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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01:16 560회 0건






136. 서지혜의 고민 & 비지니스




[1]
지혜가 나를 흔들어 깨운다. 나는 모르는 척 하고 일어나서 앉았다.



"어? 지혜니? 왜?"
"두시야. 나와서 점심 먹으래."

"안 먹고 더 자면 안될까?"
"오빠. 지금 나한테 애교부려? 하하."

"얘가 .."




나는 못이기는 척 하고 침대에서 나왔다. 아침도 아닌데 내 바지의 상황은 심각해져 있다. 지혜의 눈길이 이것을 놓칠 리가 없다.



"하아. .. 오빠. 아무래도 빨리 장가 가야지 도저히 안되겠다."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럼 그 약국집 딸 가서 만나?"

"죽을래? 약사는 나도 한다고 했거든요. 빨리 씻고 와."




나는 거실로 나왔다. 집 안에 가득한 고기 냄새에 군침이 돈다. 나를 보는 아이린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핀다.



"불고기 했어요. 빨리 씻고 와요."



나는 씻고 식탁으로 갔다. 나와 지혜는 나란히 앉고, 아이린은 우리 맞은 편으로 앉았다. 나는 상추에 불고기를 싸서 먹었다. 아이린도 고기쌈을 만들었다. 그녀는 나를 바라보다가 지혜의 입으로 가져간다.




"아아 해."
"엄마. 나 또 고기 먹으면 어쩌라고?"

"먹고 빼."
"인류 역사상 그거 성공한 여자는 단 한 명도 없대. 엄마나 먹어."

"어?"
"거보세요. 엄마도 찌는 것은 싫지? 그럼 오빠 줘."

"야아. 나보고 이거 혼자 다 먹으라고?"
"오빠는 쪄도 되니까, 그런 걱정 안 해도 돼. 또 오빠가 찌면 어때? 나중에 내가 다이어트 약을 완전 빵빵하게 개발하면 되잖아? 하하."



그제서야 아이린의 손이 내게로 온다. 나는 입을 열고 앞으로 내밀었다. 지혜가 내 옆구리를 치며 쏘아붙인다.




"오빠. 그걸 손으로 받아야지, 입으로 받으면 어떡해?"
"누난데 뭐 어때?"



나는 그냥 입으로 받아 먹었다. 아이린이 빙긋이 웃는다.



"진짜 수상하단 말이야. 주는 엄마나, 받는 오빠나 .."
"네가 태현씨 주라며?"
"너는 계속 많이 수상해라. 누나 한번 더 부탁해요."

"시끄러워. 오빠는 이거나 먹어."



이번에는 지혜가 내미는 고기쌈을 받아 먹었다. 아이린이 우리를 쳐다본다. 나도 고기쌈을 만들어서 지혜의 입에 넣어주었다. 그런데 지혜가 받아먹는다. 아이린이 손바닥으로 식탁을 탁탁 친다.




"쟤가 .. 엄마가 싸주는 것은 안 먹고, .."
"뭐가 어때서 그래? 오빠가 먹여서 찌게 해놓고, 오빠가 구박하겠어?"

"알았어. 서지혜 너 아무리 쪄도, 나는 아무 말 안 할거니까, 이거 나랑 같이 먹자. 알았지?"
"주면 받아는 먹어도, 내가 직접 먹는 것은 도저히 못 하겠어."

"그래도 양심은 있구나?"
"오빠!"



나는 계속 고기쌈을 싸서 지혜의 입에 넣어주었고, 지혜는 내가 주는 것을 끝까지 모두 받아 먹었다. 앞에 앉은 아이린이 발로 내 발을 가볍게 건드린다. 나는 놀라서 아이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아이린은 고개를 돌려서 창 밖을 내다보고 있다.

뭐지? 고만 하라는 말인가?


나는 마지막 불고기로 고기쌈을 만들었다. 그 때 내 전화기로 전화가 들어온다. 지혜는 내 손에 쌈이 들려 있으니까 자기가 전화기를 가져온다면서 일어나서 책상으로 달려간다. 나는 이 틈을 이용하여 그 고기쌈을 아이린의 입에 넣어 주었다. 그녀는 쌈을 얼른 입으로 받으면서 내 손가락까지 빨았다.


나는 지혜에게서 전화기를 받았다. 최수희이다. 나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그녀는 우리 두 애들의 수능에 대해서 물었다. 그리고 나서 한상무의 이야기를 꺼냈다.



"상무님 중국에서 들어오셨거든. 임비서도 같이 왔어. 상무님이 회장님을 만났으면 하는데 .."

"당연히 만나야지. 지금 점심 먹으니까 두 시간 후에 회사로 갈게."

"아니야. 송실장이 나중에 회사로 오는 길에 태우러 간다고 했어. 지금이 세시거든. 그럼 다섯시에 회장님 오피스텔 앞에서 기다리라고 할게."




나는 통화를 끝냈다.



"오빠. 나가야 해?"
"어."

"나랑 나가면 안되나?"
"너랑? 왜? 어디 가려고?"

"오빠랑 영화도 보고, 저녁도 먹고 .."
"나는 영화 보러 가기만 하면 자거든요. 차라리 엄마랑 가는 것이 좋을거야."

"하아. .. 남들은 사귀면서 영화도 같이 본다는데."
"그럼 우리가 지금 사귀냐?"

"그거야 뭐. .."




[2]
나는 샤워를 하고, 속옷 차림으로 욕실을 나섰다. 외출복을 입으로 옷방으로 가는데, 아이린이 얼른 따라 들어온다. 아이린은 내가 입을 옷을 골라준다.



"한상무님을 만나려면, 슈트 말고, 차라리 캐주얼하게, 이렇게 .."
"알았어요."

"파커는 입지 말고, 차라리 이 회색 외투를 입어요."




지혜가 문 앞에 서서 우리를 쏘아본다.



"엄마도 참 .. 오빠한테 진짜 지극정성이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태현씨 엄마가 여기 안 계시니까, 또 회사 임원을 만나야 하거든. 그래도 회사에서는 회장님이신데 .."



아이린은 내게 양말까지 꺼내주고 서둘러 옷방을 나간다. 지혜가 들어오더니 내 엉덩이를 툭툭 치며 말한다.



"왜 이렇게 서둘러? 그렇게 나가고 싶어?"
"별로 할 일도 없는데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지. 추운 날씨에 여자를 밖에서 기다리게 하는 것도 예의는 아니거든요?"

"시간이 아직 한 시간 반이나 남았잖아."
"괜찮아."

"그런데 오빠꺼 다시 작아졌다. 하하."





[3]
나는 지혜의 손을 잡고 내 책상으로 갔다. 내가 집에서 가져온 책들을 모두 책상으로 올려 놓았다.



"네 말대로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이거 좀 볼래?"
"나보고 이걸 다 공부하라고? 뭐가 이렇게 하나같이 다 두꺼워?"

"대학은 고등학교가 아니야. 대학에서는 어떤 교수도 이런 책을 처음부터 차근차근 가르치지 않거든. 그렇지만 너는 이 내용들을 모두 알아야 한단 말아야."



아이린도 구경거리가 생긴 것처럼 우리에게 왔다. 나는 일반화학 책을 꺼내주면서 우선 지혜에게 시작을 하라고 했다.



"이 중에서 이 책이 지금 너한테 제일 쉬워. 지금까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이 있으니까, 처음 어디까지는 너 혼자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고."

"보는 거야 보는데, .. 보면 이해가 될까?"

"외국 책을 번역한 책이라서 쉽지는 않을거야.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면 나나 언니한테 물어보고. 알았지?"

"그런데 왜 이렇게 크고 두껍냐고."
"많이 써놨으니까 두껍겠지? 그러니까 네가 읽으면서 중요한 부분만 따로 요약을 해야지."




또 일반화학 강의에서 받은 프린트물들도 꺼내서 보여주었다.



"돌겠다. 왜 한글은 하나도 없고 전부 영어래?"

"대학이니까 그렇지. 교수는 강의하면서 이것들을 빔으로 스크린에 쏘고, 몇 군데만 대충 설명을 한 다음에 패스하거든요. 멍때리고 있으면 한 가지도 못 알아먹는다고."

"그럼. .. 강의는 우리말로 해?"
"영어랑 우리말을 섞어서 해."

"이거 공부 안 하면 약사 못되나?"
"약사는 고사하고, 성적이 펑크나면 학사 경고만 잔뜩 먹으니까, 대학을 졸업하는 것도 못하지."

"하아. .. 나보고 차라리 그냥 죽으라고 하지."

"미리 공부하고 강의에 들어가면 다 들려요. 강의 내용이 전부 다 이해가 된다고. 그런데 공부 안하고 그냥 들어가서 앉아있으면 정신도 못 차린다고. 대학 다니면서 이런 것 읽을 시간이 있겠어? 그래서 내가 너에 대해서 걱정하는 거야."

"그럼 언제 미팅하고, 연애하고, 술 마시고, 알바하고 그런대?"
"그거야 공부를 포기하면 간단하지."




[4]
지혜가 머리를 쓸어 넘기며 아이린에게 하소연을 한다.



"아아. .. 엄마. 이제 나 어떡해? 차라리 약사 하지 말까?"
"그래? 어머님께서는 약사 며느리래야 하신다며? 그럼 약국집 딸 만나야지."

"누가 만나? 오빠가?"
"안 그러면 .. 설마 너나 내가 그 여자를 만날까?"

"돌겠다. 정말 미치겠다. 내가 이러려고 대학에 가는 것은 아닌데 .."
"지혜야. 누구나 다 그렇게 힘들게 공부 하거든요. 우리 지혜도 하면 돼."



나도 아이린의 말에 꼬리를 물고 지혜에게 격려하기로 했다.



"맞아. 지금이 지혜가 고등학교에서 배운 것들을 가장 조금 잊어먹었을 때거든요. 그러니까 지금 공부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야."

"그럼 지금 알바하러 다니겠다는 내 친구들은 어쩌지?"
"걔네들이 다 약사 하겠대? 지금은 지혜 코가 석자야. 걔네들 걱정을 왜 네가 하는데?"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또 내 전화기에서 컬러링이 울린다. 최수희이다. 그녀는 송실장이 회사에서 곧 출발할거라면서, 30분 후면 여기에 도착한다고 말해준다.

나는 아이린에게 통화 내용을 말해주었다. 아이린이 고개를 갸우뚱 한다.



"이상하네. 왜 송실장이 직접 전화를 안하고 최수희씨를 시킬까?"




지혜는 자기 방으로 간다면서 일반화학 책과 프린트물을 챙겨 들고 일어섰다. 지혜는 고개를 숙이고 밖으로 걸어 나간다. 지혜가 옮기는 발걸음이 무거워 보인다. 아이린이 내게 물었다.



"태현씨. 너무한 것 아닐까요? 지혜가 겁을 너무 먹은 것 같은데 .."
"누나. 지금 단계에서는 지혜한테 솔직하게 말해주는 것이 훨씬 좋아. 겁을 먹으려면 지금 먹어야지, 나중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겁 먹어도 너무 늦거든요."

"하긴. .. 그렇기는 해."
"나 나갔다 올테니까, 누나가 지혜 마음을 풀어줘요."

"자기 그럼, .. 오늘은 여기 와서 자요?"
"그렇기는 한데, 엄청 늦을 수도 있어. 나중에 학교에서 보자는 애들도 있거든."

"알았어요. 그럼 나는 지혜한테 갈게요."




아이린은 내게 키스하고 밖으로 나갔다. 나도 외출 준비를 끝내고 오피스텔을 나왔다. 그런데 약속한 시간이 지났어도 송실장의 차가 보이지 않는다.




[5]
그런데 내 앞에 차가 와서 멈춘다. 모르는 차이다. 선팅 때문에 안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창의 유리가 내려가더니 최수의가 운전대에 앉아있는 것이 보인다.



"어? 누나가 왔어?"
"타."



그녀의 수척해진 얼굴이 활짝 웃으며 나를 반긴다. 나는 그녀의 옆자리로 앉았다. 그녀가 차를 출발시킨다. 야생마처럼 질주하며 닥치는 대로 일을 해대는 한상무를 돕느라고 힘들어서인지 최수희가 많이 야윈 것 같다.



"누나가 웬일이야? 실장 누나는?"
"송실장이 갑자기 일이 생겼다고 나보고 가래."

"한상무님은 언제 도착하셨지?"
"11시 반. 토요일에 불러내서 미안해."

"아니야. 안 그래도 나오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어."





[6]
우리는 회사에 도착했다. 토요일이어서 그런지, 직원들이 일찍 퇴근한다. 저쪽에는 지난 날 나와 같이 일하던 총무부의 낯익은 여우들이 퇴근하는 것도 보인다. 최수희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우리는 차에서 내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내 방으로 갔다. 내 책상에는 내가 읽어야 할 서류들이 쌓여있다. 송실장이 함께 커피를 들고 들어온다. 그녀는 추운 날씨인데도 검은 미니스커트에 하얀 와이셔츠이다. 그녀의 심하게 굴곡진 몸매가 출렁거린다. 그녀에게서 향긋한 냄새가 난다.



"회장님. 수능 끝나서 개운하십니까?"
"앓던 이가 쏙 빠진 것 같아. 하하."

"상무님이 보자고 하는 것은 내년 봄에 베이징과 샹하이에 오픈하는 매장 때문에요."
"지금 상무님 계시면, 상무님 방으로 갈까요?"

"기다리세요. 상무님 지금 자리에 안 계셔요. 나중에 수희씨가 전화 한다고 했어요."




송실장은 내 옆에 앉아서 내가 읽어야 할 서류들을 하나씩 설명한다.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정기인사 결과인데, 내용을 들여다보니까, 총무부의 박은희 차장이 부장 승진에서 또 빠져있다.

그 다음은 인터넷 쇼핑몰의 성과이다. 이제는 자리를 확실하게 잡아서 성과를 제법 내고 있다.

나머지는 주로 매장관리에 대한 내용들이다. 우리의 가장 큰 과제는 다이어트이다. 임대차 계약이 끝나는 이해 말까지 20개 정도의 매장에서 우리는 철수하기로 했다. 그 대신에 새로 공사를 끝낸 매장 몇 군데를 새로 오픈한다. 우리는 구조 조정을 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으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가 회장직에서 물러나느냐 하는 것이다. 나는 한상무와 이 문제에 대해서 의논하고 싶은데, 내 생각으로는 지금 이 시기가 별로 좋지 않을 것 같기는 하다. 나는 우선 송실장에게 물었다.



"누나."
"어?"

"나 이제 회장 사표하면 안될까? 차라리 비서실에서 일하고 .."
"왜? 무슨 일 있어?"

"우리 부채가 이 만큼이나 줄었잖아? 또 주식도 지금 250% 까지는 올랐거든요."
"그래도 한상무님이 아직은 하려고 안 하실텐데 .. 한상무님이랑 얘기를 해봐요."




[7]
최수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송실장과 같이 한상무의 방으로 갔다. 그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준다. 최수희도 커피를 들고 와서 같이 앉았다.

그는 우리에게 중국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한다. 매장 허가와 건물 임차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생각보다 엄청 까다롭고 오래 걸렸다는 것이다. 뇌물을 썼더라면 조금 빠르게 진행됐을 것이지만, 우리에게는 시간이 있었으므로 그런 일을 일체 하지 않았다고 한다.

우리는 내년 봄에 새로운 상품을 기획해서 중국에 대형 매장 두 개를 오픈한다. 우리가 취급할 생활 필수품들은 거의 중국 상품들이다. 중국에서 일하는 임영선과 또 우리 직원들에 의하여 상품 기획은 이미 끝나 있는 상태이다.



"허가만 늑장 부리지 않고 빨리 나왔더라면, 이번 크리스머스에 맞추어서 오픈하는 일도 가능했었을 텐데요."

"회장님 말씀이 맞기는 한데, 우리는 현지에서 왕초보니까 결과는 별 차이가 없었을 것입니다. 연말이나 명절에는 어차피 할인 판매 행사가 대부분이거든요."



우리나라 상품들 중에서 중국인들에게 인기가 높은 상품들은 우리나라에서 수입하는 형식으로 갖다가 판매한다. 그런데 바로 이것이 문제이다. 옷이나 화장품 들 특수한 상품 몇 가지가 중국에서는 워낙 짝퉁이 심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어떤 상품을 매장 안에서 몇천원에 팔고 있으면, 그 상품이 밖에서는 몇십원이나 몇백원에 팔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중저가 상품으로 시작하고 나서, 노우하우가 쌓이면, 그때 가서 고가품으로 가면 되지 않나요?"

"상무님. 만일 우리가 싸구려 매장이라는 인식이 중국인들에게 한번 박히게 되면, 나중에는 고가품이 먹혀들지 않을텐데요? 중국인들은 자기가 받은 인상을 좀처럼 바꾸려고 하지 않거든요."

"그럼 분기마다 영업 손실이 엄청날텐데 .."

"우리가 명품을 취급할 생각은 없으니까, 짝퉁이 나타나더라도, 양이 적으면 무시하면 된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인들도 한국 상품은 한국에 매장에서 사는 것이 안전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는데요."




또 우리가 중국에 매장을 오픈한다는 소식은 주식 시장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도 있지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경험도 없이 무작정 중국에 갔다가, 쫄딱 망한 사람들이 하나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 점을 고려하여 이미 중국에서 백화점 입점을 통해 일년 동안이나 경험을 쌓았다. 이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임영신 모녀가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중국에 매장을 새로 오픈한다는 이 소식을 매스컴이 보도한다면 우리 주식은 또 가격이 제법 오를 것이다. 중요한 점은 그 때 까지는 비밀을 유지하는 것이다.




"회장님. 우리가 계획하는 이 사실을 업계에서 알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텐데, 어떻게 비밀을 지켜요?"
"날 때 나더라도 그 때 까지는 .."

"또 문제는 중국에서 소비자 가격인데 .."

"상무님. 우리가 중국으로 가져간다고 하면, 수출용이 되니까, 품질도 훨씬 좋아집니다. 또 수출 시장을 개척하는 단계이기 때문에 정부로부터 지원도 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러면 원가도 낮아져요."

"그래도 이번 수출은 현지에서 물류까지 우리가 전담해야 하기 때문에, 물류비용이 또 장난이 아니거든요. 처음에 시작하면서 대량으로 가져갈 수도 없고 .."

"그래도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에너지나 휘발유, 디젤 값이 싸지 않습니까? 기획실에서 소비자 가격을 최대한 낮추도록 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아직 다른 방법은 없는 것 같은데요."



이제 나는 내 고민에 대해서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그런데 한상무는 동분서주하면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다. 나는 차마 그에게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8]
그런 찌질한 말 대신에, 나는 편의점 사업을 시작할 것을 제안했다. 한상무는 깜짝 놀란다.



"예에? 편의점을?"

"앞으로는 백화점이나 마트의 매출은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편의점 매출이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 벌써 나왔거든요. 그래서 저도 지금 일본 편의점들이 진화하는 것들을 추적하면서 공부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럼 일본 편의점 자본들이랑 맞장을 떠야 하는데?"

"마트도 그랬지않습니까? 우리가 시작하지 않으면, 외국 자본들과는 밥그릇 싸움에서 이미 밀릴 것입니다. 이제 이번 연말이면 프랑스나 미국 마트들은 물러간다고 했거든요. 이 땅에 아예 발을 못붙이게 해야죠."

"그럼 편의점에 운영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들은 어떻게 하죠?"

"제일 큰 문제가 본사에서 가맹비를 30% 정도나 받는 모양인데, 그래서 점주들 수입이 너무 낮으니까 문제인가봅니다. 우리가 유통비용을 절감해서 30%를 20%로 다운시킬 수만 있다면 우리는 틀림없이 이깁니다."

"충분히 가능해요. 우리는 자체 물류센터가 중간에 있거든요. 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나 우리 자체상품을 생산하는 회사들도 많아요."

"우리가 골목 상권을 죽인다는 루머에 휩쓸리지 않는 문제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치고 들어가지 말고, 지금 하는 영업장의 점주를 설득해서 가입시키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가맹점 비용을 최소화시켜서 저들의 소득을 웬만큼 챙겨준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봅니다."

"타당성은 있네요."

"내년 하반기에 서울 경기, 그리고 지방은 시 단위에서 동시에 오픈하는 것으로 목표를 정하고, 구전무님과 의논하신 뒤에 이사회로 넘겨주십시오."

"기획실에서 자료를 모으려면 적어도 보름은 걸릴텐데. .."

"한 달이 걸려도 좋습니다. 제 계산으로는 이사회에서 찬성인지 반대인지를 연말까지만 결정해주시면, 준비하는 데에 6개월이면 가능하다고 봅니다."

"좋습니다. 붙어봅시다.."

"그리고 총무과 박은희 차장은 부장 승진이 어려운가요? 총무부로 승격시켜놓고 차장 혼자 다 하려면 너무 힘들텐데. 지금 업무의 양으로만 본다면 부장 1명이랑 차장 두명이 같이 해도 모자랍니다. 저러다가 박은희 차장 과로로 쓰러져요."

"지난번 정기 인사에서 빠졌습니다. 아무래도 이번에는 회장님 직권으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상무님께 또 일거리만 잔뜩 안겨 드린 것 같아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10년이나 20년 후를 내다본다면 이런 생각을 안할 수가 없거든요. 이해해주십시오."

"천만에요. 이렇게 일거리를 찾아서 만들어내는 것이 회장님이나 우리가 할 일 아닙니까?"




나는 한상무의 방을 나와서 내 자리로 돌아왔다. 송실장에게 회장 직권을 사용해서 박은희 차장을 부장으로 승진시킬 것을 관리부와 상의해서 처리하라고 했다.



"박은희 차장을 엄청 챙기네. 처음에 거기서 일을 시작해서 그런가?"
"지금 이 일을 박은희 차장님이니까 하고 있지, 다른 사람 같았으면 벌서 사표 쓰고 나갔을거야. 그렇게 생각 안 해요?"

"하긴 .. 그렇기는 해."



송실장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런데 최수희가 퇴근하자고 나에게 전화를 했다.



"차에서 기다릴게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외투를 입었다.



"내가 더 할 일 있어요?"
"아닙니다. 아까 결재도 다 하셨고 .."

"자기 퇴근하려고?"
"어."

"오늘 바빠요?"
"왜?"

"저녁에 같이 있으면 안돼?"
"오늘은 쫌 그런데 .."

"뭐야아. 수능도 지났잖아."
"이제 내 기말 시험이 있거든. 누나는 언제 퇴근해?"

"아까 상무님이랑 얘기한 것 처리하고, .. 시간이 좀 걸려요. 먼저 가세요."




나는 그녀에게 키스하고, 내려가서 최수희의 차에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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