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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러 - 아들의 이야기 - 8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5 01:14 431회 0건
BSB 님!! 축하드립니다!!!

아하~ 작가는 너무 기뻐요 ^^

작가의 패러디를 알아채는 분이 한 분이라도 계시다니;;

너무 암시적인데다가 제멋대로 패러디이기에 한 분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았는데;;

에...BSB 님에게는 소정의 상품으로 작가의 싸인을 (퍽)

무, 물론 농담입니다;;;

음...BSB 님께는...이대로 넘어가기는 저로써도 너무 죄송하니까;

작가가 이룰 수 있는 한도 - 그다지 넓게 생각 안 하시는 게 좋으실 듯;; - 내에서 들어드리겠습니다;;

만나서 봅시다;;; 이런 거 말고요, 뭐;;

아, 이번 편은 H 신 없습니다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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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0월 5일 -


이미 눈이 쌓인 묘성곡의 묘족 마을, 현대식으로 지어진 많은 가택 가운데 눈에 띄는 일본의 전통 가옥. 그 안에서는 한 남자가 안절부절 못하며 정원 안을 서성이고 있었으며, 마루의 그 남자가 서성이는 정원 쪽 방에서는 여자의 간헐적인 비명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자의 비명소리가 울릴 때 마다 남자는 흠칫 하면서 멈춰 섰고, 이내 다시 입술을 잘근 잘근 씹으며 걱정하는 눈초리로 돌아섰다.

추위 때문에 약간 창백해진 피부색을 제외하면, 이제 곧 아기 아빠가 될 아카기 슈스케는 꽤나 미남이었다. 소위 꽃미남이라기 보다는, 남자다운 눈썹과 부리부리한 눈, 넓은 어깨와 큰 키 등으로 인해 남성미가 강조되는 쪽이었다.

묘성곡에 주거하는 묘족들에 관련된 일을 모두 관장하는 최고 회의 기구 - 고작 1천 명 사는 곳에 무슨 최고 회의 기구겠냐마는 - 암운당의 현 최고 당장, 미츠루 아치바의 막내딸 아키라와 결혼한 지 3년 만의 자식이었다. 아주 보수적인 묘성곡이기에 3년 동안 아이가 없었다는 것은 약간은 늦은 편에 속했다. 둘이 좋아서 한 결혼이기에 서로 애정이 없을 리가 없고, 또 건장한 스케가 남성적 기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물론 근거는 없지만 믿기 어려웠다.

반면 아키라는 매우 가냘프고 어찌보면 병약하기 까지 한 체질이어서 마을 묘족 전체가 수군거리기 시작할 때, 그녀가 임신했다는 사실이 퍼지면서 악소문을 한 큐에 날려버린 셈이 되었다.

그 동안 소문을 참고 견디기도, 또 아버지인 아카기 코헤이의 얼굴을 보기도 미안했던 슈스케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이였으며, 그것은 아키라도 마찬가지였다.

‘남자 아이일까, 여자 아이일까...난 여자였으면 좋겠는데...’

묘족으로써 남자라는 것은, 조금은 가혹한 일이라고 느끼는 슈스케였다. 어릴 때부터 무조건 적으로 받아야 하는 무술과 암살 훈련. 물론 거기서 탈락하면 평생 묘성곡 밖으로 나갈 기회가 없다. 묘성곡의 하늘만 보며 살긴 싫다. 그러나 묘성곡을 나가려면 온갖 추저분 스러운 일을 해야 한다.

‘그나마 여자 아이로 태어나면 암살보다는 절도 쪽으로 많이 쏠리는 편이니까...’

슈스케 자신은 어떤가? 그는 묘족이 실시하는 모든 훈련을 압도적인 실력으로 다 통과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치러야 할 자유의 대가를 알자마자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묘성곡 안에서 살기로 결심했다. 이제 스물 여섯, 아직까지도 젊은 그이기에 여전히 바깥세상은 그에게 있어 원망과 동경의 대상이었다.

“아아악 - !! 아아아악!!!”

뭔가 낌새가 이상했다. 아키라가 거칠게 내뱉던 숨과 비명소리가 천천히 잦아들면서, 안정감있는 패턴으로 변했다. 그렇다면...? 슈스케는 진담을 흘리며 발길을 멈추고 방 안에서 소식이 들리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엉덩이를 때리는 소리가 들리고...

“응애 - 응애 - ”

그렇다. 애가 태어났다. 아이가 태어났다.

내...

내 아이가...

태어났다!!

슈스케는 만면에 희색을 머금은 채 방 안으로 뛰어듬과 동시에 일단은 아키라를 챙겼다. 눈도 뜨지 못한 채 탈진해서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그녀의 손을 슈스케는 꼭 잡아주었다. 아키라는 묘족답지 않게 상당히 몸이 약한 여인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출산이 힘들까 싶어 망설였던 것도 사실. 그걸 훌륭히 견뎌낸 자신의 아내가 슈스케는 너무나 사랑스럽고, 또 미안했다.

“잘 해냈어, 당신...”

“...슈스케?...미안해요, 나 지금 당신 볼 힘도 없어서...”

“아, 아, 일어나지 마. 그냥 누워 있어.”

슈스케는 무리해서 일어나려는 아내를 반 강제로 자리에 다시 눕히며, 아내의 산파 역할을 해 준 자신의 어머니에게로 가면서 얼굴에 웃음기를 지우지 못한 채 자신의 아이를 보려고 했다.

그런데 무언가 이상했다. 기뻐하면서 자신을 환영해 주어야 할 어머니가 심각한, 그리고 또 두려운 표정으로 슈스케를 보면서 낮게 중얼거리는 것이 아닌가.

“슈스케, 일단 아이를 아랫목에 놔 줘야겠다. 그리고, 나 좀 따라오너라.”

묘족은 누구보다 눈치가 빠르고 예민하다. 슈스케는 곧 그녀의 말 속에 내포된, ‘조용히 하거라’ 라는 말을 파악하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어머니의 뒤를 따라갔다. 하지만 심히 걱정이 되는 것은 사실이었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 도대체 어머니가 왜 이러는 것일까.

혹시 사산, 아기가 죽어서 태어났나? 아키라에게 충격이 될까봐 어머니가 그러는 것일까? 아니다, 아기는 울었다! 그러면 기형아인가? 그도 저도 아닌 무언가? 슈스케는 두렵고 걱정이 되어 미칠 지경이었다. 그의 심장은 도저히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쿵닥 쿵닥 뛰기 시작하였다.

마침내 슈스케는 참지 못하고, 자신에게 아이를 보이지 않기 위해 안고 앞에서 걸어가는 어머니를 향해 소리쳤다.

“어머니!! 도대체 무슨...”

“조용히 해!”

알 수 없이 어머니인 츠바사는 슈스케에로 천천히 다가왔다. 아이는 포대기에 감싸여져 있었고, 슈스케가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도 없어보였다. 건강해 보였으며 지금까지도 시끄럽게 울고 있었다.

“어머니...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츠바사는 말을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결정을 못한 표정으로 한참을 망설였다. 아기가 우는 소리만이 둘 사이에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사이, 일 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슈스케가 느끼기에는 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옛날, 금묘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지. 우리 종족을 거의 멸망상태까지 밀어넣은 흉악한 배신자...”

“...아버지나 저나 똑같이 생각하는 건, 배신자는 우리였어요.”

“나는 관심없다, 누가 배신을 했건 말건 중요한 건 묘족들은 금묘라 하면 이빨을 갈고 치를 떠는데, 그 이빨이 지금 내 손녀를 찢어버리게 생겼어!!”

남들이 들을까봐 크게 말하지도 못하고 이빨 사이로 앙 다물고 말하는 츠바사였지만, 지금 슈스케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잠시 동안의 사고 정지,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두려움.

금묘.

손이 천천히 자신의 딸을 덮고 있는 포대로 다가간다.

금묘.

바로 아이의 얼굴 앞에 멈춰선 손이 부르르 떨리며, 더 이상 나아가기를 거부한다.

내 딸이...

그러나 이내 마음을 다잡고, 천천히 아이의 머리를 덮고 있는 포대기를 향해 가 -

내 아이가...

두려움을 꾹 참고 그 포대기를 천천히 벗기니 -

찢겨 죽을 운명 -

드러나는 것은 금빛으로 찬란한 진한 황금색의 머리카락이었다.

“...”

“...냉혹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아키라를 위해서라도, 너를 위해서라도 이 아이는 죽여야 한다...우리 손에서 끝내야 해.”

슈스케는, 어머니의 말에도 절대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조금 전 까지 보여주던 떨림도, 망설임도 모두 지운 채 꿈쩍도 하지 않고 자신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직 눈도 뜨지 못한 채 주변의 상황도, 자신의 운명도, 아무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꼼지락대는 아이. 나의 딸, 머리카락이 금발인 딸. 눈썹도 금발. 아마 모든 섬모가 금발이겠지, 그것이 금묘니까.

금묘다.

내 딸이다.

금묘이기도 하고, 내 딸이기도 하다.

“아이 이름은 아키라와 지어 놓았습니다. 이 아이는 아카기 츠카사라고 불리울 겁니다.”

“슈스케!!”

“태어난 시각은 10월 5일 9시 17분 21초군요. 정확히 기록할 겁니다.”

“슈스케, 그러지 마라, 제발...”

“어머니, 암운당에 잠시 갔다 오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지금 의절하셔도 좋습니다만, 제발 그 아이만은 내버려 두십시오. 아키라가 피를 흘려가며 낳은 아이이며, 제 딸이고, 어머니의 손녀입니다. 금묘라 할 지라도 우리의 피란 말씀입니다...부디, 부디 불쌍히 여겨서 보살펴 주십시오.”

츠바사는 뒤돌아서서 걸어 나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방에서 나오자마자 슈스케는 아키라가 걱정스레 던지는 물음에도 그저 쓸쓸한 웃음만으로 대답한 채, 검은 양복으로 갈아입고 천천히 마을의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암운당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암운당에 도착한 슈스케의 눈에 들어온 것은, 자신을 이미 기다리고 있던 미츠루 아치바, 아키라의 아버지였다. 암운당의 최고 당주이자 과거 금묘를 살해한 미츠루 가문의 후손. 보통 묘족은 평균 수명 120 세, 그리고 대략 17, 8세에 성장기가 끝나며 그 이후 노화는 인간의 2분의 1 속도로 진행된다.(사실 인간도 이것은 마찬가지이다 - 20 세 이후 인간 신체의 변화는 오로지 노화 일변도다. 즉, 20세부터 인간은 늙기 시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츠루 아치바는 그런 묘족 중에서도 유난히 정정한 축에 속했다. 이미 133세, 아키라는 그의 21번째 자식이었고 막내였다. 우리 나이로 따지자면 환갑이 다 돼서 본 자식인 셈이다. 인간이 그렇듯, 아니 묘족 또한 인간이니 결국은 똑같은 법칙이 적용되는 지, 그런 만큼 미츠루의 아키라에 대한 애정은 각별했다. 또 형제 자매들도 그 점을 알고 그저 웃어 넘길 뿐이었다. 그들에게도 딸이나 다름없는 나이의 미츠루는 귀여울 뿐이었다.

사실 조금 내성적이고 차분한 아키라였기에 집안 식구들은 그런 아키라가 얼굴을 벌겋게 달군 채 슈스케를 데리고 왔을 때에 상당히 충격을 받았다. 아니, 아키라, 애인이 있었단 말이야?! 의외로 수완이 좋은 걸!

뭐, 그것 뿐이었다. 슈스케에게 불만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아카기 가문은 묘성곡 내에서 세력이 강한 집안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건실한 집안이었으며 또 대대로 우수한 성적을 내기로 유명한, 자부심 강한 집안이었다. 게다가 슈스케라 하면 아키라 바로 위의 미츠루 소이치로가 아끼는 후배인데다가 문과 무 모든 면에서 우수한 인재였다.

장인은 아끼는 사위의 굳은 얼굴에 나타난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채 두 팔로 그를 얼싸 안으며 말을 이어나갔다.

“그래...슈스케 군, 찾아온 이유는 알 것 같으니까 말 하지 않아도 돼. 고맙네, 고마워! 자네 덕분에 내 딸의 불명예도 사라졌고, 우리 가문의 불명예도 씻겨졌네. 그래, 딸 아이의 이름은 지었나?”

“어르신, 안 쪽으로 들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

비로소 아치바도 보통 일이 터진 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 아무 말 않은 채 그를 내실로 안내했다. 들어가면서도 아치바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을 지울 줄 몰랐다. 딸에게 무슨 일이? 아니다, 아키라는 건강하다는 기별이 이미 도착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울음소리가 분명히 들렸다, 묘족의 감각은 아주 예민하니까! 그럼, 이도 저도 아닌...무언가가...

“어르신, 여기는 묘족의 전사들 중에서 천리 밖의 파리의 날갯짓도 듣는다는 감각사조차도 엿 듣지 못할 줄...아옵니다. 그리고 저는 어르신이 아키라를 아끼시는 만큼 자신의 피를 아끼실 줄 알고 드리는 말씀이니...부디 저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주십시오.”

아치바는 웬만큼 심각한 일이 아니라면 슈스케가 특유의 부드럽고 자상한 태도를 버리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에, 앞에 무릎을 꿇고 심각하게 말을 이어나가자 정말 큰 근심거리가 생겼다는 것을 깨닫고는 이마에 주름을 잔뜩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르신. 저는 이제 미츠루 가의 식구 중 한 명입니다. 그렇기에, 미츠루 가에 대해서 여쭤 볼 것이 있습니다. 비밀을 공유해 주기실 빕니다.”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나보군...”

슈스케는 고개를 끄덕인 후 말을 이어나갔다.

“옛날...그러니까 라이코우의 시대에, 그의 편에 끝까지 남았던 유일한 묘족, 금묘의 이름을 묻고 싶습니다.”

“...역시...역시 그거였나...”

아치바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떨구었다. 이 무슨 업보란 말인가, 오래 전 조상의 화가 자손에게 미치는 구나, 정말 옛말은 틀리는 것이 없으며, 사필귀정이라더니...그녀의 저주가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인가...

“그때 금묘를 제압한 수장은...그래, 우리 미츠루 가문의 미츠루 카게이였지. 문서에는 미츠루 카게이가 수 백의 묘족과 싸워 마지막에 간신히 자신의 목숨과 바꿔 금묘를 제압한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은 달랐어...

카게이는 망설였네, 끝까지 망설였어. 묘족이 팔 백명이 죽어나갈 때 까지 그는 마음을 정하지 못하고 계속 망설이다가 결국 금묘의 앞에 섰네. 그가 망설인 이유는 단 하나야. 그녀는 자신을 죽일 수 없었거든. 하지만 자신은 그녀를 죽일 수 있었어...묘족이기를, 인간의 심성을 포기한 다면, 그는 자신의 누나인 ‘미츠루 미오’를 죽일 수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지...물론 그 뒤에 스스로 할복했지만...그래...미츠루 미오, 그게 숨겨진 금묘의 이름일세. 명부에서도 지워지기는 했으나 우리 미츠루 가문의 일원이지.”

한 동안 아치바와 슈스케 사이에서는 긴 침묵이 흘렀다. 그 침묵은 바깥에 있는 새가 나뭇가지에서 날아갈 때 까지 계속되었다.

“금묘를 숨길 방법은 없습니까? 미츠루 가문에서 사용한 방법이 있을 것 아닙니까, 설마 제 딸아이가 팔 백년만의 금묘이리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나는 절대 사용 안 할 방법을 그들은 사용했지...그 뿐이야......”

“...염색같은 방법은...”

“자네도 알지 않나, 금묘를 구분짓는 것은 금색 머리카락 만이 아니야! 다른 묘족의 세 배가 넘는 긴 손톱, 거기에 날이 달려있지. 자르고 갈면 되지 않냐고? 유감스럽게도 금묘의 손톱은 금속성이라네, 그래서 광택도 나는 게야. 자르고 간다고 해서 들키지 않을 수가 없어, 손톱을 뽑지 않는 한! 그래, 손톱을 뽑았다고 치지. 그 다음은 금색의 눈이 있네. 렌즈를 끼울 텐가? 묘족 중 맨눈과 렌즈를 구분 못하는 자는 아무도 없어! 그것만이 아니...”

“잠시만요, 잠시만요 장인어른...”

슈스케는 무례라는 것을 알면서도 다급하게 장인의 말을 가로막았다. 아치바 또한 슈스케의 그런 무례를 신경쓰지 않았다. 본래 항시 무례를 저지르는 자의 그런 행위는 튀어 보이지만, 예의를 지키다가 무례를 저지르는 자의 그 행위에는 그럴 수 밖에 없다는 무게가 절로 들어오는 것이다.

슈스케는 고개를 숙이고 잠시 심호흡을 하다가 아치바를 똑바로 쳐다보고 말을 꺼냈다.

“...제 딸아이는...눈동자가 검은 색이었습니다!”

“...!!!”

뜻밖의 소식...어쩌면 자신의 딸은 금묘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은 아니지만, 밖에 있는 어리석은 묘족들을 설득하는 데 약간의 구실은 될 지도 모른다. 금묘로써의 조건 중 하나가 모자라지 않는가...그렇다면 금묘가 아니다, 라는 억지 쪽으로 논리를 전개시켜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금묘가 아니리라고는 자신도 그들도 생각지 않을 터지만 훌륭한 명분이 서는 것이다.

“...잠시 나를 따라오게...”

슈스케는 말없이 일어나서 먼저 걸어가는 아치바의 뒤를 따라갔다. 그의 뒤를 따라가면서 슈스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본래 묘족들끼리는 자신의 집에 마비부를 붙여 놓는다. 너무 뛰어난 청각과 감각 때문에 아무도 집안에서의 사적인 일을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특히나 암운당은 그 정도가 심했다. 하지만 이런 통로들이 있을 줄은...

책상을 치우니 허리를 숙여야 들어갈 수 있는 통로가 나오고, 장롱을 꾸욱 누르니 아래쪽에 계단이 생겨난다...도대체 이런 길이 몇 개 씩이나...

“여기라네...사실 우리는 정부와 우리와의 계약에 있어 증거를 남기기 위해 많은 문서를 제작했지...하지만 몇 몇 일화는 너무나 그 충격의 여파가 강해 이 ‘봉인의 서재’ 에 봉인해 두었지...”

봉인의 서재는 그다지 크지 않았다. 기껏해야 방 한 칸 정도일까. 그 안에 있는 책들도 책장 하나의 한 칸을 간신히 채울 정도였을 뿐이다. 총 합쳐서 20권 정도...이것은 작은 일도 세세하게 기록해 놓아 어느 새 사 천권이 다 되어가는 묘족일지에 비하면 택도없이 적은 양이었지만...

“그래...묘족일지가 시작된 지점도, 미츠루 미오...그러니까 금묘가 그런 일을 벌인 것도 같은 시점...1권에 그 일화가 나와 있을 걸세...”

슈스케는 떨리는 손을 쫙 폈다가 다시 힘을 뺐다. 그는 떨리는 손을 천천히 뻗어서 봉 - 묘족 일지 1권을 꺼내어 천천히 읽어나갔다.

이야기는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금묘의 이름이 ‘미츠루 미오’ 라 정확히 나와 있다는 점을 빼고 나면. 그리고 금묘가 먼저 묘족을 습격한 것이 아니라, 라이코우의 일족 암살하려 드는 묘족을 금묘가 없앴다는 것...그리고 그 수는 팔백이 아니라 스물 넷이라는 것...

“...스물 넷...그 시대에는 죄악도 될 수 없는 수군요.”

“...전염병이 돌았지. 그리고, 그걸 금묘에게 뒤집어씌운 것 뿐이야.”

슈스케는 천천히 책을 읽어나갔다. 어느 새 그의 눈이 머무르고 있는 쪽의 내용은 금묘가 같은 미츠루에게 당하고 죽기 직전에 묘족을 저주했다는 내용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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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피가 흐르는 입을 벌려 저주의 말을 쏟아내니,

[나를 배신한 일족이여, 의를 배신한 일족이여, 그저 미나모토의 씨를 남겨달라는 작은 소원조차도 묵살해 버린 미츠루의 일족이여, 그대들은 나의 얼굴보기가 두려울 것이다, 그대들은 나의 의리를 뭉개버렸으니까, 그대들은 나의 얼굴보기가 두려울 것이다. 그대들은 나를 생각할 때마다 얼굴이 창백해지면서 땀이 흐르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지 못할 것이다. 아아, 미츠루의 일족이여, 나는 그대들을 증오한다. 나의 동생이여, 나는 그대를 어머니처럼 길렀지만 너는 나를 삼내천 너머로 흘려보내는 구나.

아아, 일족이여, 나는 저주한다, 내 금빛 머리칼을 걸고 저주한다, 나의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가 한 세기 후 나타나기를!

아아, 일족이여, 나는 저주한다, 내 강철 손톱을 걸고 저주한다, 나의 손톱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가 두 세기 후 나타나기를!

아아, 일족이여, 나는 저주한다, 나의 신력을 걸고 저주한다, 나의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가 삼 세기 후 나타나기를!

아아, 일족이여, 나는 저주한다, 나의 천리안을 걸고 저주한다, 나의 천리안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가 사 세기 후 나타나기를!

아아, 일족이여, 나는 저주한다, 나의 번개신의 힘을 걸고 저주한다, 나의 번개의 힘을 가지고 태어나는 이가 오 세기 후 나타나기를!

아아, 일족이여, 그러나 그대들이 이들마저 없애버릴 때에...나의 소박한 저주, 내 모습의 그림자를 보면서 괴로워하라는 이 소박한 저주마저 거부할 때에, 진정한 저주가 그대들을 덮칠 지니, 십 세기 후 나의 눈만을 가지지 못한 자, 나의 머리카락만을 가지지 못한 자가 같은 날 같은 태양 아래 태어나리니 그대들은 그들을 저주하겠지만 그들 역시 그들을 저주하여, 미츠루라는 이름을 세상에서 씻어 내리리라! 피로써 씻어 내리리라! 붉은 피보다 더 진한 피로 씻어 내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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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그 뒤로 저주는 차례차례 이루어졌고, 미츠루가는 어리석게도 그들 모두 태어나자마자 불에 태워버렸지...”

잠시 침묵한 후 아치바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사실...아키라의 언니인, 에리코의 이야기인데...출산 예정일은 이 주 후였지만...오늘...”

“그 아이의 눈 색깔은요!!”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 지 깨달은 슈스케는 아치바의 말을 끊으며 물어보았다. 만약 그 아이의 눈이 금색이라면...잘못될 경우 사태는 더욱 심각해진다, 이 봉인의 서재의 내용을 알고 있는 건 아치바만이 아니기에, 잘못될 경우 더욱 큰 불상사가 발생할 수도...

“...황금색일세...”

“...정말 방법이 없는 겁니까!!!”

슈스케는 절규하면서 무릎을 꿇었고 천천히 침묵했다. 어색한 침묵 가운데 아치바는 사위에게 사과를 건넸다.

“...미안하네, 전적으로 우리 가문의 폐단인데 말이야...그래...할 수 없는 일이기는 하지만...그래...방법은...없네.”

“안녕히 계십시오.”

“슈스케!! 내 손녀일세!! 내 손녀이기도 하단 말일세!! 어찌 슬프지 않겠나!! 그러나, 내 딸을 위해서, 그리고 내 자네를 아끼는 마음도 있기 때문에...그리고...그래, 솔직하게 말하여, 내 가문을 위해서도 내린 결정일세!!”

슈스케는 바깥으로 걸어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었다. 꽉 쥔 주먹에서는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살릴 방법이 없단 말인가...도망이라도 칠 수 없단 말인가...

“그럼 부탁드립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한 가지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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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무슨 부탁을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저는 13살 까지 묘성곡에서 자라났고, 조금은...인정해요, 비정상적으로 자라났다는 거. 거리에 나가면 다들 슬금슬금 피하고...친구라고는 같은 처지에 있는, 똑같은 금묘인 카오리밖에 없었으니까. 그래도...그래도, 사촌인 미츠루 료헤이랑 그 친구들은 저와 카오리를 친구...까지는 아니지만, ”

“흠...그래서 그 ‘붉은 발톱’ 7인방이 너를 위해 연극을 해준 셈이군, 그 날 밤.”

츠카사는 잠시 흠칫 했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어젯 밤, 녀석들은 절 잡으러 왔다면서도, 절 죽이러 왔다면서도 절대로 살수, 저를 죽음에 보내는 공격을 하지 않았어요. 저도 깨달았죠. 그래서 미안하기는 하지만, 치명상은 피하되 상처를 내는 정도로 끝냈던 겁니다. 사실 미츠루 료헤이가 저한테 노골적으로 증오심을 드러낼 때부터 연극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료헤이는 옛날부터 그런 식이었거든요...착하고 무뚝뚝한 사람...”

츠카사의 얼굴에 잠시 극한의 증오심이 떠오르며 송곳니가 삐죽 튀어나온다.

“...같은 성을 가진 다른 녀석하고는 정 반대지요...”

“하지만 녀석들도 설마 묘족 전투원 전부가 출동할 줄은 몰랐겠지.”

“묘족 전투부대, ‘월하인’도 설마 제가 라이코우보다 강한 주인을 만났을 줄은 몰랐겠죠.”

츠카사는 처음으로 남자친구를 사귄 여자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의 교태로운 몸짓으로 규에게 휘감겨 들어가며 목덜미를 살짝 핥고는 작게 ‘야옹’ 이라는 소리를 그의 귀에 흘려 넣었다.

규는 그런 츠카사가 싫지 않은 듯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지만, 눈으로는 더 먼 미래를 보고 있었다. 묘족...그래, 라이코우와 관계되어 있단 말이지...

“...너는 눈이 금색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카오리는 머리카락이 금색이 아니라는 것 외에는 금묘과 같다...라는 건가? 너희 둘의 얼굴 생김새는 어땠어? 비슷했나?”

“예, 저주에 의하면 그렇지요...그리고 얼굴 생김새라면, 쌍둥이와도 같았다...라고 할 까요? 일란성 쌍둥이나 다름없었어요, 저희는.”

규는 츠카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시금 멍한 눈빛을 했다. 츠카사는 약간 피곤해졌는지 규의 어깨를 베고 눈을 감은 채 졸기 일보직전의 상태를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었다. 그런 츠카사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규는 혼잣말을 하며 스스로 뭔가를 연관시키고 있었다.

“...진정한 저주가 그대들을 덮칠 지니, 십 세기 후 나의 눈만을 가지지 못한 자, 나의 머리카락만을 가지지 못한 자가 같은 날 같은 태양 아래 태어나리니 그대들은 그들을 저주하겠지만 그들 역시 그들을 저주하여, 미츠루라는 이름을 세상에서 씻어 내리리라! 피로써 씻어 내리리라! 붉은 피보다 더 진한 피로 씻어 내리리라...

무서운 저주...군. ‘붉은 피보다 더 진한 피로 씻어 내리리라’...어떻게 하면 피가 더 붉어질 수 있는가...역시, 가장 이해되는 설정은 두 사람분의 피를 압축해서 한 사람분의 피로 한다는 것...두 사람의 피를 매개로 해서 하나의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금묘...

...금묘...라이코우라...라이코우...필시 요리미츠를 단순히 다르게 읽은 것 뿐...뢰광 (雷光) 이겠지. 그 뢰광이 내가 알고 있는 뢰광일 것인가...? 글쎄...몇 가지 더 확인해 본다면, 밝혀지겠지. 츠카사, 츠카사!”

갑자기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규를 멍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츠카사였지만, 그 진지한 눈빛에 힘겹게 졸음의 눈을 뜨고 머리를 들어 규의 질문에 대답할 준비를 했다.

“네...왜 깨우셨어요?”

“그 이야기, 그러니까 너희 아버지가 저주를 읽었다는 이야기는 누가 해 준 거지?”

“저희 할아버지께서...”

“좋아, 그렇다면 한 가지 더 물어보지. 라이코우가 사용했다는 저승의 기술 - 거기에 대해서 뭔가 언급이 없었나?”

츠카사는 규의 질문에 ‘웅’ 하는 표정으로 눈을 감고 곰곰이 생각을 곱씹어 보았다. 라이코우의 저승의 기술. 그것에 대해서는 분명히 할아버지도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술법이라고 하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음양술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어 보였다는 것.

“아, 그러고 보니 묘족일지에 저승의 기술에 대하여 약간의 서술이 있기는 해요. 할아버지가 언젠가 반드시 필요할 거라면서 묘족일지 전체를 외우도록 저와 카오리에게 시키셔서, 그 중에서도 1권을 강조하셨기에 기억하고 있는...”

“빨리 말해봐.”

“아마...[황금빛의 창룡이 그의 부하이니 적의를 끝까지 쫓아가는 자의 이름은 창룡이라. 불꽃에 싸여 타오르는 주작이 그의 부하이니 앞의 모든 것을 태우는 자의 이름은 주작이라. 하얀 번개를 일으키는 백호가 그의 부하이니 주인의 사방을 보호하는 자의 이름은 백호니라. 아름다운 날개를 파닥거리는 호접이 그의 부하이니 주인의 벽을 모조리 날려버리는 의 이름은 호접이라.] 이게, 묘족일지에 나와있는 전부에요.”

츠카사는 말을 마친 후 규의 안색을 살폈다. 규는 이제껏 보지 못했던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는 다시 츠카사를 무시한 채 앞쪽을 바라보며 츠카사로서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지만, 짧은 시간동안 지냈어도 노예는 노예, 그것이 규가 생각에 잠겼을 때의 습관이라는 걸 알아챈 츠카사는 규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하고 있었다.

“...이로써, 분명해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데. 확실히, 그 라이코우는 내가 알고 있는 라이코우야. 천년 전이라는 시간하며, ‘저승의 기술’ 에 대한 묘사가 완전히 그의 술법과 일치하고 있다...

그렇다면...그 저주는...더욱 더 무서운 것이 되어버린다, 금묘가 라이코우의 심복이었다면 그 역시 라이코우에게서 그의 술법을 배웠을 것...역시, 요모츠 히라사카와 같은 경지에 이르는 것은 불가능 하겠지...만. 자신의 원한으로 혼을 감싸 시한폭탄과 같이 터뜨릴 수 있는 경지라면...그래...”

갑자기 규는 츠카사에게로 고개를 홱 돌렸다. 갑작스레 고개를 돌리는 것 또한 규의 버릇으로 이미 파악한 츠카사였지만 이런 건 안다고 해서 안 놀랄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츠카사!”

“노, 놀랬잖아요...”

“츠카사, 나는 지금 심각하다. 너를 만난 이래로 가장 심각하다.”

규는 정색을 하며 츠카사의 어깨를 붙잡았고, 그런 규를 보는 것은 츠카사로써 처음이었기에 점점 두려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과거...그리고 미래가 무겁기는 했지만 이 사람이 이렇게 걱정해 줄 정도라면...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것일까...

“금묘의 저주, 그건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아. 단순히 너희 둘의 탄생을 예고한 게 아니야. 본래 한이 맺힌 저주와 진심이 담긴 축복은 어느 정도 미래의 시간과 사건을 조정하지, 영화에서처럼. 예를 들어서 ‘토모가 살아서 17세 되는 날 그는 XX를 죽이리라’ 라는 저주가 있다고 치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 토모는 17세 이전에는 죽지 않아...축복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금묘는, 너는 알지 못하겠지만 생과 사와 관련된 술법 쪽에서는 단연 최고라 할 수 있는 자, 라이코우의 심복이었다. 그런 술사와 장시간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언행에 자연스레 생사의 무게가 실리지. 그런 금묘가 마지막 혼신의 힘을 쥐어짜낸 저주, 그건 엄청난 무게를 가지고 있을 터, 너와 네 사촌이라는 카오리에게 덮어쓰인 저주는 생각 외로 거대한 저주일 거야, 단순한 예언 정도가 아니라.

그러니까 쉽게 말하면, 네가 지금 가장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묘족들이 아니야! 바로 너에게 내려진 그 저주, 금묘의 저주인 거다! 내가 알아낸 바만 말하마.

우선 ‘붉은 피 보다 더 진한 피’ - 이런 표현은 생각보다 많아. 이집트와 이슬람 문명 쪽을 살펴보면 [두 사람 이상의 피]를 이런 식으로 표현하지. 붉은 피보다 더 진한 피라는 건, 즉 누군가가 몸 안에, 다른 사람과 똑같은 크기의 용기 안에 두 사람분의 피를 가지고 있어 피가 더 진하다는 거다. 즉, 두 사람의 희생으로 한 사람이 태어난다...라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어.

그 두 사람은 여기서 누굴까...아마도, 츠카사 너와 카오리일거야.”

“하, 하지만...”

“잘 들어. 내가 말했듯이, 원한이 깃든 저주는 일정 선 까지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그리고 내가 볼 때, 그 저주는 목적이 바로...금묘의 현신이다.”

츠카사의 눈은 어느 새 반쯤 풀려 있었다. 그 큰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리고 있었는데 - 그것은 자신의 미래에 대한 공포 때문이었다. 미래 - 그 미래에 있는 건 기껏해야 카마이타치, 칼족제비 쯤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자신의 앞에 오로치가 있다는 식으로 바뀌면...어쩌자는 것인가. 평소의 그녀라면 이런 경고에 반론을 제기할 힘이라도 있겠지만, 규다. 다른 사람도 아닌 규가 이런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무섭냐?”

“...안 무서울 리 없잖아요...안 무서울 리...없...”

규는 츠카사를 와락 껴안았다. 그 바람에 막 울음이 터져 나오려던 츠카사의 눈은 잠시 놀라는 듯 움찔하더니 기어이 한 방울의 눈물을 떨구고 말았다.

“말했지 않았나? 너를 구해주고, 너의 목숨을 구해주는 대가로 너를 노예로 하겠다고...만약 내가 약속을 못 지키면 내 꼴이 뭐냐? 게다가 너 같이 상등품의 노예를 놓칠 것 같아? 걱정마라...절대로 걱정할 거 없어.”

규는 츠카사를 신간센의 좌석에 살짝 눕힌 뒤 한쪽 팔로 어깨를 붙잡아 끌어안았다. 규에게 반 쯤 안긴 츠카사는, 이상스럽도록 따뜻한 기분이 들며 앞이 뿌옇게 흐려져 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그녀는 의식의 끈을 놓았고, 아주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그런 츠카사를 내려다보던 규는, 약간 얼굴에 자조적인 웃음을 띄우며 곁에 놓아두었던 뉴욕 메츠 야구모자를 자신의 얼굴에 덮은 채 로 중얼거렸다.

“흠, 내가 기르고 싶어 하는 고양이들은 항상 얻는 과정이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어, 마치 게임의 퀘스트같단 말이야...”

규는 자리에 누우며 츠카사를 바라보았다. 이런, 이 녀석은 좀 간단히 내 소유로 할 수 있나 싶었는데, 아현이 못잖게 힘들잖나...

“...아.”

잠시 규는 입을 벌린 채 벌떡 일어나며 앞쪽을 응시했다. 지금까지 규가 보여준 모습 중 가장 틈이 많고 가장 느슨한 모습...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가 놀란단 말인가.

“...젠장...아현이를 깜빡했다...”

츠카사를 내려다보면서 식은 땀을 뻘뻘흘리던 규는 다시금 심각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츠카사의 저주를 풀어줄 방법보다 더 심각하게 고민하는 일은 과연 무어란 말인가...

“...음...”

잠시 고민하던 규는 쓰지도 않는다던 핸드폰을 꺼내어 국제전화를 돌리고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요란한 컬러링이 들리더니 이내 누군가가 전화를 받았다.

“아, 아현이냐. 아니 아니, 잘 지내고 있어. 그래, 다음 주면 일본으로 건너오지, 아아, 알고 있어. 응, 아니, 내가 물어볼 건 다른 일인데...그게...음...내 친구의 고민이야. 여자들이 이런 문제는 잘 알거라고 생각해. 응? 왜냐고? 아아, 넌 내 애완동물이잖아. 으, 응. 아, 그건 그렇고, 내 친구의 고민은, 원래 키우던 강아지가 한 마리 있었대. 그런데 잠시 여행 간 사이 고양이 한 마리를 분양 받은 거야, 너무 귀여운 걸로. 그걸 데리고 와서 키우고 싶은데, 키우던 강아지 눈치가 보인다고 하드라. 너라면...아. 음. 아아...아하! 아아~ 그렇다는 거지...아, 물론이야, 물론. 으음...끄...응...응? 아니 아니, 아하하하!! 절대 그런 거 아니야, 절대로!! 아, 그러면 이만 끊는다. 으응, 내일 와서 충분히 귀여움 받아, 아, 아...그럼...음...좋은 일요일 보내.”

핸드폰의 폴더를 닫은 규의 얼굴은, 왜 인지 다른 때보다 더 창백해 보였다.

“...하긴, 개가 고양이를 좋아할 리 없지...”

큰 누나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오른다. 넌 분명히 여자의 칼에 찔려 죽을 놈이라고...

“...나도 그렇게 생각해...”

한숨을 내쉬며 핸드폰만을 만지작 거리는 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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