다. 해리도 내 옆으로 눕더니, 내 이불 속으로 파고든다.




"이불 모자라지? 추울텐데, 다른 이불을 꺼내지 그러니?"
"오빠가 안아주면 안모자라."




해리가 내 팔을 끌어다가 팔벼개를 한다.




"너 이러다가 어머니라도 오시면 어쩔래?"

"다 큰 아들이 자는 방에 어머니가 왜 오신대? 또 오시면 어때? 상견례도 하는데. 헤헤"

"얘가? 너무 오바 하지마. 그런데 영철이는 저렇게 혼자 가도 되니?"
"은경언니가 같이 갔을거니까 괜찮아.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겠지."





우리는 몸을 옆으로 세워서 마주본다. 나는 해리의 몸을 꼬옥 안았다. 해리고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나는 해리의 등을 토닥인다. 한참 후에 해리가 고개를 쳐들고 나를 보며 말한다.



"뽀뽀."



해리가 여리디 여린 핑크빛 입술을 동그랗게 모아서 위로 삐쭉 내민다. 나는 가볍게 입맞춤을 한 후에, 해리의 다문 입술을 혀끝으로 가볍게 핥았다. 해리의 입술이 떨어지며, 입이 조금 열린다. 내 혀끝이 해리의 입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해리의 입술이 내 혀를 물고 빨아당기기 시작한다. 이제는 내 혀를 놓아주고 내 입술을 빨았다. 나도 해리의 입술을 같이 빨았다. 한참 후에 해리의 입이 떨어지고 거친 숨을 가라앉힌다.



"와아아. 이제 해리 다 컸구나. 키스도 제법이네."
"아이. 참. 다 오빠가 가르쳐놓고, 이제 가슴."



해리가 바로 눕는다. 나는 해리의 잠옷 위에서 해리의 가슴을 주무른다. 해리의 손이 내 손등을 덮는다.




"하아아. .."




해리가 고개를 돌리고, 내 목을 당겨가서 내 입술을 빨아당긴다.




"이러면 사고 난다니까?"
"오빠. 사고 날 때 훨씬 지났거든?"

"졸업 전에는 안된다니가."
"아오오. .. 이 고집. 내가 못 살아."



나는 해리의 몸을 당겨서 꼬옥 안았고, 해리의 등을 토닥거렸다.




"영철이가 아프니까, 우리 착한 해리가 고생이지?"

"고생은 무슨 고생? 어렸을 때 내가 많이 아팠잖아. 그 때 오빠가 나를 많이 봐줬단 말이야. 이제는 내 차례가 온거지."

"영철이 장가 간다는 말은 안하니?"
"글쎄. 몸이 저래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아예 없나봐."

"혹시 은경이랑 썸씽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야. 최윤하. 뭐라는거야? 오빠랑 언니랑 내가 모를 줄 알아? 그 언니는 이남자 저남자랑 안그러거든요."





해리가 버러럭 했다. 그런데 해리의 눈이 젖기 시작한다. 해리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쑤욱 빠져나온다. 나는 손으로 해리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왜 울어?"

"내가 너무 힘들어. 내가 왜 이러나 싶기도 하고. 나는 오빠를 사랑한다고 하는데, 내 마음대로 되는 것은 없고, 그렇다고 오빠를 놓을 수고 없고. .. 사랑한다는 것이 원래 이렇게 힘드나?"

"미안해."
"됐어."




해리가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한동안 흐느꼈다. 나는 해리를 달래려고 무슨 말을 해야 하겠지만, 내가 죄인이어서 할 말이 없다. 한참 있다가 해리가 고개를 들고 나에게 말했다.




"영철이오빠는 눈 감아주라고 하는데, 나도 여자거든? 내 남자가 그러고 다니는데 어떻게 눈을 감냐고. 오빠 눈 같으면, 감는다고 감아지겠냐?"

"......"

"여자 생각이 나면, 차라리 내 몸에 손을 대. 나는 놔두고 왜 다른 여자한테 가서 그러는데? 나한테 그것 좀 이해 시켜봐. 내 머리로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가서 그래."

"해리야. 내가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미안하다는 말 밖에 못 하겠어."
"시끄러워. 입이 백 개면 그게 사람이냐? 괴물이지."





해리가 또 얼굴을 내 가슴에 묻는다. 그녀의 어깨가 또 흔들린다.



"그만 울고 자자. 나 때문에 자꾸 울면, 내가 저 방으로 갈까?"

"지금은 오빠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니야. 아빠랑 엄마도 그렇고, 영철오빠도 그렇고, .. 다들 너무 딱해. 너무 불쌍해. 그런데 따지고 보면 내가 제일 불쌍하고, 제일 딱해. 나 왜 이러니?"

"그래. 어린 나이에 겪어야 하는 일들이 너무 많으니까 .."






해리가 손으로 입을 틀어 막고 운다. 나도 눈이 뜨거워지기 시작한다. 한참 있으니까 해리가 조용해진다. 나는 해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어이구우. 우리 착한 해리 .. 울지마. 씩씩하게 가서 열심히 공부도 하고, 오빠도 살펴야지."
"내 몸이 두 개였으면 좋겠다."

"그럼 복제인간인데?"
"지금 그런 농담이 나와? 오빠는 진짜 너무너무 얄밉단 말이야."

"해리야. 나 때문에 네가 불안해하니까 내가 엄청 미안하거든요. 그렇지만 내 마음에 있는 여자는 해리 너 밖에 없어. 걱정하지 마."

"그럼 나랑 결혼하는 것은 확실하지?"
"그래. 결혼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가서, 건강하게 잘 살 걱정이나 해."

"아버님 계시니까, 거기서 사는 것은 든든해. 걱정이 안돼. 오빠 둘이 걱정이지."
"회사는 걱정이 안되고?"

"그거 망한다고 죽냐? 오빠 학교 졸업하고, 나도 졸업하면, 우리 둘이 밥이야 굶겠어?"

"요새가 밥굶는 세상이니? 대학 졸업만 한다고 일자리가 바로 생기냐? 우리한테서 태어날 아기는 어떻게 키우고? 영철이는 또 어쩌게? 시골에 계신 어머님, 아버님은 언제까지 저렇게 건강하게만 사실 것 같니?"

"와앙. 오빠가 그런 걱정까지 했어? 나는 오빠가 아무 생각없이, 그냥 여자 사냥만 하는 줄 알았는데. 어이구우. 이제 보니까 우리 윤하오빠 다 컸네?"

"울다가 웃으면 어디에 털나지?"

"아오오. .. 이 변태. .. 하여간에 못 말린다니까.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고. .. 너 때문에 내가 하루도 편할 날이 없다. 진짜. .."



귀여운 해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비비다가 잠이 들었다.



- 다음 회에 계속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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