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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51 1,373회 0건
[2012년 12월 7일 금요일 21:30 - 수호의 시점]


송년회를 핑계로 오랜만에 다시 뭉친 자리에서 나는 녀석의 ‘그녀’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을 수 있었다. 연말이라 유난히 들뜬 분위기 속에서 녀석은 평소와 같이 자신의 경험담이라고 ‘주장’하는 음담패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남자끼리 술자리에서의 야한 얘기야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것이기는 하다만, 그날 그 녀석의 이야기는 유독 내 귀를 사로잡았다. 그 이유가 그날 녀석의 이야기가 그만큼 재미가 있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한참 신나게 이야기를 늘어놓다가도 문득 한 번씩 생각난 듯 내 여자친구-은채의 이름을 언급하였기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다.


「이 년이 처음에는 비싼 척 하느라 그랬는지 맨날 청바지에 긴팔 티로 몸을 꽁꽁 싸매고 오더라고. 그래서 내가 개수작부리지 말고 다음부터는 무조건 미니스커트에 맨다리로 나오라고 그랬지. 근데 다음에 만났는데 시킨 대로 미니스커트는 입었는데 스타킹을 신고 왔더라고? 그래서 씨x 장난하냐고 그대로 근처 상가로 끌고 들어가서 스타킹 다 찢어버리고 확 팬티까지 벗겨버렸어.」

「그..그래서?」

나뿐만 아니라 평소 이런 얘기에 관심 없어 보이던 주영이조차도 오늘만큼은 현택이가 하는 얘기에 상당히 몰입하고 있었다. 아니 재형이는 오히려 평소보다 조용했나? 어쨌든 그만큼 오늘 녀석의 이야기는 평소보다 실감나고 또 자극적이었다.

「그래서는 무슨. 결국 그날 하루 종일 노팬티차림으로 데리고 다녔지. 사람도 많고 바람도 많이 부는 청계천, 동대문 일대만 골라서 말이야. 크크. 필사적으로 치맛자락 붙들고 다니면서 잘못했다고 제발 속옷 좀 돌려달라고 애원하는데 진짜 볼만했지. 아마 그 날 이년 똥꼬 구경한 서울사람이 족히 백 명은 될 거다. 그 일 있은 뒤로는 12월인 지금까지도 나 만날 땐 맨다리로 나온다. 크크.」


「처음에는 곧 죽어도 자기 방은 안 된다는 거야. 근데 앞으로도 질리게 따먹을 건데 매번 모텔을 어떻게 가냐? 매번 모텔 갈 때마다 그 돈 네가 낼 거 아니면 그냥 개소리하지 말고 너 자취하는 데로 가자고 했지. 독한 년이 차라리 모텔비를 자기가 내겠다며 끝까지 말 안 듣는데, 그래봐야 지도 학생인데 별 수 있겠냐? 열흘 내내 하루도 안 빼놓고 불러서 모텔 갔더니 나중에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오늘은 돈이 없어요..”라더라. 크크.」

「이야~ 근데 확실히 여자 혼자 사는 방이 좋기는 좋아. 들어가자마자 뭔가 좋은 향기 같은 게 확 나는데, 그거에 급 꼴려가지고 현관에서 신발 벗고 있는 년을 그대로 엎드리게 해서는 치마만 들추고 바로 뒤에서 박아버렸지. 크크. 아, 그러고 보니 은채씨도 자취한다고 하지 않았냐?」


「아다는 안타깝게도 벌써 따인 뒤였는데, 빠구리 경험은 남자친구랑 해본 게 전부고 그것도 다 합쳐봐야 스무 번도 안 된다고 하더라고. 특히 존나 웃긴 게 여태껏 남자친구랑 정상위 밖에 안 해봤단다.」

「야. 그건 남자새끼가 병신이네.」

「ㅋㅋㅋㅋㅋㅋㅋㅋ」

친구들을 따라 웃기는 했지만 나는 사실 속으로 뜨끔했다. 나 역시 그녀와는 정상위로 밖에 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차례 야동에서 본 체위를 시도해보려 한 적도 있지만, 큰 가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는 그녀는 한사코 이를 거절한 채 정상위만을 고집했었다. ..그것도 양손을 교차하여 가슴을 가린 채로 말이다.

「네가 여러 가지 잘 좀 가르쳐주지 그랬냐?」

「당연하지, 임마. 얘도 불쌍한 게 남친이라는 새끼랑 하면서 한 번도 느껴본 적이 없다는 거야. 심지어 자기 성감대도 아직 모르고 있더라고. 하루 날 잡아서 침대에 大자로 묶어놓고 그년 성감대를 샅샅이 조사해줬지. 크크. 수호 너는 남자로서 은채씨 충분히 만족시켜주고 있는 거지? 그런 병신이 되면 못 써.」

「다..당연하지 새끼야.」

물론 나 역시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겨우 허락을 얻어 가슴을 만져도 그녀는 별다른 표정변화를 보이지 않았고, 그렇게 한 5분여가 지나고 나면 나는 스스로 머쓱해져 먼저 손을 떼기 일쑤였다. 다행인 것은 서로 관계를 갖는 데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내가 키스를 하며 안아주는 것만으로 어느정도 나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곤 했다. 때문에 굳이 성감대를 찾아야겠다는 발상 자체는 해본 적이 없었다.
다만 여자는 최소 20분은 자극을 해줘야 기분이 좋아진다기에 최대한 사정을 참고 지속시간을 늘리기 위해 노력을 해왔고, 실제로도 지금은 처음에 비해서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 그래봐야 10분을 넘기기 힘들긴 하지만..

「아무튼 이년은 약점이 유두랑 귀더라고. 존나 신기한 게 젖꼭지도 왼쪽 오른쪽이 감도가 틀려. 왼쪽 유두는 아무리 빨아도 반응이 시원찮더니 오른쪽 꺼 빨아주니까 씨x 순식간에 발기해서 단단해지더라. 그래서 좋으냐고 물었더니 아무 말 안 하고 고개를 홱 돌리데. 오냐, 씨x. 내가 오늘 너 질질 싸게 만들어주마 싶어서 오른쪽 유두만 존나 빨았지.」

「ㅋㅋ 집요한 새끼.」

「한 15분 동안 빨았나? 크크. 몸을 배배 꼬고 있기에 봤더니 아랫도리가 벌써 조금 젖어있더라고. 이때다 싶어서 가운데 손가락으로 클리토리스를 살살 자극하니까 보짓물이 질질 흘러서 미끈미끈해. “썅년아 그렇게 좋아?”하면서 조금씩 속도를 올리니까 이년이 막 호흡이 가빠지면서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더라고. 나중에는 아예 클리토리스가 닳아 없어질 지경으로 존~나게 비볐더니 엉덩이가 들썩들썩 하고 이내 허리를 활처럼 휘면서 가버리는데.. 얼마나 성대하게 가버리는지 그 가느다란 허리가 부러지는 건 아닌지 걱정했다니까. 크크. 다 끝났다는 얼굴로 숨 고르고 있더니 내가 또 혀로 유두를 살살 핥으니까 화들짝 놀라서 이제 그만해달라고 애원하는데..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이 참 볼만했지.」

「그래서 그만했어?」

「내가 미쳤냐? 그날 아주 밤새도록 홍콩 보내줬지. 어차피 묶어놔서 다리도 못 오므리고 말이지. 크크. 한번 가버려서 벌렁벌렁 하고 있는 걸 그대로 보빨해주면서 젖꼭지를 존나 갈기니까 막 2분 간격으로 가버리는데.. 나중에는 젖꼭지를 꼬집고 몇 번 비틀기만 해도 가버리더라니까. 그렇게 한 20번 가까이 보내버렸더니 완전히 탈진을 해가지고는..」

「ㅋㅋ그러다 애 잡겠다.」

「그래. 20번은 심했지, 새끼야.」

이미 그 상황에 완전히 몰입한 주영과 재형이 녀석에게 핀잔을 줬다. 하지만 나는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 가학적인 상황이 도저히 마냥 재밌고 웃기지만은 않았다. 어떤 여자인지 몰라도 참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크. 그래서 나도 이제 그만해야겠다 싶어서 팔다리 묶었던 걸 풀어줬어. 너무 가게 했는지 아직도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허벅지를 보니까 그제야 나도 내가 심하긴 심했구나 싶더라고. 근데 묶은 걸 풀어줬는데도 이제 가리고 자시고 할 힘도 없는지 여전히 大자로 뻗어있네? 홀딱 벗은 계집애가 그렇게 퍼져서 파르르 경련하고 있는걸 보니까 이게 또 묘하게 흥분되더라. 생각해보면 난 봉사만 해줬지 아직 안 하기도 했고 말이야.」

「그게 봉사냐~ 고문이지.ㅋㅋ」

「슬그머니 좆대가리를 구멍에 갖다 대니까 그런 와중에도 움찔하더라고? 근데 이건 뭐 숨만 쉬지 눈에 초점도 거의 없는 상태야. 이때다 싶어서 콘돔도 안 끼고 그냥 생으로 쑤욱 넣는데.. 씨x. 보지를 쩌억 가르면서 들어가는 느낌부터 질이 귀두를 감싸는 느낌까지.. 앞으로는 콘돔 끼고 못 하겠다 싶더라.
원래 이 년이 콘돔 안 끼면 절대 안 한다고 발광하는 년인데 그 날은 이미 탈진해서 그런 것도 몰라. 아무튼 뻗어있는 주제에 보지는 또 왜 그렇게 쪼여주는지 금세 쌀 것 같더라고. 덜컥 임신하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긴 했는데, 이미 중간에 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야. 크크. 한 2초 고민하고 시원하게 안에다가 싸질렀지.」

「미친 놈. 그러다가 애 임신시켜봐야 정신 차리지.」

「크크. 안 그래도 얘는 뒤늦게 질사당한 거 알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지. 근데 이상하게 진짜 콘돔 꼈을 때는 한번 싸고 나면 바로 빼게 되는데 이게 질사를 하니까 싸고 나서도 빼기가 싫더라? 그래서 계집애가 밑에 깔려서 울든 말든 그냥 삽입한 채로 계속 있었어.
근데 존나 웃긴 게 조금 있으니까 보지가 쪼그라든 자지를 잘근잘근 물어오는 거 있지? 어우, 진짜 니들도 그걸 느껴봤어야 되는데. 무슨 보지가 말미잘마냥 내 껄 잘근잘근 씹어대는데.. 넣은 채로 도로 단단해져버렸지 뭐냐. 킥킥. 얘도 그걸 느꼈는지 완전 놀란 토끼 눈이 되서 날 쳐다보는데.. 그날 한번도 안 뺀 상태로 한 4~5번 했나? 아무튼 원 없이 질사를 했지.」

「헐~ 다 안에다가 한 거야? 문제는 안 생겼고?」

「문제? 노콘 질사의 맛을 알아버린 게 제일 큰 문제지. 크크. 다행히 임신은 안한 거 같더라고.. 끝나고 병원 가서 사후피임약 처방받아 먹으라고 했거든. 지가 겁나면 사다 먹었겠지 뭐. 수호 너는 피임 잘 하고 있지? 은채씨 고생시키지 말고 콘돔은 꼭 끼고 해라.」

.
.
.

그 날의 대화는 기묘하게도 계속 그런 식이었다. 한참 녀석이 야한 이야기를 풀다가 보면 어느 사이엔가 나와 내 여자친구의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그렇게 수차례에 걸쳐 은채의 이름이 우리 사이에서 언급이 되었을 때, 문득 현택이 은채를 부르라고 제안해왔다. 송년회인데 매번 보는 얼굴들만 있으니까 재미가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나는 거절했다. 물론 은채가 오고 나서도 그러지는 않겠지만, 아무래도 지금까지의 야한 이야기가 머릿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을 남정네들의 술자리에 그녀를 부르기가 꺼려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택은 내가 안 부르면 자기가 부르겠다고 성화였다. 응? 녀석이 은채의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지? 따로 전화번호를 알려준 기억이 없어 녀석에게 물었더니 지난번에 같이 술 마실 때 교환했는데 술에 취하더니 잊어버린 거냐며 되레 역정이다.
어차피 번호까지 알고 있는 녀석을 말리기는 힘들 것 같아 그럼 얘기라도 해보겠다며 전화기를 들었다. 그녀는 수화기 너머에서 잠시 머뭇거리더니 이내 알았다고 곧 준비하고 나오겠다고 하였다. 이 시간에 이렇게 선뜻 나오겠다고 하다니.. 상당히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얼마 뒤, 나는 그녀의 ‘의외성’에 또다시 놀라게 되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그녀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지하철역 출구로 마중을 나갔을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두꺼운 코트를 단단히 여미고 있었고, 때문에 평소와는 다른 그녀의 옷차림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술집에 도착한 그녀가 코트를 벗었을 때 그녀가 그 안에 입고 있던 옷이라고는 검은색의 얇은 스타킹과 짧은 주름치마, 그리고 하얀 셔츠 한 장 뿐이었다. 평소 가슴부위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의 입지 않던 셔츠를 입은 것부터 의외였지만, 심지어 오늘 입은 셔츠는 유난히 더 작은 듯 그녀의 가슴을 힘겹게 압박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너도 제대로 갖춰 입지 않은 것인지 팽팽하게 당겨져 벌어진 단추 사이로는 언뜻언뜻 그녀의 붉은 브래지어가 보이고 있었다. 물론 그녀가 스스로 의도한 것 일리는 없겠지만, 분명 지금 그녀의 모습은 도저히 그녀가 자신의 큰 가슴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과감하고 도발적으로 보였다.

친구들 역시 처음에는 그런 은채의 옷차림에 당황한 기색이었으나, 이내 이게 웬 떡이냐는 표정으로 조금씩 그녀의 가슴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씨x. 불과 30분 전까지도 야한 얘기를 거침없이 쏟아내던 녀석들이 지금 은채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녀석들도 지금 그녀의 단추 사이의 벌어진 틈새에 대해 눈치를 채고 있을까?
역시 오늘은 그녀를 부르지 말걸 그랬다는 후회가 몰려왔다.


「오빠, 나 잠깐만..」

안쪽에 앉아있던 은채가 화장실을 가려는 듯 보여 나는 얼른 일어나 길을 터주었다.

잠시 후 친구들과 얘기 중이던 나는 뒤쪽이 뭔가 소란스러움을 느끼고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다. 화장실 앞에서 40대 후반으로 보이는 취객에게 손목을 붙잡힌 채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은채의 모습이 보였다.

「오빠가 잘 해준다니까. 잠깐 이쪽으로 와봐.」

「왜 이러세요. 저 그런 거 아니라니까요.」

순간 눈에서 불똥이 확 튄 나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그때까지도 우악스럽게 그녀의 손목을 잡고 있던 그 남자의 손을 그녀에게서 떼어냈다.

「넌 뭐야?」

「전 이 애 남자친구인데요. 그쪽이야말로 무슨 일이시죠?」

「남자친구? 뭐야 진짜야? 나가요 아니었어? 이런 씨x. 사람 헷갈리게 왜 옷을 그 따위로 입고 다니는 거야? 아무튼 요즘 젊은 년 놈들은.. 쯧쯧~」

적반하장도 모자라 꼴에 훈계까지 하려드는 취객의 태도에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그에게 달려들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곧바로 뜯어 말리는 바람에 결국 한 대도 때리지 못하고 그에게서 떨어져 나왔다. 중년의 남자는 짐짓 놀랐는지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갔고, 난 그가 가게 밖으로 나가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여전히 겁먹은 얼굴로 서있는 은채를 돌볼 수 있었다.

응? 근데 은채의 모습이 화장실에 가기 전과 어딘가 조금 달랐다. 그제야 나는 그녀가 지금 스타킹을 신고 있지 않음을 깨달았다. 방금 전 취객이 했던 말이 뇌리를 스쳤다.
나는 그녀의 모습을 천천히 훑어보았다. 스타킹을 신고 있을 때는 미처 몰랐지만, 지금 새하얀 다리를 훤히 드러낸 채 서있는 그녀의 주름치마는 이제 보니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짧아서 엉덩이를 겨우 가릴 수 있는 길이에 불과했다.
‘도대체 왜..?’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어지럽혔지만 일단 서둘러 그녀의 손을 이끌고 자리로 돌아왔다. 화장실 앞에서 자리까지 돌아오는 짧은 시간동안에도 여기저기서 그녀의 모습을 쳐다보고 수군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가요 아니었어?” 아까 취객이 한 말이 귓가에 맴도는 듯 했다.

「(스타킹은 왜 벗은 거야?)」
나는 입고 있던 후드 짚업을 벗어 그녀의 다리를 덮어주며 조용히 물었다.

「(화장실에서 보니까 올이 심하게 나갔더라고..)」

「(그래도 그렇지.. 치마가 그렇게 짧은데 어쩌려고..?)」

「(나도 이럴 줄 알았나.. 조심하면서 다니면 괜찮아.)」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지만 흔한 일이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는 그녀에게 나는 더 이상 한마디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날 그녀는 내 바람과 상관없이 유독 빈번하게 화장실을 찾았다. 또 아까와 같은 일이 있을까 아예 화장실 앞까지 같이 가고 싶은 심정이었지만, 친구들 앞이라 체면상 그러지는 못하고 다만 은채가 오가는 것을 볼 수 있도록 친구들과 자리만을 바꾸었을 뿐이었다. 그랬기에 사실 나는 그날 일을 전부 보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들의 테이블 옆을 지나 화장실에 갈 때마다 저들끼리 뭐라 떠들며 시시덕대던 20대 무리 중 한 명이 이번에도 그녀가 옆을 지나치자 순간적으로 그녀의 엉덩이를 쓰다듬는 시늉을 하며 친구들을 향해 웃어보였다. 사내의 장난에 일행으로 보이는 놈들은 자지러졌고, 다른 테이블의 남자들 역시 단순히 그 상황이 재미있다는 듯 웃고 있었다.
나는 여자친구가 명백히 희롱당하는 현장을 지켜보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하면 나는 그 때 노랗게 물들인 머리카락에 어딘가 거칠어 보이는 그들의 모습에 단순히 쫄아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순간 나는 그런 굴욕적인 진실로부터 애써 눈을 돌리며, 진짜로 만진 것도 아닌데 너무 과민하게 반응하지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르고 있었다.

그 녀석은 친구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신이 났는지 이번에는 아예 일어나서 테이블로 돌아오는 그녀의 뒤에 가까이 접근했다. 킥킥대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또 무언가 그녀를 희롱하는 행동을 한 게 분명했지만, 내가 있는 위치에서는 그 행동이 어떤 것 인지까지는 미처 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핑계로 나는 또 침묵했다.

아까 전 사내의 장난이 ‘모두’에게 묵인이 되면서, 술집의 남자들은 어느새 그녀를 희롱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어진 듯 보였다. 개중에 몇 명은 테이블 아래로 무언가를 떨어뜨린 척 고개를 숙여 그녀의 치마 속을 엿보기 위한 아주 노골적인 시도를 하고 있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계속 ‘스스로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희롱의 기준을 높여가며 여전히 자리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이제는 점점 그 사람들보다 그런 옷을 입고 나온 여자친구에게 더 화가 나고 짜증이 났다.

여자친구는 그 날 2시간 남짓한 시간동안 무려 7번이나 화장실을 다녀왔다.
그러는 사이 이미 누군가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듯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동료들에게 자신이 본 ‘그것’을 열심히 설명하기도 했다. 휴대전화를 꺼내 그녀의 뒷모습을 촬영하는 사람도 더러 눈에 띄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된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무작정 밖으로 나갔다. 어디 가냐고 묻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못 들은 척 무시해버렸다.
밖으로 나온 나는 두꺼운 레깅스를 사기위해 강남역 일대를 헤매고 다녔다. 연말이지만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간이라 문을 연 점포가 거의 없었다. 평소에는 길거리 자판대에서 파는 것도 더럽게 많이 눈에 띄더니 오늘따라 막상 찾으니 도무지 한군데도 파는 곳이 없다. 결국 나는 밖에서 헤맨 지 40분이 지나서야 편의점에서도 레깅스를 판다는 사실을 깨달았고, 비로소 그것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레깅스를 주머니에 구겨 넣은 채 술집에 돌아왔을 때,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주영이와 재형이 둘 뿐이었다.

「어라..은채랑 현택이는? 어디 갔어?」

「뭐야? 둘이 너 찾는다고 나갔는데?」

「너야말로 어디 갔다 왔냐?」

「아..그냥..바람 좀 쐬려고..」
나는 주머니에 있는 레깅스를 더욱 깊이 밀어 넣으며 적당히 얼버무렸다.

「엇갈렸나보네. 너 나가고 5분도 안 되서 바로 따라 나갔는데.」 주영이가 말했다.

반사적으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건의 부재중 전화도, 메시지도 없었다.

그럼 지금 그 꼴로 밖을 돌아다니고 있는 거야? 현택이랑 둘이? 아니 차라리 혼자 다니는 것보다는 나은 건가?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자꾸 나쁜 상상만 드는 찰나 재형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너 왔다고 연락했어. 곧 들어올 거야.」

10분 뒤 연락을 받은 두 사람이 돌아왔다. 추운 날씨에 그 얇은 옷차림으로 얼마나 밖을 헤맸는지 은채의 두 손과 양 볼은 빨갛게 물들어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에 테이블 아래로 그녀의 꽁꽁 언 손을 쥐고 주물러 주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보며 말도 없이 어딜 나갔었냐며 따져 물었다. 나는 테이블 밑으로 그녀에게 조용히 주머니 속에 있는 것을 건넸다.

「뭐야.. 설마 이거 사려고..?」

「...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고 말도 안 하고 그냥 휙~ 나가버리면 어떡해? 화난 사람처럼.」

「..화가 나서 그런 거 맞아. 사람들이 자꾸 네 다리 쳐다보니까.. 화가 나서 그만..」

「... ...」

그녀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고 나는 그녀가 화가 났나 싶어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 하지만 다행히 그런 기색은 아니었다.

「..고마워, 오빠.」 그녀는 오히려 조금 감동한 듯 보였다.

나는 괜스레 쑥스러워졌기에 얼른 가서 입고 오기나 하라고 그녀를 떠밀었다.

「..지금?」

그녀는 조금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으나 이내 알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여지없이 여기저기에서 포크 떨어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또다시 몇몇이 목적을 달성한 듯 호들갑을 떨었다. 이제 그것도 마지막이라는 생각때문인지 아까보다 훨씬 유난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레깅스를 입고 나오자 여기저기서 진한 아쉬움이 느껴지는 탄식이 터져 나왔고, 아예 노골적으로 나에게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내 여자를 지켰다는 생각에 더 의기양양했다.

"기껏해야 팬티 훔쳐보는 정도로 실컷 만족했냐? 나는 오늘 밤 이 여자 방에 갈거라구 자식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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