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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03:00 527회 0건
바이러스너무 오래있다 들어와보니 엉망이 되버렸습니다.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리다니, 쯧쯧.





제19부 M



아주 짧은 순간. 찰나라고 하는, 손가락 하나 튀기는 시간. 혹은 눈 깜짝할 시간에 그것이 스쳤다. 전깃줄에서 파득, 불꽃을 뿌리며 합선된 것처럼 그러나 푸른빛이 아닌 검디검은 환영이었다. 머리를 스친 검은 그림자는 그리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손으로 관자노리를 누른다. 스친 영상이 무엇인지 애써 조합을 해본다.

‘무엇이지? 그 검은 환영. 검다는 건 좋은 게 아닌데......,. 죽음의 색? 태양의 하얀 빛이 붉게 물들다 자주로 바뀌며 종내 검정으로 사라지는 것. 하루의 죽음이 어둠이면.......’



생각을 지우듯 아랫배에 올라탄 젖살이 포동포동한 소녀를 끌어당겨 젖가슴의 맑은 땀을 핥는다. 탐욕의 찌꺼기가 남아 있는 땀이다. 헐떡거린 표정의 소녀는 여운이 남은 몸짓으로, 마지못해 옆에 누우면서도 손은 하체에서 떠나지 않는다. 좋은 몸이다. 날씬한 허리가 상반신과 하반신을 더 도드라지게 보인다. 가슴을 더듬는 팔이 길어 마치 바다 위로 뛰어오른 푸른 갈치로 보인다. 그래서 여자를 깔치라고 하던가? 봉구는 시답잖은 생각을 치우며 번뜩 스친 환영에 다시 정신을 모았다. 뿌연 영상이 조합을 이뤄나가자 얼굴이 떠올랐다.

‘아! 이럴 수가.........’

검은 환영은 바로 어린시절, 냇가에서 물장난 치던 천진한 그 얼굴들이었다. 아주 짧은 순간, 떠올랐다 사라진, 아니 사라진 게 아니라 녹아내린 촛농처럼 울고 있었다. 슬픈 얼굴이었다. 아니 이 놈들이 슬픈 얼굴을 하다니........

“야, 임마. 유석. 춘식. 무슨 일이야”



갑자기 낮선 이름을 부르자 맑은 몸을 가진 소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상체를 든다. 원형의 놀란 얼굴이 귀엽다.

“왜 그래요, 아저씨. 무슨 일 있어요?”

나이와는 달리 탐스런 가슴이 팽팽하다. 연분홍 유두에 분홍 유륜이 돌려진 유방이다. 거기에도 땀이 방울져 있다. 신선하다. 보슬비에 젖은 푸르고 어린 호박을 보는 것처럼 신선해 보인다. 그는 일부러 젖살을 내치면서 불길한 예감을 되씹는다.

‘이럴 수가........,어떻게 이런 일이, 그럼 그 박사란 작자가 얘기한 게 맞단 말인가’

그 늙은 박사란 작자는 죽어가면서도 저주를 퍼부었다. ‘너도 곧’ 온 몸이 썩으면서 문드러질 거라고. 문드러져? 너나 문드러져 죽어라, 고 같이 있던 여자까지 해치웠던 그다. 지금도 비릿한 피내음이 맡아질 것 같다. 파닥파닥 뛰던 여자의 하얀 젖통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일어나 침대에 앉는다. 소녀는 멍한 표정이다. 하얀 얼굴이 안개꽃처럼 펼쳐진다. 인상적이다. 눈은 크나 눈동자의 빛이 흐린 게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뭔가에 취한 눈빛은 초점을 잃었다.



‘지금 내가 무얼 하고 있지? 이렇게 계집질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가? 친구들이 죽었는데......, 근데 뭘 해야 하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자신에 화가 난 봉구. 소녀를 본다. 찬바람을 느끼듯 뒤로 한걸음 물러난다.

‘저 얘는........, 그래 거리에서 낚은 얘지. 반 목사와 헤어지고. 그래 그 작자에게 캡슐을 주고....... 어제였었군, 어디서였더라. 반 목사의 차를 건네받고 무작정 가다, 맞아, 그래. 눈에 띄었었어. 그리고 차를 세웠지.’



소녀의 얼굴은 유난히 희어서인지 눈에 쏙 들어왔었다. 얼굴만 아니라 겹쳐 입은 셔츠에 드러난 목과 어깨까지 눈을 부시게 했다. 거울에 태양이 반사한 것 같았다. 정말 얼굴은 거울처럼 흰 빛을 뿌려댔다. 그 흰 빛이 너무나 싫었던 것일까? 거울을 조각조각 깨고 싶은 욕구가 찾아들었다. 날카로운 파열음이 너무나 듣고 싶었던 그였다.



7월 초에 들어선 계절은 한낮의 무더위를 매미소리 따라 점점 더 높이고 있었다. 높아진 매미소리에 막 짜증을 낼 참에, 그 짜증이 사라졌다. 시원한 소나기처럼 소녀가 나타난 것이다. 어스름한 포도 위의 열기를 타고 나타난 소녀는 풀 스커트 차림이었다. 청색의 풀 스커트는 물결처럼 시원스러웠다. 엄지발가락을 걸친 분홍색 조리던가, 아마 그럴 거다. 분홍색 조리에 엄지와 검지발가락만 걸친 채 막 지나치려는 순간, 하얗고 작은 발, 매끄러운 다리와 솜털이 보송보송한 종아리가 순결의 결정체로 다가섰다. 침을 삼켰던가? 그랬을 것이다. 여자에게 굶주린 그는 아니었지만 아니 오히려 여자란 게 여름 땅바닥에 굴러다닌 수박씨였지만 그 소녀는 바지를 부풀게 만들었다. 깨고 싶은 충동, 그리고 들려올 파열음. 그 푸른 스커트를 거둬내면 맑고 청량만 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갈증으로 심장이 벌떡벌떡 뛰었다.

“잠깐, 실례!”

스치고 지날 때 신선한 내음이 먼저 그를 불렀고 그 다음, 신선한 내음을 들이키며 유난히 하얀 얼굴의 그녀를 불렀다. 하늘거린 풀 스커트에 청백의 셔츠를 입은 소녀와 역시 청색의 짧은 스커트에 민소매를 입은 친구는 뭔 일인가, 하며 쳐다봤다. 호기심 가득한 눈이지만 경계의 빛이 굳게 쳐져 있었다.

“그렇게 바삐 어딜 가?”

“.........”

“나야, 나. 모르겠어?”



모른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을 때 이미 봉구는 모든 신경을 뇌에 모았다. 머리 뒷부분이 모인 신경세포들은 날이 하나인 날카로운 창이 되어 소녀에게 향했다. 그 어느 것도 뚫어 버릴 만큼 날을 세운 창은 곧장 두 여인, 아니 젖살이 남아 있는 두 소녀를 향해 날아갔다.

“헉!”

멈춰버린 걸음은 거기서 영원히 멈출 듯 정지했다. 말뚝에 메인 것처럼 꼼짝하지 못한 둘은 입만 멍 벌릴 뿐이었다. 샌들의 민소매 소녀가 조금 비틀거리며 휘청대다 겨우 중심을 잡고 머리를 싸맸다. 눈은 고통에 잠겼다 빠진 것처럼 깜빡대다 희미해진 모습으로 봉구를 쳐다봤다. 마침 거리를 지나간 사람들이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어딜 가냐니까?”

“영, 화, 요.”

띄엄띄엄 입을 연 것은 하얀 얼굴의 소녀였다. 멍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다 무언가에 이끌리듯 대답했다. 목소리 역시 앳되다.

“영화라........, 좋지. 근데 나 알지?”

“.........”

대답이 끊겼다. 아니 누군가 알아내려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다. 하얀 얼굴은 굵은 웨이브가 목 바로 위에서 찰랑댔다. 동그란 얼굴이 매력을 물씬 풍겼다.

“내가 누군지 정말 몰라?”

재차 묻자 얼어붙은 자세로 겁먹은 얼굴이 되었다. 모르면 큰일이라도 날 듯한 표정으로 경직되다 급기야는 눈물까지 흘리려 하자,

“이리 와. 타. 넌 이 앞으로?”

손가락을 뻗어 둘을 불렀다. 자석에 따라붙은 쇠붙이가 되어 둘은 손짓을 따랐다. 사람을 ?아 뒤뚱거리며 따라가는 어린 청둥오리처럼.



조수석과 뒷좌석에 앉자마자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여름을 헤치며 황금빛 차는 쏜살 같이 달렸다. 순식간에 차는 도심을 벗어나 외곽으로 들어섰다. 한적한 도로에 닿자 차를 세웠다. 시동은 끄지 않았다.

“버진?”

무릎 아래까지 온 푸른 스커트에게 물었다. 뺨을 살짝 붉히는 젖살 통통한 소녀는 다리를 모았다. 버진? 이란 단어를 모르진 않는 표정이다. 검지로 뺨을 톡, 튕겨도 멍한 눈의 소녀는 빤히 쳐다볼 뿐 피하거나 막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듯 뺨을 들었다. 연분홍 뺨이 부드럽다.

“네”

“하고 싶지 않아. 남자의 뜨거운 그게 너의 아랫도리를 훔쳤으면 좋겠지?”

“네”

소녀는 망설임이 없었다. 그만한 나이의 부끄러움도 없었다. 두 손을 무릎에 얹고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입을 귀에 가까이 대며 뜨거운 숨을 불었다.

“빨고 싶지? 깊은 숨을 들이키며. 맘 가득 나를 빨고 싶지, 그렇지?”

“네”

“그러면 입을 벌려. 아, 하고”

아, 입을 벌리자 손가락을 입안으로 디밀었다. 미지근한 찻잔이었다. 가지런한 이빨이 흰빛 도자기다. 앞 이를 만지작거리다 손을 뺐다. 분홍색 조리의 발톱에 눈을 두다 겹쳐 입은 셔츠로 옮겼다. 안에 입은 셔츠는 얼굴처럼 하얀 색이고 겉은 치마와 같은 파란색이다. 동그란 젖가슴이 셔츠가 불편하듯 밀어냈다. ‘좃나게 크네.’ 속으로 그랬을 것이다. 가끔은 젖통이 너무 커서 거꾸로 매달린 풍선 같으면 터뜨리고 싶은 그였다. 셔츠 겉으로 동그란 유방을 만졌다. 조금 딱딱하지만 부드러움과 따뜻함이 있는 유방이다. 꽉 움켜쥐자 울상이다. 아파 비명을 지르도록 쥐어짜자 눈물을 흘리면서도 가슴을 피하지 않았다.



“넌?”

“네?”

친구의 가슴을 거칠게 만지다 갑자기 물어오자 놀란 눈으로 무엇을 묻는지 확인하는 기색이다. 보이지 않은 힘이 자신을 옭아매 손짓을 따라 뒷좌석에 앉는 그녀는 입을 꼭 다문 채 청년을 기다렸다. 무언가 이 자리를 피하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은 공포감이 스몄다. 엄청남 무게로 짓눌린 압박감은 숨쉬기도 거북할 정도였다.

“됐어. 그딴 것은 중요하지 않고. 다리나 벌려.”



얼굴이 좀 기다란 형의 소녀는 짧은 미니스커트에 잘 빠진 다리, 민소매에 드러난 팔까지 뽀샤시했지만 썩 마음이 끌리진 않았다. 그러나 그대로 두기엔 아까웠던 것일까 뒷좌석에 기대 두 허벅지를 벌리게 했다. 분홍빛 허벅지는 충분히 좆을 꼴리게 했을 텐데도 검정 점이 총총 박힌 팬티를 한쪽으로 밀고 손가락을 곧추 세워 밀어 넣었다.

“아,”

“아픈가? 얼굴을 펴. 찡그린 얼굴은 아주 보기 싫거든”

“아. 아”

미니스커트가 말아 올려진 아랫도리는 속을 훤히 비췄다. 옆으로 밀린 점박이 팬티 사이로 거뭇한 털이 잡히고 한 줄 세로로 쳐진 틈 안으로 손가락이 파고들었다. 강제로 파고든 따끔한 아픔이 참을 수 없자 애처로운 눈빛이다. 다리를 벌려 앉는 소녀는 오므리지도 못했다. 오돌 오돌 떨기만 하던 소녀의 눈이 반은 감겼다. 빼낸 손가락엔 약간의 물기가 묻어났다.

“네 냄새는 독하군. 네 거 맡아 본 적 있어?”

가랭이 사이는 좁고 바람이 자주 통하지 않아서인지 땀이 쉽게 고인다. 그 땀에 소녀의 호르몬까지 곁들어 궤궤한 냄새를 풍겼다.

코에 가까인 댄 손가락을 입에 쑤셔 넣었다.

“핥아. 고양이가 우유를 홀짝거리듯.”

정말 소녀는 쩝쩝 맛있게 핥았다.

“좋은가 보군.”

“네........”

“그럼 진짜 맛있는 걸줄까? 다리를 활짝 벌리고 발목을 잡아. 이 큼직한 주먹은 머리가 뿅 가도록 해 줄걸”

눈을 동그랗게 뜬 소녀는 떨면서 발목을 잡았다. 앉는 자세로 발을 옆으로 벌리자 가랭이가 찢어지게 드러나며 거기에 작은 구멍을 만들었다.

"네게 뜨거움을 주지. 처음엔 아프지만.......“

아픔 정도가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고통이었다. 큰 주먹이 파고들어 연약한 살갗을 찢어 발겼다.

“아악! 아파, 너무”

공포에 짓이긴 얼굴이 그렇게 좋았다. 죽어 있는 인형을 발기발기 찢어봐야 반응이 없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 있는 인형을 괴롭히면 즉각 생생한 반응을 주는 것이다. 팔에 전해진 잔잔한 떨림. 숨을 막히게 하는 그 전율. 주먹은 형체를 숨겼다. 실신 직전에야 손을 빼냈지만 이미 눈을 희멀그레 뜨고 뒷좌석에 쓰러졌다. 아랫도리에 묻어난 피는 붉었다.



다시 시내로 돌아와 그때까지도 아랫도리를 오므리지 못한 기다란 얼굴을 내려주곤 곧장 여기로 푸른 스커트만 데리고 왔다. 침대에 눕히곤 옷을 벗기지도 않은 채 정신없이 유린한 기억이다. 멍한 눈빛의 소녀는 그 하얀 얼굴을 헐떡이며 숨이 넘어갔다.

“씨팔”

욕지거리가 막 뛰어나왔다. 관자노리에서 손을 떼고 머리를 몇 번 흔들다 어정쩡 서있는 소녀에게 대신 머리의 통증을 던진다.

“넌 뭘 보고 있어. 나가. 그렇게 얼빠진 얼굴로 서 있지 말고. 미친 년”

막말을 들어도 히득거린 소녀다. 아랫도리의 음모가 겨우 거뭇거뭇한 10대 후반의 소녀가 웃음을 질질 흘리며 욕실인가 어딘가로 사라지자 통증이 더 심해진 것을 느낀다. 상대를 앗을 수 있는 힘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통증이 더 심했다.

흐트러진 침대, 거웃이 몇 개 나뒹군 침대를 손으로 대충 쓸며 축 늘어진 붉은 성기를 본다. 환영과 동시 사그라진 성기는 반으로 줄었다. 갑자기 치솟은 분노. 몸을 떤다. 그렇다면 나도 그렇게.........



반 목사는 여름 녹음이 우거진 숲을 지나며 마음속으론 박 대령을 만나다는 생각에 발길이 가벼웠다. 이제나 저제나 질질 끈 노인네들과는 달리 단호한 모습을 보인 그에게 신뢰가 쌓였다. 처음 의지를 밝힌 게 벌써 1년 전이다. 그동안 세상은 더 악의 소굴이 되었다. 이대로 두어도 하늘은 불의 심판을 내릴 것이다. 도덕은 사라지고 신에 대한 외경 역시 거지발싸개 취급이었다. 더 이상 두면 교회의 십자가를 끌어내릴지도 몰랐다. 그래도 그것은 좋다. 그런 교회 역시 썩을 대로 썩었기 때문이다. 악은 악으로 정화를 시켜야지 선으로 정화시킬 순 없다. 박 대령만 적극 나서주면 되는데........ 하느님이 벼락과 검은 비로 소돔을 멸하듯 우린 총과 이걸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 신의 뜻이다. 누가 막을 수 없는 흐름이다.

가방에 든 캡슐을 꺼내 다시 확인했다. 벌써 몇 번이고 확인한지 모른다. 두 개의 캡슐은 가죽 주머니에 고이 담겨 있었다.

‘봉구란 자식, 한참을 머뭇거렸지, 내가 주시자라고 띄워주었더니 정말 그런지 알고 으스대는 꼴이란. 하지만 그 놈 능력은 참 대단했어. 어떻게 사람들의 정신을 그렇게 지배할 수 있는지. 지 형을 꺼내지 않았으면 아마 건네주지도 않았을 걸. 어차피 오래 살지도 못할 놈. 그래도 아깝긴 아까워. 그 놈 능력을 잘 써먹으면 이번 계획에 많은 도움이 되었을 텐데.......’



오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박 대령이 근무하고 있는 사단에서 직접 만나기로 했다. 이십 몇 사단은 오지 중의 오지였다. 차를 가져올까하다 혹시나 해서 대중교통을 이용해 이곳까지 왔다.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는 덜컹거린 길을 용케도 헤쳐 조금 전 부대와 가까운 정류장에 내려줬다. 정류장에서도 한참을 걸어야 된다는 것은 나중에 알았지만 여름 녹음이 우거진 풍경과 매미 울음소리가 마음을 달래주었다. 땅은 어떻게 변해도 그 땅에 뿌리를 내린 사람과 초목, 동물은 그대로 살아가는 것인가 보다. 요즘 더 급하게 변하고 있는 이 땅의 미래를 알기나 하는 지 매미는 더 거세게 울었다. 매미 물음소리가 갑자기 멎었다. 야생잡초가 얽힌 비포장도로에 군용차가 나타났다. 반 목사는 매미소리에 정신이 팔려 진녹색의 지프가 가까이 온지도 몰랐다.

“어이. 반.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는가? 하하하”

먼저 반갑게 인사를 한 이 태극을 보고 따라 웃은 반 목사는 차가 가까이 오자 뒷자리로 올라탔다.

“기다릴까 하다 아예 나왔습니다. 오늘은 어디 풀냄새 좋은 곳에 가서 한 잔 하면 어떻겠습니까? 사실 사람들 눈도 무서운 요즘이라”

사실은 그랬다. 누가 엿듣지 모를 세상이다. 방안에 커피 잔만 있어도 그 파동으로 수만 키로 떨어진 하늘에서 무엇을 말하는지 다 알아낸다는 요즘 기술력이 아닌가. 박 대령은 통신 분야에 몇 년 근무한 경험이 있어 더 잘 알았다. 그래서 오늘만은 비밀리에 대화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축하합니다. 세월이 가면 진급은 하나보죠? 허허허”

여기에 이런 곳이? 할 정도로 수목 우거진 아래로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 한 곳에 앉자마자 뒤늦은 축하인사를 던진 반 목사다. 박 중령은 정규육사출신에 큰 사고도 없었지만 끗발이나 연줄 따위에 관심이 없어 진즉에 포기한 승진이다. 더 깊은 이유는 군에서 가까이 지낸 상관이나 선배들이 모두 요주의 인물로 찍혀있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지만. 그렇다고 불평을 하거나 불만을 가지지는 않았다. 올바른 길을 걸어가는 자만이 걸어온 길을 평가할 수 있다는 좀 고지식한 자기 철학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글쎄요? 진급이 뭐 대단한 겁니까. 총장이 되거나 장관이 돼도”

“장관은 빼시죠. 문민장관인데 군 출신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 태극이 끼어들며 한마디 한다. 맞는 말이다. 박 대령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이어갔다.

“지금 우린 방향이 없습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군의 존재는 국가를 보호하는 거고 국민을 위험에서 구하는 것이 본연의 임무 아니겠습니까? 그래야 국민의 아들들이 떳떳하게 총을 잡고 전선을 지키는 것이죠. 그런데”

말을 멈춘 박 대령은 대신 소주를 따랐다. 안주는 이 태극이 준비를 했는지 삶은 닭을 주섬주섬 꺼냈다. 이른바 백숙이다.

“그 다음은 제가 이야기 하겠습니다.”

이 태극이다. 자칭 인터넷 논객이란 그는 작정하듯 말을 풀었다.

“세상이 아무리 개판으로 돌아간다고 해도 적이 없는 군대는 문제가 큰 거 아니겠습니까? 한번 보십시다. 고조선 때부터 조선까지. 고조선은 중국과, 고구려 역시 백제 신라 당, 백제는 고구려 신라 당, 신라 역시 마찬가지고. 그럼 고려 때는 어땠습니까? 역시 북으로는 흉노족속 몽고, 남으로는 왜구들, 조선 때도 마찬가지 아니었습니까? 남과 북 게다가 바다 건너 외세까지. 적은 항상 존재하는 곳이고 가장 무서운 적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가까이 있는 적이죠. 중국은 조선 때도 마찬가지로 우리를 침범했습니다. 나중에 청으로 이름을 바꾼 후금이 호란을 일으키며 조선을 유린했습니다. 그때의 피해는 임진왜란보다도 더 심했으면 심했지 적지 않았습니다. 지금 임진왜란을 자주 거론하는데 왜 병자호란은 꺼내지 않은지 의문입니다. 그렇다고 청을 지금의 중국으로 보지 않겠다는 겁니까? 청이 바뀌어 중화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긴 이름으로 바뀌었어도 그들은 언제나 황하강, 한족들 아닙니까? 이 땅에서 멀리 떨어진 나라들보다 가까이 있는 나라.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는 항상 우리들을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참으로 이상하죠. 예전이나 지금이나 이 좁은 나라는 남과 북으로 막혀 있습니다. 북한 아니 북괴는 또 어떱니까? 나라로 인정하겠다면 적이고 나라로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땅인데, 지금 나라로 인정하고 있는 추세 아닙니까?”

“아니 벌써 인정했지”

반 목사가 한마디 거들었다. 이 태극은 긍정하면서

“통일, 통일 하면서 독일을 들먹이는데 독일과 우리가 같습니까. 독일은 적어도 한번은 소련 영토를 침범해 점령을 해 본적이 있는 제국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린 어떻습니까? 있는 땅도 내놓고 이렇게 좁게 살고 있는 거 아닙니까. 땅만 내놨나요? 조선 땐 중국에 작전권과 외교권까지 내놓았었지 않습니까. 중국은 영원한 적이고 중국과 손을 잡은 북괴 역시 우리의 적입니다. 러시아도 마찬가지고. 전에 모 대통령이 러시아를 방문해서 선린관계를 맺었다고 했습니다만, 북괴를 고립시키겠다는 의지로 봤습니다. 가끔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신라가 통일하지 않고 고구려가 통일 했으면 어떻게 됐을까. 거꾸로 남쪽이 북을 해방시키지 않고 북이 남을 해방시키면 어떻게 될까하는.”

“그럼 동반 추락하지 않겠습니까? 안 봐도 뻔하죠.”

“맞습니다. 얼치기 감상주의는 금물입니다.”

박 봉근 대령은 소주를 들이키며 무거운 입을 열었다. 다들 그를 쳐다봤지만 생각에 잠긴 그를 방해하지 않았다.

“한 마디만 더 하겠소. 여러분들 결심을 굳히게 할 만한 거요. 드디어 때가 무르익었습니다. 조사 결과 70 % 이상이 지지한다는 의견이요. 지금 나설 곳은 마지막 성역인 군이라는 겁니다. 아시겠습니까?”

더 이상 논쟁의 시간은 필요치 않다고 이 태극이 선을 그었다. 이젠 나서야 만이 이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주장에 마침내 박 대령이 나섰다.

“좋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내략을 해놨습니다. D day만 정하면 됩니다. 내가 수양이 되겠소. 여러분들이 한 명회가 돼주시오. 피는 내손에 묻히겠지만 나중 나라를 이끌 인물은 여기 모인 여러분들 아니겠습니까.”



무거운 좌중 분위기는 길지 않았다. 정답을 알고 있으면 답안지 작성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은 법이다. 이 태극은 박 대령만 나서면 즉시 추종자들을 거리로 내세울 판이다. ‘우린 이 길을 택한다.’ ‘대한민국 만세’를 외치며 세종로를 뛰어다니고 군인의 목에 꽃다발을 걸어주면 된다. 반 목사 역시 마찬가지 생각이다. 대규모 기도회를 열고 전 세계의 크리스트들에게 메시지를 날릴 것이다. 하느님이 선택한 사명이라고. 신을 부정한 그들에게 이 땅을 내줄 수 없는 거라고, 저들은 아랍테러리스트보다 더 악이다. 우린 십자군의 재림이다, 라고.

“근데 한 가지 문제가 있소. 만약 실패한다면 우린 역사의 죄인이 될까요, 아니면 역사를 바로 세울 깃발이 될까요? 깃발이란 참으로 매력적인 것이지요. 다만 그 깃발이 끌어내려지고 빗물에 더럽혀질 때가 문제죠. 난 그게 의문이오.”

“그건 그렇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 옳은 것은 항상 옳은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옳지 않은 것은 언제고 옳지 않아야 역사의 정직한 흐름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성계가 위화도 회군을 했을 때도 마찬가지가 아니었을까요. 자신의 길이 옳다고 믿었기에 죽음을 극복하고 새로운 역사를 창조하였을 겁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반 목사도 거들었다.

“오히려 고려인들은 더 비참한 생활을 영위했을 겁니다. 극도로 어지러운 나라가 어디 백성들을 생각이나 할 겨를이 있었을까요. 차라리 조선으로 새로 태어나서 새로 시작하는 게 더 나았을 겁니다.”

박 대령은 침묵에 잠겼다. 그 침묵을 또 이 태극이 깼다.

“혹시 에펠탑을 아십니까? 파리에 가면 누구나 한번쯤은 거기에 오를 겁니다. 그런데 누가 만들었냐하면 바로 에펠이란 사람입니다. 처음에 그 탑을 세운다고 했을 때 파리사람들은 모두 반대를 했었습니다. 파리의 하늘을 망친다는 주장이었죠. 그렇습니다. 사람들의 주장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 시대엔 그랬지만 역사가 지나면 사람들은 다시 평가를 한다는 게 중요한겁니다. 지금 파리인들은 에펠탑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자, 그럼 우리 건배 합시다. 사람들의 이중성을 위해”

박 대령이 먼저 술잔을 비웠다. 즐거운 야외 나들이 기분으로 일행이 권커니 잣커니 하며 취기를 더했다.



“근데 참 박 대령님.”

연배인 그를 친근하게 부르며 목소리를 낮춘 반은 동생 봉구의 근황을 전했다. 전에도 말한 기억은 있었지만 박 대령과 친근감을 나타내고 싶었던 것이다.

“며칠 전 아니 바로 엊그제군요. 동생을 만났습니다.”

“그래요? 그 자식은 이미 내놓은 지 오랜데........ 옛날부터 워낙 개차반으로 굴어서.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는데. 갑자기 변하더군요.”

박 대령은 동생을 떠올리자 안쓰러우면서도 불쾌한 기억이 먼저 떠올랐다. 동네 여자들을 괴롭히다 못해 망나니짓까지 저지른 봉구였다. 나중에야 감방에 간 소식을 들었지만 그 후론 인연을 끓고 지낸지 오래다. 근데 반 목사, 이자가 자꾸 동생 이야기를 꺼냈었다.

“동생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던데요.”

“평범? 맞을 겁니다, 아마. 평범은커녕 뭔가 이상한 놈이었죠. 눈빛부터 아주 불길하고”

“그런 뜻이 아니라, 뭐랄까, 정말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 아무튼 사람을 지배한 묘한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마치 혼을 빼앗을 수 있는 마법사처럼, 아니 마술피리의 소년처럼 사람들을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혹시 몰랐습니까?”

“그럴 리가요. 하지만 그 앤 좀 섬뜩한 데가 있긴 있었습니다. 눈을 마주치면 가끔 빨려들어 갈 듯한 느낌이랄 까요”

“정말 그렇더라니 까요. 저번엔”

말을 하려다 멈춘 반 목사는 대신 작은 캡슐 두 개를 꺼내 들었다. 파랑색 빨간색 두 개의 캡슐을 손바닥에 조심스레 올려놓고 호기심 가득한 일행을 돌아봤다.

“이게 무엇일까 궁금할 겁니다. 이게 바로 핵폭탄도 무섭지 않은 세균이란 겁니다. 직접 확인을 해보지 않았지만 여기 박 대령 동생의 설명으론 무슨 바이러슨가 한다는 데 아주 미세한 량이라도 도시 하나는 쉽게 삼켜버린다고 합니다.”



길 기복형사는 집어던져진 거뭇한 물체를 다시 들어 통에 넣었다. 느끼한 냄새도 그렇지만 태양열에 녹은 아스팔트처럼 진득한 감촉은 너무 싫었다. 가끔 미친놈들이 맛있게 먹겠다고 개새끼를 불에 그슬릴 때 나는 냄새는 역겨웠다. 장갑을 끼었으니 망정이지 맨손으로 만졌으면 아마 그 냄새가 핏줄을 타고 온몸을 돌아다닐 것 같았다. 그건 그렇고 ‘이게 뭐야’ 하며 내던진 과장에게 사실 할 말이 없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해도 믿으려는 마음이 없어보였다.

“그래, 이게 그 발바리라고? 나한테 이걸 믿으란 말이야. 누구에게나 물어봐. 이게 그 놈이라고”

“정말이라니까 그러시네. 그 놈이 이렇게 녹아버렸다니까요, 글쎄”

나이가 비슷하지만 과장이니 상급자다. 반말 비슷하게 던진 길 형사는 그 여자를 데려오라고 했다. 정신이 나간 듯 현장에서도 뭐라고 중얼거리던 여자였다. 분홍, 아니 연한 살색의 구두를 신고 있던 여자는 바닥에 누워 ‘프리지아, 프리지아’만 연방 되뇌었다. 길 형사 일행이 뒤늦게 도착했을 땐 이미 그때와 똑같이 허연 연기만 풍기며 녹아있었다. 몸뚱아리가 사라진 옷을 치우자 검게 찌꺼기만 남았다. 뀌뀌한 냄새에 숨을 쉴 수도 없었지만 긴 평상 같은데 나란히 누워 있는 여자들 알몸은 공포 영화 촬영장으로 보일 정도였다. 껍질을 빼앗긴 여자들이 기절한 채 묶여 있는 모습이 마치 닭 도살장으로 보였다. 다행히 목숨은 붙어 있었지만 다시 살수 있을는지 의문이 들었다.

“자, 이것을 좀 보게. 뭘로 만들었을 것 같은가?”

길 형사는 모양을 잃은 길쭉한 물건을 꺼내 과장 앞에 두었다. 제법 구두 모양은 내고 있지만 정교하지 않아 고대인들이 얼기설기 만든 가죽신으로 보였다.

“이것이 말이지. 사람, 그중에서도 여자들의 살갗으로 만든 거라네, 더 가까이 보라구”

“뭣이? 정말이야. 세상에 그런 일이 가능하기나 하는 건가? 농담이겠지”

“허, 이 사진들을 보라구. 아랫도리 피부를 다 빼앗긴 여자들 안 보여?”

과장은 놀란 눈으로 사진과 가죽신을 연거푸 비교하며 보았지만 믿지 않는단 얼굴이다. 그럴 수도 있을 거란 생각에 길 형사는 취조실로 데리고 갔다. 조금씩 정신을 되찾은 여자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다 문소리가 들리자 고개를 들었다.

“다시 물을 테니 있는 그대로 말을 해주세요, 아가씨. 알았죠?”

“...............”

“이 구두는 누가 어떻게 만든 겁니까? 아가씨, 당신이 만들었어요, 아니면”

“아니에요.”

초췌한 모습의 미경은 아직도 믿을 수 없는 표정으로 띄엄띄엄 그 자리에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했다.

“그럼 당신을 위해 이 구두를 만들었단 말인가요? 어처구니가 없군.”

“그렇지만 사실이에요. 제가 디자인을 할 때도 그럴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정말”

“울지 말고, 묻는 대로 답만 해줘요. 그럼 그 남자는 어떻게 됐어요? 도망쳤나요, 아니면”

“녹았어요. 그대로......... 맞아요, 영화 있죠? 로봇이 물처럼 녹아버린 거. 그렇게 타버렸다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길 형사는 취조실을 나왔다. 그때서야 과장도 이해를 한 표정이다.

“그럼 그렇다 치고 두 놈은 이렇게 됐는데 한 놈은”

이미 세 명에 대한 보고를 받은 바 있는 과장은 남은 한 명은 어떻게 돼가고 있는 지 묻는 거다.

“그 놈 역시 집 나간 지 오래고 그 형이 있다는데 소환할까요?”

“소환? 당신이 검사야, 아무나 소환하면 기다렸다는 듯 온데. 이 친구가. 그리고 그 형이 군인이라며?”

“그렇군. 그럼 내가 찾아가봐야 돼나?”

“그건 그렇게 하고 그 캡슐인가 M인가 하는 것은 찾았어, 못 찾았어?”

“그 놈을 찾아야 해결이 될 것 같은데........”

“그럼 찾아봐, 당장. 못 찾으면 오지 말고. 위에선 상당히 심각한가 봐.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럼 그 놈들이 찾으면 돼지 말단 형사한테 찾아라 말라 그래. 안 그런가? 그건 그렇고 강 박사를 데리고 간 놈들이 그 놈들인가 보네. 자식들 좋은 차만타고 돌아다니더니 왜 못 찾아.”

“차 타령은 그만하고 빨리 강원도나 다녀오게나. 한참 걸릴 텐데........., 참 가기 전에 그것들은 모두 국과수로 보내. 뭔가 흔적이라도 나올 지 알아”



청주에서 이번엔 강원도라. 길 기복은 늦더위가 기승을 부린 황톳길을 부지런히 올라가며 그래도 수목은 좋다, 란 생각을 가졌다. 녹색은 긴장을 풀어준다는 말이 맞는가 보다 구부러진 길을 운전하면서도 마음은 편했다. 미리 연락은 해뒀지만 군부대 안으로 들어간다니까 혹시 했다. 괜히 군 검찰이나 보안대나 알려지면 일이 꼬일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전을 떠나기 전 사전 전화통화를 한 박 대령의 목소리는 신뢰가 갔다. ‘그러시오’ 한마디로 방문을 허락한 그에게 그런 동생이 있으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판단은 옳았다. 직접 만난 느낌은 한마디로 됨됨이가 충실한 인물이었다.

“선 긋고 지낸지가 하도 오래라 뭐라 말을 해줄 수 없군요. 미안합니다.”

“아니 오히려 시간을 내주어 고맙습니다. 그런데 형제라면서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는 게 사실인가요?”

“우습지만 그렇습니다. 그 애가 고등학교를 다닐 때 전 이미 그곳을 떠났고 그 이후 집을 찾는 게 손을 꼽을 정도니까.”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저희들 일도 워낙 그러니까. 근데 혹시 전화 같은 것도 없었습니까. 가끔 통화라도 하고 그럴 텐데요. 댁으로라도 혹시 하지 않았을까요.”

“전혀. 아마 번호도 모를 겁니다. 그놈은 충분히 그러고도 남아요. 고등학교 시절에도 떠돌아다닌 들개 같았으니까. 그럼”

“아, 잠깐이요. 혹시 연락이라도 오면 이리로 전화라도 주시겠습니까. 제가 알기론 동생은 지금 굉장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을 겁니다. 이런 말씀드리기 뭐하지만 제가 아는 한 말을 해드리겠습니다.”

묵묵히 듣던 그는 놀란 얼굴을 하며 조그맣고 뚱뚱한 형사를 새로운 듯 쳐다봤다. 지어낸 애기라고 하기엔 너무 조리가 있었다.

“그럼 그 애가 희생물이란 말이오? 어느 놈이 그런 짓을........”

“이미 죽었습니다. 처참하게. 둘 역시 죽었고, 이제 남은 증인 아니 물증이 맞나요? 동생만이 유일합니다. 제가 아는 것은 여기까지 입니다. 그럼 동생을 다시 찾아봐야 되겠습니다.”

“잠깐,”

불러 세운 그는 결심을 한 듯 메모를 건넸다.

“혹시 도움이 될지 모르니 이 사람을 만나보시기 바랍니다.”

급히 적은 메모엔 ‘반 일균’ 세 글자와 휴대폰 번호가 적혀있었다.



“아, 됐습니다. 전 다시 서울로 가야겠습니다. 무슨 목사라는 친구를 만나봐야 되거든요. 그것은 그 다음에 찾던지 말든지 할 것 같고.........”

길 기복은 더위에 지친 목소리로 시큰둥하게 대답을 하곤 곧 바로 시동을 켰다. 부르르 떨며 엔진이 돌아가자 그것이 꼭 늙어가는 자신을 보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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