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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5 579회 0건

많이 기다리셨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짬이 안나서... 토요일엔 항상 가정에 충실하려 노력하다보니 짬이 거의 나질 않습니다. 하하.. 더군다나 하필 오늘 예식장에 다녀올 일이 두 건이나 있었습니다..(ㅜㅜ). 그래도 많은 분들이 기다리실거라 생각하고 늦게나마 올려봅니다.


37..



“나다...”
[안녕하셨습니까.]

평소와 같은 강한상의 목소리가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온다.
격양되거나 흥분된 목소리가 아닌 평소의 냉랭한 목소리에 우선 난 안도를 하게 된다.

“신이가 방금 왔다.. 무슨 일인데?”
[핸드폰을 왜 꺼두시고 그러세요. 사람 불안하게..]
“불안 해? 뭐가?”
[하하하하하하~ 말이 그렇다는 거죠. 게임이 한창 무르익는데! 갑자기 형님이 포기하시기라도 한다면 황당하잖아요.]
“그래서.. 왜 전화를 하라고 했냐?”
[뭐.. 다른 게 아니고요. 솔직히 놀 수 있는 건 다 놀았잖아요? 구릅도 해봤고 게임도 해봤고.. 관전도 해봤는데.. 이게 슬슬 지겹지 않으십니까?]
“지겨워??”
[솔직히 형님도 익숙해지셨잖아요. 짜릿한 쾌감보다는 무료함이 더 크고 말이죠..]

휘트니스 클럽에서의 내가 졸았던 그 상황을 돌려 비꼬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게임에 양념을 좀 쳐보는 게 어떠냐 이겁니다.]
“양념이라니? 무슨 양념??”
[신이랑은 벌써 얘기 했는데.. 지금 순서가 월화는 제가 수목금은 형님이 신이를 데리고 있는 거잖아요?]
“...”
[솔직히 제가 뭘 하는지 궁금하다는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전 형님이 밖에서 신이랑 뭘 하는 지 궁금해서 미치겠던데.]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이제 삼 주 남았나? 슬슬 클라이맥스로 달려가야죠. 안 그래요? 심심하다 못 해 잠까지 오는 게임은 좀 그만하고.. 지금까지 했던 것중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게임을 하자 이겁니다. 형님이 했던 게임 같은 걸 하자 이거죠.]
“게임?”
[네! 게임이요! 엄청 재밌었다고 그때 모임 했던 분들도 난리가 아니던데요.]
“......”
[어떻습니까?]
“그래서 무슨 게임을 하자고?”
[이번 주엔 신이의 몸입니다!]
“뭐?”
[사진으로 신이의 가장 음란한 모습을 찍어서 회원들한테 평가를 받자 이거죠.]
“.....꼭 그래야 하나?”
[에이~ 어차피 즐기는 거 화끈하게 즐겨야 더 재미있지 않겠습니까?]
“게임 속에.. 게임이라고.. 나한테 이득 될 게 없잖아..”
[네?]
“어차피 이 게임이란 것에서 지면 모든 걸 잃게 되는데.. 사진을 찍어서 내가 이긴다고 해도 달라지는 게 없지 않냐고.. 네가 분명히 말 하지 않았나? 역시 게임엔 베팅이란 게 있어야 더 스릴 있고 흥분된다고.”
[..........]
“그냥 하던 대로 하는 게 좋을 거 같은데..”
[흠... 그럼 이렇게 하죠. 보너스를 드리겠습니다.]
“보너스?”
[네! 형님이 생각지도 못한 보너스요! 아마 최고의 득템이라고 여겨질 보너스를 드리죠.]
“...그게 뭔데?”
[미리 말씀드리면 재미없죠~. 어떻게 하실래요? 그냥 하던 것만 할까요?]
“.....”
[잘 생각해보세요. 형님 말대로 지면 아무것도 남는 게 없잖아요. 차후를 생각하더라도 이 보너스란 걸 보험처럼 가지고 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보너스는 필요 없고.. 이 게임 속에 있는 게임을 이긴다면.. 내 부탁을 하나 들어줘.”
[부탁이요? 설마 다시 게임을 하자거나.. 아니면 신이를 달라는 뭐 그런 부탁 말입니까?]
“아니.. 나도 게임에 걸린 룰까지 바꿀 생각은 없다...”
[.........하하하하하하~ 좋습니다. 대신 전 재산을 돌려달라는 부탁 같은 건 못 들어드립니다. 집이나 재산.. 둘 중에 하나만 해당되는 겁니다! 아! 그리고 당연하거겠지만.. 사진은 철저하게 자연스러워야 됩니다. 인위적으로 꾸민 사진이나 억지스러운 사진은 아예 탈락시켜버리는 거죠! 그건 형님도 결정권이 있으니 불만은 없으실 겁니다. 물론 신이가 흥분을 못 이기고 스스로 옷을 벗어버리는 자연스러운 사진이 가장 좋겠지만요. 크크..]
“......알았다. 그럼 용건은 끝난 거지?”
[네~..하하하하.. 그럼 신이와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잘 했어요..”
“응..응?? 뭐가?”
“부탁이란 거요.. 한상씨한테 게임이 끝나고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는 조건을 건 거 말이에요.”
“아직도 내가 게임에 질 거라고 확신해?”
“..........”
“그럼.. 내가 뭘 바라야 되나? 그 게임 속 게임을 이긴다면 말이야.”
“집이..요!”
“...집?”
“당연하죠. 이 집이... 어떻게 장만한 건데...”
“내 집도 아닌데?”
“...그래도요.”

신이의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갑자기 예전의 기억이 떠오른다.
신이를 끈질기게 쫓아다녀 연애를 시작하고 결혼을 약속했을 때..
내 수중에 있던 적금과 저금은 다 합쳐봐야 사천만원이 조금 넘던 게 다였고, 부모님의 후광조차 없는... 요즘 혀를 차며 걱정스럽게 말하는 학자금 대출 갚기도 빠듯했던 과거를 지닌 볼 거 하나 없는 평범한 남자였었다.

운 좋게 백번 찍어 넘어온 대기업 출신의 신이란 여자를 얻게 된 남자였지만.. 그래서 더 꿀릴 게 많았던 신랑감일지도 모를.. 그런 욕심 많은 남자로서 결혼도 하기 전에 집부터 아내 될 여자에게 걱정을 안겨주게 된 남자였던 게 나였다.

그런 내 처지에도 신이는 단 한 번도 불평불만을 내색한 적 없었고. 오히려 1000만원이라는 금액과 조촐한 살림살이까지 장모님의 질타와 눈총을 한 몸에 받으며 내게 건네준 여자였던 게 신이였다.

그리고 어렵게 얻었던 이 집..
말도 안 되는 싼 전셋집을 찾아 부동산을 전전긍긍하던 내게 거짓말처럼 등장했던 이 집에 대한 추억과 기억은 지금 다시 생각해도 하늘이 내게 준 두 번째 행운일 것이다. 작고 허름하지만 구색은 다 갖춘.. 남부러울 게 없는 가정에서 호화로운 삶을 살던 신이에게 차마 보여주기 민망할 정도의 이 집을 신이는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기뻐했고 안도를 했던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신이야..”
“...네?”
“이 집말이야...”
“...?”
“처음 이 집을 봤을 때.. 실망하진 않았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갑자기 궁금해져서.. 그 당시엔 하루하루가 힘겨워서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은 못 했었는데.. 이 집을 다 합쳐도 처갓집 거실만도 못하잖아. 처음 구경 왔을 때도.. 허름한 벽지부터.. 꾸질꾸질한 화장실까지 지저분했고..”
“........”
“그냥.. 궁금해서 물어보는 거야. 그때, 그 당시에 솔직한 네 생각을 말이야..”
“태규씨.. 저랑 몇 년 동안 살았죠?”
“3년.. 연애기간까지 4년인가?”
“그 4년 동안.. 전 제 모든 걸 당신한테 다 보여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도 절 몰라요?”
“......”
“솔직히 말하면.. 처음 이 집을 보고 좀 겁이 나긴 했어요..”
“겁이나?”
“돈도 없는데.. 벽지부터 장판까지 다 바꾸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바꿔야겠다고 각오를 했는데 막상 바꾸려니까 어딜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그런 기억들이 추억이 되더라고요. 기억나요? 저기 구석에 태규씨랑 나랑 몇 번이나 떼였다가 다시 붙인 거... 저기만 유난히 들뜬 자국이 있는 게.. 다시 이집에 들어왔을 때 저 들뜬 자국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먹먹히 지더라고요.”
“그랬었나?”
“안방구석에 있는 장판은 잘못 깔아서 한 뼘이나 모자랐잖아요. 결국엔 장롱을 원래 계획도 아니었는데 저 쪽 벽에 붙여야 했던 이유가 돼 버렸지만...”

신이가 고개를 살짝 돌려 그때의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듯 지그시 안방을 바라본다.
나도 덩달아 신이가 바라보는 안방으로 시선을 옮기는데..

“어떻게 할 거예요?”
“..응?? 뭘?”
“사진이요.. 사진을 찍어야 게임속 게임이란 걸 하던가 말든가 하잖아요.”
“...그렇지........ 뭘 찍지?”
“....”

추억에 잠겼던 신이가 급히 화제를 돌리며 잠시 잊고 있던 게임을 상기시킨다.
그러고 보니 이 사진이란 게 생각보다도 훨씬 더 골치 아플 수 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 무작정 섹스를 하고 사진이나 찍어서 승부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생각처럼 녹록한 일이 아닐 거란 걸 생각하며 다시 생각에 잠긴다.

“혹시.. 한상이는 벌써 찍었나?”
“.........”
“아니다.. 말하지 마.. 한상이라면 벌써 찍었겠지... 그것도.. 비싼 카메라에.. 화려한 소도구들까지 사용..”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신이의 팔목을 나도 모르게 쳐다보게 된다. 사진과 관련이 있을 저 족쇄의 흔적들로 대충 어떤 사진을 찍었을 지를 상상할 수 있었다.

“에휴~~ 모르겠다. 배고프네.. 찜닭이나 먹...어....라..”

일어나던 난 비틀거리며 다시 주저앉게 된다.

“...뭐지.”
“왜 그래요?”
“좀 어..지럽네...”
“...어머!!”

신이가 내 팔을 잡다 말고는 갑자기 화장대 서랍을 뒤져서는 거의 쓰지도 않던 체온계를 꺼내 내 귀에 가져다 대고는 스위치를 몇 번 눌러보는데.. 당연히 배터리가 다 방전 된 체온계로 ‘삐삐’거리는 작동음조차 들을 수 없었다.

“잠깐만요..”

신이가 다시 서랍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장의 안쪽 깊숙이 손을 밀어 넣던 신이는 결국 서랍장을 완전히 꺼내 올려놓고는 그 안의 물건들을 하나씩 다 꺼내다 말고 작은 유리 막대기를 손에 들고 형광등에 비춰본다. 몇 번 털고는 옷에 대충 닦은 후 내 입에 밀어 넣어 물린다.

“38.9도.. 미쳤어!!”
“그렇게 높아?”
“안되겠어요.. 병원부터 가요.”
“..그냥 감기야. 이 시간에 무슨 병원까지 가냐. 가 봐야 응급실이야...”
“그걸 말이라고 해요? 지금 몸이 팔팔 끓는데!!”
“괜찮으니까.. 약통에서 해열제나 좀 꺼내줘.”
“진짜.. 말 안 들어.. 꼭 잔소리를 해야..”
“아이고.. 잔소리 듣다가 죽겄네.. 약이나 좀 줘라..”
“...에휴..”

신이가 약통을 뒤지며 해열제를 찾아선 투덜거리며 내 입에 강제로 밀어 넣고는 거실로 나가 잔에 물을 받아 와 먹여준다.

“휴... 이제 열 좀 내리겠지..”
“하루 종일 뭐했어요? 약이라도 좀 챙겨먹지..”
“그냥 빈둥거렸지 뭐..어제 너무 긴장을 했더니... 그동안 받았던 스트레스가 한 번에 밀려왔나보네..”
“에휴.... 그러니까 포기하라고 몇 번을 얘기 했어요...”
“아픈 사람한테 힘을 못 줄망정.. 그러고 싶냐?”
“누가 이러고 싶어서 이래요? 아프니까 속상해서 그렇지...”
“난 괜찮으니까.. 당신이나 배 좀 채워.. 찜닭 다 식겠네...”
“신경 쓰지 말고.. 눈 좀 더 붙여요..”
“...응.”

나른함을 넘은 무력함이 내 온 몸을 짓누르는 느낌에 의지와는 달리 두 눈이 감겨온다. 생각할 것도 많고 확인할 것도 많은데.. 좀처럼 가라앉는 눈꺼풀을 자력으론 올릴 수가 없었다. 이런 느낌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감기야 몇 번이나 걸렸었지만 이렇게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독감과도 같은 몸의 오한과 따갑게 느껴지는 동공의 쓰라림까지..

조용히 두 눈을 감고 약간은 거친 숨소리를 내쉬며 코가 아닌 입으로 호흡을 하게 되는데..

머릿속까지 깨끗이 씻기는 듯 한 시원한 감촉이 내 이마에 전해진다.
그리고 땀에 쪄든 내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가녀린 손길에 기분까지 차분해지는 착각인지 모를 감정을 느끼며 나도 모르게 그 손결을 따라 고개를 살짝 돌리게 된다.

또 다른 시원함이 목을 따라 가슴으로 이어진다.
와이셔츠 단추를 천천히 풀고는 런닝구의 틈으로 그 적신 수건이 들어와 뜨거운 내 몸을 식히기 시작했다. 차가움과 공존하는 부드러움이 날 더 기분 좋게 해준다.



“일어나 봐요.”
“응..응?”
“이것 좀 먹고.. 다시 누워요.”

구수하면서도 담담한 미음의 내음이 내 코를 자극해 허기진 배를 더 허기지게 만들었고 아직도 차갑게 내 이마를 식히고 있는 젖은 수건을 잡아 내리며 상체를 일으켜본다.

한결 가벼워진 몸을 느끼며 깊고 긴 한숨을 한 번 내쉬며 자세를 다시 고쳐 잡아 앉자 신이가 내 무릎위에 쟁반을 올려놓던 신이가 다시 화장대 위에 쟁반을 올려놓고는 장롱에서 티셔츠와 반바지를 꺼내 내 앞에 드민다.

“이걸로 갈아입어요.. 양복 다 구겨졌어요.”
“그래..”

옷을 갈아입고 앉자 다시 내 무릎위에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순백색의 미음이 된장과 함께 있는 쟁반을 올려놓는다. 신이표 쌀미음을 오랜만에 보게 되자 나도 모르게 피식 웃게 된다.

“왜요?”
“오랜만이라서.. 가끔 생각나서 죽집에 가서 이 미음을 찾았는데.. 화려하고 다양한 종류의 죽들만 즐비했지.. 이 미음은 좀처럼 찾기 힘들더라고..”
“당신 이 미음 싫어했잖아요. 너무 진득해서 풀 같다고... 차라리 편의점 호박죽이 좋다고 했으면서..”
“행복에 겨워 투정을 부린 거지.. 그러고 보면 당신 솜씨가 보통이 아닌 게 많아.. 비누도 그렇고.. 스웨터도 그렇고.. 목도리도.. 요즘은 그런 것들도 다 대행으로 사서 자기가 만든 것처럼 선물한다고 하던데..”
“그래요?”
“응.. 그런 게 은근히 많다더라고..”
“요즘은 물질만능주의잖아요. 돈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애인도 그렇고.. 심지어 부모까지도 살 수 있다던데요.”
“부모까지? 말세구나.. 말세..”
“그만 얘기하고 안 먹히더라도 이것 좀 먹어봐요.”
“응... 앗!...뜨뜨...”
“또 미련하게.. 에휴.. 잠깐만요.”

그릇을 다시 들고 나간 신이가 싱크대 수도를 틀어 바가지에 담고는 그 안에 그릇을 집어넣는다.
물이 그릇 안에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담근 신이는 ‘후후~’불면서 그릇 안에 담긴 미음을 숟가락으로 휘휘 젓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반숟가락을 퍼 입술에 살짝 가져다 대 본다. 그리곤 내게 가져와 다시 미음그릇을 쟁반위에 올려놓는 신이였다.

먹기에 딱 정당할 정도로 식은 미음 이였기에 허겁지겁 입속에 털어 넣게 된다. 그 모습을 쳐다보던 신이가 긴 머리카락을 질끈 뒤로 묶고는 팔까지 걷어붙이는 행동을 하며 안방에서 나가는데... 정말 배가 고팠던 나였기에 커다란 냉면그릇에 담긴 미음을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비워버리게 된다.

“신이야.”
“...응? 왜요?”
“혹시.. 미음 더 없나?”
“벌써 다 먹었어요?”
“.....하루 종일 아무것도 안 먹었더니..”
“더 끓일게요.”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 다른 건 없지?”
“그럼 잠시만 더 기다려 봐요.”
“응..”

‘위위이이이이이잉잉잉~~’

믹서기의 전동음이 들리더니 곧 정체불명의 붉고 흰 주스를 가져온 신이였다.

“이게 뭐야?”
“배하고 대추요.”
“아!! 맞네.. 당신이 환절기에 자주 갈아주던 건데...”
“잔말 말고 마셔요. 열은 좀 어때요?”
“많이 내렸어.. 그것보다 내 핸드폰 못 봤어?”
“충전중이에요. 바꿔 낀 배터리도 달랑달랑 하던데요..”
“충전 안 해놨었나.. 아.. 이거 말고 다른 핸....”
“..네?”
“...아니야.”
“부축해드려요?”
“아니야. 당신 덕분에 몸이 한결 가벼워졌네.”
“몸도 안 좋은데 점퍼는 왜 챙겨 입어요!?”
“응?..아니.. 담배 한 대...”
“...”

신이의 따가운 시선에 말을 얼버무리며 입던 점퍼를 마저 챙겨 입고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간다. 쌀쌀하고 차가운 시원한 바람이 내 볼을 쓰다듬어 준다. 그러나 그 시원함은 곧 으스스함으로 내 어깨를 움츠리게 만들었고 그 으스스함을 달래듯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이곤 안주머니에 숨겨있는 폴더형 핸드폰을 꺼내 뚜껑을 연다.

역시나 무음으로 해둔 핸드폰에는 부재중 통화가 4통이나 걸려 와 있었다.

이 핸드폰의 번호를 유일하게 알고 있는 주인에게 전화를 건다.

“전화 했었네.”
[이제 전화 하냐?]
“미안. 깜빡 잠이 들었었다. 컥..컥컥..”
[목소리가 왜 그래?..감기 걸렸냐?]
“조금.. 그런데 왜?”
[사진은 우선 다 훑어 봤는데.. 개인금고까지 빌려서 숨겨둘만 하네 이거..]
“뭔데?”
[우선 검은 장부처럼 보이던 책 말이야. 회원 명부에 비자금 장부더라고. 이거 다 카피했으면 진짜 어마어마한 스캔들 하나 제대로 터지게 만들 수 있을 텐데 진짜 아깝다. 대충 사진에 찍힌 놈들만 찾아봤는데.. 잔챙이들은 현직 탤런트부터 시작해서 검찰하고 의사들, 정치인들도 수두룩하다만.]
“그건 버릴 증거잖아... 그리고?”
[토지부대장 이거 말이야. 쪽발이 새끼들이 얼마나 서민들 등을 쳐 먹었는질 적나라하게 보여 주더만.. 금싸라기 땅들 중에 너도 이름만 들어도 아~ 하고 놀랄만한 건물들도 몇 개 보이더라. 아!! 그 중에 정부청사도 있는 거 알고 있냐? 졸라 웃긴 게 친일파 재산 소환인가 뭔가로 국가에 귀속시켰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더라고.. ]
“그럼?”
[이런 방법이 있는 줄은 난 꿈에도 몰랐다. 와 이 새끼들 머릿속은 진심 나라 빼돌리는 컴퓨터가 들어 있는 게 분명한 가 봐! 몰수한 부지라고 언론에 발표를 해서 현 정부 점수를 우선 따 놓고는 거기에 정부청사를 짓는 거야. 그럼 당연히 국가 소유라고 사람들이 생각하고 환영을 하겠지? 그런데 정작 그 건물은 누가 짓냐? 이 새끼들끼리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장난질을 치는 거더라고. 소유주는 정부라고 해놓고는 건축은 다시 친일파 명부에 있는 놈한테 돌리고 부실 공사 운운하지만 그것도 금세 묻히면 또 수리비로 국가 돈 빼돌리고.. 그러다가 건물 수명 다하면 헐값에 매각을 하는데.. 그게 누구한테 가겠냐? 다시 그 놈들한테 경매로 헐값에 팔아 버리는 거지..그런데 그것도 도중에 반환신청인가 뭔가 집어넣어서 70% 이상은 찾아간다더라.. 손 하나 깜짝하지 않고 꿩 먹고 알 먹는 거지.. 건물도 지들이 지어놓고는 반환까지 받아 봐.. 와.. 진심 대박이네 이 새끼들...]
“알았으니까.. 그 병원 서류는 조사해 봤어?”
[아!! 김철희 과장이라고 알아?]
“김철희?? 그게 누군데?”
[넌 니 씨앗을 줬던 남자 이름도 모르냐?]

김철희.. 김철희...
어디선가 들었던 이름이 분명했다. 뭔가 임팩트가 큰... 머릿속에서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무엇인가가 자꾸 거슬리듯 김철희라는 이름이 입속에서 맴돌며 엄청난 답답함을 내게 선사했었다.

[OO종합병원 산부인과 과장이던데,. 몰라?]
“아!!! 기억난다..”
[그걸 이제 기억하냐!?]
“자... 잠깐만...”
[...왜?]
“그 의사가 내 정액을 제공받은 산부인과 과장이라고?”
[그래. 왜 그래?]
“잠깐만......”

머릿속에서 계속 맴도는 김철희라는 이름 석 자 때문에 미칠 것 같다.
분명 최근에 들었던 이름이 분명했고 그 이름에 뭔가 강한 충격을 받았던 싫은 기억도 함께 했을 거란 아련한 직감에 그 이름 석 자를 몇 번이나 되새겨 입 밖으로 커버 닫은 변기위에 앉아 불러보게 된다.

‘아!!!!... 강한상이 내게 신이의 과거를 얘기 해주던.... 종합병원의 산부인과 과장.... 맞다! 매독이라는 성병으로 신이를 속여 데리고 간 산부인과에서 정작 성병 검사가 아닌 가슴 성형수술에 관한 얘기로 내 혼을 빼놨던 강한상의 얘기 속 병원 과장이 분명했다.

그럼 왜....
일부러 내게 그 이름을 불러주면서까지....
스릴을 느끼기 위한 장난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큰 힌트로 오히려 게임을 망칠 수 있었을 텐데.. 한상이의 의도를 짐작하려 잠시 동안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현민의 목소리를 잠시 무시하게 된다.

[야! 태규야!.. 이거 먹통인가.. 이래서 핸드폰을 좀 좋은 걸 준비..]
“기억났다.”
[기억났어?]
“현민아.. 혹시 말이야.. 가슴 성형을 하러 가는데.. 그 큰 종합병원의 산부인과를 찾아 가는 게 맞는 일일까?”
[맞다니?]
“내 지식으로는 가슴 성형은 성형전문외과에서 하는 거잖아? 그리고 산분인과에서도 가슴을 성형하긴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미용이 아니고 치료를 목적으로 하는 거고.. 맞지?”
[그럴걸? 그런데 왜?]
“그럼 당연히 전문 미용 성형외과로 찾아 가는 게 성형만이 목적이라면 맞겠지?”
[...아! 답답하게.. 뭔데?]
“아니야.. 나중에 더 자세히 알아보고... 그때 얘기하자.. 그럼 여권은? 해빈이 여권은 진짜가 맞는 거 같지?”
[그건 위조 수준이 아니라더라.. 사진으로만 봐서는 모르겠지만.. 식별 번호도 그렇고 생년월일까지.. 지금이라도 그 날을 경계 이후로 찾으면 나올 거라고 하던데..]
“생년월일?”
[그래. 그러니까 삼? 사 주? 그 정도 후에나 세상에 존재할 사람의 여권이 정식 절차를 통해서 이미 존재한다는 거지..]
“자..잠깐만... 지금 삼 주 후라고 했어?”
[삼주는 아니고.. 삼 사주정도일걸.]
“.......”
[왜?]
“이 게임이란 거.. 앞으로 삼 사주면 끝이잖아...”
[아! 맞네!!! 그럼.... 9개월 전부터 이 걸 준비했다는 거야?]
“......그건 아닐 걸.. 아니.. 신이가 준비를 했다고 하기엔 좀....”
[소름끼치네.. 뭐야 이거.]
“다른 건.. 사진 속에서 건진 건 없냐?”
[음.. 사진은 신이씨가 아닌 거 같은데....]
“아니라니?”
[나도 신이씨 성형하기 전의 얼굴인 줄 알았는데.. 직접 본 건 아니지만 사진자체가 요즘 프린터 형이 아닌 거 같은데.. 그리고 아래 날짜도 그렇고 말이야.]
“날짜??”
[응. 많이 바래서 흐릿하게 찍혀있긴 한데.. 1999년도잖아.]
“19...9.9년??”
[그래. 넌 정신없어서 그냥 신이 사진인가 보다 하고 넘어갔나본데.. 사진 상태를 보면 찍힌 년도가 대충 맞는 거 같더라고... 그럼 신이씨가 아니고 다른 사람 사진이 아닐까?]
“......”
[더 자세히 알아보고 얘기 하자.. 아!! 그것보다 해빈이는 어쩔 거야? 조사해서 그 주소까지 알아낸다고.. 당장 갈 수 있는 건 아니잖아. 그리고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니고.. 신이랑 네 아이라는 보장도 없잖아.. 이것도 한상이 놈 장난이면...]
“아니... 내 아이가.. 신이 아이가 맞을 거야... 확실해..”
[그걸 어떻게 확신 하냐? 한상이 놈이 보통 놈이 아닌데..]
“확실해.. 신이가 왜 이 게임에서 내가 질 수밖에 없다고.. 말을 했는지.. 그리고 왜 그런 무리한 행동까지 하면서 이런 게임에 날 끌어들였는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미 답은 하나밖에 없더라..”
[그럼 그렇다고 치자고.. 어렵게 조사해서 위치까지 찾아냈다고 하면? 당장 데리고 올 수 있냐? 대리모란 게 한국에서는 불법이야! 아니.. 중국에서도 불법이던가? 하여튼 법적으로도 우리가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는 말이라고 이 친구야.]
“그렇겠지.. 그래도 찾아야 돼.. 무조건!!”
[하.. 진짜 미치겠네.. 사막에서 바늘 찾으라는 것도 아니고.... 그 여권에 찍힌 주소가 맞는다는 보장도 없는데.. 아! 차라리 신이씨한테 말하고 주소를 받아보는 건 어때? 네 감이 맞으면 신이씨도 널 도와줄 거 아니야?]
“아니.. 그건 안 돼.”
[아~ 또 왜!!! 좀 편하게 가면 안 되냐!?]
“만약 신이가 먼저 알 게 된다면.. 한상이한테 우리 계획이 들 킬 위험이 너무 커지잖아.. 아무리 신이가 내색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이 게임이란 것에 결정자가 신이란 건 변화가 없으니까.. 행동에도 당연히 변화가 있을 거야.. 그럼 한상이 놈이 낌새를 챌 위험성만 커질 뿐이다.”
[........아씨!! 뭐가 이리 복잡하냐! 이거 머리 나쁜 놈은 어디 게임이란 걸 할 수나 있겠냐?]
“난 머리가 좋냐?.. 죽자 살자 덤비다보니까.. 하나라도 건지려다보니까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게 되는 거지..”
[알았다. 우선 더 조사 좀 해보고.. 다시 얘기하자.]
“그래... ”

딱 한 번 빨아들인 담배가 어느새 필터까지 타들어가고 있었다. 몸이 다시 안 좋아지려는 지 사타구니에 아릿한 느낌이 들며 오한이 다시 떨려오기 시작한다. 현민이와 통화에 너무 열중을 했는지 한기조차 느끼지 못하곤 무리를 하게 된 게 분명했다.

서둘러 다시 집으로 들어간다.
현관문을 열고 잔뜩 움츠린 몸을 신이가 걱정할까봐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하며 거실로 들어가는데.. 신이가 배즙을 또 한 잔을 내게 내밀며 마시라 한다.

“배즙으로 배 채우겠다.”
“마셔요...”
“알..았어..”

신이의 목이 좀 잠긴 듯 허스키한 쉰 소리가 먼저 들려왔기에 우선은 건넨 배즙 잔을 손에 쥔다.
신이는 배즙을 건네곤 다시 거실로 가 설거지를 시작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로 거실과 방까지 채워가며 신이가 유달리 요란하게 설거지를 하며 시위를 하는 듯 내게 고개조차 돌리질 않는다.

끊기로 약속한 담배를 피운다는 얘기에 화를 내는 게 분명했다.
아니지.. 이 전 만남에서도 담배는...

“다 마셨으면 가져다줘요.. 아예 설거지 하게..”
“음..응?? 응..”

급하게 남은 배즙을 목구멍 속으러 다 털어 넣고는 싱크대 위에 올려놓는다.
잠시 동안의 침묵에 묘한 긴장감이 거실에 흐르기 시작했다. 이 긴장감은 익숙하면서도 느끼기 싫은 분위기임이 분명했고 그건 결혼 생활 때 술을 잔뜩 마시고 돌아온 다음 날 저녁의 설거지를 하는 신이의 모습과도 비슷했다.

“혹시.. 강한상이한테 전화 왔었나?”
“...네? 아니요.”
“....”
“왜요?”
“아니.. 갑자기 분위기가 쎄~ 해서..”
“아니에요.”
“.....”
“태규씨....”
“응? 왜?”

신이가 설거지를 대충 끝내곤 몸을 돌려 내가 앉아 있는 거실로 걸어온다. 설거지를 하기 위해 걷어붙인 소매를 다시 끌어내리곤 내게 걸어와 다리를 옆으로 꿇고 않은 후 작은 심호흡을 한 후에 입을 연다.

뭔가를 얘기하고 싶은 듯 잠시 입술을 뻐금거리다 말고는 뭔가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답답함을 느끼며 그런 신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게 되는데.. 신이가 금세 표정을 바꿔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 한다.

“우리.. 야외노출 사진 찍을래요?”
“...뭐?”

엉뚱한 신이의 소리에 내 두 눈이 크게 커졌고 입도 다물지 못한 채 멍한 표정을 짓게 된다. 말을 뱉어내고는 자신도 창피한 지 내 시선을 피하며 잠시 우물쭈물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신이였다.

“야..한 사진을 찍어야 되잖아요.”
“갑자기 무슨? 아!! 게임 속 게임??”
“네.. 한상씨한테 한다고 했으니까.. 찍어야 되잖아요.”
“그렇긴 한데.. 갑자기 야외노출이라니...”
“내일 찍어요. 같이 나가서...”
“야외노출이란 게... 한 번도 안 해봤는데..”
“누군 해 봤나..”
“그런데 어떻게 찍냐?”
“무..뭐.... 나가봐야 알죠...”
“....허~. 갑자기 웬 야외노출이야?”
“해보면.. 그것도 쉽겠죠...”
“.....”
“내일 나가요.”
“그..러던지... 참나.. 갑자기 무슨 야외노..출이 냐...”

신이가 날 똑바로 쳐다보며 강하게 말을 하는 모습에 얼떨결에 대답을 하곤 이내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짓게 되는데.. 날 똑바로 바라보는 신이의 눈두덩이가 착각일진 모르겠지만 조금 부어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런데.. 뭘 입고 나가지? 우리 집엔 섹시한 옷이라곤 없는데....”
“....옷.. 필요 없지.. 않을까요?”
“필요 없어??”
“그냥... 예전에 있던 떡볶이 반코..트.. 이고 나가면... 될 거 같은데...”
“반코트? 아!!. 엉덩이 바로 밑까지 오는 거? 그럼 안에는?”
“...뭐.............”
“..허~~~”
“오..왜요? 세..섹시.. 한 사진을 찍어야.. 되..잖아요.”
“누가 뭐래? 왜 혼자 말까지 더듬냐?”
“누..누가? 내가? 언제요?”
“참나.... 이 아줌마가 갑자기 왜 이런데..”
“됐거든요! 누가 이상하다는 거야.. 참나...”
‘누가 이상하데...“
“그만 말하고 누워요. 겨우 열 내려는데 담배나 피우고.. 빨리 누워요!!”
“아..알았다고 이 사람아. 밀지 좀 마!!”

--계속--

운전을 좀 오래했더니 눈이 침침합니다.. 오타는 너그러히 양해 부탁드립니다.

즐건 일요일 보내시고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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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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