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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취인 불명 - 단편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04 579회 0건
수취인 불명-수취인 불명-



내가 공무원으로, 그것도 우편국에 취직할 줄은 정말 몰랐다는 것이 친구들의 공통된 말 들이었다.



‘왜? 우체부가 어때서? 야, 인터넷이고, 나발이고 간에, 이제 편지 쓰는 사람들 다 디진 것처럼 말들 허는데, 실상 그렇지 않다구. 이게 3D직종이라서 그렇지,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인지 너그들이 몰라서 허는 말이야. 그리구, 요즘 세상에 명퇴 걱정 없이, 다닐 수 있는 직장이, 공무원 빼고 몇이나 있대디?’



친구들도 명퇴 어쩌고 하는 단어에는, 모두 다 수긍하는 바가 컸다.



‘야, 그래도 그렇지, 기껏 대학 졸업하고, 집배원이 뭐냐?’



‘한국에서 대학 전공 따라, 제대로 취직될 수 있는 재주 가진 년놈 있으면 나와 보라구 그래. 뭘 몰라서 그렇지, 이게 얼마나 기깔난 직업인데….’



난 2015년의 빠듯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었지만, 나의 선택에 조금치도 후회란 것은 할 수 없었다. 난 맨 처음부터 집배원의 파트로 배치가 되는 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내 예측과 달리, 난 엉뚱한 부서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제일로 기피한다는 그런 부서로 말이다. 쏟아져 들어오는 우편물의 더미 속에서 헤엄치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줄 알고 있었던 내게 떨어진 업무는 아주 쌩뚱맞은 거였다.



‘왜 그러고 서있어?’



‘네? 아닙니다. 오늘 부로 배치 받은 김승길 입니다.’



‘이름은 됐구, 어여, 일루 빨리 와서, 분류 작업 부텀 해.’



‘네.’



난 그 넓은 방 안에 혼자서 일을 하는 나이 든 노친네-보기에 그렇다는-의 호령에 따라 분류 작업을 돕기 위해 팔을 걷어 부쳤다. 그러나, 그 일을 하기도 전에, 그 방의 문이 덜컹 열리면서, 몇 무더기의 우편행낭 더미가 또 다시 실려져 들어왔다.



‘아니, 식전 댓 바람부터 왜 또 들이대고 있대?’



‘모르죠……그냥 이렇게 무작시리 들이 닥치니, 저희들이야….’



‘놓고 가……어제 내기 한 거, 내가 딴 거 알고 있쥐? 점심 사는 거 있지 말라구!’



‘안 떼어 먹어여. 하여간, 꼭 저러신 다니깐…..이제 조수도 받으셨으니, 한시름 놓으시겠네여.’



‘조수가 사수보다 뛰어난 거 본 일 있대? 다 개수작 이라구.’



옆에서 듣고 있는 내가 민망하지도 않으신 모양 이었다. 내가 근무 하게 된 부서는 우리끼리 부르는 말로 멍텅구리라고 불리우는 곳이었다. 그렇게 불리워지고 있는 이유라면, 갈 곳을 잃어 버린 우편물이 돌고 돌아 최종적으로 안착하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대개 수취인과 송부인의 주소가 정확할 경우, 그 우편물은 수취인 불명의 직인과 함께, 송부인 에게로 돌아가지만, 발신국의 직인만 있고, 보내는 주소나, 받는 주소가 모두 모호할 경우, 대개는 몇 번을 돌고 돌다가 우리 부서로 반드시 오게 되어 있었다.



‘이걸 어떻게 분류하져?’



‘교육 받은 것도 몰라? 일단 송부인의 주소가 멀쩡해 보이는 것들은 다시 분류처로 돌려 보내고, 나머지를 갖고 분류하는 거야. 자, 볼테야?’



그 분은 손가락에 고무로 된 골무를 세 개씩 끼우고, 번개 같이 분류해서 앞에 놓여 있는 커다란 행낭 주머니의 벌려진 구멍으로 표창을 날리듯이, 우편물을 날려 넣었다. 도대체 주소를 보긴 보는 거야?



‘와!’



난 그 속도에 감탄하고 있었다. 역시 관록 있는 그 스타일로 인해, 나 같은 초짜의 관심을 짓누르기에 충분한 그 노련미…..



‘왜 그러세여?’



갑자기 손에 쥔 봉투를 던져 넣지 못하는, 그 분의 모습을 보고 내가 물었다.



‘저기 저 구석에 있는 상자 쫌 가져와 봐.’



‘네.’



난 구석에 마련 되어 있는 그 분의 책상 위에 있는 종이상자를 들고 왔다. 그 안에도 수북이 쌓여있는 우편물이 있었고, 그 상자 안으로 손에 쥔 그 봉투를 던져 넣으시고는 다시 분류를 시작하셨다. 난 오전 동안, 겨우 행낭의 반 정도 밖에 분류하질 못했고, 눈깔이 핑핑 돌 지경이었다.



‘첫날치곤 꽤 하긴 하는 구만. 그래도 내가 다시 봐야지, 안 되겠어…..쯧쯧…’



난 분류해 넣은 우편물 중에서 잘못 넣은 것이 있긴 하는가 보다 하고, 내 앞에서 분류대 위에 다시 쏟아 내어 놓는 우편물 더미를 보면서 한숨이 턱 하니 막혀오고 있었다.



‘우리 부서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멍텅구리라는 소리를 듣기는 해도, 우리는 이 우편물에 대한 최종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들 이라구. 한 통이라도 소홀히 분류해서는 안되지. 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바보처럼 보이긴 해도, 이렇게 배달되지도 못할 편지를 쓰는지 알고나 있나?’



‘아녀.’



‘자, 잘 보라구…..종교적으로 분류하자면, 하나님, 예수님, 부처님부터 시작해서 기가 차게 많은 인물들 앞으로 편지가 온다네. 한국에 살면서, 니기미, 알라는 왜 찾고 지랄이래? 허긴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지. 암튼, 이렇게 종교 지도자의 이름으로 배달되는 것들은 모두 뜯어보나 마나, 겉봉에 송부인의 주소가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 그렇지만, 대개 70퍼센트 이상은 편지의 내용 속에, 혹은 그 끄트머리에 주소를 적어 놓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야. 어떤 인간들은 집주소 대신에, 이멜 주소를 적는 띨빵한 것들도 있다니깐? 아니, 부처가 잘났으면, 잘났지, 세상 바뀐 것 따라서, 이멜 주소 보고, 답장 헐까 봐? 웃긴 똥덩어리들……꼭 그런 것들은 되도 않는 소원들을 적어 보네요. 로또 좀 되게 해 주시던가, 아님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지게 해달라던가…..’



우편물은 폐기가 되더라도, 그 내용물을 임의로 검열해서는 안 된다는 우편물 보호법에 의해서, 내용을 알 수는 없게 되어 있는 원칙을 무시해도 무방한, 이 부서 나름대로의 융통성은 퍽이나 그 넓이가 거만해 보이기까지 했다.



‘뜯어 보면 안 되잖아여?’



‘그건 그렇지. 원칙은 그런데…..’



‘원칙을 무시하고, 뜯었다가 낭패를 본 일은 없으셨어여?’



‘보다시피, 여기는 우편물의 묘지라고 불리우는 곳이지. 원칙이 있을 턱이 있나? 원칙이라고 해 봐야. 우편물에 기재될 수 있는 기본을 넘어서고 나면, 이곳을 거쳐 폐기되는 일 밖에 더 있겠어? 계절별로 우습지도 않지. 성탄절이 다가오면, 싼타 할아버지, 혹은 예수님 어쩌고 적어 보내는 애기들 천지고, 삼일절만 되면 왠 유관순 열사 찾는 편지는 그리도 많은지…..단군 할아버지도 그렇고, 칠월 칠석날에는 견우직녀 한테도 꽤 온다니깐? 유관순 열사를 찾는 편지 같은 거야, 기념회 측으로 보낼 수나 있다지만, 이거야, 원, 다른 것들은 보낼 껀덕지도 시원찮은 구석들 뿐이라…..’



‘분류하기에 어려운 것들은 어쩌져? 아까도 보니깐, 우표도 없고, 주소는커녕, 친구에게라고 덜렁 겉봉에 그냥 그렇게 씌여 있던데……’



‘그러게나 말이야. 꼭 요상한 편지는 우표도 없이 보낸다니깐. 어차피 그 편지의 내용이 인간 세상에서 배달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인지, 우표가 없는 것들이 아주 많아. 아니, 우리 먹거리라도 챙겨주게시리, 우표 쫌 사서 부치든가 허지….나 원 참…..’



‘그렇다고 이렇게 지국에서 이런 우편물을 전부 땡처리 해도 되나여?’



‘예전에는 중앙우체국으로 올려 보내기도 했지만, 지침에 의해서, 모두 지국 임의대로 폐기하라는 지시가 오래 전부터 있어왔지. 어차피 내용을 들여다 보질 않고, 폐기 한다는 조건이 선행되어야 하니깐….그걸 신경 쓸 사람도 없구……’



난 분류를 하면서도, 이런 헛지랄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행위가 우편 행정의 선진화를 저해하는 독충이라고 생각하기에 이른다. 가뜩이나, 몸이 가루가 되도록 일에 매달리는 우리 같은 사람들의 어깨에서 힘을 빼버리는 이런 일들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저질러 진다는 것은 어쩌면, 자신의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이기심이, 관계없는, 나 같은 사람의 삶마저도 멍들게 한다는 분노로까지 치밀어 갔다.



‘왜? 한달 정도 하니까, 분이 치솟남? 나도 젊을 때는 그랬다네.’



‘아니, 매일 이렇게 코미디 같은 짓거리만 하고 있는데, 속이 뒤틀리지도 않으세여?’



일상의 업무가 가져다 주는 스트레스도 스트레스려니와, 기냥 쓰레기통에 처박고 싶은 주인 없는 우편물을, 죽은 자식 불알 만지듯이, 끼고 살아가야 하는 내 처지가 하도 한심해서 질러본 푸념 이었다.



‘그래도 이제 정년이 몇 달 앞이시니, 이제 이 꼬라지 안보시고, 얼마나 좋으세여? 전 이제 겨우 시작인데……조수나 빨리 줄라나?’



‘아니, 보면 몰라? 이 부서는 정년은퇴를 앞두고 있는 선임자가 반년 정도의 근무기간이 남았을 때만 후임자를 배치한다는 거, 알만한 사람들은 다 아는데….쯧쯧…..젊은 혈기 하고는….’



나도 알고는 있었다. 그러나, 나날이 열리는 머리 뚜껑의 분을 참기에는 역부족 이었다. 사형 집행관도 아니고, 우리들의 손을 거치지 않고는 파쇄기의 속으로 사라지질 않는, 고질병 같은 그 놈의 우편물들……



‘자기야, 요즘 얼굴이 영 아니다. 왜 그래? 뭔 일 있어?’



‘내가 요즘 속이 쫌 그래.’



오랜만에 맞이한 휴가를 틈타 같이 여행을 떠나온 승미가 나에게 던지는 걱정스런 질문 이었다.



‘언제는 자기 생의 목표가 완성되어 가는 것 같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이제는 삐져 있다 못해, 그렇게 꼬여대나, 꼬여대긴?’



‘꼬이기는…… 말이 그렇다는 거지. 일이란 게 다 그렇지…..’



해변가에서 썬텐을 하는 도중에도, 계속 찌푸린 얼굴로 사람들이 콩시루처럼 몰려 있는 해변가를 짜증나는 표정으로 지켜보는 나를 두고 걱정을 해대는 그녀…..



‘자기도 씨잘데기 없는 편지, 썼단 봐……’



‘편지는 무신!, 핸폰이 있고, 이멜이 있는데, 그런 구시대 적인 발상을 하기엔 난 너무 젊은 거 아니겄어여?’



‘그렇게 말하는 젊은 것들이 꼭 그 지랄 떤다니깐!’



‘아니, 왜 남의 말에 신경질 부텀 내실까?’



‘미안, 이거야, 원! 휴가를 와도 눈까리가 이렇게 얼른거려서야…..’



난 그게 직업병이라고 믿었다. 계속해서 눈 앞에는 얼른거리는 봉투의 겉면이 보이는 듯도 싶었고, 그 분류실 안의 침침한 형광등 불빛을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고도 있었기에…..



‘자기야. 모처럼의 휴가 잖수? 우리 결혼 하기 전에 마지막 휴간데, 이렇게 신경 곤두세우며, 지낼 필요 있을까 싶네.’



난 그녀의 부드러운 음성에 그냥 잊자고 마음 먹었다. 그러나, 그 짧은 휴가를 마치고, 서울로 오는 도중에도 내 맘속은, 온통 구름 낀 장마철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난 가을을 앞두고,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오랜 연애 기간을 결혼으로 마무리 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생각보담 많았고, 승미도 승미 나름대로, 오랜 연애 기간으로 혹여 파토나 나지 않을까 껄렁대던 동창들에게, 멋진 카운터 펀치를 먹이면서, 시집을 가고 싶은 마음에, 준비에 소홀함이 없도록, 나를 채근해 오고 있던 것들 때문 이었다.



‘안녕하셨어여?’



‘아유, 얼굴이 아주 깜씨가 다 됐네? 휴가는 즐거웠구? 약혼자랑 같이 다녀왔다고 했지? 참 요즘 세상도 좋아졌지. 저렇게 결혼도 안 했는데, 떡 허니, 붙어 다녀도, 그런가 부다 하는 게……’



‘결혼할 사인데, 뭐 어때여?’



‘휴가 끝나고, 이 지겨운 곳으로 다시 돌아 오자니, 죽을 맛 이었겠구먼….내가 알지, 그 기분….’



난 대답을 하질 않았다. 또 다시, 예전과 다름없이 밀려드는 쓰잘데기 없는 우편물더미들……다시 그 자리에 서 있기는 했지만, 난 점점 그곳을 뛰쳐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담배 쫌 그만 피우지? 젊은 나이에 왠 그렇게 수심이 많어?’



내가 담배를 한 서너 개피 피울 동안, 겨우 한번 정도인가 나오시던 와중이었다.



‘요즘 휴가 갔다 와서 더 힘이 드네여.’



‘그럴 거야. 나도 그랬으니깐. 승진도 없이, 호봉만 올라가고, 정년이 되기 전까지 혼자 지내야 한다는 엿 같은 규정도 그렇고……’



‘그래도 이제까지 잘 버티셨잖아여?’



‘버텼다기 보다는 즐기고 살았다 랄까?’



‘아니, 이런 구석에 즐길게 어디 있다고…..’



‘오늘, 일 허기 싫지? 그럼 내 심부름이나 하나 해 주겠나? 오늘 분류는 내가 책임지지.’



‘아니, 뭔 일로? 이렇게….그래도 그렇지, 윗 분들 보시면 어쩌시려고….’



‘내 짠밥 그릇 따라 올 인간들, 별로 없지. 괜찮아. 사수가 조수 쫌 맘대로 쓰겠다는데, 지들이 뭐라 하겠나? 이 마당에…’



난 이렇게 짬짬이 외출이라도 자주 할 수 있는 것이, 선임자가 있을 때뿐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이 솟구쳤다.



‘뭔데여?’



‘이 편지 쫌 전해 주라구.’



난 그 책상 위에 언제나 놓여 있던, 종이 상자 속의 편지 하나를 전해 달라는 부탁에 어리둥절하고 있었다.



‘주소도 없는데, 이걸 어떻게…..’



‘주소는 내가 메모지에 써 놨어. 거기 붙여 놨지?’



‘아니, 주소를 아시면, 분류 실로 다시 보내실 것이지…..직접 배달은…쫌’



‘우표가 없지? 그래서 그런 거라구. 알만한 사람이….’



‘이게 그리고 보니깐, 쫌 눅눅한 데여? 물에 젖은 것도 같고…..’



‘내가 열어 봤어. 별 거는 아니구. 시간 늦겠어. 그 주소로 되어 있는 곳에 가서 2시까지 기둘리라구. 그럼 알게 될 거야. 그 편지를 반드시 두 손으로 쥐고, 의자에 앉아 있어, 알았지? 이유는 묻지 말고….’



가끔 편지의 내용물이 파쇄기의 톱니를 부러뜨릴 수도 있어서, 편지 내용물을 불빛에 비추어 보거나, 겉으로 만져서 클립이나, 스테이플로 찍은 감촉이 느껴지면, 폐기하기 전에, 스팀건으로 봉투를 감쪽같이 열어서, 안의 부속물을 제거하던 것을 보아온 터라, 별 의심은 하질 않았다. 혹여 감사라도 불시에 들이닥쳐, 폐기 직전의 우편물 중에서 개봉한 흔적이라도 나왔다가는, 경을 치게 된다는 엄한 지시 때문이기도 했다.



‘다녀 오겠습니다.’



‘오긴 뭘 와? 오늘은 기냥 퇴근인데? 사람 허고는…..’



난 뜻하지 않은 조퇴로 희희낙락한, 철없는 학생의 심정으로 우체국을 나섰다. 전철을 타고 도착한 곳은 공원 이었다. 도심 속에 공원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는 그 곳이었기에 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가르쳐 주신대로 지정된 벤치에 앉아, 두 손으로 편지를 쥐고 기다리자니,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우습기까지 했다. 공원벤치로 배달되는 수취인불명의 편지? 이거야, 원…..한참을 주리를 틀며, 연신 하품을 해대며 기다리던 그때, 쨍쨍하던 햇빛을 가리고 내 앞에 서는 한 여인이 있었다.



‘저…그 편지…’



보이는 나이로는 족히 40정도는 되어 보이는 여자의 모습은 빗어 올려 두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쪽진 머리가 유난히 매끄러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아, 그럼… 이 편지의?….’



나와 그 여자 사이에는 어정쩡한 인사가 흐르고 있었다. 무신 통성명도 아니고, 편지를 사이에 둔 확인 작업 같은 그런….



‘이거 초면에 실례가 많습니다. 원래 수취인 불명의 편지는 배달이 되질 않는데, 이번에는 아주 특이한 경우라서, 이렇게 직접 들고 나왔습니다. 원래 규정에는 이런 게 없습니다. 양해 하시겠지여?’



‘네….좀 볼 수 있을까여?’



‘그러시져.’



난 편지를 건네 주었다. 여자는 내 옆에 앉아 봉투를 열어 안의 내용물을 살펴 보았다. 난 옆에 앉아 있으면서도 왠지 부담이 가고 있었다.



‘됐는지여? 이제 저는 가 봐도 될는지….’



‘이렇게 편지도 전해 주셨는데,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네요, 시간이 안 바쁘시면….’



‘아니, 뭐 그렇게까지야….’



난 2시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식사를 거른 것이 그때서야 생각나고 있었다. 그녀는 차를 세워 놓은 곳으로 가자고 나를 이끌었다. 여자의 몸으로 끌고 다니기에 고개가 절래절래 흔들어 질 정도의 호화로운 외제차가 버티고 있었다. 그 여자는 나를 태우고, 주차장을 빠져나와, 어디론가로 차를 몰았다.



‘젊으신 분이라, 마음에 드실는지 모르겠네. 이곳 라쟈니아가 꽤 맛이 있어요. 괜찮죠?’



‘저야 뭐 대접 받는 입장인데, 가리고 자시고 할…..’



그녀가 데리고 간 곳은 고즈넉한 분위기의 라이브 재즈 바였는데, 술과 음식도 나오는 곳이었다. 대낮이라서 그런지, 별로 사람은 없었고, 실내의 홀에도 연주하는 사람이 눈에 띄질 않고 있었다.



‘오늘 전 무척 기대하고 나왔거든요.’



‘아니, 기대라녀?’



‘송윤식씨라고 아시죠? 같이 일하시는…..’



‘네, 그런데, 어떻게 성함까지…..’



‘그 분이 나오시는 줄 알았어여.’



‘두 분이 아시는 사이세여?’



‘뭐, 잘 안다기 보다는…….. 저도 몰래 몇 번을 가 보긴 했는데, 성함만 알았지, 뵙지는 못했어여. 그것도 겨우 수소문해서 알아냈죠. 한 10년쯤 됐나요? 이제 은퇴하실 때가 다 되었다고 듣긴 했는데….’



‘네, 앞으로 한 넉달 정도 남았죠. 근데, 저희 우체국 근처에 사세여?’



‘아뇨, 10년 전에는 거기 살았었죠. 이제는 그곳에 안 살아요. 지금까지 몇 번인가 옮겨다니고…... 그래도 편지가 아직 그곳에 있다는 건 오늘 알았어요.’



‘그러셨구나.’



‘어서 드세요. 음식 식겠네요. 와인 하실래요? 근무 중이라 안 되나?’



‘아닙니다. 오늘 일과는 다 끝나서 괜찮습니다.’



난 그 돗수도 약한 와인을 공짜라는 생각에 라쟈니아를 다 해치우기도 전에, 반 병을 후딱 비우고 있었다. 그녀는 나이에 비해, 엄청 매끄러운 피부와 조막만한 얼굴을 갖고 있었다. 대개의 아줌씨들처럼 턱밑의 군살도 없었을뿐더러, 잘 먹지도 않는 화장을 덕지덕지 한 것도 아니었고, 땀구멍이 숭숭 보일 정도의 딸기코도 아니었다. 그저, 서른도 못 되어 성장이 멈추고, 머리에는 희끗한 백치가 염색을 한 것 같은 센스를 소유한 분위기 였다.



‘실례가 아니라면 나이를 여쭈어 봐도…이렇게 조명이 어두운 곳에서 뵈니까, 나이를 좀처럼 가늠하기가 힘드네여.’



‘나중에 물으세요. 그때 가르쳐 드릴께여.’



난 화장실을 들락 이면서, 되도 않는 와인이 꽤나 취기를 돋군다고 느끼고 있었다. 음식 그릇이 치워지고도, 난 주책 맞게, 공짜라는 생각에 와인을 계속해서 비우고, 취기는 알게 모르게 온 몸을 훑고 지나가고 있었다.



‘끅….무슨 인연으로 그 분과 알게..끅…끄윽…아휴 죄송 해여….거 와인이 꽤 술이 되는 모냥 이네여.’



‘저도 마시고 있는데요…호호호….술이 약하신 가봐요.’



‘평소엔 안 그런데…..허, 이것 참….미인 앞에서 들이키니까 그런 모냥이네여.’



‘미인은요? 농담 하시는 거죠? 이렇게 다 늙어 빠진 걸….’



‘아닙니다. 요즘 젊은 애들…얼굴에 특징이 없어여. 그게 그 얼굴에, 똑 같은 화장, 거기서 거기의 성형에다….연예인들이 어린 애들 취향을 다 망쳐 놓고 있다니깐여. 전 아까 뵙고서 왠 영화배우가 오시는가 했져. 그런데 이렇게 식사까정 대접 받으니, 이거야, 원…..황송해서리…..’



공무로 인해 만나질 않았다면, 눈 딱 감고, 승미에게는 비밀로 하고서, 작업이라도 걸고 싶은 여자임을 부정할 수만은 없었다. 게다가 이렇게 분위기 넘치는 야시시한 조명 아래서, 마주보고 나누는 와인과 함께 묘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것을, 내가 모를 리 없질 않은가 말이다.



‘혼자 사세여?’



‘네. 그럼 그 쪽은? 내가 젊은 분한테 괜한 걸 묻죠?’



‘아닙니다. 가을에 결혼할 겁니다. 약혼자도 있구여.’



‘좋을 때죠. 세상이 마구 자기 쪽으로만 돌아들어 가는 것 같은 그런…..’



그 여인의 눈에 비치는 그림자가 언뜻 비쳐 보이고 있었다. 깊게 파인 브이넥의 니트 사이로 보이는 여인의 젖골이 더욱 깊은 그늘을 만들고 있었고, 그 안에 비쳐 보이는 살결은 더욱 희게 반사되고 있었다.



‘아직 젊으신대여, 뭐. 누가 보면 서른도 안 되었다고 할텐데……’



‘농담도 그렇게 하시니 듣기는 좋네여…..그만 나가죠.’



난 취기가 엄청 오르고 있었고, 내 앞을 앞서 나가는 그 여인의 허리가 너무나 요염하다고 느끼고 있었으며, 왠지 깊은 매력이 넘치고 있어서 인지, 혹여 나를 유혹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마저 들고 있었다.



‘술 좀 깰 수 있게 제가 안내 할게요.’



난 역시나 정신이 없었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있었고, 차에 올라타니, 그 취기는 더욱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취기 못지 않게, 나를 감동 시키고 있던 것은 그 여인의 모습이었다. 적당한 선을 유지하고 있던 스커트가 차에 올라 타면서 조금씩 말려 올라간 그 아래로 그 여인의 고혹스런 각선미가 드러나는 것을, 옆자리에서 맨 정신도 아닌, 취기가 잔뜩 오를 대로 오른 분위기로 대한 다는 것은, 그 여인의 나이 여부를 떠나서, 나에게는 고문에 가까웠으니 말이다. 그녀가 교외로 차를 몰고 나가다 꺾어져 들어간 곳은, 호수를 바라보고 있는 한적한 숲 속 이었다. 지리나 풍광으로 봐서, 청평호 근처처럼 보이고 있었지만, 제정신이 아니었던 관계로 난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끄윽….어 취한다! 어이쿠….’



‘놀라셨어요? 제가 의자를 뒤로 제낀다는 게 그만…..이렇게 누워 계시면, 바람이 워낙 시원해서 술이 금방 깨실 거에여.’



난 누워서 차창을 통해 넘실대며 들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의자에 흠뻑 파 묻혀 있었다. 바람을 쏘이겠다며, 그 여인이 차 밖으로 걸어나가는 것도, 내가 앉아 있는 조수석의 차문이 열리고 있는 것도 나는 잘 모르고 있던 참이었다.



‘삐걱!’



난 다리 쪽으로 더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고 있어서, 그냥 그대로 놔 두고 있었다. 그런데, 다리를 타고 들어오는 것은, 바람 뿐만이 아니었다. 먼 발치에서 보이고 있는 것은, 그 여인의 가녀린 손끝 이었다. 차문을 연 채로 나의 다리를 타고 오르는 손끝의 느낌조차 나에게는 아련하게 느껴지고 있었고, 혹시 이것이 꿈이 아닌가 할 정도로 난 정신이 없었다. 차 안에는 언젠가부터 그 여인이 틀어 놓은 노래가 흐르고 있었고, 사그락 거리는 천의 소음조차 그 음악 속에 파묻혀, 들리지 않고 있는 것을 난 모르고서…...



‘아니,……이런…이기…’



‘가만히 계세요……아무 말 하시지 말고…..’



그래, 이런 상황에서는 아무런 말이 필요칠 않지….그녀는 능숙한 솜씨로 바지의 지퍼를 내리고 있었다. 와인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평소보다 거세게 발기된 내 좇은 바지와 팬티를 벗어나는 데에 만도, 많은 움직임을 필요로 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이런 일을 위해서 나를 대신 내보내신 것일까? 하긴 나이가 나이니 만큼, 이런 자리야 나 같은 싱싱한 젊은 좇이 어울리지, 암….난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그 여인의 손길에 맞추어 바지가 잘 벗겨지도록 허리마저 들어주고 있었다.



‘어흑……’



말은 필요 없었다 해도, 내 좇을 그 뜨거운 입술로 집어 삼키는 행위 중에, 터져 나오는 신음은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알을 댕그러니 달겨 붙도록, 치대고 있었던 것을 알고나 있던 것처럼, 그 여인은 불알의 체온이 식지 않도록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 그 손의 따스함으로 내 좇의 감흥을 떨어뜨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아무리 승미와 수 많은 섹스와 오랄, 69을 나누었던 나였지만, 그녀의 입안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뜨거움이 있었다. 아마도 취기를 통해 뿜어져 나오는 그녀의 숨결이 그 뜨거움을 만들어 내는지도…….



‘아흑…전 이름도 모르는데……’



‘쩝쩝……쭙줍…이름이 무슨 소용이 있어요?...웁웁…쭙쭙…..이렇게 되라고 그 분이 허락하신 건데요….웁웁…아! 맛있다…….역시 젊은 게 이런 거로구나…..너무 오래도록 잊고 살았네……웁웁….쭙쭙……’



아니, 그렇다면, 이렇게 될 것을 미리 아시고, 나를 내보내 신 것이라고? 머릿속이 복잡했다. 만일 내일 아침 출근해서 그 년 보지 맛이 어땠느냐고 묻기라도 한다면, 난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그 여인이 꺽꺽대면서 내 좇을 기도 저 끝까지 마구 삼키며, 빨아대는 것을 느끼며, 오금을 재리고 있었다. 그녀의 오랄은 아주 느린 템포의 쌈바 였지만, 내 좇을 붙들어 하늘로 치켜 세운 뒤에, 불알을 사탕 빨듯이 핥아댈 때는 사근거리는 보사노바의 리듬을 타고 있었다. 난 그제서야, 주변에 누구라도 있는가 살펴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숲의 주변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질 않았고, 열린 차문 사이로 보이는 호수의 수면은 하늘빛을 그대로 흉내 내고 있었다.



‘아, 참을 수가 없네….’



그 좁은 차 안에서 그녀는 용케 내 몸 위로 올라타고 있었다. 스커트를 벗을 줄 알았던 것은 나의 오산 이었다. 그녀의 그 검은 타이트 스커트 안에는 팬티가 이미 없었다. 그녀의 타액으로 이미 흥건할 대로 젖어버린 내 좇은, 거침 없이 내 몸 위에 들러붙은 그녀의 보지 속으로 미끈덩거림도 없이, 쑤욱 박혀 들어갔다.



‘아흑…..아흑……이런 거였어…..이런 거였어…..아! 너무 길었어…세월이…세월이…..’



‘윽윽……제발…천천히…천천히…’



난 그 여인의 허릿짓에 제발 이라는 용서를 구하고 있었다. 무엇을 위한 용서 였을까? 조금 덜 쪼여 달라고? 아님, 더 즐기다가 쌀 수 있도록 느린 템포로? 무슨 이유를 더하더라도 난 그녀의 씹보지에 완전히 매료되어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과연 그녀의 나이는 얼마나 될까? 승미도 나와 결혼해서 어느 정도 되면, 이렇게 황홀한 섹스를 이끌어 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뿐이었다. 내가 옷 위로 그 여인의 젖을 움켜 쥐자, 낮은 차의 천장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기어이 상체의 브이넥을 올려 벗고는, 나에게 그 풍성한 젖을 안겨 주었다. 작은 와이셔츠 버튼처럼 보이는 그녀의 유두는 아직 아기를 낳아본 경험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땀도 아닌 그 끈끈함이 피부에서 베어 나오고 있었고, 작은 소름마저 가득한 그녀의 잘록한 허리…..스커트로 덮여 있기는 했어도, 나의 좇과 그 여인의 보지는 그 찔꺽거리는 소리만으로도 그 광경을 상상하기엔 충분했다. 불어오는 바람이 무성한 입사귀를 흔들면서 파도 소리를 내고 있었고, 그 사이로 매미는 속절없이 가는 계절을 아쉬워하면서, 나와 그 여인의 섹스를 탐내듯이 신음을 흘려댔다.



‘척척…퍽척….척척……억억…윽윽…지금 싸면 안돼….지금 싸면…안돼!….윽윽….윽으극윽….지금 싸면…..죽여 버릴 거야…..윽윽…아! 좋아!....이렇게 좋은 걸….아흑…..아흑…..나 미쳐…나, 미쳐….제발 살려줘….살려줘…윽윽윽….아…..ㄱ…….’



그녀는 내 위에서 온 몸이 부셔질 것처럼 몸을 내리쳐 눌렀고, 내 좇은 그 질척대는 그 여인의 욕정 속에서 산산이 부셔져 갔다. 어디까지 가야, 그녀의 그 광란의 씹질은 끝이 날 수 있을까? 난 이미 흥건한 좇물을 쏟아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뜨듯한 느낌을 질 속에서 충분히 느꼈을 텐데도, 그 돌려대는 요분질을 멈출 줄 몰랐다. 천천히 멈추어지는 그녀의 허리는 마치, 동력이 빠져 나가는 방앗간의 피댓줄처럼 펄덕대고 있었다.



‘너무 좋았어요….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만큼….’



그 여인이 내 가슴 위에서 흡족한 목소리로 끈끈하게 얘기하는 도중,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나도 그러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 사이로 느껴지는 그녀의 살 냄새, 머리결, 그리고, 바람소리……그 안에서 난 그녀의 나이를 잊어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자, 이제 올라가죠. 도착할 때까지, 편히 주무셔요. 제가 알아서 깨워 드릴께요.’



난 격정적인 섹스와 아직 깨지 않은 취기로 인해, 차가 출발하는 그 진동을 느낄 사이도 없이 잠에 빠져들어가고 있었다.



‘어이….이 사람…이렇게나 잠이 깊이 들어서야…..김군…날세.’



난 차 안에서 잠이 깬 줄 알고, 일어났지만, 곧바로 그것이 아닌 것을 알았다. 나를 깨운 분은 바로 나의 사수셨다. 온 몸이 뻐근한 것으로 보아, 그 딱딱한 벤치에서 잠이 든 것 같았다. 난 그제서야, 옷 안의 팬티가 척척하게 내 좇물로 흥건하다는 것을 알았다.



‘아니, 여긴 어떻게?’



‘어떻게긴, 그냥 따라왔지. 지나가던 사람이 다 보고 웃고 지나가는 것도 몰랐지?’



‘네. 그럼…이제까지 있었던 일이 꿈이라구여? 에이 설마?’



‘좋은 일 한 셈 치라구.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편지가 자네를 향해 올지 모르는데…..’



‘아니, 그건 무신 말씀이래여?’



‘자네, 내 책상에 항상 놓여 있던 상자가 궁금하다고 했었지?’



‘네. 그 상자의 안쪽에 쌓인 편지더미에 가려져 보이지는 안았겠지만, 그 안에는 이렇게 씌여 있지. 애절이라고…’



‘애절(哀絶) 이라녀?’



‘애절한 사랑이라고들 하잖나? 그 애절을 의미하는 거지. 몹시도 슬픈…..’



‘그런데여?’



‘내가 그 곳에서 일을 하기 전부터, 내 사수 되는 양반이 갖고 있던 것이 그 상자였지. 그 분도 언제나 무심코 분류되는 편지들 속에서 무언가 옷 속에 가시가 박힌 것처럼 기가 막히게 걸러내는 수취인 불명의 편지들이 있었지. 그 누구에게도 배달될 수 없는 편지….그건 잃어버린 사랑의 슬픔을 견디질 못하고, 목숨을 끊은 사람들이 죽기 직전에 보낸 편지들이란 걸 알게 됐지. 어차피 내용을 알더라도, 돈을 꿔 주십사, 애인을 구해달라는 둥의 헷소리 빵빵 하는 편지들이야 걸러낼 이유가 없었다 해도, 그건 좀 다르거든……얼마나 슬펐으면, 세상을 버렸겠나? 난 내 사수되는 양반의 얘기를 듣고, 언제나 편지를 분류할 때면 신경을 곤두세우게 됐지. 그 양반도 참…..마누라가 일찍 자살을 했거든…..죽은 이후에 받아 든 편지 속에, 눈에 익은 글씨를 발견하고는, 펑펑 울었다지 아마. 자신과 결혼 하기 전에 사랑했던 사람과 사별했던 그 슬픈 기억을 버리질 못하고, 기어이 마나님이 목숨을 끊었다는 게야. 그때서야 알게 됐다지, 아마? 죽은 사람의 느낌이 전해지는 그런 수취인 불명의 편지를 말이지. 그 안에는 자신이 죽기 전에, 혹은 죽은 후에라도 같이 하고픈, 혹은, 잊고 싶은 슬픈 기억에 대한 아련함과 후회, 미련 같은 것을 편지에 담아서 그냥 부친다는 게지. 당연히 그런 편지는 우리에게 돌아오게 되고…..난 정년이 다 되어서야 그걸 알아볼 수 있었는데, 자네는 이렇게 젊어서부터 알아볼 수 있었으니,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걱정스럽다고 해야 할는지 모르겠네…….’



‘그럼, 오늘 제가 만난 것은 무엇이었죠?’



‘글쎄. 편지 안에는 아무런 것도 없었고, 얼룩진 물방울 자욱만 있었던 걸로 봐서, 아마 눈물만 흘리느라 아무런 얘기도 쓰질 못했던 어떤 애절한 추억을 지닌 여인이 아닐까 싶네만….’



‘그럼, 이 공원의 벤치는 어떻게 아셨대여?’



‘그거야, 짠밥이지, 내가 괜히 그 곳에서 이 세월을 지냈겠나? 다 이런 경륜이 있어야 알 수 있는 거지. 자네에게 알려주려고 내가 가장 오래 보관하고 있었던 10년 된 편지를 건네준 건데, 용케, 그 영혼을 달래주고 온 모양이구먼. 기특해. 요즘 젊은 사람들은 하나를 가르쳐 주면, 백까지 넘본 다니깐. 이제야 가슴속이 후련하구먼. 인수인계는 이렇게 하는 거라네. 자네도 잘 알았지? 자, 내일 보세. 하늘을 보아하니….비라도 오실 거 같어.’



난 그 자리에서 황망히 아직도 손에 들려 있는 그 편지를 내려다 보고 있었다. 투덕대며, 빗방울이 그 편지봉투 위로 쏟아지고 있었지만, 난 쉽사리 그 자리에서 일어나질 못하고 있었다. 그 상자 안에 담긴 수많은, 주인을 잃고 있던 수취인 불명의 애절한 추억을 간직한 편지들…….내일부터 나에게는 또 한가지 업무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건 내가 처음부터 마음 먹었던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 일에 나 말고 제격인 사람은 없을 거라는 그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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