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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24 480회 0건
21. 화려함의 속사임.

하늘이 집에서 한참동안 울어버린 이후. 난 애써 묻어 두었던 어머니에 대해서 알고자 이모에게 자주 묻게 되었고 그녀는 그 다음 날 저녁에 거실에 독대로 마주 앉아 한참 동안 자신이 알고 있는 언니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었다.
때론 웃고 때론 눈물짓기도 하는 다양한 이야기들 중에서 난 할머니가 한때는 수녀로서 생활을 했었고 선교를 위해 한국에 왔다가 할아버지를 만나 고뇌의 사랑을 하고 그 아름다운 사랑의 결실로 어머니를 낳아 결혼을 하게 되는 이야기를 멋진 드라마를 보듯 가슴 설레며 들었고 어머니가 중학생 시절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선물을 사기 위해서 시작한 잡지 모델 일이 계기가 되어 그 시대의 최고의 여배우가 되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를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즐겁게 들었으며 연예, 결혼, 임신, 누나의 탄생 그리고 이어지는 납치, 감금, 해방, 나의 탄생, 아버지의 양육거부, 어머니의 우울증, 자살은 깊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릴 것 같은 같은 가슴을 잡고 들어야 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난 가장 두려워했던 그리고 알고 싶었던 어머니가 나를 어떻게 생각 했을까? 에 대해 물었고 이모는 고민스러운 표정 없이 말해 주었다.
“난 언니가 널 사랑해서 그 시간을 견뎠다고 생각해. 결코 의무감이나 가톨릭교도로서 교리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널 동정하고 또 사랑했기 때문에 자살하지 못했던 거야.”
“왜요. 전 어머니가 증오해도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는 남자의 아들인데요. 불러오는 배. 어머니는 골음이 쌓이는 것처럼 혐오감을 느끼시지 않았을 까! 하고 가끔 생각하는데요.”
“진아~” 짝~!
“악!”
이모는 내 뺨을 고개가 돌아 갈 정도로 후려 갈겼고.
“엄마!”
“수희씨!”
이모부와 캐리가 내 비명 소리와 뺨 때리는 소리에 놀라서 거실로 쏟아져 나왔고(아마도 엿듣고 있었던 것 같다.) 난 맞은 곳을 어루만지며 그녀를 한번 올려다봤다가 몹시 화난 얼굴을 보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이모는 짧게 이모부와 이야기 한 다음 나에게 다시 말해왔다.
“네가 아직도 그 일에 대해서 힘들어하는 거 알아. 하지만 이 진수희란 여자가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는 언니가 저평가 당하는 건 참기 힘들구나. 특히 넌 언니의 배속에서 나온 친아들이잖아. 절대 언니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지 마. 내가 용서하지 않을 태니까.”
난 이 순간 이모가 어머니를 어떤 식으로 생각하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한가지만은 분명하게 알 것 같았다. 그녀에게 있어 어머니는 최고의 이상향이란 것을. 그러니까 난 그녀의 이상향에 손상을 주려 했었던 거다. 자기혐오에 빠져서. 어머니를 깎아내리는 맞아도 싼 짓을 해 버린 것이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그런 생각하지 마. 네 모친은 절대 그런 여자가 아니니까.”
난 고개를 끄덕이고 갑자기 다가온 이모의 포근한 품에 안겼고 이모부는 그런 나의 당을 토닥여 주고 캐리는 핀잔을 주었다.
“바보 남자 주제에 매일 눈물이냐. 그거 때 버려라.”
그리고 그 핀잔에 이모의 품에서 빠져나온 나의 눈가를 부드러운 느낌의 손수건으로 닦아주었다.


태어나 이모에게 처음으로 뺨을 맞은 날이 이틀이 지난날의 귀가길. 난 꽃들에 둘러싸여 있었다. 수줍게 미소 지으며 내 오른 팔을 꼭 잡고 걷고 있는 하늘. 그녀 옆에서 조금 더 달라붙어 보라고 말하고 있는 수애. 일행들 보다 앞에 서서 기획사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는 캐리와 지애. 그녀들의 이야기에 눈을 빛내는 헤인. 사귀는 남자친구에게 전화로 싸우고 있는 하은. 남자 1명에 여자 6명이라 불균형한 이 일행은 내일이 개교기념일이라는 기분 좋은 상황에 들떠서 내일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해서 한참을 이야기 했고 캐리의 건의로 기획사 견학을 가는 것으로 했다가 엄청 깐깐하다는 기획사 사장인 지애 어머니가 오늘 미국에 볼일이 있어 오늘 자리를 비우고 있다는 정보를 획득 견학을 지금으로 잡고 이동 중에 있었다.

“야호! 매일 개교기념일 이면 좋겠다. 내일 개교기념일 이라고 오늘 행사만 하고 12시에 끝나고 내일은 쉬고. 햐~ 기분 좋다.” 다른 사람 앞에 잘 나서지 않는 헤인 이었지만 좋은 날씨와 여유 때문인지 흥분해 그렇게 이야기 했다.
“그치.”
“하하하 좋아.”
“크리스 오빠 만나는 거 아닐까. 저번에 콘서트 장에 갔었는데 진짜 멋있던데.”
“난 효린 언니 보고 싶다.”
“난 카탈리시즘 멤버 오빠들 전부 보고 싶다.”
“하은아. 카탈리시즘은 우리 기획사 아닌데.”
“그랬냐. 그럼 오리엔탈 메시아 멤버들.”
저 마다 자기가 좋아 하는 연예인 이름이 나오고 있었지만 TV도 잘 안보고 음악도 거의 듣지 않는 나로선 그 이야기에 끼어 들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늘이는 나와 다르게 아주 평범한 여고생이었다.
“나타샤 볼 수 있을까요.”
4명의 여고생들이 자기가 보고 싶은 연예인들의 이름이 나열되고 나서 지애가 결과를 보고해 주었다.
“크리스는 너 갔었던 순회 콘서트 중이라 없고 효린 언니는 숙소에 안 살아서 알 수 없고, 오~~~메(오리엔탈 메시아)는 2집 활동 끝나서 요즘 빈둥빈둥 거리고 있으니 가능성 많고 나타샤는 요즘 영화촬영 한다고 바쁘거든 못 봐.”
“에이~~~ 안 갈래”
“나도”
“야~”
갑자기 파장 분위기였다. 하지만 캐리는 카드를 하나 숨기고 있었다. 요즘 노래보다는 영화와 드라마로 활동이 많은 20대 후반의 멋진 솔로가수의 이름이 나왔던 것이다.
“서태혁 오빠 오늘부터 안무 연습 하는데.”
“오~~~ 갈래~ 절대 갈래”
“와!”
여기서 의문점이 한 떠올랐고 난 비교적 흥분하지 않은 하늘에게 물었다.
“왜 처음부터 그 사람 이름이 안 나온 거지. 저렇게 좋아 할 거면 그 사람 이름부터 나왔어야지.”
“음~ 그건 그 서태혁이 2년 동안 음반을 안 만들었거든 그러니까 기획사 연습실에 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한 거 아닐까.”


여자들의 기대에도 불구하고 서태혁은 없었고 대신 오늘 없어야 했던 지애의 어머니가 기획사 연습실에 들어선 우리들을 막고 지애와 캐리에게 잔소리를 하고 있었다.
“외부인 절대 사절 이라고 했잖아. 지애 넌 저번에도 네 불량한 친구들 데려와서 혼났으면서 또 그러냐.”
“애내들 착해.”
화려한 색조 화장과 비싸 보이는 귀걸이, 목걸이, 반지 그리고 화려함이 묻어나는 검은색 정장이 어울리는 지애와 많이 닮은 중년여성이 우리들을 대충 둘러보고 말했다.“뭐 저번 보다는 낮다만 그런다고 회사 규칙을 깰 이유는 안 돼.”

캐리가 거의 주도 했지만 상대가 사장이다 보니 여기선 혈육으로 승부하려는지 지애가 거의 혼자 말했고 캐리는 살짝 도와주는 식이었다. 하지만 결론은 출입금지였다. 우리는 실망하며 돌아섰고 지애는 자기 엄마랑 싸울 기세로 계속 이야기를 했고 캐리는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들에게 어느새 가져 왔는지 음료수 하나씩 나누어 주었다.
“미안. 미안. 오늘은 날이 아니네.”
“잔득 기대 했는데.”
“너무해요.”
“언니 이 좌절감 책임 져요.”
“히히히히히 미안 다음에 꼭 태혁 오빠 만나게 해줄게.”
캐리는 그렇게 말하고 나서 모녀를 말리겠다며 기획사 연습실 문을 닫았다.

역시 가수를 키우는 기획사라서 그런지 방음은 확실한거 같았다. 문이 닫히자 곳 지애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대신에 어디선가 기타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낮고 템포가 느리며 무언가가 빠져 있다는 느낌이 드는 곡. 그 멜로디에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었다. 눈을 비비며 일어났을 때. 들려온 달콤하지만 슬픈 누나의 목소리처럼 애잔하고 멀리서 바라보며 마음을 애태웠던 하늘이처럼 촉촉한 느낌의 곡이 내 귀를 지나 내 마음에 닿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이 곡을 따라 하고 있었다. 내 기억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것일까. 난 이곡을 이 순간 따라 하는 게 아니라 떠올려서 같이 부르고 있었다. 하지만 이 곡을 어디서 들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고 난 이 알 수 없는 기억에 아주 강한 의문과 희열을 느꼈다.

난 한 동안 그 음악에 심취해 있었고 그 음악이 끝났을 때. 난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고 그 기타 소리를 찾아 달렸다. 나의 갑작스런 행동에 하늘이가 나를 불렀지만 난 앞으로 나아갈 뿐이었다.
“진아! 왜 그래.”
“왜 그런데.”
“따라 가보자.”
“응”

나의 행보는 신이 축복으로 인도해 주고 있는 것처럼 지독하게 쉬웠다. 덩치가 있는 연습실과 녹음실 때문에 문은 하나도 없는 외길이 있었고 그 끝에 조금 열어져 있는 문이 보였다.
난 문을 바로 열려다가 문에 ‘사장실 절대 정숙’이란 글씨를 보고는 정신을 차렸다. 초대도 받지 않는 내가 감히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아니란 생각이 들어서 감히 문을 열수가 없었다. 그래서 대신 난 문틈을 엿보려 했다.
그런데 내가 조심스럽게 문틈을 보려고 자세를 취해서 보려는 순간 문이 갑자기 열리고 왼 수염이 덥수룩하고 대머리에 살찐 중년의 남자가 튀어나오며 나를 놀라게 해서 난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 버렸고 “꺅~” 그 남자는 내 비명에도 무표정하게 나를 한참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의 표정이 조금 씩 아주 조금 씩 개구리 뒷다리 나오는 만큼 더디게 변하더니 누가 보더라도 자기가 너무 놀라서 응급실에 실려 가야 한다는 것을 알만큼의 놀란 표정을 짓다가 갑자기 엄청난 목소리로 누군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태란!~~~ 야 사장아~~~ 태란아~~~ 여기 여기 여기. 어서.”
난 그 목소리에 또 놀라서 귀를 막았고 내 뒤를 따라왔던 하늘외 3명의 여고생도 마찬가지였으며 방음 시설이 되어 있는 곳에서도 들렸는지 얼마 있지 않아서 지애와 캐리를 대동한 기획사 사장님이 등장해서 짜증스런 목소리로 질세라 소리를 질러댔다.
“야~~ 김중원~ 조용히 안 해.”
하지만 대답으로 나온 김중원이란 이 털북숭이 아저씨의 목소리는 아까보단 작지만 여전했고 이번엔 당황스런 기색이 썩혀 있었다.
“태란아. 이~ 이~ 이 아이 누구야.”
“좀 조용히 하라니까. 그리고 누구 말하는 거야.”
지애어머니는 우리 다섯을 둘러보며 말했고 털북숭이는 갑자기 내 양팔을 쌔게 붙잡아 날 놀라게 한 상태로 냄새나는 입으로 침을 튀기는 만행을 저질렀다.
“이 녀석. 도대체 이 녀석은 누구인데. 이렇게 그녀랑 닮은 거야.”
“누구를 말하는 거야.”
지애어머니는 털북숭이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에 대해서 직접 확인하고 싶었는지 거의 뛰듯이 달려와 팔을 풀게 하고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털북숭이 같은 표정이 되더니 두서없이 물었다.
“누구야 너.”
난 몹시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하고 이 둘을 보고만 있었고 그들도 다시 묻는 행위 따위 하지 못하고 내 얼굴을 뜯어보고만 있었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캐리가 다정스럽게 내 팔을 잡으며 나 대신에 물어 주었다.
“캐리언 이 애 누구야.”
“누구긴요. 이종사촌 동생인데요.”
“그거 말고. 왜 진수진이랑 왜 이렇게 닮은 거야.”
“그야~ 아들이니까요.”
이제야 의문이 풀려서 평온한 표정이 된 털북숭이와 더 놀란 표정의 지애어머니는 동시에 다시 물었다.
“그럼 캐리언 넌 수진이 조카?”
“딩동댕 맞혔습니다.”
“근데 왜 말 안했어.”
“엄마가 말하지 말라고 해서요. 자존심 상하는 말이지만 사람들이 괜히 기대한다고.”
지애어머니는 캐리언의 말에 눈을 깜박이다. 장난스럽게 말했다.
“맞는 말이네.”
“사장니~~임”
지애어머니는 캐리가 투덜거려도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뜻으로 비키라는 손짓을 했고 다시 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말 많이 닮았다. 코에 점까지 완전 판박인데.”
처음 보는 사람에게 까지 진실을 이야기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난 고개만 끄덕였고 그녀는 잠시 우울한 표정이 되어 침묵하다가 우리 일행을 둘러보며 손짓하며 입을 열었다.
“서 있지 말고 들어들 와라 여기엔 보안이 필요한 부분이 없으니 들어와도 상관없거든. 뭐 흥미가 가지는 않겠지만. 태혁이 녀석이 올 때 까지 잠시 참고 있으면 되겠지.”
태혁이란 사람에 대해서 전혀 정보가 없는 나였지만 여자 아이들의 환호성이 그의 인기도를 알게 해 주었다.
“야호!” 오른손을 높이 들고 풀쩍 뛰어 오르는 헤인.
“정말요. 어떻게! 어떻게! 하하하” “사인 받아서 자랑 해야지. 히히히” 서로를 끌어안고 좋아하는 하은이와 수애.
“사인 받아야지.” 그리고 나에게 다시 부드럽게 접촉해 오며 조심스럽게 기뻐하는 하늘이.

사장실은 즐비한 상장과 트로피 그리고 전자기타, 어쿠스틱기타, 색소폰, 키보드, 하모니카 등의 악기들 그리고 각종 연예인들의 일반사진과 포스터가 사방을 에워싸고 있어 너무 좁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우리는 그곳에 있는 15명이 앉을 수 있는 소파 주변을 돌며 한참 구경하다가 하나 씩 앉았다. 그런데 구경하느라고 신경 쓰지 않고 아무 곳에나 앉았는데 앉아 보니 하늘이가 왼쪽 캐리가 오른쪽에 있었으며 내 맞은편에 자신의 딸을 왼쪽에 그리고 털북숭이를 오른쪽에 둔 지애어머니가 자리하는 협상을 위해 힘 있는 두 사람 같은 구도를 만들고 있었다.
“일단 반갑다. 이름이?”
“성 진 입니다.”
“오 그래 진이라고 하는 구나.”
그녀는 내 이름을 알게 된 것이 큰 의미라도 되는 것처럼 한참을 동안 자신의 이마를 짚고 가만있었다. 고민하는 표정 같기도 했고 왼지 쏟아 질 것 같은 감정을 추스르는 것 같기도 한 표정에 난 강한 의문을 느꼈다. 하지만 털북숭이가 침묵한 지애어머니를 대신에 입을 열었다.
“태란이는 수진이 매니저 겸 코디 겸 이었거든.”
목소리는 걸걸해도 말하는 투가 여성스러운 털북숭이의 말을 듣고 난 반가움을 느낌이 들어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며 답해주었다.
“예. 그러셨군요.”
일순 털북숭이는 놀란 표정이 되어서 굳었다가 시간과 함께 서서히 풀리며 예의 말투로 말했다.
“그 웃음. 하하 그 웃음을 또 보게 되었네. 영영 못 보는 걸로만 생각한 것인데. 왼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네. 하하”
이 거한의 남자는 어울리지 않게 울지는 않았지만 목소리가 점점 갈라지고 두 눈이 충혈 되고 있었다. 지애어머니는 털북숭이의 상태가 나쁘다는 것을 알았는지 남자의 뒤통수를 때리며 말했다.
“멍청아. 네가 흥분해서 어쩌겠다는 거야.”
“미안! 미안.”
이 둘의 모습은 누가 보더라도 이색적인 모습이었다. 거한에 털북숭이 남자와 세련된 중년부인이 서로 격 없이 대하다니 흔한 일이 아니었고 때문에 지애를 제외한 6명은 모두 놀란 표정이 되었다.
“작곡가 아저씨랑 엄마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야. 뭐 아무리 그래도 남녀 사이에 이러고 있는 어른은 별로 없겠지만.”
놀랐다. 중년의 친구인 남녀가 하는 행동에 놀란 것이 아니라 이 남자가 작곡가라는 사실에 말이다. 그리고 한 가지 의문이 들었고 바로 물어 보았다.
“작곡가 섰구나. 근데 어머닌 배우셨잖아요. 왜 아저씨가 우리 어머니를 아시는 거죠.”
같은 연예계니까 알 수도 있겠구나 하고 말하면서 생각 했지만 털북숭이는 의외의 대답을 했다.
“수진이는 타고난 가수라고 하기엔 부족한 점이 있었지만 노래를 좋아 했어. 그리고 당시 가수들 너무 가창력이 뛰어나서 그렇지 수진이도 못 부르는 건 아니었고. 히트 친 곡도 있는 걸.”
“혹시. 아까.”
“응 그래. 그거야.”
“아저씨가 작곡 하신 건가요.”
“아니 네 어머니가 한거야. 물론 네가 손 좀 봤지. 하지만 거의 원형 그대로야. 초보자인 네 어머니가 작곡 했다는 것부터 화제였었지. 근데 네 집에 음반 없냐?”
아버지가 치워 버렸을 거란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에 우울한 기분이 들어 내 목소리가 점점 낮아져 갔다.
“없어요.”
“그래. 수진이 남편이 치워버렸나 보구나.”
그의 목소리도 마찬가지였지만 워낙 톤이 높은 목소리라 그다지 표는 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아세요.”
“응 그래. 성필수 인가. 음~~~ 그래 성필성. 하하.”
그는 재미있는 추억이 떠올랐는지 혼자 웃기 시작했다. 그 웃음이 곧 숨 넘어 갈 것 같은 웃음으로 번졌고 때문에 주위 분위기가 아주 이상해지고 있었고 뒤 늦게 이 사실을 인식한 그가 해명을 해줬다.
“성필성. 진수진. 성 하고 이름 두 번째 글자가 같잖아 꼭 토마토처럼 거꾸로 불러도 그 이름이 되서 태란이가 토마토부부라고 불렀거든. 그게 생각나서.”
전혀 웃기지 않는 유머다. 아무도 심지어 지애어머니도 표정을 바꾸지 않았고 주변 공기가 싸늘해지고 있었다. 털북숭이는 이런 분위기 참기 힘들었는지 다시 본론으로 넘어갔다.
“성필성 알지 내가 결혼식장에서 피아노를 잡고 연주 해줬는걸. 모를 리 없지 않겠냐.”
어머니의 지인이며 아버지와 안면이 있는 사람과 만난 다는 건 기쁜 일이다. 하지만 난 그 기쁨이 반가움으로만 지속되지 않는 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 가족에겐 잊어버릴 수 없는 사건을 떠올리게 되는 순차적인 현상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털북숭이의 이야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그는 이야기의 방향이 어떤 사건으로 향하는 것을 꺼리고 있었다. 그는 이야기를 하다가 중단하고 지애어머니와 잠시 이야기하기도 하고 혼자 생각에 잠겨 있기도 하면서 말을 줄줄이 늘어놓지 않았고 아이들은 그런 방식의 이야기에 조금 질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말속에서 어머니가 격어야 했던 감금 사건을 그도 알고 있을지 모른다는 단서를 찾아내어 몹시 당혹스럽고 혹시 내 비밀이 친구들에게도 알려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하고 두려워져서 그의 말을 막고 싶은 충동까지 느끼고 있었다.
사실 난 그동안 그 비밀에 대해서 그다지 걱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조사했던 보고서는 불태워 버렸다는 것과 과거 철저하게 보도규제를 요청했다는 사실 때문에 난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이가 거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하늘이 아버지가 알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그 생각이 잘 못 된 것임을 알았고 오늘 그것이 위협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 지기 까지 해서 그런지 내 혈색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어! 진아. 괜찮아!”
난 털북숭이를 보고 있다가 내 팔을 끌어당기는 하늘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걱정스런 표정의 그녀가 다시 말해왔다.
“어디 아픈 거 아냐. 안색이 나빠.”
“아냐.”
“몸 안 좋으면 집에 가자.
마음이 복잡해서 나도 집에 가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가 가 버리면 서태혁을 보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 특히 하늘이의 이벤트를 하나 날려 버리는 거라서 애써 불안은 그저 생각일 뿐이란 사실을 자신에게 인식시키며 입을 열었다.
“난 괜찮아 그리고 하늘이도 서태혁 보고 싶잖아.”
내 말에 하늘이는 고개를 가로 저은 후.
“태혁 오빠 보다 진이가 훨씬 중요한 걸.”
이라고 했다. 이 난 순간 그녀가 너무 사랑스럽게 느껴졌고 다른 사람들은 우리를 닭살 이라고 생각했다.
“아~ 닭살아~~”
하늘이는 주변의 반응에 스스로 했던 말이 부끄러워 얼굴을 가리고 난 신경 쓰지 않는다는 투로 사랑스러운 그녀의 손을 살며시 감아쥐며 말했다.
“고마워 하지만 나 멀쩡하니까 아이들이랑 같이 돌아가자.”
“응~”
우리들의 대화에 또 말들이 많았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예쁜 아이가 나보다 다른 아이를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니 가슴이 쓰린데.”
부드럽고 또렷한 음색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서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엔 남자라도 뒤 돌아 볼 것 같은 아주 멋진 남자가 이를 보이며 웃음 짓고 있었는데 그의 등장과 동시에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오~~~ 오빠. 진짜야.~~~~”
“깍~~~~ 진짜 태혁 오빠야.~~”
“야호~”
기획사 관계자, 그가 누구인지 모르는 나 그리고 하늘이를 제외한 나머지 3명의 여자아이들은 방금 등장한 남자에게 뛰어가서 흥분해서 매달렸다.(사실 수애가 이에 동참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들은 한참동안 서태혁을 놓아주지 않고 그를 직접보고 있다는 감격에 흥분해서 자기도 모르게 주절거리거나 물어대고 헤인이는 손을 잡기 까지 했다. 난 그 상황이 몹시 불안하게 보였지만 그는 너무나 익숙한지 아까와 같은 표정을 유지하며 그녀들을 진정시켜 자리에 앉게 한 후. 연습시간 이라고 캐리가 일어난 내 옆자리에 자기도 앉았다. 그리고 기획사 사장인 지애어머니에게 고개를 돌리며 물어왔다.
“사장님 이 아이들은?”
“미안. 지애친구들인데 사정이 있어서 사장실에 있었거든. 근데 프로젝트에 쓸 기타리스트는 어떻게 됐어.”
“내일 오전에 비행기 타고 도착 할 건데 오면 바로 연락드릴게요.”
“그럼 베이시스트 하나만 있으면 되겠구나.”
“그 쪽은 인디벤드에 인물 있다면서요.”
“외모도 그럭저럭 괜찮고 연주 실력도 뛰어난 아이가 있는데 배신 못 하겠다고 하더라. 우리나라에서 인디벤드로 먹고 살기 힘든데. 좋은 기회를 차 버리더라고.”
“하하 아쉽네요.”
연주 실력 있는 걸 벤드 그룹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쉽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래서 인지 지애어머니는 동시에 계획을 짜고 있었다.
“그에 반해서 5인조 댄스 걸그룹 만드는 건 너무 쉬워서 눈물 나온다. 일주일 만에 5명 다 뽑아 놨다.
“근데 지애 넣어 줬어요.”
“응. 넣었다.”
“실장님 뭐라고 안 해요. 지애가 가수 하는 거 절대 반대하시던데.”
“겨우 설득해 놨어. 뭐라더라 절대 야한 옷 입히지 말라나. 허락을 말던지 어쩌란 건지.”
둘의 대화 내용을 보니 서태혁이란 이 남자. 기획사에서 단순히 소속된 가수란 지위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당수의 주식을 보유한 주주로서 회사일도 어느 정도 하고 있었으며 그 수안이 좋은지 지애어머니의 신임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1시간 후. 지애어머니는 우리들에게 중국음식을 시켜주었다. 단 캐리와 지애는 다이어트 때문에 제외시키고 5명의 고등학생과 서태혁 그리고 털북숭이가 탕수육, 깐풍기, 자장면, 만두, 짬뽕을 먹으면서 대화가 오가고 있었는데 의외로 털털하고 소박한 서태혁이란 남자가 당연히 제일 질문도 많이 받고 말도 많이 하고 있었다.
“하하하 절대 아냐. 민주연 하고 인사도 안 해봤어. 그 기사 순전히 날조라고.”
“에이~~ 끼고 있는 반지도 같은 거고. 같이 운동 하고 있는 장면이 찍힌 사진도 나왔던 데요.”
“하하하 그거 정정기사 났잖아 못 봤어.”
아이들은 모두 고개를 가로로 저었고 서태혁은 과장스럽게 머리를 감싸 쥐며.
“oh my god.”
이라고 했고 제 3자란 느낌이 드는 나와 털북숭이는 왼지 그 장면이 웃겨서 소리 내어 웃어댔다.
“하하하.”
“하하하 그만들 해. 태혁이 울겠다. 그 기사 때문에 민주연 광팬에게 얼마나 혼난 줄 아니. 습격도 당했다.”
털북숭이의 말은 뉴스화 되지 않았는지 여자아이들은 놀라는 표정이 되었다.
“어떻게?!?!?” 손으로 입을 가리며 놀라는 하늘.
“안 다쳤어요.” 상처가 남아 있는지 보려는지 고개를 내미는 헤인.
“어떻게 했어요. 그 놈이.” 놀란 건 놀란 거고 일단 먹고 보자는 하은.
“안 죽어서 다행이네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몰라도 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죽음을 입에 담으면서도 태어난 수애.
“아!” 놀라서 감탄사만 네 놓는 나.
서태혁은 우리들의 반응에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하 괜찮아 뒤통수에 땜통 하나 생기긴 했지만 끄덕 없다.”
아이들은 태혁의 답변에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난 그 표정을 짓는 하늘이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자장면 한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가고 단무지를 입에 넣어 우물거리는 서태혁을 바라보았다.
난 180cm는 넘을 것 같은 키에 호리호리한 체격이지만 다부진 어께와 정당하게 다듬어 놓은 근육을 가진 가름한 턱을 가진 아름다운 이 남자에게 질투심이 느껴졌다. 머리가 좋은지 음악에 대해서 연기에 대해서 대단한 재능이 있는지 알 수 없지만 그 것들 마저 가지고 있다면 ‘세상은 불공평해’라고 말하고 싶을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한참 하고 있다보니 그를 향한 나의 눈빛이 이상하게 보였던 걸까. 서태혁이 예의 미소띤 얼굴을 보이며 정확히 나를 대상으로 물어왔다.
“성진이라고 했지.”
“예”
“남자아이니까 기분 나쁘게 생각할 것 같아서 말을 못했는데. 너 진짜 귀엽게 생겼다.”
“하하 예.”
또래 여자들과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자주 듣는 이야기라서 기분 나쁘거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말로 끝내지 않고 내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 넣으려는 듯이 아주 천천히 뜯어보기 시작했다. 난 그의 시선에 부담을 느끼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러세요.”
그는 내 당황하는 말에 기분 좋게 웃으며 말해주었다.
“하하 미안. 요즘 괜찮아 보이는 애가 있으면 뜯어보는 게. 버릇이 되었다고 할까. 기분 나빴다면 직업병이 이라고 생각하고 잊어버려라.”
“아뇨. 괜찮아요.”
내 대답이 있은 후. 하늘이가 내 손을 살며시 잡아 쥐었다. 부드럽고 따듯한 감촉이 기분이 좋다는 것을 새삼 느끼며 그녀에게 고개를 돌려 아주 잠깐 미소 지어주고 이어지는 그의 말을 들었다.“물론 네가 그럴 마음이 있느냐가 가장 중요하겠지만 일단 외모에선 합격이다. 키가 그다지 크지 않지만 그만큼 작은 머리라 화면 발은 잘 봤을 것 같고. 아직 고1이니 앞으로도 기대를 해볼 수도 있겠고 말이야. 네 생각은 어때 연예계 데뷔해 볼 생각 없어.”
여자아이들은 서태혁의 말에 놀라워하며 서로 웅성거렸고 털북숭이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헛기침을 했다.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 좋게 평가해주는 것에 기뻐했지만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꺼려하는 나 자신을 알기에 가로 고개를 저었다.
“미안해요. 다른 사람 앞에 나서는 거 잘 못하거든요.”
하지만 그는 나의 대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이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말을 이었다.
“믿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도 남들 앞에 나서는 거 못했어. 네가 정신적으로 치료가 필요한 대인기피증이 아니라면 다 가능해. 그리고 외모가 합격점이라고 해서 다 된다는 보장은 없어. 우리 연습생중에 반은 3분의 1은 도중에 그만둔다는 사실이 반증해 주지. 네가 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저 인생경험 삼아 해보란 이야기지.”
그의 부드럽고 또렷한 발음들 사이에서 난 의문을 하나 생각해 냈다. 연예인 하나 만들어서 키워 놓으면 그에게 얼마나 떨어지는 것일까? 하지만 그런 것을 대놓고 물어볼 만큼 내 성격이 당돌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 우회적으로 물었다.
“대답이 아니라서 죄송하지만. 형님이. 형님이라고 해도 되죠.”
내가 생각해도 초면에 형님이라고 부르겠다고 말하는 건 네 성격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는 빙그레 웃으며 답해주었다.
“응. 물론.”
“태혁이 형님이 키운 후배도 있어요.”
“있지. 나타샤 하고 오메. 내가 데뷔 시켰어. 덕에 좀 짭짤해.”
그는 웃으며 대답했고 난 역시 하고 생각하며 말했다.
“형님 제의 생각해 볼게요.”
“응 그래. 전화 줘.”
“네”
우리 대화가 끝나자. 수애가 하늘이 머리카락을 만져대며 말했다.
“오빠. 우리 하늘이는 어때요. 우리 학교에서 현 미모 랭킹 2위인데.”
하늘이는 그 말에 부끄러워 손 세례를 치며 고개를 내 어깨에 묻으려 했고 아이들은 환호성을 서태혁은 두 눈을 껌벅거리다가 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하하 진이 여자 친구도 예뻐. 근데 얼굴에 ‘나 너무 숫기 없어요.’라고 적어 놓은 것 같아서 말 붙이기 힘들더라. 거기다 진이가 하겠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 올 거고 말이야. 근데 1위는 누구야. 혹시 진이.”
그 질문에 내가 대답해 주었다.
“아뇨 캐리요.”
“허긴 캐리언이 예쁘기는 하지.”
그의 말을 들으며 난 이전 1위였던 성가희 즉 누나의 눈부신 모습을 머릿속으로 그렸고 헤인이가 한 마디라도 더 서태혁에게 말을 붙어 보고 싶었는지 그 이야기를 입을 담았다.
“전에는 진이 누나가 1등 이었어요.”
“오~ 그래. 이거 흥미가 당기는데. 너희 집안 얼짱 집안이구나.”
그 말에 대답하기 그래서 웃음 지었고 또 헤인이가 대변인이라도 된 것 마냥 말했다.
“졸업식 때 이모네들 오셨는데 이모도 이모부도 여동생도 다들 멋지고 예뻤어요.”
“뭐야. 너희 부모님은 은퇴한 연예인 아냐.”
난 이 때도 헤인이가 대답할 것을 예상하고 답하지 않았고(이쯤 되자 왼지 기분이 나빠졌다.) 역시나 그녀의 입에 답변이 나왔다.
“난 잘 모르지만 진수진이라는 이름의 배우 이셨다고 하던데요.”
“응 그래. 잘 모르는 분이지만. 대단한 미모 이셨겠지.”
이번에 말을 이은 사람은 털북숭이였다.
“수진이 정말 아름다운 여자였다. 두말할 필요도 없는 팔방미인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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