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36세의 직장인이다. 나는 스스로를 매우 무능력한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에 비해서 잘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고 해야 할까.

주위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대기업을 다니며 남들보다 조금은

앞선 성과를 거두며 회사 내에서도 인정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교장선생님까지 역임하신

아버지와 역시 교편을 잡으셨던 어머니 덕분에 나는 남부럽지 않은 환경에서 자랐다.

그러나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없었다. 단지 공부를 하라고 하기에 공부를 했고 그 결과 명문대를

들어갔다. 남들처럼 옷을 잘 입고 미팅을 한번 해본 적도 없었고 부르는 친구도 없었다.

모나지 않은 성격탓에 친구들은 있었지만 속마음을 터놓는 친구도 없었다.

나부터 속마음을 털어놓지 않았기 때문이지만 속마음이랄 것도 없었다.

그렇게 할 것이 없어 대학에서도 공부를 했던 나는 군대도 무난히 제대를 하고난 후에

지금의 위치에 와있다.

인생에서 가장 놀라웠던 순간이라고 한다면 결혼이라고 생각한다.

아내는 결혼 정보회사에서 만난 첫번째 여자였다.

1등급이라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판사는 아니지만 그래도 누구나 알아주는 대기업을 다니고 있는

나에게 맞는, 적절한 상대였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유치원 교사였다. 유치원 교사를 만나는 것을 적극 권하시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이 먹은 아들의 결혼을 반대하는 부모님은 아니었기에 나는 곧바로 결혼에 골인했다.

하지만 나와 아내는 첫만남 이후에 세번째 만남에서 결혼을 결정했고.

만난지 2개월하고도 15일만에 결혼이라는 진기록을 작성했다.

근엄한 모습만 보여주던 아버지는 결혼을 3일 앞둔 나에게 다가와 물으셨다.

"너...그건 해봤냐?"

교장다운 교장이었던 아버지에게서 나온 가장 천박한 멘트였다.

"네?"

"너 한번도 안 해봤을 거 같아서 말인데...너 할 줄이나 아냐?"

물론 나도 포르노를 보고 자위도 했다.

군대를 가기 전, 혼자서 찾아갔던 창녀촌에서 너무나 능숙한 그녀들과의 경험이 떠올랐다.

나는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아내와의 결혼...이 다가왔다. 몇번 안되는 아내와 나와의 만남 속에서 키스조차도 없었다는 것은

조금도 아쉽지 않았다. 난 성욕은 있지만 극도로 억제된 남자라고 생각했다.

아내는 정말 누가봐도 30대 초반의 여성이 입을 수 있는 가장 섹시하지 않은 옷만 골라 입었고

그것이 내 성욕을 억제시킨 것이라는 생각도 했다.

무엇보다 아내와의 만남은 여자와의 첫 연애였기 때문에.

입술에 내 입술을 갖다 댄다면...

아내는 나에게 따귀를 때리고 저주를 퍼부을 것만 같은...

그런 말도 안 되는 상상속에서 위축이 되기도 했었다.

어찌됐든간에 기억에 남겨두기도 아까운 평범한 결혼식이 지나가고 신혼 첫날 밤,

9시 뉴스를 나란히 앉아서 정독한 뒤에

스포츠뉴스가 시작되는 9시 44분에 넌지시 말을 건넸다.

"섹스나 할까?"

결혼을 했다는 안도감이었는지 너무 편하게 말이 튀어나왔지만 아내는 5초간 뜸을 들이고 대답했다.

그 5초 사이에 나는 내가 왜 그렇게 경솔하게 말을 던졌는지를 파도와 같이 후회했다.

"그렇게 하죠."

아내의 대답을 듣고선 정말 기뻤다.

그리고 창녀촌에서의 섹스를 최대한 기억해내려 애썼다.

자위가 아닌 섹스를 한다. 합법적으로. 흥분이 내 몸을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