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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도 그런날이 - 3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2:24 547회 0건

* * *

새학기도 빠르게 한달여가 훌쩍 지나가고, 벌써 4월 말이 다가온다.
새로 정한 자취방에 이것저것 물건들을 좀 옮겨왔다.
그래봤자 컴퓨터랑 책, 옷가지가 전부였다.
뭐 돈이 별로 없어, 허름한 자취방을 구하기는 했지만, 준하는 만족스러웠다.
그냥 혼자 지내면서 학교생활을 할수 있다는 것 자체로 만족하는 것이다.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없는한 집에는 올라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 완전히 스스로 독립해 생활하는거다...

뭔가 기운이 솟아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곧 준하는 학교 앞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경기권 외곽이라 학교 앞 거리라고 해봤자 한블럭도 안되는곳...
혼자 생활하려면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리고 방학때면 등록금도 벌어야 했다.
혼자 해결하기엔 빡빡하겠지만, 어떻게는 집에서 돈 가져오는 것은 죽도록 싫었다.


- 계세요?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자 자욱한 담배연기에 여기저기서 딱딱 큐대로 공을 맞추는 소리가 들려온다.
카운터에는 주인아저씨인듯한 사람이 앉아서 담배를 피우며 TV를 보고 껄껄 거리고 있었다.
여느 당구장 풍경 못지 않았다.
하지만 이곳은 대학가라 그런지 여자들이 종종 섞여 있다는것이 고등학교때 들락거리던 당구장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키는 작지만 다부진 체구에 구레나룻을 길러 산적같아 보이는 주인아저씨가 쓱 돌아보며 말을 걸었다.

- 응, 어서와~ 4구줄까?

- 아, 아뇨, 밖에 아르바이트 구하신다고 붙여놔서 왔습니다~

- 어 그래~ 당구장에서 일은 해봤어?

- 아뇨...칠줄은 아는데 일은 못해봤습니다~

- 뭐 칠줄알면, 못치는 놈들보다야 훨씬 낫지. 언제부터 일할래?

- 아 네~ 제가 신입생이라, 이번주는 조금 힘들구요, 다음주부터 일할수 있을까요?

- 아, 신입생이야? 껄껄껄, 신입생이 벌써부터 아르바이트 자리를?
거 입학하자마자 돈벌려고 하는거 보니, 지지리도 돈 없는 놈 아니면, 뭔가 좀 해볼려는 놈이겠구만.
그래, 그정도는 내 이해해주지, 담주 월요일부터 밤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이고,
시급은 3천원 줄께. 시급 센거 알지? 참, 휴일은 언제로 할래?

- 네? 시급이 3천원에다가...휴일도 있어요?

- 그럼 당연하지~ 이래뵈도 내가 알바생 복리후생은 꽤 신경쓰는 편이라구~
어떤놈이 수요일 하루 일하러 온댔으니까, 수요일날 쉬는거 어때?

- 아 네~ 그럼 그렇게 할게요. 감사합니다~

- 어 그래, 월요일날 올때 학생증 사본 하나만 가지고 와라~

- 넵, 월요일날 뵙겠습니다~


생각보다 수월하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했다.
고등학교때부터 신문배달부터 노가다까지 이래저래 알바일은 많이 해봤고,
당구장도 들락거려서 150을 치니, 당구장 알바가 제일 괜찮을거 같아서 눈에 보이는데 알바생구함 보고 들어갔는데,
이렇게 수월하게 알바 자리를 구할줄이야...

룰루랄라 휘파람을 불며 캠퍼스로 올라가,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들고,
이제는 제법 따뜻해진 날씨에 하늘하늘해진 여학생들의 치마자락과 각선미를 구경하며
나름 점수를 매기고 있는데, 순간 뒤통수에 뭔가 번쩍하며 들고 있던 커피를 한움큼 쏟아내게 만들었다.


- 아야, 이런 씹...어떡 색히가...

- 어어...나야나.... 하하 놀랬냐? 화났냐? 미안하다. 힘조절이 좀 안됐다.

- 어, 호진이구나...이씨. 옷에 K으면 어쩔뻔했어?

- 하하...미안미안...내가 원래 좀 힘조절이 잘 안되서...여자들도 좀 많이 쏟드라... 이해해라...

- 그놈참...말하는거 하고는....말이나 못하면...

- 하하하


호진이었다.
호진이는 뭔가 큰 거리를 알아왔다는듯 짐짓 진지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준하에게 말을 걸었다.


- 준하야, 너 성진 선배 어떤사람인지 아냐?

- 응? 뭔소리야? 갑자기 뜬근없이...

- 아, 내가 요새 성진선배랑 좀 같이 다니잖냐... 궁금해서 여기저기 수소문을 좀 해봤거든.

- 근데?

- 야, 성진 선배... 태현물산 사장 셋째 아들이래...

- 근데 그게 뭐? 태현물산 셋째 아들이........뭐...뭐?? 태현물산????


깜짝 놀랬다. 태현 물산이라고 하면, 국내에서 꽤 이름이 알려진 기업이었다.
삼송이나 렐쥐 등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그거야 워낙 거대 기업이고,
태현 물산은 국내에서 년간 수천억원대의 매출 이익을 내는 꽤 알려진 기업이었기 때문이다.
성진 선배가 태현 물산 사장 세째 아들이라니...


- 하하...나 요새 성진 선배한테 잘 보이려고 꽤 잘 붙어다니고 있다.
덕분에 술도 좀 잘 얻어먹고 다니지...하하하...
그거 아냐? 원래 외제차 타고 다니는데, 학교에선 이목이 있으니까 안된다고, 뽑아준게 그 은회색 그랜져 라드라...

- 와...진짜냐? 이거 뭐냐...

- 그 선배 돈쓰는거 장난 아니다.
술 좀 먹다가 필받으면 수원나가서 룸싸롱 막 데려가고...2차 막 보내주고...
물론 아무한테나 그렇게 돈 쓰는건 아니지만, 여튼 나도 따라서 그새 두번 다녀왔다~ 하하

- 뭐야? 룸싸롱을 가? 얌마 학생이 그런델 다니면 어케하냐?? ............. 졸라 부럽다............

- 푸하하.... 담에 성진 선배랑 술자리 할때, 너 삐삐로 연락할테니까 튀어와라.
혹시 아냐? 성진 선배도 너 맘에 들어하면 같이 데려가줄지?

- 야씨...내가 너 같은줄 아냐? 학생이 공부해야지 그런데 튀어오란다고 튀어나가게?
................
담에 술먹을때 꼭 연락해라...안하면 넌 친구도 아니다.....뒤진다...꼭 꼭 연락해라...

- 하하...그래 그래... 성실히 공부하는 널 위해서 꼭 연락하마.
근데 알고 보니 윤희 선배도 장난 아니더라?

- 윤희 선배? 윤희 선배는 왜?

- 윤희 선배 집안도 쫌 사는 집안이라더라. 근데 알고보니까 윤희 선배네 집안이 태현물산 집안하고 좀 아는 사이인데,
태현물산 집안하고 엮일라고 성진 선배랑 윤희 선배랑 결혼시키려고 하는거래.
뭐 태현물산 쪽에서도 전부터 그렇게 알고 있고. 지금 성진선배 학비고 뭐고 다 윤희선배 집에서 대준다드라.

- 뭐냐 근데? 성진 선배랑 윤희 선배 공부는 지질이 못했나벼? 우리학교를 다 들어오게...

- 얌마, 그럼 우리는? 우리도 지질나게 공부 못한거냐?

- 아..아니..그게 아니고,,,보통 그런 집안이면 이런데 안오지 안냐? 그래서....

- 하긴...원래는 둘이 유학 보내려고 했다가 뭐가 좀 안되서, 우리학교 이사장이랑 친분이 있어서 일단 그냥 밀어넣고
나중에 유학 보내려고 한다나봐...

- 참 좋은 세상이다...대학도 그냥 들이밀고, 유학도 막 보내고. 참, 군대도 면제라며?

- 글치...아씨 부럽다...난 교수한테보다 성진 선배한테 잘 보여서 나중에 취직할때 태현물산으로 갈려고 준비중이다...와하하~

- 참내...그렇게 하는게 잘 되나 보자 이넘아...


둘이 시시덕 거리며 얘기하다가, 호진이가 준하에게 살짝 목소리를 낮춰서 말을 건넸다.


- 야 준하야. 근데 너 진짜 쫌 놀아본거 맞냐? 여자경험 없는거 아니지?

- 우씨...갑자기 무슨 얘기야? 당연히 있지...

- 너 그럼 룸싸롱에서 떡친단 소리 들어봤냐?

- 얌마 무슨 룸싸롱에서 떡을 치냐? 미친놈 아냐?

- 그치 그치...근데 나 그거 해봤다...


이런 미친놈. 이제 막 대학에 입학한 신입생이 룸싸롱에서 떡을 쳐봤다니...
룸싸롱 얘기야 뭐 어울려 놀던 형들한테서라도 어렴풋이 듣기 했었다.
그리고 뭐 한명씩 돌아가며, 옆방에서 떡치고 들어오는 그런곳오 있더라는 얘기는 듣기는 했지만,
룸싸롱에서 떡을 치다니...


- 원래는 룸싸롱이 그런건 없지...그냥 술먹고 시간 맞춰서 좀 쪼물딱 거리고 놀다가 2차 가는게 전부지

- 글치 임마...근데 건 뭔소리야?

- 성진 선배가 가는 룸싸롱 있잖아. 성진 선배가 가면 마담이 아주 난리가 나.
어디서 완전 연예인 같은 애들만 즐비하게 데려다 놓거든.
근데 애내들 놀다가 아주 자연스럽게 분위기 맞추고, 남자들 다 벗기고, 지들도 다 벗고...
룸에서 여기저기 구석에서 파트너 붙잡고 떡친다.........

- ............. 에라이 미친넘아.......

- 진짜야...처음 갔을땐 난 쑥스러워서 잘 서지도 못하고 낑낑대는데, 파트너가 막 웃는거 있지. 쪽팔려서 혼났다.
근데 파트너가 "오빠 이런데 첨이구나? 힘들면 저쪽 벽보고 있어...내가 그냥 손으로 해줄께" 이러더니
나 소파구석에 벽보게 뒤돌려 세우고, 뒤에서 손잡고 딸쳐주드라.

- .......

- 걔손에 싸고나서, 걔가 물수건으로 뒷처리 하고 닦아주는데,
성진 선배랑 다른 사람들 구석구석에서 열심히 잘 하던데...

- .............

- 두번째 갔을땐 나도 떡쳤어...

- .............



- 뭐야? 떡치는게 뭐야?

갑자기 들려오는 고운 목소리에 호진과 준하는 화들짝 놀라며 소리난 곳을 뒤돌아 봤다.
그곳엔 언제 있었는지, 영미가 긴 생머리를 하늘거리며 늘어뜨리고 서 있었다.
마침 해를 등지고 서 있어서, 하늘거리는 긴 생머리가 바람에 날리는 실루엣이 연출되고 있었다.
오늘도 평범한 원칼라 미색 블라우스에 평범한 청바지를 입은 영미였지만,
영미라서 드러나는 부드러운 어깨선과 봉긋한 가슴이며 잘록한 허리,
아찔하게 휘어져 떨어지는 엉덩이와 다리라인을 감출수는 없는듯 보였다.

그리고 그 뒤편에는 한층 과감하게 다리를 시원스레 드러낸 재윤이가 짧은 청 미니스커트를 입고,
굽이 좀 높은 워커를 신고, 한손에 대학생 같이 책을 끼워넣고, 아 이제 대학생이 맞구나...
반대편엔 작은 숄더백을 메고,
몸에 달라붙는 흰색 티셔츠에 청치마와 같은 블루톤의 윈드브레이커를 걸치고 있었다.
다만, 재윤이의 가슴은 아무래도 조금 아쉬워 보이긴 했지만,
여전히 웨이브 치는 머리와 센스있는 앞가림 머리, 조금 더 짙어진 화장으로 더욱 요염하게 보이는 얼굴은
아쉬운 가슴을 커버하고도 남는 모습이었다.


- 뭐야? 떡친다고? 깔깔깔... 이것들 이제보니 순 음흉한 놈들일세?

- 아....언제...내가 언제 떡친다고 그랬어?


호진이가 얼떨결에 자신이 떡친다는 말을 했다는걸 시인하는듯이 어설프게 발뺌하고 나섰지만,
곧이어 호진이의 아차하는 눈빛이 준하의 눈에 잡혔다.


- 깔깔깔....너 호진이 그렇게 안봤드만... 이제보니 아주아주 순...... 깔깔깔

- .........

- 근데 재윤아. 떡치는게 뭔데?


여전히 영미는 의아한 눈빛을 하고는 재윤을 바라보며 궁금증을 해소해 주길 바라는 눈빛이었다.


- 아이 지지배야...그런게 있어....그런건 나중에 니 남친한테나 물어봐...깔깔깔
야 이 음흉한 놈들아, 강의시간 다됐다. 올라가자~

- ......

- ......

- ?????


그 말 뜻을 정확히 아는듯한 재윤이가 의외로 그냥 호쾌하게 웃어 넘기며 강의실로 앞장섰고,
그렇게 넷은 어울려 강의실로 향했다.


* * *


준하는 솔직히 조금 후회하고 있었다.
1학년 과대를 맡은것 말이다.
처음에 과대로 붙임성도 좋고, 여러면에서 활동적인 호진이와 준하가 물망에 올랐고 투표가 들어갔다.
투표는 박빙이었다. 개표했을때 14표 14표 무효3표로 타이를 이뤘다.
재투표를 하려는 찰나 돌연 호진이가 물러섰다.


- 과대가 여러모로 외모도 좀 있어야 하는거 아닙니까?
음...준하가 저보다 키도 크고 잘 생기고, 몸도 좋고...하하...대외적인 이미지가 더 좋죠?
제가 물러나겠습니다~


얼떨결에 과대가 되어 버렸다.
그냥 그런줄 알았다. 과대라봤자 뭐 전달사항 알리고, 무슨 과 일 있을때 대표직함으로 회의나 몇번 들어가면 되는줄로 알았다.
하지만 큰 오산이었다. 과대는 생각보다 할일이 엄청 많았다.

전체학생회의가 있었는데 그때도 나가야 했고,
전달사항은 기본이고, 시험볼때 교수님과 조교의 보좌도 해야했고,
MT등의 일정도 도맡아 처리해야 했고,
학생회 잔무처리며 과사 운영도 해야했고...이거 이거 원...
알바까지 진행하며 같이 하기엔 좀 무리스러웠다.

그래도 준하는 이것도 대학생활의 소중한 경험이라 자위하여
힘들지만 하루하루 열심히 보내고 있었다...
호진이는 이걸 알고 있었나...호진이는 좀 얄미웠다...이놈...
하지만 사실 강의실에서는 재윤이와 호진이, 영미랑 넷이 뒷자리에서 키득거리며 장난치는게 다였긴 하지만...

지난번엔 전체 학생회의가 수요일에 있어서 다행히 참석했지만, 이번에는 목요일이었다.
그리고 지난번엔 아직 선출되지 않은 과도 있고 해서, 1학년 과대는 절반도 채 안왔었는데,
뭐 이번엔 대의원 총회라나...해서 필히 참석해야 한다는 통지가 왔다.

화요일, 당구장에서 알바하는 준하는 내심 계속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당구장 사장은 알바생이 오면 오는대로 TV앞에서 껄껄 거리며 웃고 있는게 다였지만, 그래도 계속 자리를 지키는건 주인다운 면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말도 꺼낼수 있지 않은가...


- 저 사장님...저기

- 껄껄...어 준하야... 오늘 왜그러냐? 똥매렵냐?

- 아....사장님...똥매렵냐뇨.... -_-;;;

- 그거 아니면 뭐? 이번주 먼 일 있어? 시간 빼주랴?


헉...사장님 귀신이다...하긴 학교 앞에서 몇년째 당구장을 하실터이니...


- 아네...사실 제가 어쩌다 과대를 맡게 되었는데요...이번 목요일에 무슨 중요한 회의라고 7시까지 꼭 참석하라고 해서요...

- 뭐야...중요한 일도 아니네... 뭐 여자 만나러 가는거면 빼주겠는데, 이건 별일 아니잖아?

- 네!....네..... 네???

- 허허...그자식 놀라긴...농담이다 농담 이놈아...알았으니 갔다와라~ 대신 다른과 이쁜 과대나 한명 꼬셔라~ 그래야 참석한 보람이 있지...껄껄껄...

- 네...네...사장님.... 하하 -_-;;;


이 당구장 사장님 참 좋다.
생긴건 산적같고, 체격은 땅딸만하지만 힘도 무지 세고,
(지난번에 난데없이 술먹고 오셔서 나랑 씨름한판 하자고...나름 운동도 잘하고 자신있어서 붙었다가 번쩍 들리고는 메다 꽂혔다...)
일주일에 3만6천원 하는 알바비는, 금요일 저녁에 꼭 맥주한캔과 새우깡 한봉지와 더불어, 만원짜리 한장을 더 붙여서 넣어주신다.
첨에는 일한만큼 받겠다고 극구 사양했는데 사장님은


- 이놈아 그게 일한 만큼이야. 결근 안하면 만원 붙여주는게 우리 당구장 규칙이다. 알았냐?


하시며 그냥 내 주머니에 봉투를 쑤셔넣으셨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꼭꼭 맥주와 만원을 더 붙여서 금요일날에 주신다.
더군다나 이렇게 어렵게 얘기를 꺼냈는데 흔쾌히 허락해 주신다.


* * *


목요일날 자취방에서 잠깐 쉰다고 하는게 깜박 잠이 들어서 헐레벌떡 대강의실 앞에 7시 5분에 도착한 준하는
헐레벌떡 전산공학 1학년 과대 자리표를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2,3학년 선배 학년과대와 전체 과대, 부과대 선배가 와 있었다.
단상 앞에서는 총학생회장이 대의원 대회 개최를 알리고 있었다.
늦은 준하는 조심스레 자리로 들어가서 선배들에게 간단한 눈인사를 꾹벅 날리며 자리에 앉았다.

휴...한숨 돌리며 이리저리 슬쩍슬쩍 훑어봤다.
자리가 비교적 중간 앞자리라 앞에 앉아있는 다른 과대들의 뒤통수들이 조금 보였다.
개회사를 하고, 국민의례를 하고, 기조연설을 하고...
20분쯤 지났는데 뭐가 이리 재미없는지...

기조 연설을 하면서, 이번학기 의제라고 나온것들이 있었는데
준하에게는 뭐 생소한 것들 뿐이었다.
등록금 인상 동결안...이것 빼고는...
왼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가 점점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가며 한창 다시금 졸음에 빠질 때쯤,
갑자기 준하의 눈이 벼락맞은 것처럼 번쩍 띄여졌다.

극장 좌석처럼 앞으로 갈수록 낮아지는 대강의실 오른쪽 계단을 따라 한 여학생이 내려오고 있다.
아주 살짝 웨이브진 찰랑거리는 긴 머리와 자연스럽게 옆으로 살짝 넘어간 앞머리,
긴머리는 반대쪽 오른 어깨 너머로 흘러내리고 있다.
커다랗고 검은 눈망울이 곧 쏟아질듯 촉촉하게 빛나는 눈과 하얗고 깨끗한 피부에 갸름한 턱선이 드러나고,
오똑한 콧매 밑에는 약간 앙다문듯 촉촉하고 새빨간 입술이 자리잡고 있다.
큰 키는 아니지만 그녀의 몸매는 균형이 아주 잘 잡혀 있다.
깨끗한 하얀 실크 블라우스는 동그스름한 어깨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며 주름을 만들고 있고,
적당하게 봉긋 솟아오른 가슴을 따라 역시 자연스럽게 흘러내리고 있었다.
흘러내리던 블라우스는 갑자기 모아져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따라 안으로 사라지고,
그 밑에는 짙은 남색의 타이트한 치마가 그녀의 잘록한 허리에서 시작해서
부드럽고 완만하지만 아찔한 곡선을 그리는 힙을 따라 무릎 위까지 자리하고 있고,
그 밑으로 역시 하얗고 깨끗하고 시원하게 뻗은 종아리가 예쁜고 자그마한 검은색 힐 위에 놓여져 있었다.
약간 또각또각 거리는 소리를 내며 내려오는 그녀의 모습에 준하는 잠시 넋을 잃고 쳐다보고 말았다.

대학생이라기 보다는, 어딘지 커리어 우먼 같은 이미지가 조금 풍겼지만,
이제 막 사회에 뛰어들어 단아하고 아름다우면서도 풋풋한 이미지가 풍기는 사회 초년생 같은 모습이었다.
그녀는 저만치 오른쪽 앞 끝자리쯤에 다가와서, 옆에 앉은 선배들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살짝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녀가 자리에 앉자, 준하에게는 그녀의 아주 살짝 웨이브진 머리결과, 왼쪽 어깨, 등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대의원총회가 진행되는 나머지 1시간 반동안 그모습을 바라보며 감상하는 것으로도 시간가는줄 몰랐다.
투표시간이 되어서 투표지를 받고서도 멍하니 있어서, 옆에 2학년 과대하 툭툭 건드려서야 투표지에 눈을 한번 돌리고...
잠시 멍하니 있자, 2학년 과대의 몇가지 설명을 귀에 듣는둥 마는둥 하고, 의제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고 투표를 했다.


- 이상 대의원대회를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각 과대께서는 학생회실 회의실에 간단한 다과를 준비하셨으니 시간되시면 참석해주세요~


대의워대회를 끝내는 총학생회장의 멘트가 떨어지자 웅성웅성 거리며 여기저기서 짐을 싸고 일어서는 소리가 들린다.
준하도 대충 짐을 싸며, 저기 앞의 그 여학생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여학생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나며 옆의 선배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며 강의실을 내려가고 있었다.


- 야, 준하야~ 총학생회 다과회는 됐고...술이나 한잔 하러 갈래?

- 아 네, 선배. 그러죠~ 네


다소 건성으로 대답하여 그녀를 ?던 준하의 눈길이 이윽고 강의실 밖으로 빠져나가는 그녀를 포착했다.
선배들과 강의실 밖으로 나가던 준하는 "잠시만요~" 하고 외치고 자리배치도를 찾기 시작했다.


- 내가 앉아있던 곳이 여기니까...음

- 준하야 뭐하냐? 웬 자리를 보고 그래?

- 아 아뇨...하하...가시죠


슬쩍 자리를 마저 찾고 훑어본 그 자리에는 다음 표시가 되어 있었다.

- 영어영문과 1학년 대표 윤혜영



-----------------------------

3편 올립니다. 요번화는 뭐 그닥...ㅎㅎ
생각해보니 5일 간격이면, 총 20여편으로 구성되어 있는 글이 다 올라오는데 100일이나 걸리네요...
3일 간격 정도로 줄여보겠습니다.

그리고 이 글은 로맨스 적인 요소가 부분부분 포함되어는 있겠지만,
그냥 학창물이 맞는거 같습니다.
그냥 에피소드들을 시간따라 죽 서술하는 것이라 그렇죠.
로맨스 물이 되려면, 인물들의 갈등, 전개, 클라이막스, 결말 등이 있어야 되겠는데,
제가 그렇게 글솜씨가 뛰어난것도 아니고,
로맨스 적인 부분을 확대해서 집중해서 쓸만한 여력도 없습니다~

다음 글이 언제 올라오나, 어떻게 전개가 되나,
궁금하고 궁금해서 기다려지는 글을 만들 자신도 없습니다 ^^;
그저 한편 올라왔을때, 읽으시는 분들께 조금의 재미를 드릴수 있다면 만족하겠습니다.

추천과 댓글은 항상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재밌게 읽으셨다면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댓글한줄 추천한번 부탁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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