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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27 421회 0건
고요한 적막을 깨고 멀리서부터 들리는 자동차 엔진소리! 불길한 예감이든 그는 거실 창문으로 다가갔다. 커튼을 들어 올리고 어둠속을 내다보는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멀리서 다가오던 불빛이 이미 별장으로 향하는 숲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는 무언가 잘못되고 있다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진우는 무엇보다 지아가 걱정되었다.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인천으로 향하던 그는 뒤쫓아오던 자동차를 떠올렸다. 그를 추적하는 것이 아니라고 안심했던 그의 예측이 잘못이었다고 순간적으로 판단되었다. 그는 부리나케 침실로 들어가 벗어 놓은 옷들을 걸쳐 입었다. 그리고 잠들어 있는 지아의 어깨를 흔들었다.

“지아야! 일어나. 빨리~!”
“왜.......!?”

지아가 졸린 눈을 간신히 뜨고 올려다봤다. 하지만 상체를 일으키려던 그녀는 응석을 하는 아이처럼 다시 옆으로 누웠다. 자동차 엔진소리가 별장앞까지 다가와 있었다. 그는 다급하게 그녀를 일으켜 앉혔다. 그리고 마치 어린아이를 다루듯이 발가벗은 그녀의 몸위에 옷을 입히면서 말했다.

“밖에 누가 왔어~! 옷 입어.”
“응~!? 누가........”

그때서야 지아는 눈을 번쩍 뜨고 침대위에서 내려섰다. 당황한 그녀가 겉옷을 집어 들었다. 별장 현관문 앞으로 다가서는 구두발자국 소리들! 다급해진 진우가 주위를 둘러보는 진우는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도저히 지아를 데리고 빠져 나갈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는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그녀를 보호해야한다고 판단했다.

냉정함을 잃지 않으려는 진우의 표정이 무겁게 변했다. 죄우를 살피던 그는 그녀가 벗어놓은 스타킹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팬티와 브래지어만 걸치고 있는 그녀의 손을 낚아챘다. 갑자기 난폭해진 그의 행동에 그녀는 의아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왜 이래!”
“........”

진우는 지아의 손목을 침대에 묶으려고 했다. 그는 늦은 시간에 별장을 찾아온 사람이 권 회장 이외에는 없다고 직감했던 것이었다. 그녀를 데리고 별장을 벗어날 수 없는 위급한 상황에서 그녀를 보호하려는 행동이었다. 그때 현관문을 벌컥 열어 젖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를 강제로 납치했다는 상황을 만들려던 그는 좌절감에 젖었다.

하지만 진우의 눈빛이 예리하게 빛을 뿜었다. 미간을 찌푸린 그는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빠른 손놀림으로 어디론가 문자를 전송하고 휴대폰을 침대 매트리스 밑에 집어 넣었다.

침실과 커튼만으로 가리워진 거실안으로 들어서는 사내들의 발자국 소리! 뒤를 돌아본 진우는 악몽보다 더한 두려움에 젖었다. 그의 직감이 어긋나지 않은 것이다. 분노로 일그러진 권 회장의 표정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뒤에는 곽 도균과 최 달구를 비롯한 사내 다섯명이었다. 엽총을 늘어트리고 있는 권 회장이 노기어린 목소리를 흘렸다.

“개만도 못한 것들~!”
“........!”

진우는 막다른 골목에 갇혔기에 아무말도 할수 없었다. 밀려오는 절망감! 그는 뒤쫓아 오던 자동차들을 떠올렸다. 어쩌면 예고된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 것이었다. 모든 것을 자신이 감수하려던 그는 지아가 걱정스러웠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그녀는 고개도 못들고 벽에 기대서 있었다. 하지만 그는 변명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진우는 지아를 어떻게든지 보호하고 싶었다. 거실을 등지고 서 있던 그는 당당하게 사내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리고 의도적으로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를 바라보고 있는 권 회장의 눈동자에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권 회장은 일본 출장을 간 것이 아니라 호텔에 있었고 조 숙희에게서 아내와 진우의 동태를 연락받고 있었다.

지아가 집을 나가고 조 숙희는 진우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런데 진우는 식구들 모두가 잠든 것으로 알고 집을 나왔던 것이었다. 조 숙희에게 연락을 받은 권 회장은 곽 도균에게 진우의 뒤를 쫓으라고 지시했었다. 그런데 뒤쫓던 곽 도균이 그를 놓친 것이었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권 회장은 아내가 갈 곳은 별장뿐이라는 것을 짐작한 것이었다.

별장으로 오면서 권 회장은 의심하던 서 진우와 아내의 관계를 부정하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흐트러진 침대와 그들의 표정, 침실의 현장을 확인하고 나니 울화가 치밀었다. 시뻘건 눈동자로 진우를 바라보던 권 회장이 엽총으로 지아를 가르키면서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네 년이 이럴 수 있어!? 걸레만도 못한 년~!”
“죄송합니다. 제가 강제로........”

지아를 염려하는 진우의 말은 도리어 권 회장의 분노를 부채질하는 결과였다. 철커덕~! 엽총을 장전하는 소리! 권 회장이 불쑥 엽총을 들어올렸다.

“뭐라고!? 이것들이. 죽고 싶은 모양구만!”
“.........!”

전혀 무방비 상태인 진우는 모든 것을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아만은 보호하고 싶은 그의 마음은 여전했다. 크게 들이 마신 숨을 천천히 내뿜은 진우는 권 회장을 향해 엷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하......! 아쉽구만, 조금 더 재미를 볼 수 있었는데.......”

하지만 진우는 말을 잇지못하고 휘청거렸다. 대뜸 권 회장이 휘두른 엽총 개머리판에 머리를 강타당한 것이었다. 비틀거리던 그가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머리끝까지 화가치민 권 회장이 미친 듯이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이것들이 죽으려고 환장했나. 변명해줄만큼 가까워졌던 거야! 나를 뭘로 보고.......”

개머리판을 휘두르던 권 회장은 쓰러져 있는 진우를 무자비하게 발로 걷어찼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진우의 귓가에는 둔탁한 소리가 메아리쳤다.
한번, 두 번, 세 번, 네번........! 그때마다 꿈틀거리던 진우의 몸이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동안 분노를 참지 못해 날뛰던 권 회장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쓰러져 있는 진우를 내려다보는 권 회장의 눈동자에 핏줄이 돋아나 있었다.

“개같은 놈! 무슨 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진우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치미는 눈노를 참지 못하고 씨근덕거리던 그가 지아를 노려봤다. 그리고 오들오들 떨고 있는 그녀에게 다가가더니 벼락같이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

“지금까지 먹여주고 입혀주고 호강시켜줬더니 나를 배신해. 이 년을 확~!”
“.........!”

권 회장이 엽총을 들어올렸다. 그리고 지아에게 총구를 겨냥하고 금방이라도 방아쇠를 당길 표정이었다. 두려움에 떨던 그녀는 모든 것을 자포자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죽음보다 괴로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희망을 품었던 그녀는 절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진우와 사랑을 나누었던 행복한 순간이 너무도 짧았기에 아쉬웠다.

“허 억~!”

고개를 숙이고 있던 지아는 숨조차 쉴수가 없었다. 권 회장이 겨냥하고 있던 엽총 개머리판으로 그녀의 옆구리를 가격한 것이었다. 풀석 주저 앉는 그녀의 등을 향해 그는 다시 개머리판을 휘둘렀다. 방바닥에 풀석 쓰러지는 그녀의 귓가에 권 회장의 목소리가 희미하게 메아리쳤다.

“날 배신한 대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려 줄게........!”

쓰러진 지아를 내려다보는 권 회장은 거친 숨을 내쉬었다. 침묵이 이어지고 권 회장이 들고있던 엽총을 침대위에 던졌다. 그리고 곽 도균을 향해 짤막하게 지시했다.

“저 새끼, 지하실로 끌고가~!”
“네.”

부동자세로 있던 곽 도균과 최 달구가 머리를 숙이며 대답했다. 사내들이 쓰러져 있는 서 진우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를 부축해서 거실 한쪽에 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문안에는 지하실로 향하는 어둠침침한 층계였다. 저벅거리는 사내들의 구둣발자국 소리가 공간에 울려퍼졌다.

“음.......!?”

십여 분후, 진우는 뼈마디가 부서지는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그리고 숨을 몰아 쉬었다. 곽 도균이 그에게 양동이 물을 뒤집어 씨운 것이었다. 숨을 몰아쉰 그는 어둡고 습기찬 지하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는 천장에서 늘어트린 쇠사슬에 양손이 묶여 있었다. 곽 도균과 최 달구의 앞에는 담배를 피워 물고있는 권 회장이 의자에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우는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음.....!”
“깨어났나!”

권 회장의 목소리가 음산하게 메아리쳤다. 권 회장은 비록 자신에게 냉정한 아내였지만 다른 남자와 정을 퉁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항상 감정조차 드러내지 않는 아내였고 남자를 모른다고 생각했기에 의심조차 하지 않았었다. 그러니 더욱 화가 치밀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권 회장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은 신뢰하던 서 진우의 배반이었다. 도희와의 관계도 방관할 정도로 그를 믿었고, 사생활도 허심탄회하게 털어놓았던 심복이었다. 어쩌면 혼자 감당할수 없는 비밀스러운 일을 그에게 맡겼던 것이었다.

그런데 권 회장은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그가 고아출신으로 외국의 명문대학을 나올정도로 머리가 좋고 순발력있는 체격이라는 것외에는 알고 있는 것이 없었다. 권 회장은 새삼스럽게 베일 속에 가려진 것같은 서 진우에 대한 의문에 휩쌓였다.

“네 놈을 믿었는데. 도희를 안고 뒹군것도 이해했잖아! 길바닥에 여자들이 얼마던지 많아. 그런데 뭐가 부족해서 내 여자를 건드린 거야?”
“.......당신에게 과분한 여자야.”

“뭐라고......!? 이 자식이 정말 그만 살고 싶은 모양이군. 언제부터 그런건지 똑바로 말해!”
“흐흐.......! 당신 여자가 되기전부터.......”

“너, 나하고 원수진일 있어? 그렇게 말한다고 내 심정을 건드릴거 같아? 너, 도대체 누구야?”

권 회장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침착하게 물었다. 진우는 권 회장에 대한 복수를 위해서 접근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목적을 달성할수 없는 상황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내일을 예측할수 없는 상황이지만 더 이상 자신의 목적을 감추고 싶지 않았다. 피범벅이 된 그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알고 싶지! 송 민욱을 기억하나? 너같은 악마는 머리가 둔해서 잊어 버렸을거야.”
“뭐라고!? 송 민욱........?”

권 회장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의 머리 속에서 잊혀져가는 기억을 떠올리게하는 서 진우의 말이었다. 그 당시 언론에도 드러나지 않았고, 서 진우의 나이로 알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당황스러웠다. 쇠사슬에 매달린 진우의 눈빛이 어둠속에서 이글거렸다. 의아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던 권 회장이 다시 물었다.

“송 민욱이라고 했나!?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알아?”
“아니 넌 기억하고 있어. 기억하고 있으니 네가 했던 짓도 부정하지 않겠지. 대한 기업! 송 민욱!”
“도대체 넌, 누구야......!?”

답답해진 권 회장이 입에 물고 있던 담배를 던졌다. 구둣발로 담배꽁초를 비벼끈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언성을 높였다. 결국 감정을 드러내는 권 회장을 보고 진우는 모든 것이 분명해짐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통쾌하게 생각했다. 피가 엉킨 진우의 입가에 미소가 흘렀다.

“나~!? 하하하.......! 송 재민! 네 놈들에게 목숨을 잃은 송 진욱의 아들!”
“뭐라고!? 누구한테 듣고 협박하는 건지 몰라도...... 미친 놈이네!”

“아니, 미친건 너야! 아버지의 원한을 갚지 못하는 내 자신이 원망스럽지만.........”
“그럴 리가.......!?”

그때서야 권 회장은 진우의 말을 부정하듯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잊혀졌던 과거를 떠올렸다. 치솟는 불길. 어린 아기를 안은 소년의 눈빛! 그리고 정신없이 별장을 뛰쳐나오던 자신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진우 앞으로 다가서는 권 회장은 오히려 희쭉 웃었다. 그리고 진우의 턱을 들어 올렸다. 도리어 진우를 비웃고 있었다.

“어이구 어쩌나!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려고! 그래서 신화에 들어온거고! 여객선에서 있었던 일도 우연이 아니었구만. 정말 놀라운데.......”
“더러운 자식! 퉤~!”

진우가 입속에 담긴 피를 권 회징에게 뱉었다. 방심하고 있던 권 회장의 얼굴에 피가 튀었다. 손바닥으로 얼굴에 묻은 피를 확인한 그가 진우의 뺨을 후려쳤다.

“이 쌔끼가 빨리 되지려고 발버둥치네.”
“........!”

권 회장은 다시 진우를 후려치려던 손을 내리고 뒷걸음쳤다. 진우에게서 몇발자국 떨어진 그는 호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잔인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혀를 찼다.

“그런데 어쩌나!? 자신도 못지키게 됐으니. 하기야 그렇게 안타까워하던 애비곁으로 빨리 갈 운명이니 다행이지만........”
“난, 안 죽어. 네놈이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기전에.......”

“그럴까! 그래서 그동안 행복했나?”
“..........”

“너, 내 여자, 그년 좋아하니?”
“..........”

“하하하..........!”

갑작스런 권 회장의 웃음 소리가 지하실에 메아리쳤다. 크게 웃음을 터트린 그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진우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리고 탁자위에 놓인 몽둥이를 집어들고 진우의 하복부를 쿡쿡 찔렀다.

“어이~!”
“.........!?”

“네가 안았던 여자가! 아니, 그 미친년이 누구인지 알아?”
“...........!”

“그년도 송씨라는 걸 몰랐지!?”
“............!?”

“지아는 우리 형님이 지어준 이름이야. 원래 이름 알고 싶지않아?”
“..........!?”

진우의 배를 연거푸 쿡쿡 찌르는 권 회장은 무척 즐겁다는 표정을 지었다. 절망감에 젖은 진우는 악몽을 떠올리며 자신을 원망하고 있었다. 좀 더 일찍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 후회되었다. 어쩌면 지아에 대한 사랑으로 기회를 놓쳤기 때문이었다.

지아의 성씨가 송이라는 말에 진우는 왠지 불안감에 젖었다. 권 회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아리송했다. 권 회장은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처럼 득의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들고 있는 몽둥이로 진우의 허벅지 사이를 툭툭 건드렸다.

“이걸~! 그 동안 잘 써먹었나! 그 년 이름을 알고 싶지 않아? 너그러운 우리 형님이 그래도 인정이 많아서 고아원에 있는 송 민욱의 딸을 대려다 키운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어!”
“뭐~! 하하.......! 그런, 거짓말까지.......! 하하하.......”

진우는 어처구니없는 권 회장의 말에 조소를 흘렸다. 하지만 믿고 싶지않은 말이지만 두려웠다. 권 회장의 말을 하잖게 생각하면서도 진우는 자신도모르게 귀를 기울였다. 고개를 끄덕인 권 회장의 입가에 희소가 번졌다.

“거짓말이라고! 표정은 안그런데! 이제 조금 내말에 믿음이 간다는 뜻인데.”
“네, 말을......! 믿을 사람은 없어.”

“믿고 안맏고는 네 놈 자유야. 아마, 그년 이름이 은희라고 했었지! 너는 네 여동생을 좋아해서 안았던 거야. 무슨 말인지 알아!”
“정신병자. 넌 악마야. 그런말로 날 괴롭히려고......”

“하기야 나도 이제서 네가 송 민욱의 아들, 지아. 아니 은희의 오빠라는 것을 알았으니까. 세상 참 오래살다 볼일이야. 하하하........”
“그, 그만~! 넌, 악마야. 거짓말이라고........”

“거짓말 같으면 고아원을 찾아가봐.”

믿지 못할 사실에 진우는 고개를 내저으며 버둥거렸다. 세상은 그를 더욱 고통스러운 악몽속으로 내몰고 있었다. 정말 그가 사랑하는 여자가 모포에 싸들고 있던 아기였다는 말인가. 그가 영혼까지 사랑하려던 여자가 여동생이었다는 말이었다. 가슴이 찢어지는 아픔이어서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무슨 말을 해도 괜찮아! 네 놈 심장을 꺼내 씹어먹고 말거야.”
“정말 미친 놈이네. 지금이라도 잘못 했다고 빌어! 그럼 살려줄지도 몰라.”

“이미 너는 나를 죽인거야. 네 놈에게 살려 달라고 할 필요도 없어!”
“과연 그럴까!?”

권 회장이 들고 있는 몽둥이로 진우의 양쪽 어깨를 번갈아 내리쳤다. 신음을 삼키는 진우의 몸이 꿈틀거렸다. 방망이를 휘두르는 둔탁한 소리가 지하실에 메아리쳤다. 쇠사슬에 매달린 그의 몸이 축 늘어졌다. 이어서 물 양동이를 들고 있는 최 달구를 향해 외치는 권 회장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뭐햬~!?”
“음.......!?”

최 달구가 들고있던 양동이 물을 진우에게 퍼부었다. 다시 정신을 차린 진우의 몸이 꿈틀거렸다. 그리고 권 회장이 몽둥이로 그의 머리, 어깨, 허리를 사정없이 장작을 패듯이 휘둘렀다. 지하실에는 몽둥이를 휘두르는 소리와 권 회장이 분노로 내지르는 목소리, 그리고 진우의 신음소리가 이어졌다.

“빌어! 빌란 말이야. 살려달라고.”
“헉........!”

“빨리 빌어. 빌라고!”
“으~! 음.......!”

마구잡이로 난타를 당한 진우의 몸이 빨랫줄에 걸린 세탁물처럼 축늘어졌다. 들고 있는 몽둥이를 바닥에 팽게친 권 회장이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곽 도균이 라이터 불을 켜서 담뱃불을 붙여줬다. 담배 한모금을 빨아 연기를 뿜어낸 권 회장이 지하실 층계로 몸을 돌렸다.

눈치를 살피던 곽 도균과 최 달구도 권 회장을 뒤따라 지하실을 나왔다. 거실 소파에 앉은 권 회장은 잠시 흥분했던 감정을 가라앉혔다. 침실 커튼사이로 지아의 모습이 드러났다. 쓰러져 있던 그녀가 침대 모서리에 웅크리고 있었다. 감정을 가라앉힌 권 회장은 아내와 진우를 어찌해야할지 망설여졌다.

권 회장은 그들을 당장이라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감정대로 할수 없는 현실이었다. 그렇다고 아내와 이혼을 하거나 진우를 불륜으로 법의 판단에 맡기는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 단순한 처분이었다. 그는 자신의 고통스러움을 그들에게 되돌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어떤 방법도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저년 묶어놓고, 물 한 모금도 주지 마.”
“네.”

권 회장의 말에 부동자세로 서있던 최 달구가 침실 입구로 다가섰다. 그리고 커튼에 매달린 끈을 풀었다. 웅크리고 있던 지아가 다가서는 최 달구를 올려다봤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뺨에는 눈동자에서 흘러내린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녀의 손목이 침대 기둥에 묶여지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권 회장이 불쑥 일어섰다.

“곽 상무하고 다녀 올테니까, 잘 지키고 있어. ”
“네.......!”

“네, 다녀오십시오.”
“........!”

거실을 나서는 권 회장을 따라 곽 도균이 따라 나서고 다른 사내들은 허리를 굽신거렸다. 권 회장이 사라지고 긴장했던 사내들은 자유롭게 탁자 주위의 소파에 걸터앉았다. 거실 유리창 밖에는 어둠이 걷히고 있었다. 최 달구의 눈치를 살피던 청바지의 사내가 벽시계를 올려다보며 투덜거렸다.

“벌써 다섯시가 지났네.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나네.......!”
“뭐, 먹을 거 없나!?”

검은 점퍼의 사내가 일어서서 주방으로 다가갔다. 싱크대를 뒤적이던 그가 라면을 꺼내 들고 최 달구를 바라봤다.

“형님! 라면 끓일가요?”
“그래! 아무거나 먹자.”

큰냄비에 물을 넣어 전기레인지위에 올려 놓은 사내가 다시 싱크대를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환한 표정으로 뒤를 돌아봤다.

“형님! 여기 위스키도 있네요. 한 잔 하실래요!?”
“아침부터 무슨 술이야!”

“기분도 그렇지 않은데, 한잔 쯤은 괜찮을거 같은데요.”
“그럴까.......!?”

탁자위에 발을 뻗고 있던 최 달구가 고개를 끄덕였다. 싱크대와 냉장고를 뒤적이던 사내가 통조림과 위스키병을 꺼내 탁자위에 올려 놓았다. 탁자를 둘러싸고 앉은 그들은 서로 따라주는 위스키를 마시며 여유로운 표정으로 잡담을 했다.

“미스터 서~! 대단한 놈이네. 어떻게 사모님을.......”
“회장님 심복으로 날뛰더니만........”
“사모님!? 난 처음보는데, 나이가 어리네.”

“생각보다 잘 빠졌고, 미인이네.”
“들리는 말로는 전 회장님이 입양한 딸이었다고 하던데.........”
“회장쯤 되면 우리가 생각 못하는 일도 있지.”

“결혼하고 사이가 안좋았다면서.......!?”
“그래서 서 실장과 그런 사이가 됐나! 서 진우도 신세 조졌네.”
“잘생긴 마누라 갖고 있으면 위험한거야. 못 생겼어도 그저 살림 잘하고 고분고분한 계집이 좋은거야.”

위스키 잔을 권하며 잡담을 하던 그들은 김이 모락모락나는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라면가락을 입속으로 집어넣던 최 달구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 거실 뒤의 창문을 돌아보며 부하들에게 손을 들어 올려보였다.

“잠간만! 무슨 소리 안들렸어?”
“무슨 소리요!?”
“들 짐승이 있나!?”

낙옆을 밟는 발자국 소리에 뒤를 돌아본 최 달구는 창문을 스치는 그림자를 본 것만 같았다. 모두 청각을 곤두세우는 순간 현관문이 우당탕하고 열어젖혀졌다. 발자국소리들과 함께 여러명의 사내들이 뛰어 들어왔다. 최 달구는 입에 넣었던 라면을 뱉으며 벌떡 일어섰다. 그들은 돌발적인 상황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실안은 치고 받는 사내들의 난투극이 벌어졌다. 하지만 가구들이 넘어지고 유리창이 깨지는 혼란스러움은 잠시뿐이었다. 전혀 대비를 하고 있지 않았던 최 달구 일행은 거실 바닥에 나뒹굴었다. 머리를 짧게 깍은 사내가 쓰러져 있는 최 달구와 일행을 돌아가며 걷어차면서 짧게 말했다.

“모두들 머리위로 손 올려. 내 말 안들려!”

최 달구 일행을 다구치는 그는 다름아닌 오 덕재였다. 그는 진우에게서 문자를 받은 것이었다. 위급상황이니 휴대폰을 추적해서 오라는 평소에 정해놓았던 암호문자였다. 오 덕재 옆에는 이마에 훙칙스러운 흉터가 있는 홍 기삼이 버티고 있었다.

그런데 휴대폰을 추적하다보니 서울이 아니고 인천 방향이기에 늦어졌고, 별장에서 나가는 최 회장을 확인하고 뛰어든 것이었다. 오 덕재는 서 진우의 모습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렸다. 그의 시선이 침실을 향했다. 남자가 아니고 여자가 침대에 묶여 고개를 떨어 트리고 있었다. 오 덕재는 불쑥 최 달구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서 사장님 어디있어?”
“서 사장!? 난 몰라. 서 사장이 누구야!?”

“모른다고!? 그럼 알게 해주지!”
“아 악~!”

사색이 된 최 달구가 손을 붙들고 바닥을 뒹굴었다. 오 덕재가 손을 들고 있는 최 달구의 손가락을 무자비하게 꺽은 것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최 달구의 가슴을 밟고 내려다보는 오 덕재가 다시 물었다.

“말해! 아직 아홉 개 남았는데, 시간은 많아.”
“아, 아니 저, 저 밑에.......”

새파랗게 질린 최 달구의 벌벌 떨리는 손끝이 지하로 향하는 입구를 가르쳤다. 오 덕재는 급히 입구 문을 열고 들어섰다. 층계를 내려간 그는 잠시 흐릿한 비상등만이 켜진 어둠침침한 지하실을 둘러봤다. 쇠사슬에 묶인 서 진우의 모습을 획인하고 급히 다가섰다.

“사, 사장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어쩌다가........”
“음........!”

축늘어져 있던 진우가 고개를 들었다. 얼굴이 피투성이 되어 있는 그의 몰골에 오 덕재는 황당하기만 했다. 그는 재빨리 진우의 양팔을 묶어놓은 쇠사슬을 풀어냈다. 잠시 비틀거리던 진우가 덕재에게 물었다.

“지아는.......!?”
“네......!? 누구?”

“지아 말이야. 여자 못 봤어?”
“아! 침대에 묶여있는 여자요......!?”

오 덕재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우는 비틀거리며 지하실 층계를 뛰어 올라갔다. 거실에는 손 목이 뒤로 묶인 최 달구 일행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깨진 유리창, 바닥에 넘어진 가구, 라면 찌꺼기등으로 난잡해진 거실안을 둘러본 그는 침실로 들어갔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지아의 턱을 들어올렸다. 그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에서 굵은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오......빠~!”
“지아야!”

진우를 확인한 지아가 스르르 눈을 감으며 쓰러졌다. 긴장이 풀린 그녀가 정신을 잃은 것이었다. 그는 침대에 묶인 그녀의 손목을 서둘러 풀었다. 그리고 그녀를 들어올려 끌어안고 별장을 나섰다. 진우 일행이 사라지고 별장안에 남아있는 최달구 일행만이 남아 있었다. 자동차 엔진소리가 멀어지고 적막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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