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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월야(雪月夜) - 단편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23:04 544회 0건
설월야(雪月夜)-설월야(雪月夜)-



‘구름이 몰려 오는 거이, 한바탕 눈이 오실 듯 합디여.’



‘그런가?’



‘고뿔 이락두 조심 허십셔, 방의 불도 변변치 않을 거인디….’



‘괜찮네. 동절의 한기라…..인력으로도 어쩔 수 없질 않은가!’



난 봉수간(烽燧干 : 봉화대에 불을 올리거나 주변을 감시하는 일을 하던 직급)으로 죽은 듯이 지내는 그를, 별로 달가워 하질 않는 참이었지만, 그래도 그의 한결 같은 품성으로 인해, 그런대로 그의 됨됨이를 눈 감고 지나치기는 했다. 대개 봉수간의 직급은 따로 사람을 쓰는 것이 아니고, 그처럼 중앙에서 일하다가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아주 경미한 형을 언도 받고 귀양을 온, 전직 관리들에게 맡기는 유휴직 이었다. 군사의 이동이라든가, 국가의 대소사에 있어서, 화급을 다투는 일들이 걸려 있을 수도 있는 관계로, 책임감이 무작시리도 없는, 일반 양민을 쓸 수도 없었거니와, 조정의 돌아가는 폼새를 어느 정도 이해해야 하는 까다로운 규정으로 인해, 병조에서는 따로이 간망군(看望軍) 이라 하여, 특수한 파견 군졸을 창설하기도 했지만, 역모에 연루되어, 조정과 지방간의 급속연계 고리인 봉화대를 임의로 점거할 수도 있다는 여론과 상소 때문에 폐지되기도 한 그런 자리를 맡고 있는 그였다. 그러나, 그도 유배의 형을 어쩌지는 못했다. 봉수대의 직임이 끝나면, 호위 병졸의 감시 하에 그 날의 일과를 끝내고, 유배가옥으로 보내어지고, 다음 날, 다시 봉수대로 오기까지 갇혀 지내는 것은 감옥과 다를 바 없었다. 나 같은 신량역천(身良役賤 : 신분 상으로는 양인-人-이나, 실제로는 천인-賤人-의 일을 하는 특이 계급을 말하는데, 간척-干尺- 이라는 속어로 불렸다나? 그 당시 간척이 해대는 3D직종으로는 봉화 올리기, 소금 구워내기, 나룻배의 사공등 이었다니, 격세지감이 아닐 수 없는고로…..쯧) 주제비에 조정에서 일하다 내려온 그런 신분을, 바로 옆에서 대한다는 것은 별로 흔쾌한 굿거리는 아니었다.



‘조정에서는 아무런 소식이 없습니까여?’



‘산봉우리에서 불이나 지피고 있는 자에 불과한데, 이미 잊은 지 오래 아니겠느냐?’



‘아니, 소인, 전에도 궁금했습니다만, 어찌하여, 이곳으로 유배를 오시게 되셨서라우? 사람들 말은 동체 믿을 수가 없어서…..’



‘허어, 그게 그리도 궁금한가? 거열()에다, 효수(梟首)형-당시의 가장 참혹한 형벌은 소위 능지처참이라고 해서, 소가 끄는 마차에 사지와 모가지까정 묶어, 열나 잡아땡겨, 총 여섯 토막으로 찢어 죽이는 형벌과 망나니를 통해, 대가리를 댕겅 친 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저자 거리에 닭꼬치 꼽듯이, 모가지를 꽂아 세워 놓는, 민간 홍보용 처형 방식이 있었다 한다…그럼, 오입쟁이는 좇대가리를 잘라 꼽아놨었남?....헐…-이 아닌 담에야, 죽을 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만 알면 되지 않는가? 이 사람, 참…..’



‘그제 날씨가 겁나게 추웠는디, 길고(桔槹 : 유배 가옥 내에서 사용할 생활식수의 공급을 위해 판 우물인데, 보통 두레박 스타일이 아니고, 간이식으로 만든 것으로서, 나무와 우물 사이에 버팀대를 꿰고, 버팀대의 반대 쪽에는 돌을 매달아 시소처럼 물을 긷게 하였다 하는데, 그 깊이가 얕아, 뻑 하면 얼어 붙어 불편이 많았다 한다. 근데, 그따우 걸, 왜 파놓고 지랄 이었대?)는 괜찮습디여? 지푸라기라도 덮지 않을 성이믄, 얼어번질 거인디….’



‘버적!’



‘뉘기여?’



‘흐미, 간 떨어 지겄네…..저랑게요….’



‘뭐허러 산꼭대긴 올라오고 지랄이여? 눈도 오실 거 같구먼….’



아내가 머리에는 광주리를 이고, 옆구리에는 보퉁이를 낀 채로, 격한 숨을 폭폭 내 쉬고 있었다. 광주리를 머리에서 받아 들고, 내리는 것과 동시에 번지는, 음식냄새가 코를 찔렀다.



‘뭔 음식 이당가?’



‘아, 그제, 김초시 어른 진갑 아녔남유? 날품을 음식으로 받았는디, 혼저 목구녕에 넘어 가야지유? 아그그, 어른도 기시는디….요놈의 조둥아리…’



‘허, 괜찮습니다. 이곳까지 올라 오시려면, 힘이 꽤나 부치셨을 터인데, 장하십니다.’



‘뭘유! 지가요, 자랑은 아니여도, 이제 산 타는 건, 이력이 났시유. 애비가 안 타넘으니, 지라도 타 넘겨야 쓰….’



‘허어, 이 눔의 여편네가 어디 안전 이라고 상시럽게….’



‘하고, 요 년의 조둥아리….., 헤헤…..이해 하시지라우? 허구헌날, 묏자락에 불은 싸 질러대도, 워찌 여편네 가심속은 냉골을 만든디야?’



‘잔말 말고, 거 보퉁이는 또 뭐여?’



‘갈아 입을 옷가지 쫌 가져 왔시유. 어여 갈아 입으쇼. 벼루지가 드글드글 헐 것이여! 화상 허고는…걸뱅이도 아니고설랑….’



‘내 나가 있음세. 천천히 계시다 가시지요. 그럼…..난 밖에서 연초나 태고 오지.’



그가 곰방대를 들고, 봉대막사(烽臺幕舍: 봉화대 근처에 임시로 지은 휴게막사로서, 옷을 갈아입거나, 교대 인원이 잠시 눈을 붙이는 곳을 말하는데, 대개는 빠구리에 쓰였다고 전해지나, 확인된 바는 없음. 헐….구라구만…..닝기리…..)를 나가기 무섭게 여편네가 물골 안 가리고, 내 섶에 들러 붙는데, 거머리가 따로 없었다.



‘왜 이러는 겨? 시방…벼루지가 드글드글 허담서?’



‘지 서방 벼루지도 드러버 허는 년 있답디여?’



‘월래? 언제는 걸뱅이 워쩌고 한 게 누구랴? 아! 가만 쫌 있어 봐. 바지춤 이락두 풀러야 물건 구경 헐 꺼 아녀? 여편네 허고는……’



‘흐미….까기도 전에 요로코롬 대가리를 세워 번지면, 워치케 다시 잡아 넣을라나?’



‘걱정도 팔짜여! 배창시에서 똥 빼고 나면, 뱃가죽 들러 붙는 거이, 세상 이치 아닌감? 여러 말 헐거 없고, 어여 고쟁이나 벗으랑게, 얼릉?’



‘볼티유?’



난 그 엄동설한에 솜바지에, 곁바지까지 입고 있었지만, 치마를 훌러덩 까 재낀 아내의 응댕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흘러 내리는 땀이 냉냉한 막사의 기운으로 모락모락 김을 올리게 하고 있어서, 나의 눈은 대번에 커다랗게 되어 버리고….



‘워찌된 겨? 이리 뻔뻔시럽게 맨 살로 산을 탄겨?’



‘거웃이 온통 불이 나서, 다 탈 것 가튼디, 워디 입을 수가 있시야지유? 하나뚜 안 추워유!’



괜찮다며, 땀으로 척척해진 그 응댕이를 나에게 들이댄다.



‘얼릉유?, 월매나 굶주렸는디…..아까도, 올라 오다가니, 척척하게 샅에 들러붙어서, 냉큼 벗어 버렸는디…..남 사시럽게 언성은 높이고 있디야?’



‘이기 땀이여, 뭐여?’



난 그 허연 마누라 응댕이 사잇골로 흘러내려, 촘촘히 방울 되어, 거웃을 타고 흘러 내리는 물방울을 손으로 문질러 보면서 물었다.



‘허어…진득 헌 것이, 진국 아닌가베!’



‘두 말 허면 잔소리지유! 간이 얼추 마자씰라나? 모르긴 몰러두….으윽……훠미, 벼락이 쳐도 요것 보덤은 덜 할 것이여……으극…으그극…..오늘 나, 죽네!…지아비 불 몽둥이에, 나 옥문 불나 뒤진당게….흐미…..흐미…..징하게…..쑤셔 번지네 그랴!......워찌, 입이 이렇게 마른다요?’



아내는 벌린 입으로 마냥 토해내는 음란한 비명으로 인해, 입술이 타 들어 가는지, 연신 혀로 입술을 적시며, 나를 뒤로 바라다 보며 뻔질댔다.



‘조신허니…윽윽윽..살림이나 허고 있는가 싶었더니…..억억억억….노상 이 구녕에 불 지피고 나다니는 거 아녀?’



‘억억….윽윽…..워메, 워메..나 죽는 거…시방, 암 껏뚜 안 들리니께, 말 허덜 말아유…..흐미……이러다 배창시….으극..으극…윽윽윽….뚫리는 거 아녀?’



‘걱정 붙들어 매드라고. 내 임자, 구들장 들썩이지 못 허게…..윽윽…억억….흠씬 박아 줄팅께…..워쪄쓰까 잉! 나 미쳐부러…..이리 찰진 떡살은 보덜 못혔는디….척척척척…..’



나는 널어놓은 이불 호창이 바람에 휘날리듯이, 살물결을 내 쪽으로 때려대는 아내의 요분질에 정신이 나가고 있었으며, 혹여 막사를 들치고, 불현듯 들어올 수도 있을, 그의 존재 조차도 잊고 있었다는 것이 옳을 지경이었다. 응댕이를 쳐 대니, 그 위로 흐르는 땀이 주위로 흩뿌려지면서, 그 허연 살거죽 위에 연분홍 자욱이 춤을 추고, 여편네의 저고리와 흐늘해진 치마 사이로 그 퉁투부리한 젖퉁이가 삐져 나와 그네를 타기 시작했다. 그것도 단장 이라고, 분가루도 없었지만, 쪽머리를 머리카락이 홀랑 빠지도록 묶어 올린, 그 아래로 나 없는 사이, 텃밭 일로 인해 까맣게 타 버린 목덜미가 나를 또한 구슬프게 하고 있었다.



‘임자…..고와!…임자……곱다니껜!…..그리웠서…그리웁고 말고..……’



‘지도요…윽윽……’



나의 용틀임에 아내의 허리가 자 근동, 부러지듯이 휘어지고, 온 몸이 바르르 떨리며, 흡 부릅뜨는 그 큰 눈망울이 마치 겁먹은 송아지 새끼 같았다.



‘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척…..’



‘윽윽윽윽….악악악…..억억…..악악악악악…..’



누군가 색향의 초입과 말미는 악다구니 천지라고 했는데, 그게 꼭 그랬다. 나와 아내는 상황과 장소의 어설픔도 아랑곳 하질 않고, 그간의 미루어 온 운우의 정을 나누기에 여념이 없었으며, 그 사이에 서로를 확인하는 말조차 불필요 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서로의 몸에서 김을 피워 오르며, 들러 붙었던 때아닌 방사로 인해, 나와 아내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하이고, 배창시가 다 쏠려 나갔지 싶네…..’



‘누가 아니래유? 아랫 쪽이 휭 하니, 다물어지지 않는 것이 꼭 쩍 벌린 아귀 대가리 같구만유……’



으이그, 여편네 허고는, 머리를 매만지며, 열불 냈던 흔적을 치우던 중에, 그가 들어섰다.



‘밖이 오지게 추울 거인디…어여 탁주 한자배기 들이키시쇼. 후끈허이 좋을 거인디…’



‘그럽시다.’



나와 아내는 계면쩍기는 했어도, 달포가 가깝도록 산 아래를 내려가질 못했던, 나의 처지를 이해하는지라, 부부간의 있었던 일을 뭐라 하지는 않았다.



‘저…… 마을이 지금 벌집 이랑게여.’



‘뭐땀시?’



난 탁주를 들이키며, 나물을 집어 우걱대며 씹었다.



‘이름 모를 처자가 장승배기 앞에서 뒤졌다 안 혀요?’



‘근디……그 근방의 서낭당에서도 곧잘 목 매잖여?’



‘문제는 동리 사람이 아니니 그러지유.’



‘타지에서 뒤지러 마을로 기여 들어와? 건 또 뭔 소리여? 아니, 유배지로도 모자라, 이제는 묘자리로도 이름 나는 겨?’



우리 동리는 물 건너 유배지가 아닌 탓에, 하루가 멀다 하고, 죄인들이 호송되어 오는 터라, 원래 터를 틀고 살던 주민들의 원성을 사고는 있었다.



‘동리 사람이 발견 혔을 때 까정, 숨이 붙어 있었는디, 그기 쫌 이상혔다 안 혀요?’



‘뭐가?’



‘말을 못하더라고요…..염소 새끼 마냥 껑껑 대는 소리만 냈지, 죽기전까정 뭔 얘기 한마디 못 허고, 손만 내 젖다 숨을 놨다 안 혀요?’



그때까지 조용히 탁주를 들이키던 그의 눈에 힘이 들어가고 있었고, 숨소리가 점차 조용하게 말려들어 가는 것이, 곁에서도 느껴지고 있었다.



‘그래서요?’



‘근디, 또 이상시러븐 것은……’



‘뭐가 이상시럽다는 거여? 그럴 짝시면 동헌에서 나와 거둬 갈 일이지….뭔 일이래?’



그러냐는 질문을 던지고 돌부처처럼 굳어 버린, 그의 손이 자그마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여서 인지, 나는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넘기려고, 동헌 탓으로 돌려댔다.



‘혹시…그 처자…..목에….. 점이 있지 않던가요?’



‘아는 분이셔유?’



난 이글이글 타오르는 그의 눈빛을 알아채고, 여편네의 말을 막으려고, 발을 툭 하고 걷어 찼지만, 이미, 대답은 고 조둥아리 밖으로 튀어 나온 후였다.



‘……….’



‘아! 모르시면 됐구유! 게다가 손아구에 뭔 수놓은 천을 쥐고 있었는디, 사람들 말로는……’



‘……..흉배(胸背 : 문무관의 관복 가슴패기와 등에 붙이던, 학이나 범 모양의 정방형 자수를 일컫는 것으로서 당상관-정 3품 이상- 이상의 문관은 쌍학-雙鶴-, 무관은 쌍호-雙虎-, 당하관-종 3품 이하, 종 9품까지-의 문관은 단학-單鶴-, 무관은 단호-單虎-를 새겨 넣었다고 함. 내가 그 당시 살았으면, 좇대가리를 앞 뒤로 대문짝 만하게 수를 놓았을 텐데……쩝…..아깝다!)라 하던가요?’



‘맞아유! 워찌 고로콤 모르시는 분이라면서, 잘 아신데유?’



여편네를 나무랄 수도 없는 것이, 그는 이미 자신의 처자가 마을 어귀에서, 이 혹한에 동사 했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었으나, 미련 곰팅이 같은 여편네만 모르고 자빠져 있었을 뿐이었다.



‘아마도 쌍으로 된,…… 학이…….. 수 놓여 진….’



‘맞아유!, 월래? 다 보셨는 갑네!….’



‘이 눔의 여편네가 정신이 있는 겨, 없는 겨? 아니, 유배가옥에서 한 발자국 이락두 움직이셨을 성 싶어! 안 그려유?........ 흐미, 눈이 겁나게 올 모양인디? 어여, 안 내려갈 겨?........ 시방 안 가면 경칠 껴!.......... 아님, 여서 꼴밤 새던가…..’



‘…..’



화제를 바꾸려고 말을 돌렸지만, 바닥을 내려다 보며, 장작더미를 깔고 앉은 그의 전신은 가늘게 울럭이고 있었다.



‘임자, 나 쪼까 보드라고….’



난 그를 막사에 남겨두고 봉화대(봉화대: 봉화에 붙이기 위해 꺼트리지 않고 불씨를 보관하는 제기를 말함)의 불씨가 여전한가 살펴본다고 하면서, 여편네를 잡아 끌고서 밖으로 나왔다.



‘이 눔의 여편네가 눈치가 그렇게나 없는 겨? 보면 몰러?’



답답한 마음에 난 곰방대에 불을 붙이려고, 품속에서 연초쌈지를 꺼내, 부싯돌을 그었다. 그리고, 연기와 함께, 연유는 정확히 모른다 할지라도, 아마도 그의 처자가 죽음을 무릅쓰고, 낭군이 유배 되어 있는 이곳으로 오다가니, 기진해서 절명한 것이 아닌가 하는 나의 생각을 조심스럽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되뇌였다.



‘하이고, 요놈의 조둥아리, 내가 일 낼 쭐 알았어….워쩐디야?’



‘잠자코 죽었다 셈 치고, 머리나 조아리고 있으랑게……’



내가 아내와 막사에 들어섰는데도, 그의 머리는 바닥을 향한 채, 들려져 있질 못했다.



‘제 생각이 맞는 거쥬?’



그제서야, 고개를 드는, 그의 얼굴은 온통 눈물로 얼룩져 있었고, 두 눈은 터져 나오는 곡통으로 인해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자네…..나 좀….도와줄 수 있겠나?’



‘지가 뭘……’



‘날이 잘 선 진검과 화살을 좀 구해 주게나.’



‘워쩌시려구유?……큰…일 난당게요…..찬찬히 진정 허시고, 맴을 가라 앉히시쇼. 다 인력으로 안 되는 거이, 사람 목숨인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꺼이다 맘 잡아 묵고, 산 사람은 살아야 허지, 워쩌 겄시유?’



그러나, 그로부터 그가 피같이 토해놓는 그 간의 사정을 듣고 나서, 무지한 나 조차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그는 훈련도감의 종 2품 훈련대장을 지낸, 빛나는 무인 이었다고 했다. 그의 강성한 무예로 인해, 맞설 자가 없었으며, 삼수군(三手軍), 이른바, 포수(砲手), 살수(殺手), 사수(射手)의 양성과 훈련에는 비길 자가 없었으며, 중국으로부터 들여오는 폭약의 처치에도 그를 능가할 무인을 찾기 어려운 지경이었다고 했다.



‘근디, 워쩐 일로 이렇게 유배를 오시게 되慧쨉弔?’



‘전하를 호위하는 근위대 중에서도 핵심 무사를 따로이 아끼고, 강한 훈련을 시키는 와중에, 내 스스로 사조직을 키워, 전하의 안위를 해하려 한다는 상소가, 어디선가로부터 흘러 들어와, 이 지경이 되었지. 그것은 정권을 장악하기 위해서는, 궁궐호위를 담당하는 인물들조차, 자기 사람으로 깔아 놓으려는, 그 자의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것을, 무장이 해제된 이후에나 깨달을 수 있었지. 게다가……’



‘’또 뭐가 있는디유?’



‘그런 식으로 나를 끌어 잡아, 가둔 뒤에는, 평소부터 점 찍어 눈 여겨 보아오던, 설부화용(雪膚花容 : 눈처럼 흰 피부에다, 꽃처럼 고운 마스크라 이 말이지,뭐 요즈음 말로 허면, 쒸,쒸,쒸!)이 부럽지 않다던, 내 처자를 집어 삼키려는 의도가 다분히 있었음을 문초를 당하는 도중, 평소 아끼던 예하 장수로부터 엿들을 수 있었고…..’



‘근본이 썩어 문드러진 염병할 인간이, 워째 그 윗자리에 치받치고 있었디야?’



‘내자는 태어나서 열병을 앓고 난 뒤로부터, 말을 못하게 되었다네. 그 고운 심성…..입에 겨우 풀칠이나 할 수 있는 녹봉에도, 한 마디 불평 없이 나를 따라 주었는데…..흑흑….언제나 말을 못하는 것이 나에게 죄스럽다며, 고개도 못 들고 살았었는데…..내가 끝을 볼 것이야! 그 고운 그녀를 짓밟은 그 영감과 그 아들내미….내 가만 놔 두지 않을 것이야!’



‘아니, 그 영감은 영감인디, 아들내미는 또 뭐래여? 시방 부자간을 싸잡아 요절 낼 심산인규?..허, 참…..’



‘자네, 내가 어찌 이리도 도경과 가까운 유배지로 오게 되었는지 궁금하질 않나? 대개 나 같이 정권의 가시 같은 인물들은 물 건너 유배를 보내거나 사약으로 요절을 낼 판 국인데, 어찌, 이렇듯 가까운 곳으로 보냈는지를 말일세…..’



‘글씨유…..’



‘이 곳의 관찰사가…… 바로 그 영감의 하나밖에 없는…… 자식 일세…나를 코 밑에 박아놓고, 여차 직 하면 목숨을 끊어 놓으려고 한 것이지. 혹여 유배 중에 도주할 수도 있을 것을 염려하여, 봉수간이라는 직함을 주어, 감시의 방울을 이미 달아 놓았고, 그로 인해 내가 도망 하더라도 단박에 추쇄(推刷 : 원래는 유랑민을 붙들어, 지 고향으로 돌려 보내는 것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도망친 노비, 탈영한 군졸, 유배지로부터의 도주자들을 추적하여 체포하는 임무를 그렇게 불렀다 함. 나도 멋들어진 찹쌀보지들한테 추쇄나 당하고 잡다!)가 가능한 체제로 만든, 아주 극악한 부자간 이지. 그 뿐 인줄 아나? 그 자는 내 처자를 사노비로 만들어 끝끝내 농락하고, 들쑤시고, 그것도 모자라 아들내미까지 도경으로 불러 올려…… 내 내자를……. 기어이 두 놈이……발가벗겨 놓고…… 덮쳐서……….내 가만 두지 않을 것이야! 기필코….’



‘그랬구만유…나래도 죽이고 싶을 거인디…..근디, 그 흉배는 뭐땀시…..’



‘유달리 손재주가 좋았었다네. 사대부 집에서 줄을 서서 만들어 갈 만큼, 내자의 수놓는 솜씨는 장안이 떠들썩 했다우. 그 덕에 나는 모른 척 하고, 훈련도감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고, 일감을 건네러 다니다가 그만, 그 영감의 눈에 밟힌 것이지. 내가 죽일 놈이지……그렇게 뼈가 휘도록 일을 하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알고 있었는데도….단 한번 그 거칠어진 손목, 한번…….. 살갑게…… 보듬어 주질 못했으니…..흑흑흑….죽어서까지 잊혀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목숨을 걸고, 그 흉배를 손에 쥐고…..그 자의 집에서……. 도망 쳤을 꺼요. 나에게…… 입 소문으로 나마……..흘러 흘러…….. 자신의 서글픈 죽음을 알리려고……흑흑흑……..’



‘그럼 앞으로 어쩔 껀디유? 뭐 뾰족한 수라도 있는규?’



‘내가 말한 병장기나 구해주게. 나와 같이 마을로 내려 갈 수는 없겠나? 난 도경으로 갈 생각이 없다네…..’



‘아니 범을 잡으려면, 굴로 들어가야지, 워딜 간단 말씀이래?’



‘그 자가 나의 가장 아픈 구석을 잘라 냈으니, 나라고 가만 있을 수 있는가? 나도 그 자의 가장 아픈 자리를 도려낼 밖에……’



‘아이고…관찰사 양반, 쯧쯧….. 조졌네….끝나 뿐졌네…..워쪄커나?’



그러나, 그의 서슬을 막기에, 나의 탄식과 기우는 역부족이었다. 막사의 열린 틈으로, 해가 기울면서 산상에는 눈이 퍼붓기 시작했다. 난 그를 유배가옥으로 데려가려고 호위하러 올라오는 병졸들에게, 탁주를 대접 하면서, 김초시네 잔칫상 음식을 잘못 얻어 먹어, 배앓이로 뒤질 것 같다고 설레발을 떨며, 수 삼일은 더 있어야 올라올 교대꾼을 미리 불러 달라고 징징거렸다. 아니나 다를까, 축시를 넘기기 전에, 나를 교대 해줄 사람이 투덜대며 도착하고, 나는 아픈 배를 움켜쥐는 형상으로, 그 폭포수 같은 눈을 헤치면서 마을로 내려왔다. 눈은 그칠 줄을 몰랐고, 나는 그와 약속한 대로, 유배가옥의 뒤편으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 맞은 편에서 숨을 죽이면서, 그 와중에 어렵게 구한 품 안의 병장기를 부셔져라 껴안고 있었다. 추위에 오돌 거리며, 쪼그리고 있다가 잠깐 조는 사이, 어디에선가 들리는 인기척에 놀라서 눈을 떴다.



‘엥?’



‘칼과 활은 구했는가?’



‘예, 여기 있굽쇼……아니, 그 복장은?’



내 앞에서 등에 화살이 가득 찬 화살 통과 활을 메고, 진검을 꺼내어 날카롭게 선 날을 견주어 바라보는 그의 모습은 평소의 초췌한 그가 아니었다. 내 앞에는 늠름한 모습으로 융복(戎服 : 무관이 입는 군복으로, 철릭과 주립으로 되어 있고, 철릭은 길이가 도포보다 길고, 허리에 주름을 잡았으며, 주립은 붉은 색의 대로 만든 갓을 말함…한마디로 폼 디지게 나는 거지, 뭐!)과 주립(朱笠)을 차려 입은 건장한 무관이 서 있는 것이었다. 쏟아지는 눈발 속에서도 그의 강인한 무예가 융복을 뚫고 흘렀으며, 융복패영(戎服貝纓 : 이름하야 모자, 즉 주립의 갓끈 장식을 말허는데, 직급에 따라 호박, 마노, 수정 같은 보석으로 치장했다 함. 죽기 전에 나나 주고 가지….헐!)은 그 달그락거리는 소리 마저도, 그의 뼈마디에서 터져 나오는 분노의 울부짖음처럼 들리고 있었다. 칼을 잠시 나에게 건네고, 그는 신하의 도리를 다하기 위해, 궁궐을 향해 마지막 배례를 올렸다.



‘고마우이…..내 이 은혜는 죽어서라도 잊지 않음세…..그럼, 내세에서 다시 만날 수 있기를……’



바람같이, 쏟아지는 눈 속으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은 숨이 차도록 쫓아가도, 따라 잡을 도리가 없었다. 난 어찌 되어가는지 멀리서라도 훔쳐 보아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기에, 무조건 관가를 향해 내달았다. 내가 그 늦은 걸음으로 관가의 주변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퍼붓는 눈 속에서조차, 훤히 보일 정도로 불길이 집안 곳곳에서 치솟고 있었고, 주변은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고 있었다. 병법에 능한 훈련대장 인지라, 혼란을 틈타 잠입해 들어가려는 의도로 여겨졌다. 여기저기서 비명과 고함, 칼끝이 맞부딪치는 소리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아마도 관가의 안 쪽에서는 오합지졸일지언정, 포졸들과 관찰사의 사조직이 그와 일전을 벌이는 듯싶었다. 숫적으로 절대 열세인 그의 성패가 불분명한 가운데, 점차로 소음이 잠잠해 지면서, 관가의 내부에서는 곡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그는 목적한 바를 달성하였던 듯싶다. 출중한 무공으로 원수의 심장을 향해 내리쳐 졌을, 그 단호한 진검의 매서움……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고 있었다. 난 발걸음을 집으로 돌리면서, 제발 목숨이라도 건져, 어디 먼 곳에라도 가서 잘 살아 주었으면 하고 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각까지 속절없이 눈은 하염없이 내리고 있었고…..



‘아….으으응…..’



난 저 멀리서 들리는 신음소리 보다, 어느 누구도 밟은 적이 없는 눈 길 위로, 쏟아 부어져 이어져 있던 핏자욱을 먼저 보게 되었다. 그 자욱이 향하고 있는 곳은 멀리서도 확실히 알 수 있는 장승배기 였다. 마을의 입구에 버티고 있는 장승의 우락부락한 표정조차, 눈발에 가리워져, 보이질 않건만, 장승을 지탱하고 겨우 그가 서 있는, 그 곳의 의미를 난 알고 있었다. 지난 밤, 엮어 신은 짚신 사이로 진창과 함께, 차가운 냉기가 발 바닥을 치밀어 오르고, 가다듬었던 숨기운이 점차 가빠 오면서, 내 눈 앞에도 허연 김이 소여물통처럼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먼 발치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산발로 풀어헤쳐진 그의 머리가, 내리는 눈과 마주쳐 습기를 머금고, 그의 안면을 한올 한올 가리워 가면서도, 그 안에 번뜩이던 시선은 초점을 잃어가고, 하늘은 퍼붓는 눈꽃으로 인해, 이미 어둠마저도 의미를 잃어 버렸지만, 땅거죽을 뒤덮어 가는 그 여운은, 차마 달이 없어도 보기 좋았기에…..



‘아!’



그는 하늘을 향해 입을 벌려, 입안으로 점점이 날아 들어오는 눈을 맛본다. 그래….., 그는 서 있고 싶은 것이 아니라, 하늘을 보고 싶은 게다. 빠르게 녹아, 그의 핏물처럼 흘러 내리던 눈이, 이제는 제법 장승 앞에 누워 버린 그의 얼굴을 덮어가고, 허공에 피어 오르던 숨결도 점차 온기를 잃어가는 즈음…..눈이 천천히 그치고 있었다. 얼마를 그렇게 있었을까? 구름이 서서히 가시며, 드러나는 애처로운 달빛 한 점…….



‘오랜만에…… 임자…이름을…….. 불러 보는 구려……….애향이!…….눈 속의 달빛이…… 자네만큼이나……. 곱구려…….내 곧…..당신……곁으로….가리다……이승에서…. 못다한 얘기…...임자의 음성으로…… 들려….. 줄테요?…….당신이….…그립소……뼈에….. 사무치도록…….그립소….얼마나….얼마나…..아팠겠소?.......말을…. 할 수 없었으니…흑흑…욱욱…나를 용서 하구려…윽으으으으……나를…….’



그러나, 이미 하늘은, 그녀는, 그를 용서한 듯싶었다. 온 세상이 눈에 뒤 덮여 있었어도, 그의 시신에는 눈발조차 머물지 못한 것을 보면 말이다. 아니, 누군가…… 그의 시신을 식지 않도록 기어이 껴 안고 있는 것처럼…… 그 덮여가던 눈이 슬그머니 녹아 들어가는 것을 난 끝까지 지켜볼 수 밖에 없었지만, 두 사람은 결국 설월야(雪月夜) 속에 같이 있는 셈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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