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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23 436회 0건
25. 냉정함의 해후.

두 걸그룹의 활동을 내가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방송에 나온 것과 인터넷에 뜬 기사들을 봐서는 순조로운 것 같았다.
얼마전 ‘음악성 뛰어난 밴드 걸그룹의 시작’ 이란 슬로건을 건 하이윈디걸즈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넓은 팬층을 확보해 가고 ‘화려함의 신화’란 슬로건을 건 탑걸즈는 학생과 청년층을 중심으로 한 팬층을 확보해 가고 있다고 하는 기사가 있는 인터넷 뉴스를 봤는데 이들 중 가장 인기 있는 이는 캐리언, 장재랑, 지아연으로 나와 있었다.
그런데 이모와 이모부는 개방적인 사고방식의 부모라서 그런지 캐리가 짧아도 너무 짧고 몸매가 들어나도 너무 들어나는 옷을 입고 춤을 춰도 별 반응이 없었지만 말실수나 엉뚱한 농담을 해서 바보 티를 낼 때면 마구 화를 냈다.

“바보 허~~ 진아 캐리 입 조심 좀 해라고 해라. 병원에서 계속 물어 보는데 창피해 죽겠거든. 근데 저런 바보 티내는 짓 까지. 혈압이야.”
“물어 보는 것에 대본대로 답하면 되지. 꼭 애드립을 넣는 것 같죠. 수희씨.”

이런 식이다. 하지만 바보엔 약도 없다는 말이 맞는지 캐리는 늘 그런 식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진짜 예쁜 아이가 바보 같다는 것에 더 흥미를 느끼고 더욱 호응해 주어서 유독 그녀만 그룹에서 진짜 다양한 팬층을 확보해 가고 있단다.

그리고 다른 멤버들도 캐리언에 비하면 떨어지는 인기도지만 상당한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요즘 학교가면 늘 캐리언 싸인 받아 달라고 하는 아이들이 많지만 꼭 다른 멤버것도 부탁하곤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미안 다른 멤버는 잘 모르거든.”
그리고 캐리언 사인 의뢰가 많아지면 이렇게 말한다.
“미안 요즘 캐리 집에 잘 안 들어와 기획사는 출입 금지라 못가고. 직접 받아 집에 안 들어와도 학교는 잘 온다니까.”
사실 처음엔 이렇게 대답 안하고 다 들어줬다. 캐리 덕에 내가 뭔가 중요한 무언가가 되었단 느낌이 들어서 그들의 부탁을 잘 들어 주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것은 물 건너가고 없었다. 그리고 지애가 등교 할 때는 별로 할 게 없었다.
연예계 데뷔하고 나서 예전 덜렁거리고 불량스럽던 것이 어디가고 실실거리는 딴 사람이 되어선 인기 관리를 하는 통에 난 별로 할 것이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사인 받은 사람들에겐 비밀인데. 전에 한번 사인 받아 달라고 기분 나쁘게 명령조인 3학년 3명이 같이 왔었는데 기분 나빠서 말리는 하늘이를 뿌리치며 엉성한 위조 사인을 준적이 있었다. 화가 나서 그렇게 해준 건데 내심 알고 다시 올까봐서 불안했다.
하지만 무사히 넘어갔고 그 후로는 친한 친구를 제외하고는 전부 위조 사인을 해줘 버렸다. 근데 계속하다 보니 캐리 사인과 아주 흡사해지고 최근엔 비슷한 것을 넘어서 캐리언이 해줬는데 좀더 세련되었단 느낌이 드는 그런 것으로 변해 있었다.

“와~~ 멋지다. 업그레드판!”
캐리가 내가 쓴 자기 사인을 보고 한 말인데 그 후로 그녀가 내가 쓴 사인을 모조하는 판이 되었다.

그리고 그 사건 이 후. 재랑에게서 연락은 아직 오지 않았다. 방송 출연하는 것과 캐리에게서 들은 말로 판단해서는 별 일이 없는 것 같지만 누나와 어머니의 일 때문에 남 같지 않게 여겨지는 통에 신경이 몹시 쓰였다.
그래서 몇 번인가 전화를 걸어 보려다 말고 걸려 보려다 말고 했었는데 결국 아직 한번도 못 걸어보고 있었다.


오늘. 그러니까. 그녀들이 데뷔하고 나서 1달 반이 정도 지난 수요일. 일교차가 심한 가을의 비 오는 날. 방과 후. 하늘이랑 교실 청소를 하고 창가에서 손을 잡고 한가롭게 비 오는 운동장의 풍경을 감상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난 처음 하늘이 전화기가 아닐까 하고. 나른함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하늘아”
“내거 아닌데.”
“그래.”
대답하고 잘 들어보니 몇 일전에 캐리가 내 휴대폰에 넣어준 탑걸즈 싱글 앨범 2번째 곡이여서 난 수신자를 확인하지 않고 무심히 들었다.
“여보세요.”
근데 상대방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들리는 건 멀리서 들리는 것 같은 남자 목소리. 난 이 목소리가 신경이 쓰여서 수신자를 확인 했고 장재랑 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보세요. 재랑 누나. 뭔 일 있어요!?!?”
여전히 대답은 없고 멀리서 들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남자목소리만 들린다. 길게 생각할 것 없었다. 숙소에서 그녀를 강간하던 남자다.
“이런! 뭐야!”
내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왔고 하늘이가 의문에 찬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왜?”
“재랑 누나인데 뭔 일 있는 거 같아.”
서로 숨기는 것 없기로 약속한 일이 있어서 하늘에겐 말 해 놓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는 몹시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답해왔다.
“뭐! 그 남자 아냐. 어떻게 해!”
“미안 잠시만 조용히 해 줄래. 소리가 잘 안 들려.”
하늘은 고개를 끄덕이고 숨까지 죽였고 나 또한 그렇게 한 후. 최대한 듣기 위해서 스피커폰 모드로 바꾼 다음 귀에 가져가 되었다. 그러자 아직도 작지만 술 취한 것 같이 발음이 부정확한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너 요즘 잘 나간다며. 와~ TV에 너 나온 거 보니까 진짜 옛날 생각나더라.”
그의 말에 재랑이 억눌린 듯한 목소리로 말해왔다.
“그래서 뭐. 어쩌란 거야. 당신과 상관없잖아.”
한참 침묵이 흐른다. 그 침묵 속으로 빗길을 해치는 차지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너무 적나라하게 들리고 있었다. 아마도 차가 많이 지나가지 않는 야외에 있는 것 같았다.
그는 인적이 드문 그런 곳에 재랑을 새워두고 말하고 있는 거다. 재랑이 얼마나 위축이 되고 공포에 휩싸여 있는지 눈에 그려지는 듯 했다.
그런 상황인데 그 파렴치한 놈은 그녀의 나약한 저항을 비웃고 위협하기 위해서 목소리를 높였다.
“하하하하하하 너 잊었어. 사진 있는 거! 그거 인터넷에 띠워줄까. 앙!”
이 순간 내 심장이 요란스럽게 뛰어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눈 앞으로 납치된 누나, 침대에 묶여 당하는 누나, 강간범을 쓰러뜨리고 피 뭍은 흉기를 들고 있는 나 마지막으로 정신을 잃은 누나를 범하던 내가 떠올랐다. 경험 때문에 감정이입이 너무 잘 되기 때문인지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이 놈의 머리를 쇠파이프로 날려 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감정이 격해진 나의 얼굴은 붉어졌고 손과 입술이 떨리며 두 눈에선 눈물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하늘이는 그런 날. 어깨 감싸 안으며 진정시키려 했고 난 곧 그녀의 애 다루는 듯한 다정한 목소리를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입을 열었다.
“미안.”
하늘이는 내가 약하게 굴면 강해진다. 그녀는 혼란스러워 하는 나와 다르게 침착한 표정으로 말해 왔다.
“재랑 언니 스마트 폰이잖아. GPS 관련 어플 켜 놓고 기다리는 거 아닐까.”
“근데 어떻게 하지 난 잘 모르겠는데.”
“이리 줘 내가 해볼게.”
난 아직도 통화 연결 상태인 폰을 그녀에게 넘겨줬다. 하늘이는 내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한 동안 눌러 대더니 위성사진으로 바뀐 화면을 나에게 보여주며 입을 열었다.
“여기 있어.”
“여기가 어디야.”
다시 한참을 눌러 대던 그녀는 간단하게 그림으로 된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대충 기획사에서 한 300미터 떨어진 고가도로 아래야.”
“가자.”
난 가방도 챙기지 않고 달려 나갔다. 최대한 시간을 줄여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 난 비속을 뚫고 달려 나가서 택시를 잡았다. 그리고 뒤 늦게 하늘이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뒤를 돌아 보았다.
그녀는 내 가방과 우산까지 들고 ?아오고 있었고 곧 우린 택시에 올라타서 운전기사에게 지도를 보여주며 빨리 가달라고 부탁 했다.
“빨리 부탁해요. 최대한 빨리요.”
“왜? 비도 오는데 위험하게. 뭐 큰일이라도 있어.”
운전기사는 학생에게도 운전에 대한 주문을 듣는 것이 기분 나쁜지 약간 인상을 썼지만. 내 얼굴을 잠시 보더니 약하게 미소 지으며 호탕하게 말해 주었다.
“그래 알았다.”
“고맙습니다.”

우리가 택시를 타고 가는 중에도 전화 저 편에선 불합리한 대화가 오가고 있었다.
“이게 어디서 반항이야. 이 고운 얼굴에 상처 나고 싶냐! 앙!”
“그만 해. 이제 충분하잖아. 언제 까지 이럴 거야. 죽을 때 까지? 그만 좀 하라고. 재발 그 사진 좀 없애줘. 부탁이야.”
“그래 주면 뭐 줄래. 내 좃물 네 보지에 1000번 싸고 돈 3억 주면 그래 줄게.”
이 파렴치한 인간의 말에 나도 모르게 욕지거리가 나온다.
“이~~ 죽일 놈.”
택시 기사는 내 욕에 헛기침을 했지만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하늘이는 내가 아까와 같은 반응을 보일 것 같은지 손을 꽉 쥐어 주었다.
전화 속은 침묵 중이고 하늘이는 운전기사에게 얼마만큼 왔는지 물어 보았다.
“다 왔나요.”
“경찰에 신고 하는 게 어떨까. 그런 일 같은데.”
당황하는 하늘이.
“하~ 그게. 그런 일 아닙니다.”
“그래. 다 왔다.”
차가 갑자기 멈추었고 난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나왔다. 아직도 비는 오고 있었지만 고가도로 아래라서 비는 떨어지지 않았지만 흥분한 난 그런 사실 따위 인지되어지지 않았다. 오직 재랑의 인영을 찾는 행동만 했다.
달리고 둘러보고 커다란 기둥 몇 개를 지나쳤지만 재랑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혹시 잡혀서 다른 곳으로 간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 들면서 몹시 불쾌하고 마음이 답답했다.

하지만 곧 난 엉뚱한 방향으로 나갔다는 것을 알아 버렸다. 분노가 아닌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었을 때 걸려온 전화 때문이었다.
“진아 반대쪽으로 다시 와 재랑 언니 여기 있어.”
자신의 한심함에 한숨을 쉬면서 답했다.
“재랑 누나 괜찮아? 그 놈은?”
“언니는 괜찮아. 그리고 그 사람 도망갔어.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나타나니까. 도망치더라. 어서 와.”
“그래.”
난 전화를 끊고 달렸다. 숨이 차올랐지만 마음이 급한 난 쉴 수가 없었다.

재랑은 하늘이에게 기대 있었는데 그 놈이 무슨 짓을 했는지 머리는 헝클어지고 가죽재킷엔 흙이 묻어 있었으며 힘없이 축 쳐진 어께를 하고 눈물짓고 있었다. 이 모습 나에겐 낮선 모습이 아니었기에 울컥하고 욕지기가 내 입으로 튀어 나왔다.
“미친 세끼.”
재랑은 내 목소리를 듣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괜찮아. 아무 일 없었어.”
강한 여자. 아니 강한 척 하는 여자. 어떻게든 해주고 싶었다. 그런 파렴치한 남자에게 더 이상 희생당하는 여자는 보고 싶지 않았다.
“일단 집에 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고 우리는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해 있는 택시기사의 차에 올라탔다. 기사는 우리 행동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가 어떤 정보와 정보를 이어 보려고 애쓰다 좀처럼 되지 않자 뒤늦게 차에 올라타서 이런 상황이면 당연히 나와야 되는 말을 했다.
“경찰에 신고 안 해.”
난 이 택시 기사의 관심이 몹시 짜증났다. 하지만 그는 재랑을 도와준 은인인 되다. 그가 말한 건 직설적인 질문이 아닌 그냥 제의일 뿐이다. 내가 짜증 낼 이유는 없는 거다.
“죄송해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냐. 좋아하는 가수가 봉변을 당하는데 안 도와주면 사람도 아니지.”
그의 말에 난 눈을 크게 떴다. 만일 매스컴에 알려지고 그 남자가 위기에 몰리면 그 사진을 인터넷에 띠워버릴 가능성이 있었다. 때문에 절대 매스컴에 알려지는 것은 막아야 했다.
“부탁합니다. 못 본 걸로 해주세요. 장재랑씨의 연예인 생활이 달려 있어요. 그리고 그녀는 절대 피해잡니다.”
난 최대한 정중하게 그리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와 동작으로 그에게 말했고 그는 운전석에서 룸미러로 나를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물론 팬으로서 당연하지. 절대 그런 일 없을 거야.”
“감사합니다.”
그에게 약속을 얻었지만 사실 누구든 말로는 어떤 약속을 못 하겠는가 내심 걱정도 되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창을 때리는 빗속을 헤치며 달리는 택시 안에 있는 우리 모두의 분위는 아주 깊은 여울 속이었다. 눈물은 그쳤지만 근심 때문인지 아랫입술을 깨물고 있는 재랑. 그런 재랑을 감싸 않고 안쓰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하늘이 그리고 참기 힘든 분노를 우울로 꺼버리고 돌파구를 생각해 보지만 답이 나오지 않는 나. 모두들 우울로 도배되어 있었다.
비 오는 날이라 어둠은 더 빨리 찾아오기에 우리들의 마음은 한층 더 깊게 파여져 갔다. 눈물의 대화는 오가지 않았지만 답을 찾을 수 없기에 그 보다 더 깊게 파여져 있었다.

그런 깊은 곳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말이다. 찾아보지 않아서 그렇지 항상 주변엔 도와줄 사람이 있어.”
왼지 털북숭이와 비슷한 억양으로 말하는 택시기사의 목소리였다. 그는 룸미러를 통해 금니를 보여 웃으며 고개를 든 우리들에게 다시 말해왔다.
“방금 내가 우연히 도와준 것처럼 그런 사람이 있을 거다. 잘 생각해 봐.”
왼지 이 사람의 말이 힌트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물론 예감 따위 믿는 내가 아니지만 일단 검은 덩어리에 정체되어 있던 생각이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고 난 순식간에 하나를 떠 올렸고 나도 모르게 입으로 중얼 거렸다.
“아버지.”
하늘이는 내 중얼거림을 얼핏 들었는지 물어왔다.
“진아 아버지라니?”
난 이것이 확실한 답은 아니지만 지금으로선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하늘이를 향해 고개를 끄덕이고 미소도 지어 주었다.


그런 일이 있었지만 다음 날 아침 캐리랑 같이 자고나서 일어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재랑은 씻고 밥을 먹고 치장을 한 다음 오늘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멤버들을 태워 갈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난 아직 시간이 남아서 도로가에 그녀들과 같이 서 있었다.

“언니. 어제 진짜 무슨 일이야.”
어제 초취한 재랑을 목격한 캐리는 ‘오늘은 묻지 말고 참아줘.’ 하는 내 말에 어제만 질문하지 않고 다음 날 아침인 지금 질문을 해왔다. 하지만 재랑은 아직은 이 이야기를 하는 건 일렀다는 판단인지 아님 말하기엔 용기가 많이 필요한지 거부 해 왔다.
“미안 다음에 말해 줄게. 부탁해 참아줘.”
캐리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으로 한참을 재랑을 바라보았다. 아마도 ‘왜 기대지 않는 거야 내가 그렇게 신임이 없어. 짜증나.’ 하는 뜻인 것 같았다. 하지만 말은 부드럽고 간결했다.
“알았어. 하지만 섭섭해.”
하지만 대신 나에겐 과격했다. 캐리는 내 옆구리를 때리며 물어 왔다.
“무슨 일이야. 말 안 해.”
“캐리. 방금 ‘알았어.’ 했잖아 왜 나한테 다시 물어. 말도 안돼.”
“그런가.”
“그렇지.”
캐리는 그래도 마음에 안 들었는지 이번엔 내 팔을 살짝 꼬집었다. 엄청 아팠기 때문에 짜증난 난 소리를 질었다.
“그만해!”
“너 바람피우지 마라.”
“무슨 소리야!”
“아냐.”
“절대 아냐.”
캐리는 이번엔 우리 둘에게 무언가 있어서 그런다고 생각 했나 보다. 하지만 내가 부인을 하니 또 다른 것을 생각하는 것인지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기는 표정을 지었고 때 마침 그녀들을 태워 갈 검은 색 밴이 나타나는 바람에 재미없는 다음 추측을 듣지 못했다. 대신 오래감 만에 듣는 목소리를 들었다.
“어! 안녕 진아. 잘 있었어.”
소리가 들리는 운전석 쪽을 보니 회색 정장 차림의 사장이 미소를 약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난 반가운 마음에 번지는 미소를 보이며 고개를 약간 숙여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마도 어머님 이라고 부른 건 이번이 처음 일거다. 아니 그 전에 정확한 호칭을 해본 적이 없었다. 이건 내향적인 성격의 영향으로 얻어진 버릇인데 내가 아는 사람 중엔(아는 사람도 별로 없지만.) 이름을 한번도 불러보지 못한 이도 있을 정도다.
그래서 내가 타인에게 정확한 호칭을 하는 경우는 매우 호감을 느낀다는 의미다. 하지만 내 속을 알지 못하는 지애어머니 즉 기획사 사장님은 수정을 가해왔다.
“고모라고 해라. 어색하게 어머님이 뭐야!”
‘보통은 이모라고 하지 않나?’ 라고 생각하다 ‘뭐 어려운 거라고!’ 생각하곤 다시 입을 열었다.
“네 고모.”
내가 호칭을 고치고 나자 캐리가 이것에 흥미를 느끼고 장난스런 억양으로 말해왔다.
“사장님 저도 고모라고 해도~”
“사절한다. 넌 사장님이다.” 라고 딱 잘라 버리는 지애어머니.
캐리는 “네” 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밴에 다가가 문을 옆으로 열었다. 밴 안은 썬팅 처리 되어 있는데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아직 잠이 덜 깬 멤버들이 나 향해 멍한 눈으로 손만 들어 인사를 건네는 게 보였다. 지애 빼곤 다들 연상이라 난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고 그들 중 하나가 목소리를 약간 높였다.
“진아 너 노래 잘 한다며. 기타도 잘 치고.”
이 멤버들중 3명(캐리, 지애, 재랑)의 목소리는 확실히 기억하지만 나머지 2명(수영, 니나)은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서 누구의 목소인지 확인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2명 모두 연상이라 내 답변은 쉽게 나왔다.
“별거 아녜요.”
“캐리가 칭찬해서 호기심이 들어서 그럼 다음에 봐.”
“네. 수고하세요.”
밴의 문이 닫기고 고모라고 부르라고 한 사장이 나를 향해 손을 흔들어 보인 후. 차는 떠나갔다.

밴을 환송한 후. 난 볼일이 있어 학교로 향하지 않았다. 교복을 입고 아침부터 갈 곳이 없어 해매는 불량스런 행동은 놀 곳을 알고 즐겨본 녀석들이나 하는 행동인지 나로선 도무지 아침부터 시간을 때울 수 있는 공간을 찾기 버거웠고 시간이 가기만을 빌며 정처 없이 버스에 올라탈 뿐이었다.
약속 시간을 잡지는 않았다.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10년을 아버지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내 전화를 무시하고 만나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난 지금 그의 회사로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현 IT업계의 큰 손이며 30층 빌딩이란 왕성에 군림하는 왕의 방으로 들어가기가 그렇게 쉬울 것 같지 않지만 아무도 없어 휑한 집 대신 회사에서 먹고 자고 한다니 도리가 없었다. 그리고 만난다고 해도 설득할 확실한 자신도 아이템도 없었다. 그저 그의 양심과 동정심에 작은 울렁임을 만드는 것만 할 수 있을 뿐이었다.

어제 내 생각을 말하니 하늘이가 자기도 가겠다고 했었다. 물론 그녀가 옆에 있다면 든든하고 좋겠지만 이번일은 재랑을 도와주는 일 뿐 아니라 내 인생에 꼭 필요한 것이었다. 꼭 혼자 해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서 거절 했는데 역시나 회사 앞에 도착해 보니 하늘이가 교복을 입은 채로 회사 경비실 바로 옆에서 갈색 가죽 책가방을 양손으로 잡아 스커트를 가리고 서 있었다.
“정말! 학교 가라니까.”
짜증나는 척을 했을 뿐. 짜증나지 않았고 하늘이도 그걸 알고 있는지 동요하지 않고 빙그레 웃으며 말도 안돼는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오늘은 그저 땡땡이 치고 싶었을 뿐이야.”
“네~”
“근데 시간이 너무 이르잖아.”
하늘이가 휴대폰을 주머니에서 꺼내 들고 시간을 보여 주며 말했다.
“그러게. 적어도 10시는 되어야. 실례가 안 될 것 같은데 2시간이나 남았네.”
“음~ 뭐 할까. 나 오늘 태어나서 처음으로 땡땡이란 거 했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야.”
나에게 좀더 다가와서 그런지 하늘이의 행동이 파란 하늘같았다. 구름이 있기는 하지만 그저 심심해서 뛰어 놓은 구름 일뿐 궂은일 없는 그런 청정한 파란색의 하늘이었다.
“학교 가라고 했으니까 책임 없어. 혼자 알아서 하라고.”
곤란한 표정을 짓는 하늘이. 역시나 가장 이기기 쉬운 여자다. 하지만 저런 표정을 지으면 내가 진다. 그러니까 이기긴 해도 바로 나도 저 버리는 꼴이다.
“농담. 농담. 일단 주변 탐방이라도 할까. pc방도 만화방도 이 시간에 교복입고 가면 싫어 하니까. 어디에 갈까나.”

우린 갈 곳이 없어서 회사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편의점에서 PAT에 든 음료수를 하나씩 사서 회사 직원 휴식 터로 보이는 곳에 앉았다. 10월 끝자락에 접어 든 덕분에 날씨는 많이 쌀쌀해지고 있었기에 그녀의 짧아진 스커트가 신경 쓰였다.
“안 추워.”
“별로.”
“예쁘긴 하지만 난 싫다. 남들이 보잖아.”
이 말에 얼굴을 붉히는 하늘이. 그녀의 치마가 짧아진 것은 나와 정식으로 사귀기 시작하고 나서 1달 후였다. 하지만 그 때는 하복이었고 이번엔 동복이 희생양이 된 건데. 남들의 나에게 잘 보이고 싶어 그런다는 건 알겠지만 남의 눈요깃감이 된다는 것이 싫었다.
“하늘이는 그렇게 안 입어도 예뻐. 충분하고 넘칠 정도로.”
여전히 말없이 얼굴을 붉히는 하늘이. 하지만 이번엔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 미소가 너무 사랑스러워 난 마주 앉은 그녀의 머리카락을 쓸어주고 주위를 한번 둘러 본 후. ‘쪽’ 하고 볼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더 붉어지는 그녀의 얼굴. 그리고 열리는 입.
“이젠 더워.”
“그래. 헤헤헤헤”
혼자서 기다렸다면 고민에 휩싸여 있을 거다.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는 지금 상황에서 더 깊은 생각은 마음만 복잡하게 만들 뿐인데 말이다.

하늘이와 한참을 이야기 하고 있으니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그들은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와 음료수를 뽑아서 그들이 항상 앉은 자리인 듯 한 곳에 자리를 잡고 휴식을 즐기기 시작했다. 역시나 성인. 담배를 태우는 이도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영기를 피하는 겸해서 건물 로비로 들어갔다.
시간은 09:40 예정 결행 시간보다 이르지만 방해가 있을 수 있으니 이르지도 않는 시간 일 것이다. 잠입 방법은 J&K 기획과 아버지 회사 간의 광고 계약 건이다. 사장에겐 미안한 일이지만 사실 오후 3시에 있다는 하이윈디걸즈의 키보드를 담당하는 이지를 동반한 태혁형과 아버지의 미팅을 우리가 이용하는 거다.
일단 우린 로비의 경비에게 다가갔다. 나이 지긋한 경비가 우리를 보더니 하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아이를 대하는 미소 띤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학생들이 이 시간에 여긴 왼 일이냐.”
“J&K 기획사에서 왔어요. 서태혁 형은 아주 조금 늦을 거라고 먼저 가라고 해서요.”
이 할아버지는 우리를 의심하는 눈초리가 아니었다. 그는 예의 그 미소를 지우지 않고 입을 열었다.
“TV에 나오는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너희들 정말 예쁘게 생겼구나. 몇 살이니.”
하늘이는 조금 얼어 있었지만 난 이 편안한 할아버지 때문에 긴장감을 느끼지 못했다.
“고1 입니다.”
“음 잠깐만 있어라. 불편하면 저기 뒤에 의자에 앉아 있던지 해라.”
그는 빙글빙글 할 것 같은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끼고 컴퓨터로 예정 방문자 명단을 확인했다. 그리고 카운터 앞에 그냥 서 있는 우리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여기는 오후 3시 예정인데 왜 이렇게 빨리 온 거냐. 거기다 여기는 성인 남자 한명 서태혁씨와 하이윈디걸즈 멤버라고 적혀 있는데. 걸즈면 여자만 있는 거 아냐. 아니면 예쁘게 생긴 네가 여자인 거냐.”
난 올 것이 왔다는 생각을 하고 준비한 대사를 읊조렸다.
“그게 스케줄이 꼬여서요. 이 옷도 촬영하다가 와서 이 남자 복장인데요.”
정말 말도 안 된다. 누가 촬영할 때 입은 옷을 입고 올까. 하지만 이 사람 좋은 할아버지는 별 의심 없는 표정으로 전화를 들어서 아주 짧게 통화를 한 후에 우리에게 안내해 줄 사람이 올 태니까 기다리라고 했다.
그 순간 난 아버지 비서인 오강수 비서가 오면 큰일 난다는 것을 떠올렸다. 그는 우리집에 자주 왔었고 몇 번인가 병원 동행도 해주었기 때문에 수술한 후에 못 봤다고는 해도 알 가능성이 있었다. 특히 목소리는 달라지지 않았으니 들킬 확률이 높았다.
“하늘아. 혹시 내가 말 안하면 내가 말해. 아는 사람이 올 수도 있거든. 성형 때문에 못 알아볼 수는 있어도 목소리를 듣고 힌트 얻으면 어떻게 해.”
그녀는 내 말에 긴장하는 표정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강수 비서를 생각도 하지 않은 내 잘못이지만 내가 해결 할 수 없는 상황이니 어쩔 수 없었다.

잠시 후. 머피의 법칙인지 30대 후반인 오강수 비서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 복장이 교복이라는 사실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는 눈치였지만 경비에게 이야기를 듣더니 의심을 풀어 버리고 말을 걸어왔다.(외모의 영향이 컸다.)
“사장님이 기다리고 계십니다. 절 따라오세요.”
우리가 성인이 아니라서 그런지 귀빈을 대하는 자세는 아니지만 격식을 갖춘 억양과 말투로 그는 말을 걸어왔고 하늘이는 어색하게 답했다.
“어어 예. 알겠습니다.”
예전에도 알고 있었지만 이 사람 정말이지 절도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가 지나가는 문을 미리 열어주고 잡아주고 엘리베이터를 잡아 주고 사람이 많은 곳에선 주의 점을 일일이 이야기 해주었다.
“여기엔 사각이 심해서 충돌이 많으니 조심하세요.”
“네 감사합니다.”
상대는 연예인이라고 소개한 사람. 관심을 가질 만 한데 그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중역(중역이라고 해도 소프트 업계라서 그런지 케쥬얼 한 복장의 중년남.)으로 보이는 남자가 예의 그 사각에서 나랑 부딪치는 바람에 우리의 얼굴을 확인한 그가 입을 열었다.
“오! 미안해. 근데 왼 교복 입은 미인들인가.”
오강수는 나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이 남자에게 인사를 건네며 해답을 늘어놨다.
“D프로젝트 광고 계약 건으로 온 손님 입니다.”
“오! 그래서 이렇게 예쁜 아이들 이었군. 첫눈에 어디서 본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TV에서 봤나봐.”
혹시 그가 나를 알아본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잠깐 일뿐 아무래도 예의상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네. 그럼 전 이만 안내를 해드려야 해서.”
“오 그래. 오비서 수고하게.”
그는 비서에게 그렇게 말하고 우리에겐 손을 흔들며 인사를 건넸고 우리는 말없이 고개 꾸벅 거렸다.

중역과 헤어지고 나서 1분 정도 걸려서 도착한 곳은 입구부터 유리로 되어 있는 기획실이었다. 오비서의 설명을 듣자면 기획실은 이 회사의 핵심으로 아이디어를 내어놓는 아이디어 박스라고 했다.
근데 도무지 회사라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파티션도 책상도 없는 넓은 공간에 온갖 미디어의 영상물을 보는 사람이 즐비하며 전망 좋은 테라스 창가에는 한가롭게 차를 마시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 나마 몇 명은 노트북으로 무언가를 작성하고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니 게임에 열중하는 중이었다.
호기심을 극도로 키워 놓는 상황이라 나도 모르게 오비서에게 질문 해 버렸다.
“근데 여기는?”
“네. 보기엔 놀고 있는 것 같은데. 다들 생각중이죠. IT업계는 창의성이 생명이라서 전 직원이 돌아가며 1달에 한번은 이곳에서 근무합니다. 의외로 이곳에서 많은 아이디어가 나왔어요. 제법 큰 액수의 포상도 있어서 진짜 놀고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아무리 일 이라고 해도 사람이 자기 성향 까지 무시하며 일을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는 이런 방법의 인력관리를 하면서도 집안에서는 냉담했다. 단지 나를 싫어하기 때문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항상 나를 향하는 눈엔 무생물을 대하듯이 감정을 싣지 않았었다.

역시나 이런 생각을 할 때는 가슴이 답답했다. 하늘이는 내 표정이 나빠지자 내 손을 감아쥐었고 우린 그 상태로 사장실 앞에 기획실을 지나 사장실 앞에 섰다. 근데 사장실 옆으로 또 다른 길이 있었다. 아무래도 우리가 거친 기획사는 이 회사를 찾아오는 손님에게 보여주는 일종의 홍보성 길 인 것 같았다.
오비서는 첫 번째 문을 지문인식 전자키에 손을 가져가 열고 우리를 드려 보낸 다음 마지막 관문에서 자기 자리로 보이는 책상으로 다가가서 수화기를 들어서 사장에게 손님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사장님 J&K 기획에서 오신 두 분이 막 도착 하셨습니다. 네. 네. 알겠습니다.”
오비서는 전화를 내려놓고 역시 지문인식 전자키에 손을 대어 물을 열고 우리를 들어가게 했다.

아버지의 방은 10년을 살았던 집의 서제와 비슷했다. 크기도 비슷하고 배치도 창이 없는 대신에 커다란 회사 마크가 있을 뿐 동일했고 책꽂이 대신 트로피와 이 회사에서 만들어진 게임에 나오는 케릭터 피규어와 로고가 차지하고 있을 뿐 별로 다르지 않았으며 책상과 소파 위치도 동일했다.
하지만 비슷한 책상과 의자지만 그 위용은 전혀 틀렸다. 그는 한 회사의 사장으로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고 그만큼의 자존심과 책임감이 있었기에 난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비서가 문을 닫고 나가서 한참동안 난 말문을 열지 목하고 있었다.

“거짓말 까지 하고 내게 온 사유가 뭐냐.”
역시나 말 이어가기 힘든 천근만근 같은 무거운 냉정함이 묻어나는 억양과 말투. 그는 항상 그러는 건지 모르지만 손님이 온다고 했는데도 일어나지 않은 상태였다. 어쩌면 로비에서부터 그는 내가 왔다는 걸 알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외로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그게 사실 이라면 일단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 있다는 뜻이니까.
“아버지 부탁이 있어 왔어요.”
“아직 아버지라고 부르는 구나.”
순간 실수 했다고 생각 했지만. 그런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에서 올라왔기에 그의 말을 무시해 버렸다.
“일단 내 말을 들어주세요.”
“먼저 왜 네가 그 연예 기획사 정보를 아는 거지.”
사람을 죽여 버릴 것 같은 눈빛에 난 숨을 죽였고 하늘이는 내 뒤에 반쯤 몸을 가리고 양손으로 내 오른 손을 잡아왔다. 정말이지 심장이 요동쳐서 미칠 것 같은 분위기 먼저 이유가 있는지 모르지만 그는 내가 J&K와 연계 되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 것 같았다. 때문에 난 거짓을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캐리가 그 기획사 소속이잖아요. 그래서 아는 거예요.”
“그러냐.”
“네.”
내 대답이 끝나자 아버지는 턱을 괴고 약간 부드러운 표정을 하더니 입을 열었다.
“아가씨.”
“네네네.”
하늘이는 자신을 부르는 아버지에게 심하게 말을 더듬었다. 금방 울어버릴 것 같은 표정을 하고 내 손을 더 세게 감아쥐어 왔다.
“아가씨는 저 녀석의 출생을 알고 있는 건가.”
“네~”
“어디까지.”
“전부요.”
“그래도 저 녀석이 좋은 거야.”
“그럼요. 진이는 누구에든 사랑 받을 자격이 충분한 사랑스러운 아이거든요.”
평소 같으면 타인에게 저런 소리를 못할 하늘이다. 사랑스럽다니. 아무래도 아버지의 질문이 나를 상처 입히는 것 때문에 그녀가 화를 내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어느새 내 뒤가 아닌 내 옆에서 아직도 손을 잡고 있는 하늘이를 한참동안 보고 있다가 작게 콧방귀를 뀌고 입을 열었다.
“그래 알았다. 진이도 아가씨도 거기 소파에 안거라.”
“네”
우리는 여전히 책상에 앉은 아버지와 정면에 앉았고 우리 사이엔 한참동안 침묵이 오갔다. 잠시 후 그 침묵을 깨고 오비서가 나타났다. 그는 우리 앞에 진한 향이 나는 자스민 차를 놓고 아버지 책상에는 커피를 올려놓고 쟁반을 들고 나갔고 그 때 서야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일단 말해 두지만 네 누나에 관한 거라면 난 말하지 않겠다.”
왜 하필이면 이곳에서 누나 이야기를 꺼내고 그러는 건지 이 남자가 몹시 미워졌다. 하지만 그는 분명 누나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거란 건 사실이고 오늘 목적은 다른 곳에 있었기에 난 고개를 젓고 입을 열었다.
“아뇨. 다른 거예요.”
“그래. 들어는 주마.”
적어도 들어는 준다는 뜻이다. 기분이 상했지만 예상 했던 반응이고 해서 난 큰 동요 없이 입을 열어 장재랑과 그 남자 이현수의 이야기를 천천히 최대한 빠지는 부분 없이 정확하게 이야기 했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 난 아버지의 표정을 자세하게 살폈는데 그 냉정한 표정이 순간. 순간 분노의 기색으로 변했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하고 있었고 잘 보이지 않았지만 무언가 부러지는 소리도 들렸다. 일단 성공 했다는 쪽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나자 그의 분위기는 처음 이상으로 냉정했다. 난 그의 반응에 실패가 아닌 가 의심을 하고 한숨을 쉬웠지만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해 주길 바라는 거냐.”
내 이야기가 끝나고 10분을 넘게 침묵 하고 있던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난 마음속으로 ‘성공’ 하고 외치면서 어젯밤 생각했던 걸 꺼내 놓았다.
“이현수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자료를 전부 해킹해서 파기시켰으면 좋겠어요.”
“USB메모리 스틱이나 다른 저장매체로 가지고 있으면 어떻게 할 거지.”
“제가 그 사람 집에 잠입해서 전부 파기해 버릴 건데요.”
“바보 같은 그게 그렇게 쉬울 것 같아.”
“그런 건 아니지만.”
이 부분 내가 너무 쉽게 생각 했나보다. ‘역시나 난 바보다.’ 라는 생각을 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어떻게 하죠.”
나의 바보 같은 대답에 아버지는 냉정함을 잃어버리고 어이없어 하다가 순간 화를 내며 소리쳤다.
“알았다! 내가 사람을 시켜 하마.”
화를 내는 게 더 마음을 편하게 한다니 웃긴 현상이었다. 난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나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그를 향해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고 아버지는 내 모습 속에서 어머니를 발견 했는지 아주 잠깐 멍해져 있다.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만 가거라.”
“네. 하늘아 가자.”
우리는 일어나 다시 한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는 다시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와선 답하지 않았고 우린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돌아서서 문을 열었다. 그 때 등뒤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밥은 잘 먹고 다는 거냐. 살이 많이 빠졌구나.”
아버지가 내게 저런 말을 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 일 거다. 난 어리둥절해져서 돌아보았고 그는 여전히 냉정한 표정으로 우리를 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만 가거라.”
“네. 아버지 건강하세요.”
나도 그에게 이런 말을 하기는 처음 일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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