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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2 02:35 651회 0건

46..

출근을 해야 되는데 발걸음이 떨어지질 않는다.
집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 4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일요일 8시부터 폭풍과도 같은 7시간을 보낸 난 정신줄을 놓은 듯 한 착각을 일으키며 잠 한숨 못자고 아침을 맞이하게 되었다.

집에 돌아온 신이는.. 진실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던 나였지만,, 신이가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작은 옷 방으로 들어가 아직까지도 나오질 않는다.
평소라면 아침밥을 차려줄 신이였지만.. 오늘만큼은 훌쩍임과 숨죽인 울음소리를 애써 감추며 작은 방에서 꼼짝도 하질 않았기에 나도 문을 열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조용히 세수를 했고 발소리 죽여 옷을 입고 현관문으로 나가 문을 여는데..

“출근해요?”
“응..”

작은 방의 문을 열고 신이가 나온다.
퀭한 몰골로 얼마나 울었는지 두 눈두덩이가 심하게 부어있었다.

“오늘은 꼭 처리할 일이 있어서...”
“잠깐만.. 잠깐만 시간 내주면 안 돼요?”
“지금?”
“...네.”
“그래.. 그럼 앞에 커피전문점으로 가자. 간단하게 요기나 하면서.. 얘기할까?”
“......알았어요. 옷 좀 갈아입을게요.”



간단한 추리닝으로 갈아입은 신이와 양복차람의 난 아침 7시 30분이란 이른 시간에 24시간 하는 커피전문점에 앉게 된다. 신이의 분위기로 집에서 나눌 얘기가 아님을 느낄 수 있었기에 일부러 이곳으로 신이를 이끌고 나오게 된 나였다.

샌드위치와 커피를 주문했지만 신이는 뜨거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커피만을 홀짝이며 마시고 있었다.

“태규씨....”
“...응?”
“샌드위치라도 먹어요. 어제 저녁부터 아무것도 안 먹었잖아요.”
“응..”

아무리 슬프고 괴로워도 배가 고플 수밖에 없는 게 인간이란 동물이라더니.. 신이가 샌드위치를 하나 들어내게 건네줬고 난 그 샌드위치를 받아먹는다.

“실..망했죠?”
“아니.. 어차피 각오했던 일인데.. 실망은...”
“무리하지.. 말아요. 태규씨가 감당할 수 없다고 말 한다면.. 전 태규씨 결정을 따를게요.”
“무슨 결정? 이제 와서 게임을 포기한다는 결정?”
“.......”
“신이야.. 내가...”

[따르르릉~~ 따르르릉~~]

핸드폰을 차에 두고 왔는데.....
가방 속에서 엉뚱한 전화벨 소리가 들려왔고 처음엔 내 전화인 줄 모르게 신이에게 계속 얘기를 하려 했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핸드폰의 벨소리에 뒤늦게 또 하나의 핸드폰이 내 가방 속에 있다는 걸 깨닫고는 신이의 얼굴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된다.

계속해서 울리는 벨소리에 어쩔 수 없이 가방을 열어 구형 폴더 폰을 꺼냈고 배터리를 뽑아내려 했는데... 현민이였다.

“지금 급한 일..”
[나 오늘 출발한다.]
“뭐? 오늘?”
[그래. 홍콩 쪽으로 날아가서 거기서 중국 비자를 받고 다리 건너서 중국으로 곧바로 들어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비자를 홍콩에서 받을 수 있다고?”
[응! 현장수속 밟으면 1시간도 안 걸린다더라고.]
“........통역은? 통역도 없이 가능해?”
[걱정마라! 이 형님이 또 중국에 한 일가견이 있잖냐!]
“무슨 소리야! 너 중국어라고는 니하오 밖에 모르잖아.”
[크크크~ 어제 새벽에 인터넷 검색해서 현지 대학생이랑 벌써 조인해 놨다.]
“.....고맙다.”
[고맙긴! 그럼 그렇게 알고! 내 핸드폰으로 연락하면 좀 그러니까. 들어가서 중국 선불폰 하나 구입해서 연락할게. 그러니까 이 핸드폰이라도 좀 괜찮은 걸로 사라니까! 이건 로밍도 안 된다잖아!]
“....미안하네.”
[크크~ 그럼 좋은 소식 들고 전화할 테니까! 기대하고 있으라고!]
“그래... 고생하고..... 조심해.. 너무 무리하지 말고...”
[걱정 말라니까! 이 엉아가 다 알아서 할 테니까! 넌 기다리기만 해! 그럼 짜이찌엔이다!]

전화를 끊고 이제는 신이에게 모든 걸 얘기해야겠다는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지며 신이를 쳐다보는데.. 신이의 얼굴이 백짓장처럼 하얘진 채 뭔가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신이가 쳐다보고 있는 건 내 가방이었다. 핸드폰을 꺼내기 위해 열게 된 가방... 신이의 시선을 쫓아 다시 한 번 가방을 확인하게 되었고 곧 그 시선의 끝이 열린 가방 속을 향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6mm비디오테이프...
어제 집에 들어와 곧바로 작은 방으로 들어간 신이의 행동에 유일하게 안심을 했던 이유인 테이프. 아무렇게나 놔둔 6mm비디오테이프의 존재를 신이에게 들키지 않았다는 것에 안심을 했었고 이 가방 속에 숨겨놨었는데.. 신이의 시신이 그 비디오테이프를 향하고 있었다.

“이..이게 왜 여깄지.. 회사운동회 테이프야.”
“....”
“신이야. 이 전화는..”
“그..그 테이프... 제..제... 거예요?”
“응?”
“제..가..... 찍힌 테이프냐고요?”
“........”
“하..한상씨가.... 준 거예요? 당신한테 이..걸 보라고... 준 건가요?”
“당신이 찍힌 거라니??”
“....”
“그건 무슨 말이야? 당신도 이런 비디오를 찍혔어?”
“..........”

신이가 두 눈을 지그시 감고는 입술을 꽉 깨문다.
커피 잔을 두 손으로 더 꽉 잡으며 애써 떨림을 숨기려는 듯 보였고 감았던 눈을 찬찬히 떠 잡은 커피 잔을 내려다보기 시작한다. 손의 떨림은 숨길 수 있었지만 그로 인한 커피의 작은 파장까지는 숨길 수 없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듯 내려다보던 신이가 깨물고 있던 입술을 작게 열어 말을 한다.

“테이프..에...... 뭐가 들어.. 있어요?”
“.......박소민.. 당신을 만나기전에 한상이가 만났던 여자야. 약 5년 정도 전에..”
“한상씨가... 준 건가요?”
“아니.... 사실........”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입술이 바짝 말라온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몇 번이나 생각하고 밤새 속으로 연습까지 했었는데.. 막상 당사자인 신이를 앞에 두고 입을 열기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닫고는 커피로 목을 한 번 축인다.

“당신도 조금은 눈치를 챘겠지만.. 게임을 하면서 뒷조사를 했어.. 이 게임이란 걸 좀 더 확실히 알기 위해서이기도 했지만..당신이 왜 강한상이란 남자한테 집착을 하는지.. 그 강한상이 어떤 놈인지를 알기 위해서..”
“....”
“해빈이.....”
“...”

해빈이란 이름에 신이가 심하게 흔들리는 시선으로 그제야 고개를 들어 날 쳐다본다.

“당신의 아이에 대한 집착을 알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 게임이란 걸 이해할 수 있게 되더라고.. 그리고 내... 아이일지도 모른다는 걸 알게 됐을 때... 결심을 하게 된 거지.. 이기자고.. 꼭 이겨서...”

‘달그락....틱.. 쨍~~’

“괘..괜찮아?”
“죄송해요.......”

신이도 목이 타들어가는 지 들고 있던 커피 잔으로 목을 축이려다 그만 떨어트리게 된다.
다행이 깨지진 않았지만 신이의 바지를 적시며 커피 잔이 바닥에 떨어져 반원을 그리듯 굴러갔고 깜짝 놀란 신이가 황급히 무릎을 꿇고 그 커피 잔을 들며 티슈로 바닥을 닦으려 했다.

“제가 할게요. 괜찮으세요? 손님.”
“괘..괜찮아요.. 죄송해요... 제가 정신이 없어서.. 죄송해요.”
“아니에요. 화상 입으신 거 아니에요?”
“네??...아... 괜찮아요.”

김까지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자신의 추리닝 바지에도 신이는 커피 잔만을 신경 쓰고 있었다.

“다시 가져다드릴게요.”

먼저 물수건을 가져와 신이의 바지를 닦으라고 준 점원은 곧 커피를 한 잔 더 내온다.

“정말 괜찮아?”
“해..빈이가 왜 당신 아이라고 생각해요... 당연히 한상씨와.. 제 아이라고 생각...”
“봤어..”
“...네?”
“한상이 비밀금고에서.. 내 정액제공 동의서하고.. 당신 난자에 관한 서류들.. 다 봤다고.”
“그...그건.. 그냥 놔둔 거예요.. 그 아이는.. 한상씨와...”
“아직도 확신이 안서니?”
“........”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볼게.. 왜... 왜 한상이 앞에서 날 찾았고.. 왜 한상이의 명령까지 거부하면서 끝까지 가지 않으려고 그렇게 애를 썼니? 나한테 보여주기 싫었던 거 아니야? 이 비디오테이프... 당신이 생각하는 그런 게 맞을 거야. 한상이 놈이 소민이라는 이 아이한테 한 걸.. 당연히 당신한테도 했을 테지... 그런데 당신은 소민이가 아니잖아. 당신은 끝까지 싸웠잖아.. 아니야?”
“..아니에요.”
“...뭐?”
“태규씨.. 말대로.. 어제 봤던 대로 제 몸은 이제 더 이상 예전의 한신이가 아니라고요. 설령... 저와 태규씨의 아이라고 해도... 그리고 이 게임이란 걸 이긴다고 해도... 태규씨는 우리 아이를 볼 때마다.. 한상씨를 떠올릴 거예요. 아니.. 내가 무슨 약속이라도 잡거나 집에 조금이라도 늦게 돌아온다면... 의심과 질투로 도저히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거... 그렇게 스스로를 몰라요?”
“누가 그러냐고!”

‘꽝!!!!’

신이의 계속 된 억지에..
억지라고 하기보단 설득과도 같은 신이의 얘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을 세게 내려치며 화를 낸다. 항상 냉정하려 노력했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대처할 준비를 하기 위해 계산적이어야 한다고 다짐을 했던 나였지만.. 해빈이란 이름에도 신이가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기에 결국 언성을 높이게 된다.

그런 내 행동에 신이가 움찔 놀라곤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나와 마주했던 시선조차 내리깔곤 고개를 숙인 신이의 모습에 분노를 느끼던 난 금세 괜스레 미안함을 느끼게 된다.

“신이야. 한 달.. 거의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날 봤잖아.. 날 변하게 하려고 온 거 아니야? 그래서 이렇게 변했는데.. 아직도 못 믿겠니?”
“......”

갑자기 신이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내 말에 더 이상 반박은 하지 않고 조용히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숙인다. 나도 모르게 신이를 몰아붙이듯 얘기하던 걸 잠시 멈추고 신이를 바라보게 된다.

“태규씨는... 항상 이랬어요..”
“....?”
“우리가 이혼할 때도.. 우리 부모님들에게 내가 직접 고백할 시간도 주지 않고 자신이 문제라고.. 자신의 몸에 문제가 있다고 먼저 말을 해버려서 저한테는 기회조차 주지 않았고,, 그게 날 위한 일이라고.. 날 위해 자신이 헌신한 일이라고 밀어붙였어요.”
“그..그거야.. 당신이 힘들어하니까...”

갑작스러운 신이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당황하게 된다.
그리고 훌쩍이며 하기 시작한 신이의 얘기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 내용이었기에 조용히 듣게만 되는데...

“정말 힘든 게 뭐였는지 알아요? 엄마가 당신한테 막말을 할 때.. 당신을 병신이라고 욕까지 할 때마다 더 죄인처럼 작아지는 저였어요. 엄마한테 몇 번이나 고백하려고 할 때마다 당신이 막아섰죠.. 그리곤 모든 게 자기 잘못이라면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대신 욕을 먹어줬고요.. 대신 욕을.. 그런데요.. 누군가가 자신 때문에 끊임없이 욕을 먹는 걸 지켜보는 사람의 입장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 있나요? 아니.... 그 때마다 느껴지는 죄책감이... 사람을 얼마나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게.. 그리고 좌절하게 만드는 지.. 생각해 봤냐고요... 네... 그래서.. 당신 욕먹는 걸 더 이상 듣느니 차라리 이혼하는 게 당신을 위한 선택이라고,, 변명 같겠지만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까지 하게 된 이유라는 거.. 아직도 모르죠?.. 그런데 왜 아직도 엄마한테 사실대로 얘길 못 했냐고요? 두려웠어요. 이혼하자마자 아빠일이 터지고.. 갑자기 앓아누운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하루만.. 하루만 있다가 다 사실대로 얘기하자고.. 벌써 이혼이라는 불효를 저지르고도 또......... 그런데.. 당신보고 또 헌신을 강요하라고요?”
“......”
“못 해요. 전 그런 잔인한 짓.. 더 이상 못해요.. 네.. 당신이 현민씨하고 나누는 비밀대화를 듣고 솔직히 많이 흔들렸어요. 당신한테 이 게임이란 걸 계속 그만두라고 했던 결심도.. 각오도 그 순간 모든 게 흔들렸다고요. 정말... 내가 겪었던 모든 것들을 다 잊을 만큼...............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그럼 된 거잖아.... 당신하고 나하고.. 해빈이랑 예전으로 돌아가서 더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잖아.”
“하아.......... 태규씨.”
“...응?”
“지금은.. 이 순간까지는 당신도 이혼을 한 전 여자에 대한 미련 때문에 더 오기를 부리는 건지 몰라요. 만약.. 만약에 말이에요. 이 게임이라는 걸 태규씨가 이기고 생각대로 저와 해빈이가 같이 살 수 있다면... 정말로 정상적인 삶이 가능할까요?”
“그게 무슨 말이야?”
“당신은.. 용서가 안 될 거예요. 아무리 괜찮다고 말을 해도.. 이전의 제 모습을 항상 떠올릴 테고 생각할 게 분명해요..”
“그러니까 즐기자는 거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섹스도 스포츠하고 똑같다며.. 그럼 즐기면서 살면 되는 거잖아. 열심히 살고 열심히 즐기면.. 그럼 되는 거 아니야?”
“아이는요??”
“.....뭐?”
“해빈이를 키우는 제 모습을 보면서... 당신은 무슨 생각을 할까요?”
“무..무슨 생각이라니?”
“가증스럽다고..... 음란한 주제에 엄마라는 가식적인 가면이나 쓰고 있다는 생각.. 그런 생각이 들지 않을까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하냐.”
“1년 동안 겪어보니까.. 말도 안 되는 현실이 너무 많더라고요....”
“진짜 답답하네... 더 이상 뭘 어떻게 더 보여줘야 날 믿겠니?.............. 그래 솔직히 말할게. 강한상이란 놈의 뒷조사를 하면서 생전 해본 적 없는 도둑질까지 했었어. 그리고 한방애라는 조직의 장부와 거래 내역까지도 훔칠 수 있었고. 이 테이프? 당신이 어떤 짓을 당했을지도.. 이 테이프라는 걸로 짐작할 수 있었는데.. 그게 문제가 아니더라.. 오히려 당신을 하루라도 빨리 강한상이라는 놈의 손에서 빼와야 한다는 결심만 굳건히 할 뿐이었다고.. 목숨까지 내놓고 이런 짓을 하는데..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냐고!”
“....한상씨의 무서움을.. 당신은 아직 몰라요.”
“그러니까! 그 무섭다는 걸 내가 왜 모르냐고! 나도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니까! 그러니까 목숨까지 내걸고 한다고 방금 얘기도 했잖아.”
“생각뿐이잖아요..”
“뭐?”
“직접 겪어보면... 그 사람이 어떤 짓까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면.......”

‘딸랑딸랑~~’

시간의 흐름조차 잊고 신이와의 대화에 열중하던 난 커피전문점을 찾은 손님의 차밍벨 소리에 겨우 시간을 확인하게 된다. 벌써 9시가 가까워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된 난 조금 더 서두르게 된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저녁에 다시 얘기하자. 지금 당신은 어제의 일 때문에 이성적인 대화가 힘든 거야. 조금 더 생각해보고.. 그리고 해빈이를 생각해야지. 아무리 당신이 우겨도 해빈이가 내 자식...”

신이에게 당부를 하듯 얘길 이어가는데.. 신이의 창백한 얼굴이 놀란 토끼눈으로 한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말을 하던 나도 자연스럽게 그런 신이의 시선을 쫓아 고개를 돌리게 된다.

“전화를 왜 안 받으십니까?”

강한상이었다.

“하..한상씨..”
“넌 얼굴이 왜 그러냐?”
“.....”
“참나~ 어떻게 네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할 생각을 한 거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렸나?”
“아..아니에요. 잠깐 놔두고 온 물건이 있어서...”
“하하~ 그렇지?? 하긴 닭도 아닌데 다시 집으로 돌아갈 리는 없겠지.. 아~ 형님은 출근 안하십니까?”

“.....”
“와~ 승진을 하시더니 너무 땡보직 아니세요? 툭하면 빠지고.. 조퇴하고.. 그런 직장이라면 저도 다니고 싶네요.”
“여긴 무슨 일로 왔나?”
“무슨 일이라뇨! 오늘 월요일이잖아요. 그럼 당연히 신이를 데리고 있어야 할 사람은 저 아닙니까?”
“그렇다고 직접 집까지 찾아 왔다고?”
“그럼 안 됩니까? 신이를 데리러 저희 집에 형님도 오셨잖아요.”
“......”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네 집 내 집이 이젠 의미 없잖아요. 안 그렇습니까?”
“연락이라도 좀 주고 오지 ..”
“전화를 안 받으신 건 형님이십니다. 그러니 직접 이렇게 제가 온 거죠. 그럼 형님 얼굴도 봤으니까.. 신이를 데리고 전..”
“그 요구란 거..”
“....네?”
“어제 게임 속 게임 말이야. 분명 내가 이긴 거잖아.”
“..........네. 형님이 이기셨죠. 그런데요?”
“그 요구.. 지금 쓸 수 있을까?”
“......?”
“이번 주는 계속 신이와 있고 싶은데...”
“지금 그 상품으로 이번 주를 신이와 같이 있고 싶다고 말하는 겁니까?”
“....그래.”
“집이나.. 적금이 아니고?”
“....그래.”
“하~~..하하하하하하... 너무 비현실적 아니십니까?”
“뭐?”
“이상보다는 현실을 더 신경 쓰셔야죠. 게임이 삶의 전부가 아니실 텐데.. 이러다가 나중에 어쩌시려고....”
“게임을 이기면 되는 거 아닌가?”
“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약속을 어길 남자는 아닐 텐데.. 설마 내가 이긴다고 해서 힘으로 뺏으려는 생각을 하고 있었나?”
“하하.. 진짜 재미있으시네.. 역시 이런 맛에 이 게임이란 걸 못 끊는단 말이야.. 신이야.”

“..네...네?”
“남자끼리 얘기 좀 하게.. 먼저 집에 가 있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안 그렇습니까? 형님!?”
“.........네.”

신이가 잔뜩 걱정서린 낯빛을 남겨 두도 마지못해 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전문점을 나간다.
신이가 나가자 강한상이 의자 깊이 몸을 기대며 두 손 끝을 모아 입술에 가져다 대며 날 노려보듯 쳐다본다. 흡사 토끼를 어떻게 요리를 할까.. 라는 생각을 하며 먹잇감을 노려보는 늑대처럼 강한상은 날 잠시 동안 쳐다보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무슨 얘기를 한다고??”
“깜찍한 짓을 하셨더군요.”
“뭐!? 깜찍한??”
“크크. 좀 건방졌나? 뭐.. 그건 그렇다고 치고.. 게임을 흥미롭게 한다고 먼저 얘길 했으니 문제는 삼지 않겠습니다. 그래도 막상 당하니까 기분이 좀 거시기 하네요.”
“...”

순간 당황한 표정을 숨길수가 없었다.
강한상의 기분 나쁜 미소와 함께 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 행정들로 불안감이 먼저 날 감싸왔기에 애써 표정을 숨겨보지만 마음처럼 되질 않는다..

해빈이라는 존재에 대한 계획까지 눈치를 챈 건 아닐까??..

“애꿎은 김의원님이 무슨 죄가 있다고... 왜 제 손까지 직접 쓰게 만드십니까....”
“...무..뭐?? 기..김의원을 어떻게 했다고?”
“걱정 마십쇼. 사회통념에 위배되는 기사는 나지 않을 테니까요.”
“무..무슨.....”
“그래서.. 뭘 어떻게 하시려고 그런 짓까지 꾸미셨습니까? 게임을 떠나서 이젠 그게 더 궁금하네요.”
“.........”
“근데 말입니다. 저 같으면 장부하고 서류들의 원본을 챙겼을 텐데.. 그게 아쉽더군요. 사진으로 찍어 간다고 그게 증거로 채택될 수 있을 거 같으십니까? 아니면 그걸로 한 몫 단단히 챙기시려고??”
“보험.. 일종의 보험이라고 해두지..”
“보험이라.. 하하하하하하하하~ 진짜 재밌으시네.. 그 서류들을 대충 훑어 보셨다면.. 보통의 사람이라면 그런 생각조차 못 하실 텐데..”
“............”
“해빈이의 존재까지도 이제 다 아셨을 테니까.. 더 스펙터클한 게임을 즐기실 수 있겠죠? 안 그래요? 필사적으로 신이를 뺏어 와야 형님의 딸도 구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안 그래요?”
“넌.... 사람이.. 장난감처럼 보이냐? 게임의 말처럼.. 하나만 묻자..”
“...”
“신이가 단지 네 어머니란 사람의 외모를 닮아서 이런 비겁한 게임을 전부 계획한 거냐? 아니.. 지금까지 몇 명의 여자를 타락시키고 망가트린 거냐?”
“음..... 딱 세 번째네요. 어제 확인하신 소민이와 그리고 영민이란 여고딩이 두 번째고.. 신이가 세 번째네요.”
“여....고딩?”
“소민이 년이 워낙 밝혔어야죠. 이거 뭐.. 가지고 노는 맛도 없고.. 몇 번 찔러주니까 자지러들면서 먼저 원하기나 하고.. 그래서 좀 더 순수한 아이를 찾았는데.. 찾다보니 너무 어리더라고요. 그래도 재미는 있었습니다.”
“재미가 있었다고?...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하나? 그 아이는?? 그 아이도 미쳐버리게 만들었나?”
“크크크크크~ 지금 남 생각 할 입장이 아니실 텐데요.. 게임에 전념하셔야죠. 안 그래요? 모든 걸 잃을 수 있는 게임인데.. 더 필사적으로 그리고 더 열심히 뛰셔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리고 그 아이는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듣기론 요즘 아~주 잘 나가고 있다더군요.”
“잘.. 나가다니?”
“그 업계에서는 거의 톱으로 통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게 전부 제 덕 아니겠습니까? 한 달에 못 잡아도 2000만원은 번다고 하던데.”
“....”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만.. 솔직히 별 기대 안했는데.. 형님 때문에 요즘 제가 살아 있다는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한편으로는 고맙기도 합니다. 아~ 신이 때문이라고 해야 하나?”
“고맙다고??”
“음........ 이걸 뭐라고 말을 해야 될까........”
“...”
“형님은 왜 살고 있습니까?”
“......뭐?”
“사는 이유나 목적.. 그딴 게 있을 거 아니에요. 그냥 하루하루 먹고 살기 위해서 살아간다? 그런 거예요?”
“....”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밥값을 하려고 열심히 일하고... 그리고 졸리면 자고.. 그게 답니까?”
“무슨 말을 하고 싶은데?”
“그럼 말이죠.. 배를 채우는 만족감, 수면에 대한 욕구.. 쾌락에 대한 갈망이나 갈증...운동을 했을 때의 성취감? 이딴 게 없는 삶은 어떨 거 같습니까? 자신이 살아 있다는 걸 확신할 수 있을까요?”
“.........”
“사랑.. 행복.. 그런 게 무슨 느낌입니까? 초코우유 같은 맛입니까? 아니면 세상에 단 10개만 생산되는 프리미엄이 붙는 레어템 같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거냐?”
“모르니까 물어보죠. 솔직히 물어볼게요. 형님이 여기 이 자리에 저랑 같이 앉아 있다고 확신할 수 있습니까? 이게 꿈이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느냐고요?”
“그럼 이게 다 환상이라도 된다는 말이야? 무슨 말 같지 않은...”
“제 병명에 대해서는 들으셨을 테니까.. 다시 묻겠습니다. 참고로.. 합병증으로 온 무감각증이란 것도 조사하셨으리라고 여기고 물어보죠. 이 푹신한 의자의 느낌이 느껴져서 이곳이 커피전문점이라고 확신하시는 겁니까? 아니면.. 이 커피 향 때문에? 그것도 아니라면 눈에 보이는 풍경과 제 모습 때문에?”
“......”
“눈만 감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고 느낄 수도 없다면.. 이곳이 커피전문점인지 집인 지.. 확신할 수 있냐고 묻는 겁니다. 그리고.. 그런 작은 신경의 전달들이 사라진다면.. 과연 그게 사랑이라는 감정과 뭐가 다르죠? 좋아하고 사랑한다.. 혹시 그게 도파민이 생선 되고 페닐에틸아민이란 만들어진 호르몬의 일종의 뇌에 일어나는 착각이 아닐까요? 옥시토신이라는 호르몬이 과다 분비로 인한 뇌의 오류가 아니라고 100퍼센트 말 할 수 있냔 말입니다.”

이성적이라고 할 수 없는 횡설수설과도 같은 강한상의 말이 듣기에 거북스럽게까지 느껴진다. 갑자기 시작 된 공상과학 같은 강한상의 말은 오히려 뭔가가 어긋난 놈의 헛소리처럼 들렸기에 더 이상의 대화조차 불필요하게 느껴졌지만.. 만약 강한상이 내가 세웠던 모든 계획을 이미 파악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우선은 그 헛소리에 장단을 맞춰주려 한다.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넌 사랑을 그런 화학물질들로 정의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 몰라도.. 난 아니다. 인간에게는 감정이란 게 엄연히 존재하는데.. 그런 감정들까지 호르몬이 어쩌고 하는 얘기로 단정 지을 수 있는지도 모르겠고..”
“단정이라... 뭐 연구결과들이 다 맞는다고는 할 수 없겠죠. 확실한 건 아무리 부정하려고 해도 그런 감정들과 시각들까지도 이 뇌가 조종을 한다는 겁니다.”

자신의 머리를 검지손가락으로 툭툭 치며 강한상이 히쭉거린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니.. 도대체 이 게임 이란 걸 하는 이유가 뭐냐?”
“크크큭.. 이제 와서 왜 그런 걸 물으십니까? 처음부터 물어보시지.”
“......”
“형님한테 너무 어려운 얘길 했나보네요. 뭐.. 크게 상관은 없죠. 그나저나 게임은 게임이니까.. 약속대로 이번 주엔 신이와 지내십시오. 그래야 형님한테 조금이라도 희망이 더 생길 수 있으니까요. 단! 저도 형님 집에서 신세 좀 지겠습니다.”
“무..뭐??”
“왜요? 안됩니까?”
“...”
“이제 게임도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는데.. 공정을 기하려면 같이 지내는 것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아니면.. 다른 꿍꿍이라도 있으신 건가요? 그리고 신이와의 시간을 독점한다는 건 룰 위반이잖아요? 그 요구란 것도 룰에 위반 되지 않는 정도에 제가 들어드린다고 했떤 거 같은데.....”
“꿍꿍이라니.... 알았다.. 그럼 같이 들어가던지...”
“하하하.. 역시 대화가 통하시네.... 아~~~ 그런데 출근 안하세요?”
“회사에 전화하고 오늘은 쉬려고.. 그렇지 않아도 거의 잠도 못 자서..”
“그러면 안 되실 텐데...”
“...?”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래도 승진을 하셨는데. 실적이 있으셔야죠.”
“실..적이라니??”
“회사에 가보십쇼. 아! 핸드폰이라도 먼저 확인하시죠. 아마 불이 날정도로 계속 울려 될 텐데.. 아!!!!! 차에 나두셨죠!? 크크~”
“.......”
“직장이라도 잘 잡고 계셔야 되잖습니까. 모든 걸 잃으면 기사회생할 직장이라도 있어야지.. 안 그래요??”
“그럼.... 지금 너랑 신이만 내 집에 놔두고 출근을 하라는 말이냐?”
“그건 형님 마음대로시죠. 스스로 직장까지 버리신다는 얘기신데.. 솔직히 전 상관없는 입장 아니겠습니까?.”
“......”


--계속--

며칠 동안 접속이 되질 않더니.. 주소까지 바뀌고..
그 이유를 오늘 아침 뉴스에서 소라에 대한 얘길 보고 알게 되었네요. 씁쓸하고... 참 뭐시기 거시기 합니다.
이젠 정말 접을 때가 된 건지.......

여튼 어떠한 사정으로라도 이제야 올려드려 죄송하다는 말씀 올리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참고로 댓글을 달아주시는 분들에게 정말 감사드립니다.
제 글보다 댓글을 읽는 재미로 들어올 때가 많아요.ㅎㅎㅎ.. 정말로 몇 분들과 상의를 하며 글을 써보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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