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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2:06 518회 0건
-똥통-

미스 황이 꼬들꼬들한 머리결로 가게로 들어 온다. 방금 머리를 감고 온 듯한 모습으로…사장이 나가고, 은행을 다녀 오겠다면서 슬그머니 뒤따라 나갔다가 1시간이 넘어서야 온 걸 보면 또 어디서 한탕 뛰고 온 게 분명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도 않는 년이….사람들은 이 곳을 가리켜 똥통이라고 불렀고, 나는 복마전 이라고 부른다. 똥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한번 이곳에 발이 빠지면 왠간 해서는 그 환상에서 빠져 나오질 못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었다. 더구나 냄새 나는 구섞 임을 알면서도 스스로 발을 담그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곳. 이제는 많은 가게들이 예전과 같은 주먹구구식의 장사 습관이나 결사적으로 세금을 속여대려는 타성에서 탈피해서 세금도 정확히 손님들에게 물리고, 스스로도 자정의 결의 대회도 하건만 그 내부는 여전히 문제 투성이 였다. 청과물 시장을 밀어버리고, 전자상가를 건립할 때만 해도, 청계천과 세운상가 에서 거드름을 피우면서 쉽사리 상권이 옮겨 갈꺼나 하면서 뒷짐을 쥐고 있던 터잡이 들도 하루가 다르게 발길이 폭주하는 용산의 세력 확장에 혀를 내두르면서 너도 나도 짐을 싸서 용산 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나야 별 볼일 없는 카터맨 으로, 시도 때도 없이 쏟아져 들어오고, 나가는 덤핑 물건들을 실어 나르는 잡부에 불과 했지만, 용산이라는 거대 조직은 그 굴러가는 폼새가 입이 딱 벌어지곤 했다. 용산은 겉으로 보기에 다 같은 구섞 처럼 보여도 그 안을 살펴 보면, 그 형태가 여실히 구분이 갔다. 제일 밑바닥 에는 띠기라는 장사치들이 있었다. 대개 냉장고, 세탁기등 혼수용품을 파는 곳들이 많았는데, 어느 분야나 마찬가지지만 그 띠기들에게도 큰 손들은 버티고 있었다. 그 큰손들은 전화 한 통에 중간책들에게 자신이 대량으로 잡은 덤핑물량을 적당한 크기로 현빡-현금 매출-에 의거해서, 이것이 또 얼마의 돈이 붙어, 서너 대씩 그 밑의 하부 판매상으로 넘어오고, 마지막에 철 지난 전시제품 이랑, 카탈로그, 입담 좋은 매장 점원만을 고용한, 이름하야 개털들로 불리워 지는 띠기 원조들에게 인수되어 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돈도 없고, 물건도 없이, 가게터와 전화기 한대 붙들고 능수능란하게 손님들에게는 자신들이 무슨 큰 창고라도 갖고 있는 양, 떠벌리면서 거래를 주무른다. 이른바 띠기라고 부르는 이유는 물건을 틀어쥐고 있는 상위 업자로부터 적게는 오천원, 더 좇 같은 경우에는 천원을 더 보태서(띠기해서)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아야 할 정도로 적은 마진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 곳은 되도록 현찰로 받는 것을 선호하고, 불법이기는 해도 카드를 사용할 경우, 카드 수수료까지 대번에 손님에게 물리고, 더 한 곳은 자료(정식 세금 보고자료)가 필요한 다른 가게에서 손님의 카드를 들고 가서 긁어오기도 하는 것이 기본 자세였다. 그들 보다 조금 나은 계층이 딜러 였다. 이 딜러 들은 돈은 없지만, 총판으로부터 외상으로 들여온 물건을 소비자에게 파는 데에는 재주를 타고난 사람들 이었다. 언제나 받아 드는 물건들이 외상으로 인해서 다음 달에도 총판측에 미수금을 어느 정도 깔고는 들어가지만, 그제까지의 거래 실적을 들먹이면서 다음 달에는 보다 좋은 가격으로(!), 지난달과 다름없는 물량(?)을 큰소리 치면서 개런티 하는, 이름하야 공급처나 총판을 향한 뺀질 거리는 뻥치기를 무기로 삼는 부류들 이었다. 소비자들이 보기에 그들은 모든 부품을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가격도 다른 점포에 물어 보는 일이 없어서 그런대로 탄탄한 가게로구나 라고 생각할 지는 몰라도, 띠기나 딜러나 그 나물에 그 밥은 마찬가지 였다. 나 같은 카터맨 들이 가게에서 잔뼈가 굵어져 독고다이 나까마로 나가거나 혹은 큰맘 먹고 그 간의 경험을 토대 삼아, 모시던 사장의 도움으로 작게나마 가게를 얻어, 딜러로 나서는 것이 용산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모습 들이었다. 그 다음이 바로 유동층 이었는데, 바로 이름하야 눈먼 돈, 혹은 고문관 이라고 불리는 계층들이었다. 용산 에서 잔뼈가 굵은 사장들은 언제나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

‘느그들 아냐? 용산에서 돌고 있는 대부분의 물건들은 그 고문관들의 돈으로 움직이는 거여.’

청운의 푸른 꿈을 안고, 마음만 앞선 채, 돈만 들고 덜컥, 용산 으로 발을 들여 놓은 사람들…보기 좋게 시장에 내던져진 덤핑 물건, 팔 재주도 없이, 싼 맛에 몇 번 잡았다가, 대번에 거덜 나거나, 메모리다 CPU다 해서 곧 파동이 날 거라는 출처도 불분명한 소문에 휘말려, 집 팔고, 땅 팔아서 꿍쳐 두었다가 좇된 고문관 사장족들….사실 그들이 돌린 돈들로 용산이 돌아간다는 말도 일리는 있어 보였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인물들이 이름하야 쩐사장, 혹은 물주들이라고 불리우는 사람들 이었다. 이런 사람들이야 말로 용산에서 내노라 하는 장사꾼 들이었는데, 정상적으로 탄탄히 기초를 밟아 나가면서, 소비자를 왕으로 모시고, 상도의를 지키기는 커녕, 그들의 술수는 가히 전문 사기꾼들을 능가했다. 그들이 가진 건, 돈밖에 없었지만 그들의 밑에는 언제나 기동타격대 처럼, 준비된 쟁쟁한 나까마 들이 버티고 있었다. 원래 나까마란, 일본말로 동아리, 혹은 패거리라는 뜻인데, 이 나까마 들이 시장의 물건 흐름을 좌지우지하는 힘이 대단했기에 붙여졌던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본다. 대개 유능한 나까마 들은 독고다이(혼자 뛰어 다니는 인물을 일컬음)들이 대부분 이었다. 허리 춤에 주루륵 삐삐와 핸폰을 두 어개 씩 차고, 시도 때도 없이 용산이 좁다 하고 이동해 가면서 전화를 걸어 대는 인물들, 그들은 객장도 없고, 어디 엉덩이 붙일 곳도 없었지만, 속전속결로 시장에 내 팽겨쳐진 덤핑 물건을 두고, 하이에나 처럼 들러 붙어, 순식간에 이리저리 찢어 발기면서 바람같이 거래를 끝내며, 자신의 몫만을 유유히 챙겨가는 외인 부대들 이었다. 때로 어떤 나까마들은 매장을 소유하고 있지는 않으면서도 어느 유명한 가게의 실장, 과장 등의 직함으로 들어가 있으면서 위로는 사장의 돈을 움직이고, 밑으로는 자신이 깔아놓은 인맥과 그 간의 유명세로 물건들을 움직였다. 여기서 또 다시 등장하는 것이 큰 손들 이었다. 그들의 정체는 몇 사람만이 알고 있었다. 그들은 용산과 전혀 상관없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사실은 용산에 쏟아져 나오는 물량 중에서 덤핑에 해당되는 것들은 거의 그들의 손을 거쳐서 요리되지 않는 것들이 없을 정도 였다. 대기업들이야 물량 밀어 내기로 자사의 대리점들을 압박하고 있었지만, 용산 에서는 그 대리점들 조차 자신의 급한 사정으로 인해 덤핑을 쳐야 할 경우에는 나까마의 윗선 으로 줄을 넣어, 본사와는 별도로 이 큰 손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실정이었다. 지금이야 많이 개선 되었지만 용산에 전자랜드가 생길 즈음에는, 아예 터미널 상가 앞에 트럭을 대놓고 그 유명하다는 S기업 조차 큰손과 맥이 닿아 있는 나까마 들에게 현빡을 조건으로 덤핑을 쳐댔으니 일반 소비자들이 알았다가는 경을 칠 노릇 이었다. 보다 싸게 매입해서 조금이라도 더 붙여 팔아야 하는 것이 상인의 지혜였으나, 그 바닥에서는 좇도 그런 게 없었다. 나 같은 배달맨은 감히 상상도 못하는 돈뭉태기를 들고 다니며, 덤핑 물건을 잡아채는 나까마들의 현금 동원력만이 특효약 이었고, 그들의 그런 힘은 가히 상상을 불허 했으니까. 이와는 별도로 용산에서 이름을 날리는 인물들은 바로 수입파 들이었다. 오퍼상을 하다가 짭잘 하게 재미를 느껴 용산으로 진출한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는데, 그들은 한국에서 생산이 안 되는 가전제품이나, 부품들에 집중적인 시간차 공격으로 시장을 뒤 흔들고 있었다. 아직까지도 컴퓨터의 중요 부품인 CPU를 못 만드는 한국의 실정을 그들은 불을 보듯 뻔히 알고 있었다. CPU의 양대 산맥인 I사와 A사의 한국 지점에서 조차, 손을 대지 못하는 그들만의 독자적인 수입 공세에는 맥을 못 추었으니까. 하긴 중간 중간에 소비자들은 잘 구분하기 힘들겠지만 미세한 결함으로 불량 판정을 받았거나, 오버클럭킹이 가능한 CPU의 표면을 얇게 갈아서 보다 빠른 제품처럼 표면의 상표 프린팅을 가짜로 해서 들여온 짝퉁 부품을 속여서 파는 것 이외에는, 떡 하니 외국 자본을 들여와 지사입네 하고 틀어 앉아 있어도, 그들을 대놓고 조질 방법은 없었다. 왜냐하면 그들도 한국에 나와 있는 본사와 연계된 대리점은 아니었지만, 정상적인 방법에 의거해서 수입해 온 정품 물량들 이었기에…대개 그들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수입을 결정하지는 않았다. 미국의 LA나 산호세의 창고들과 연계된 그곳 현지의 나까마 들과 긴밀한 연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은 시세 차액이 발견되는 모멘트가 감지되면 부피가 작으면서도 고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CPU, 인기있는 외제 마더보드, 비디오보드, 대용량 고속 하드디스크 등을 줄창 들여야 시장에 깔아댔다. 그러나, 이 세상은 경쟁사회라고 했던가? 미국 현지의 나까마 들은 용산의 물주 몇 명을 자신의 거래선으로 더 꿰찬다고 해도 상관이 없었다. 어차피 그들은 물건을 비행기로 하루 이틀 내에 약속된 거래선으로 실어 보내고, 돈은 초고속으로 TT 케이블로 받아 챙기기에, 그 와중에 발생하는 용산 내에서의 물고 물리는 나까마와 경쟁점포 간의 피 터지는 가격전쟁에는 어차피 관심이 없었다. 나는 그 와중에 전해 듣는 얘기들을 통해 용산 내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물고 물리며, 밟아 대면서 살아 남기 위해 처절하게 몸부림치는 장사치들의 혈전을 감상하는 것 만으로도 영광이었으니까 말이다. 시골에서 올라온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나에게 주어진 일은 손님과 상담한다는 것은 꿈도 못 꾸고, 그저 사장이 시키는 대로 물건이나 배달 해주고, 받아 오고, 미수전표나 받아 오면 그 뿐이었다. 그러다 보니, 시장 내에서 카터맨들 끼리는 서로 만나서 정보도 주고 받고, 배달을 다녀 오는 사이에 동과 동 사이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땀을 식히는 일들이 많았다. 내가 일을 배우며 배달을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만난 6동-용산 내에서는 구지 상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대개 상가의 호수를 대곤 했었다. 이름으로 불리우는 상가는 랜드를 비롯해서 몇 되질 않았다.-의 천식이가 나를 보며 말을 걸었다.

‘너 처음 보는데 새로 왔냐? 대박 컴퓨터? 나 자-알 알쥐.’

‘네?’

‘네는 무슨 네? 너 몇 년 생이냐?’

‘00년 생인데요?’

‘와 그럼 나랑 같네, 우리 말 까고 지내자. 나 김천식 이야.’

‘그래? 반갑네. 난 송수근.’

천식이는 벌써 용산 밥을 먹은 지 3년이 넘어서는 주임이라고 했다. 컴퓨터의 컴자도 모르다가 이제는 조립에서, 배달, 상담까지 못하는 것이 없다고 했었다.

‘수근아! 이 용산이라는 곳, 정말 웃긴다.’

‘왜?’

‘너 나까마 라고 들어봤지?’

‘근데, 왜?’

‘너 용산에서 일하는 사람이 도대체 몇 명이나 될 것 같냐?’

‘글쎄, 천명, 이천명? 그런데 왜?’

‘이곳은 가전제품만 갖고 돈을 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야. 그 많은 사람이 동시에 점심을 먹는다고 생각해 봐. 그 쌀이며, 재료가 얼마나 필요할까? 내가 들은 바로는 그 많은 이곳 식당들에게 쌀을 대는 사람도 나까마 중의 한 사람 이었다고 하더라구. 별게 다 나까마야. 그 많은 사람의 아가리에 밥을 넣어줘야 하는데 쌀을 어느 누가 독점으로 대고 있다고 생각해 봐. 좇나게 고생하고, 썰 풀어 가면서, 달랑 컴퓨터나, 냉장고 한대 팔아먹는 거에 비하면 정말 대단한 장사 아니냐?’

나는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 머리가 미쳐 있었던 천식이는 무언가 남 달랐다.

‘너네 사장은 오늘 아침에 뜬 다던 물건 잡았다니? 우리 사장은 50대 찜 해 놨는데…’

‘난 잘 몰러. 찜은 또 뭐래?’

‘떰핑말이야, 떰핑? 너 아주 깜깜 이구나? 찜이란 말은 물건이 떴을 때 우리가 인수 하겠다고 선약을 받아놓는 걸 찜이라고 하는 거야. 보험아줌마가 그러는데 꼭 잡아야 한다고 그러던데….’

‘보험 아줌마는 또 뭐래?’

‘넌 일수 안 찍냐?’

‘그게 뭔데?’

‘산 넘어 산이네, 으이그…’

상가 내에는 보험을 들라고 다니면서 하루에 얼마씩 도장을 찍으며 일수를 걷어가는 아줌마들이 있었다. 그들은 가게마다 안가는 곳이 없어서 어느 가게가 흔들거린다, 이번에 내놓는 그 가게의 덤핑은 빚잔치를 위해서 준비하는 것 같으니 가격이 좋을 것이다, 꼭 잡아라 라는 등의 중요한, 발로 뛴 정보들을 흘려가면서 입지를 굳혀 갔기 때문이었다. 나는 맨 처음에 덤핑의 의미도 몰랐었다. 다만 사람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장사는 안되니 떨이로 내놓는 것이 아니겠는가 하고 혼자 추측만 해 볼 뿐이었지만, 상가 안에는 정기적으로 덤핑을 쳐 대는 인물들이 꽤 있었다. 그들은 소비자들을 상대로 하는 장사에는 애초에 관심이 없었고, 그저, 한번 발을 들여놓은 포카판 에서 한 판이라도 발을 뺐다가는, 다음 번에 배팅도 못하고 밀려나는 것에 자존심이 상하는 것 마냥, 윗선의 물주들로부터 물밀듯이 쏟아져 내려오는 물건들을 무조건 받아대는 인물들 이었다. 그 이유는 대량의 물건을 현찰을 주고 매입해서 한달 내에는 도저히 소비자에게 다이다이(소비자 개개인에게)로 팔기에 턱없이 부족한 시간으로 인해, 묶여버릴 자금의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들여온 원가 이하로 시장 내에 우선 덤핑을 치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위로부터 받아 쥔 물건을 손해는 보지만 원가 이하로 나마 시장에 풀어 현금화 한 뒤에, 다음 물건을 받기 전까지, 보다 짭짤한 다른 아이템들을 그 돈으로 매입해서, 빵꾸 났던 자금부분도 메꾸고, 자기 살길도 챙겨 가는 독특한 방식을 적용했기 때문이었다. 대기업들 조차도 하부 조직의 그런 영업 행태를 알고는 있지만, 밀어 부쳐야만 하는 그들의 물량을 그나마 소화하면서 돈을 갚아 나가는 그들의 끈끈한 자세 때문에 그 속내를 알면서도 그 독특한 경영방식에 야지를 놓지는 못했다. 다른 형태의 덤핑은 바로 빚잔치, 혹은 세금을 뚜드려 맞기 일보 직전의 물건 빼기가 그 원인이었다. 어차피 망할 것, 제대로 값도 못 받을 거, 현금화라도 시원하게 해야 되겠다고 시장에 띄우거나, 혹은 해도 너무 한다는 시선을 받으면서도 구지 소비자들 에게 주변 딜러들의 원성을 사면서까지 저렴한 가격에 후려치다가 기어이 세금을 뚜드려 맞을라 치면, 무자료로 거래 해왔던 자신의 공백을 조금이나마 줄이고자 풀어 놓는 것이 또 다른 덤핑의 형태였다.

‘세상 돈은 전부 여기 모인 것 같은데, 내 돈은 어디서 잠자고 있으려나?’

천식이는 포부가 대단했다. 3년 이내에 자기의 가게를 꼭 갖겠다는 것이었는데, 그 때문인지는 몰라도 천식이는 그 가게에서 이제는 없어서는 안 될 정도의 발 빠른 정보력과 인맥을 이용해서 신기하게도 덤핑으로 뜨는 물건들을 귀신같이 물어와서 사장의 마음을 기쁘게 했었다.

‘배달 갔다 왔습니다.’

‘응.’

나이도 나보다 어린 것이 언제나 반말 이었다. 그러나, 그녀에게 함부로 할 수만은 없었다. 맨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주변에서 경리를 자주 갈아 치우는 사장들이 꽤나 있었다. 우리 사장을 포함해서….이름하야 꿰차고 들어 먹는다는 그 경리들의 스토리. 용산의 가게치고 무자료 거래가 한 건도 없다는 것은 새빨간 거짓말이고, 그 뒷감당이나 자료조작의 짐을 사장이 혼자 도맡아서 하는 경우는 특별히 성격이 까탈스럽다 든가 아니면, 경리가 자기의 마누라일 경우, 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만일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다는 그렇진 않지만, 사장 자신의 구린 부분을 정확히 꿰차고 있는 경리들을 자기 사람으로 만들어, 주기적으로 쥐약을 멕여 가며, 데리고 달래가며 보지를 꿰찬 채, 경영을 하거나, 다른 직원들 몰래 쥐어주는 뒷돈 맛에 빠져 들게 해서 발목을 잡아 채는 것이 통례적이었는데, 후자의 경우는 인물이 좇나 후질 경우였다. 사장들은 무척이나 경리들의 인물과 체격을 따졌고, 그에 따라 집어 주어야 하는 액수도 차이가 난다고 농 삼아 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공공연히 가정이 있는 사장들에게서는 앙칼진 사모님의 확인 전화가 가게로 시시 때때, 걸려 오는 적이 많았다. 경리와 사장의 관계는 똥통의 세계 에서는 잘 알려진 악어와 악어 새의 공생관계 였던 것이다. 그러다, 눈이 맞아 결혼을 하는 경우도 있었고, 있던 마누라를 차버리는 경우도 생기는, 아무튼 요지경 속이었다. 오늘도 사장이 먼저 나가고, 미스 황이 그 뒤를 따라서 은행 타령을 하면서 나갔다. 또 나 혼자 가게를 봐야 하니, 내참….한시간이 넘게 지났을까? 전화벨이 울렸다.

‘흑흑….흑흑…..미스터 송, 저 미경이 에요….흑흑….’

‘어쩐 일이에요? 왜 울고 있어요? 소매치기라도 당했어요?’

‘흑흑… 아니요….저 이곳에서 나갈 수가 없어요. 좀 와주세요. 흑흑’

그 목소리는 서러움에 북받쳐 나오는 울음이었다. 어쩐 일이지? 나는 가게 문을 닫기 전에 사장에게 전화를 넣었다. 메시지로 연결되어, 물건 배달을 다녀 오겠으니 가게를 잠그고 갔다 온다는 말을 남겼다. 미스 황은 용산 역에서 멀지 않은 모텔에서 전화를 한 것이었다. 전자상가와 한강로를 잇는 지하도를 부리나케 뛰어가면서 나는 온갖 상상을 다 했다. 구수한 냄새의 감자탕 집이 즐비한 용산역을 지나 나는 그 모텔로 들어섰다. 방문을 두드리자, 얼굴이 핏자욱과 멍자욱이 선명한 채로 미스 황이 문을 열었다.

‘어떻게 된거요? 무슨 일, 있었수?’

나는 방안에 혹시 누구라도 있는가 싶어서 기웃거리면서 방안으로 들어섰다. 미스 황은 얼굴을 가리듯이 숙이고 있었는데, 맞아도 정통으로 두둘겨 맞은 것으로 보였다. 머리칼에는 온통 풀 같은 것이 떡칠을 하고 있었고, 입가는 번들거리고 있었지만 솔직히 나는 그게 무얼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다.

‘옷이 찢어져서 도저히 나갈 수가….’

침대 시트를 감고 있는 그녀의 주위에는 브레지어며, 팬티, 입고 나갔던 블라우스, 스타킹들이 갈갈이 찢어진 채로 어지러이 널려 있었다. 아마도 입고 나갈 것이 없어서 나를 부른 것 같았다.

‘잠깐만 기둘 려요, 내가 밖에 나가서 걸칠 옷을 사가지고 올 테니…’

‘잠깐만요, 절대로 천식씨를 만나더라도 천식씨 에게 만은 말하면 안돼요, 절대로…’

‘천식이를 알아요?’

‘네. 결혼하기로 한 사이에요.’

‘그런데 이런 곳에는 왜?… 아무튼 다녀 올께요.’

나는 방을 나서면서 문을 단단히 걸어 잠그라고 시켰다. 나는 용산역 앞의 좌판에서 싸구려 바지와 티셔츠 쪼가리, 그리고 3개를 한 무더기에 파는 팬티 세트를 사가지고 방으로 돌아왔다. 브레지어는 사실 사이즈를 몰라서 사기 그랬지만, 팬티는 대충 입어도 맞을 것이라고 아주머니가 그러셔서 그냥 사 버렸다.

‘고마워요.’

그녀는 화장실로 들어가더니 사온 옷을 갈아 입고 나왔다. 조금 헐렁한 듯 해도 대충 입고 집에 가기에는 별 무리는 없어 보였다.

‘그렇게 부은 눈으로 집에 갈 수 있겠어요? 편의 점에서 싸구려 썬그라스 라도 사올 걸 그랬나?’

그녀는 아니라고 하면서 화장실에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아까와 다르게 머리를 감고 얼굴의 번들 거리는 자욱을 지우고야 나왔다.

‘물어 보기는 뭐하지만, 무슨 일 있었어요? 사장이랑 나가는 것 같던데….’

‘그걸 어떻게?’

‘용산에서 일하면서 그 정도도 알아채지 못하면 병신 소리 듣죠. 사장이야 그 판에서 내노라 하는 바람둥이라고 소문이 자자한데, 이렇게 손찌검까지 하는 줄은 몰랐네. 인간이 왜 그러나?’

‘사장님이 아니었어요.’

‘님은 무신 얼어 죽을 놈의 님…’

‘사장은 그저 소개한 죄 밖에….’

‘아니, 사장이 돈 벌면서 장사하는 것도 모자라 윤락업 까지 겸했답디까? 무슨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내일 모레, 큰 물건이 들어 오는데, 그 물건을 뿌릴 사장님들이니, 잘 모시라고 해서 저는 술 접대를 하는 줄 알았어요. 대낮에 왠 술접대 인가 해서 의심도 갔지만 워낙 중요한 껀수라고 하니, 이렇게 대낮부터 접대를 하기도 하겠구나라고 의심을 않 했죠.’

‘그런데요?’

‘그게 아니었어요, 요 앞의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세 사람의 건장한, 나이 새파란 아저씨 셋이 들어오는 거에요.’

그들은 들어오자 마자, 정육점의 고깃덩어리 살펴 보듯이 음흉한 눈길로 미스 황을 훑어 나가기 시작해서 눈길을 어디로 둘지 몰라 당황 스러웠다고 했다. 그들은 미스 황과 사장을 데리고 곧장 이 모텔로 들어와서는 당당하게 방으로 들어 가더라는 것이었다. 사장은 밖이 워낙 더우니, 시원한 모텔 안에서 술대접을 하면서 중요한 얘기를 할 것이니 걱정 말라고 하면서 등을 떠밀었고… 세 사람이 방안으로 먼저 들어가고, 미스 황이 방안으로 들어서는데, 뒤따라 들어 오겠다던 사장은 뒤에서 문을 쾅 닫고 망을 보는 자세로 바꾸더니만 자기를 방안으로 획 하니 밀어 넣더라는 것.

‘그래서요?’

‘내가 바닥에 엎어졌다가 일어나는데 나를 주위로 둘러선 그 세 남자가 징그럽게 웃으면서 내 주위에 뱅 둘러서는 거 아니겠어요?’

‘그리고 때렸어요?’

‘뭘 몰라도 한참 모르시네. 둘러선 그 사장들이 그 때부터 벗지 않겠다고 반항하는 나를 두드려 패가며, 옷을 찢어가며, 강제로 벗기기 시작한 거죠.’

‘그 동안 사장은 뭐하고?’

‘디칸가 캠코던가로 정신 없이 찍어 대더라구요. 완전히 그 놈들의 개처럼…..흑흑….’

‘울거 없어요. 누굴 욕하겠어요? 자업자득 아니겠어요? 천식이 처럼 성실하고 똑소리 나는 사람을 결혼 상대자로 둔 여자가 소문도 않 좋은 사장과 어울려 다녔으니, 어디다 하소연 할 수도 없게 됐잖아요? 지금 당신, 꼴 좀 봐. 내가 천식이라면 죽여버렸을 거다, 징말, 어휴, 속 터져…..’

‘다 그게 천식씨 때문이에요.’

‘아니, 그건 또 무슨 말이래요?’

‘가게 사장님도 천식씨가 소개해 준 거에요.’

뒤로 나가 자빠질 노릇 이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겉으로는 평범한 일반 소비자를 상대하는 조립 제품 전문점처럼 보여도 뒤로는 막대한 돈을 움직여 용산의 물을 흐려 놓는 악덕 물주중의 하나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장의 뒤를 잡으려고 몰래 자신의 여자 친구를 심어 놓은 것인데, 이제까지는 그저 쭈물팅 정도로 사장의 치근덕을 방어하면서 갖은 정보를 빼내 천식이 에게 전해 주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리 라고는 자신도 예상치 못했다는 것이었다. 내 생각에는 아마도 사장이 그 낌새를 눈치채고 미스 황이 찍소리 못하게 할 심산으로 사람들을 시켜 덮친 듯이 보였다. 나는 천식이를 부르는 것이 좋겠다고 말했다.

‘안돼요. 그럼 천식씨, 돌아 버려요. 가뜩이나 번번히 상도의도 무시하고 자기를 물 먹인 사장을 조져놓을 거라면서 이를 갈고 있는데, 이런 일까지 겹치면 누구 하나 죽어나갈게 분명해요. 제가 꿀꺽하고 아무 말 없으면 다 조용해 지는 것인데, 어떻게 뻔히 결과를 내다보면서 천식씨를 부를 수 있겠어요? 저는 못해요.’

‘그렇게 침묵할 정도로 별거 아니었다 그 말이죠?’

‘…….’

그녀는 말이 한동안 없었다. 그제까지 옷을 입고 있던 미스 황이 내 앞에서 옷을 벗어 보였다. 기왕지사 볼거, 못볼거 다 보아버린 나라고 생각해서 인지, 옷을 벗는 데에 스스럼이 없었다. 윗도리를 벗고, 바지와 팬티를 벗고 보여주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온 몸에는 멍자욱 투성이에 세 놈이서 조질 나게 빨아 댔는지 가슴과 젖꼭지는 퉁퉁 부어 있었고, 보지 위의 둔덕 즈음에는 살에 물집까지 잡혀 있었다. 아마도 담뱃불로 지져대기까지 했는 모양이었다. 돌아서서 상체를 앞으로 수그리면서 보여 준 보지와 똥꾸녕은 그야말로 피떡이었다. 갈갈이 째져 피가 비치는 데도 그 세 놈은 쉬지않고 그녀의 보지며, 똥꾸녕에 회심의 일격을 그것도 연발타로 날린 것 처럼 보였다.

‘보셨죠? 이렇지만 저는 입을 다물기로 했어요. 만일 이런 모습을 천식씨가 보았다면 어떻게 되겠어요? 그 놈들은 내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잊을 수 없을 거에요.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좇으로 꺼덕 대면서 내 보지에 그것도 한꺼번에 두 좇을 쳐 박았던 그 왼쪽 눈가에 점박이, 그 새끼는 절대, 절대……’

그 놈은 좇대가리도 제일 큰 놈이, 해바라기도 좇같이 우둘두둘 하게 해 가지고 설랑은, 그녀의 보지며 똥꾸녕을 있는 대로 찢어 발겼단다. 나는 그녀를 위로하면서 천식이를 부르는 것은 하지 말자고 약속했다. 그녀와 나는 두시간 정도 얘기를 나누다가 그 모텔을 나왔다. 그녀는 지금부터 시골집에 내려가 얼굴의 붓기가 가실 동안 서울로 올라오지 않을 거라고 했고…다음 날은 아침부터 사장이 서두르면서 나를 볶아댔다. 아침부터 용산 에서 내노라 하는 나까마들이 잠시 가게를 들락 거렸고, 옆에서 들으니 나까마 들에게 큰소리 치는 내용인 즉슨, 물건이 뜨는 대로 사장이 전부 인수해서 4시간 안에 바로 현찰화 시켜 돈을 결재 하기로 하는 소리였다. 아니나 다를까, 평소에는 오지도 않던 딜러 사장들이 줄지어 가게로 들어와, 어디론가 전화하면서 연신 싱글대고 있는 사장과 한번 이라도 눈을 맞추려고 안간힘을 쓰고…아무래도 그들도 사장이 물건을 잡았다는 말을 전해 들은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 나까마들은 자리를 비우고 한 사람도 보이질 않고 있었다. 사람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사이, 두 사람의 점잖은 대기업 임원 풍의 사람들이 가게에 들어섰다. 사장은 머리를 굽신 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나보고 차를 타오라고 시켰다. 말하는 폼새를 보아하니 그 큰 물건을 댄다는 사람들이 틀림 없었다. 차를 갖고 가자, 사장은 차를 권하면서 품속에서 봉투를 한장 꺼냈다.

‘이거 결재 대금 입니다. 한 장으로 끊었습죠.’

‘먼저 이렇게 주셔도 되겠습니까?’

‘뭘요, 제가 믿는 형님이 날리시는 물건인데, 제 사재를 털어 미리 준비 했지요. 팔려 나가는 거야, 시간 문제 인데, 형님께 4시간이라는 지겨운 꺼리를 안겨드릴 이유가 없질 않겠습니까? 그렇잖아도 우리 동생들이 직접 발로 뛰면서 번개같이 찢어 뿌린다고 하니, 걱정 붙들어 매십시오, 갸들이 나까마 생활, 원 투 데이 했습니까? 형님께 안부나 전해 주십시오. 언제 술이나 한잔 제가 거하게 사겠다고요.’

그들이 돌아가고, 사장은 서부 이촌동 강변로로 나가는 쪽에 위치한 가게 창고로 적어준 물건을 인수해서 부려 놓으라고 시켰다. 사장이 말해준 자리로 가 보니 그곳에는 정말 어마어마한 물량이 버티고 있었다. 사장에게 나는 전화를 넣었다. 사장은 흥분한 목소리로, 창고에 물건을 적재 시킨 뒤에 가져오라는 샘플 한 통과 그들이 변호사 공증까지 했다는 물품 인도증을 들고서 마지막으로 전화를 때렸다. 사장이 아니고, 천식이 에게….

‘천식이냐? 나 수근이다. 물건 들어왔다. 대금은 내가 예상한 대로 한 장으로 끊어서 선 지급했고….’

‘알았다. 수고했어. 넌 그리고, 풀지않은 샘플로 한 박스만 들고 가게로 들어가. 모르는 척 하고서…’

나는 가게로 들어가 창고 인수증과 함께, 샘플 박스를 내밀었다. 가게 안에는 사장들이 웅성거리고 있었다. 내가 샘플을 가져오자, 사장들이 달겨 들었다.

‘어디 좀 보자, 우리 복덩어리….이거 한 몫 하겠는걸. 자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짜잔!’

미국 포장박스가 열나 딴딴 하다며 칭찬을 끓어 엎어지게 하던 사장은 박스의 포장을 열고는 얼굴이 하얗게 변해 버렸다. 누군가 그랬다.

‘화, 이거 좇 됐네. 이제는 쓰지도 않는 펜티엄 60메가 CPU에, 저건 또 뭐야, 재활용 CPU에다, 이건 쌍판떼기 갈아 붙인 오바클럭킹 야매 CPU까지….. 사장님, 꽤나 힘드시겄수, 그거 다 팔아 치우실려면…쯧쯧…..’

사람들이 혀를 차면서 가게를 슬그머니 빠져 나가고, 사장은 넋을 놓고 있었지만 어째서 나까마들이 나타나 연락을 때리질 않는 지는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다. 그 넋나간 표정을 두 사람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는데…미스 황의 얘기를 듣고서, 나와 천식이가 짜낸 함정에 그대로 걸려 버린 못난 또라이… 그들이 정품으로 사전에 거래를 트자고 한 것은 틀림이 없었다. 그러나, 내가 받아 온 인수증에는 그 품목이 자세히 쓰여있질 않고, 다만 CPU라고 기재되어 있어서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었다. 그들은 쓰레기 더미를 모아다가 신제품 가격을 받고, 폐품 활용을 멋지게 했던 것이었다. 천식이는 내가 해준 얘기를 듣고, 시골에 내려가려고 준비하고 있던, 만신창이가 된 미스 황을 붙들어다 자신들이 잘 아는 나까마들을 모두 불러 모아 그들 앞에 내세웠다고 한다.

‘형님들, 제발 우리 불쌍한 미경이를 봐서라도 한번 도와 주세요. 아무리 사람들이 똥통이라고 부르는 용산 이지만 그래도 이건…’

그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통곡을 하던 천식이와 미스 황을 지켜보던 나까마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다는 번개 형님이 그랬다고 한다. 나까마의 쉰맛을 한 번 보여주자고…그들의 치밀한 계략으로 정품은 쓰레기 재활용 CPU로 순식간에 탈바꿈 했고, 물건을 뿌린 다던 그 큰손도 번개형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이 작업에 동참하기로 했단다. 이미 수표 한 장으로 받아 챙긴 돈은 그 형님의 손으로 들어가 나올 줄 모를 것이고, 용산의 물을 더럽힌다고 욕을 먹어 가면서도 제멋대로 남들을 짓밟고 돈을 모으던 사장은 한 순간에 쪽박을 차버린 것이었다. 법적으로도 하자가 없는, 변호사 공증까지 받아 두었다던 물품 인도증까지 생각하면, 정말 통쾌한 순간 이었다. 남들이 똥통이라고 비아냥 댈 지언정, 바르게 살려고 애쓰는 그들의 몸부림 속에서는 그냥 똥내가 아니라 구수한 퇴비냄새가 섞여 나오는 것을 나는 그제서야 알았다. 천식이와 미스황은 나까마 들의 축복을 받으며, 지난 해, 결혼식을 올렸고, 나는 그 가게에 차세대 나까마로 과장이라는 직함을 달았다. 아직 똥통에 발을 담그고, 그 일이 운명인 것처럼 씁쓸히 받아 들이면서도, 갈수록 정이 드는 이 곳을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똥통이면 어때? 구수하기만 하구만! 야! 윤군아, 물건 실으러 가자꾸나!’

그렇게 용산을 메우는 사람들의 발길은 바쁘기만 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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