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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인생 - 8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48 687회 0건
[8부]






[희진]이와 함께 도착한 어느 한강 시민공원..
주차장에 차를 파킹한다..

내옆에 앉아있는 [희진]이는 정면만 응시한채.. 차분하게 앉아 긴 생머리를 쓸어넘기고만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30분이 넘도록 서로 한마디도 없었다.

창문을 내려놓고.. 담배를 입에 문다.

"나도 하나 줘....."
"....??............."

[희진]이의 말에 대답대신 담배갑을 건넨다..
담배를 피우지 않았던 이 기집애가 지난 세월동안 담배를 배웠나보다.

"훗... 6년이나 지났으니..."

하얀손으로 내 담배갑에서 말보로 한개를 꺼내어 입에 무는 [희진]이..
가운데 빠진 앞니에는 틀니를 끼워 넣은듯해 보인다.

라이타를 건네주자.. 긴머리를 뒤로 넘기며 라이타를 켜 담뱃불을 당긴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냐??...."
"나야.. 머.. 후우~..... 그냥.. 하던일 하면서 살았지..."

참 어색하다.
6년만에 이렇게 다시 만난 옛연인 [소희진]..
얘를 만나러 오기전.. 이 뻔뻔한 면상앞에 하고싶은 말들이 참 많았는데..
막상 이렇게 둘만의 시간을 갖다보니.. 머리속이 텅~ 빈듯.. 아무말도 떠오르지 않는 상황이다.

[희진]이 역시 느닷없이 찾아온 내가 너무나 당혹스러웠는지.. 아직까지 나에게 눈을 마주치진
못하며 담배연기만 내뿜고 있다.

"흐음.... 오빠.. 차 보니까.. 다시 돈좀 버나봐..??...."
"나??.... 훗...."

이윽고.. 재떨이에 진한 핑크빛 립스틱이 묻은 담배필터를 조심스레 비벼끄는 [희진]이..
하얀 담배꽁초처럼.. 그 꽁초를 쥔.. [희진]이의 손가락 역시 새하얗기만 하다.

"정말.. 미안했어.. 그때는..."
"................."

그때였다.
[희진]이의 목소리가 떨려오기 시작이다.

"나.. 정말.. 그때는.. 흑!!... 오빠 사랑했고.. 근데...."
"후우.... 됐다~...희진아...."

"흐음..... 흠!!..."
"6년전일.. 지금 얘기하면 뭐하냐??... 내가 뭐.. 그런거 따지자고 너 보러 온것도 아니고..."

"..............."
".. 널 보고싶은 생각은 진짜 없었는데.. 그냥 니가 어떻게 지내는지가 궁금해서..그래서..
와본거 뿐이야.."

"흐음... 아까.. 무대 시작하기전에.. 꽃배달 보낸거.. 오빠였지..."
"......응..."

"흐음.. 그 쪽지 내용.. 뭐였어??..."
"뭐긴... 그냥.. 아무생각없이 적은거지... 담배 다 피웠으면.. 강바람이나 쐴까??.."

"............"


[희진]이와 함께.. 산책로를 걷고 있다.
손을 잡거나 팔짱을 끼지는 못하는 어정쩡한 상태로 둘이 나란히 걷고 있지만..
방금전보다는 말수도 많아졌고 분위기도 좋아지고 있다..

오래전 이여자와 함께 내 오피스텔에서 동거동락을 하며 지냈던 아름다운 시절..
새삼.. 그때로 돌아온듯한.. 착각을 했었을까..?? 자전거가 다가오자 나도 모르게 [희진]이의
허리를 감아 내쪽으로 쎄게 당겨버렸다.

"어.. 조심..!..."
".....흐음..!!.."

내 가슴위에 놓여진 [희진]이의 오무린 하얀 두팔.. 수줍은듯한 [희진]이의 눈동자..
헛기침을 하며.. 다시 떨어지고야 말았다.


한강을 바라보며.. 벤취에 나란히 앉아있다.

"너.. 그 앞니.. 의치냐??..."
"호호.. 이거..???... 지금 연극 끝날때까지.. 틀니 하는거야.."

"너.. 설마..... 그 노파역 맡으려고.. 일부러 앞니 뺀건 아니지??..."
"호호... 맞는데??..."

"지랄!!!...."
"치과의사가 죽었다 깨어나도 멀쩡한 이.. 발치는 못해주겠다는걸 각서 써주니까 빼주더라.."

"후우~ 진짜......"
"이번무대에서 내가 그역을 꼭 맡아서 해보고 싶었거든..."

"야..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너는.. 멀쩡한 이빨을???...."
"오빠..!!.. 나 오빠만나기전에..2년..그리고 6년.. 나.. 8년만에 처음이야..처음으로 조연급..
캐스팅될 기회가 온거였어..."

"참내.....진짜..."
"내가 나이가 벌써 29살이야.. 올해안에..꼭.. 비중있는 조연급이라도 꼭!!..꼭!!..해보고 싶었단
말이야..."

"후우~.....해보니 어떻니??? 좋아???...."
"응.. 너무너무 기뻐.. 행복해... 미칠정도로..."

"행복해???.... 이빨빠져서.. 행복하다고???..."
"응... 진짜.. 행복해..."

"오우~... 진짜.. 갓뎀이다.. 갓뎀!!...."
"..............."

"그래.. 그래.. 좋아.. 그런다음.. 응??... 그런 다음에는 너 어떻게 할껀데???.."
"오빠는 또 돈얘기..성공얘기 하려는거지??...오빠..나 사실..지난날 오빠 때문에..오빠의 그..
돈때문에 내가 배불리.. 따뜻하게 지낸거.. 다 알아.. 물론 너무 고마웠고...
하지만.. 결국..........."

"결국.. 뭐????......"
"오빠의 그.. 돈 때문에.. 내가 하고싶은 일을 못하면서 살아가는 내 자신을 죽여버리도록 미웠어..."

"뭐라고????? 참내.. 어이 없어서... 너.. 진짜.. 이상한 핑계 댄다??...."
"난 그때.. 정말 절망적인 인생이었어.. 내가 하고싶은것도 못하고.. 또.. 그러면서 오빠에게
뛰쳐나가지도 못하는 속물적인 내 자신이 너무너무 싫었고...."

"좋아...!!..그래서.. 내가 망하니까..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잽싸게 도망갔냐???...."
"나도.. 내자신이 그렇게 속물근성이 있는지 몰랐어.. 오빠의 그 돈때문에 내꿈마저 내팽개쳐
버릴정도로....."

"..............."
"정말.. 미안해.. 오빠가 가장 힘들 때.. 떠나서..."

이럴수가...
내가 [희진]이와 함께 지냈던... 그 내생에 가장 아름다운 인생 이었던 시절에 [희진]이는
가장 절망적인 인생 이었다니...!!..

[희진]이의 도무지 이해못할 그 입장에 서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려 한다.
그렇게나 자기가 좋아했던 일들을.. 내가 제공한 풍요로움에 의해 못했다...??...
또.. 그런 나약한 자기자신의 의지가 너무 미웠다..??..

대충 이해는 가려한다.
하지만.. 그시절 쪽박을 차고 [희진]이 마저 떠나버렸던 나는.. 절망 그 자체였다.

새삼.. 그때의 기억이 아련하게 떠오른다.
이제야.. 내가 왜.. 이자리에 이 기집애를 만나러 왔는지.. 정신을 번쩍 차리고야 말았다.

"그래... 이 기집년아... 이번엔 니가 당해봐...."

"미안하다는거 진심이야??...."
"...응...."

"좋아.. 그럼 다시 시작해...."
"....뭐????????......"

"미안하다며??... 그럼 다시 시작해..."
"..............."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강바람을 피하며 자켓속을 파고들며 담뱃불을 땡긴다.
자켓밖... [희진]이의 나즈막한 음성이 들려온다.

"....흐음... 시러..."

[뻑뻑~... 후우~.....]

"그전처럼.. 돈좀 있다고 널 구속하거나 너 하는일 못하게 한다거나 그러지 않을께..."
".....그래도 싫어..."

"너가 하는일.. 존중하고.. 항상 니편이 되어줄께.."
"..그래도....안돼..."

"왜?... 도대체 왜?????..."
"나.. 사귀는 사람 있단 말이야...."

".......!!!!!!!!!!.........."
"............."

"훗.......상관없어..."
"....뭐????........."

"가자.. 극단앞까지 태워다 줄께.. 내가 좀 바빠서 오늘은 너랑 오래 못있겠다.."
"................"

세상일 쉬운게 없다더니.. 복병이 있을 줄이야..
하지만 [희진]이를 잘~아는 나로서는.. 이 기집애를 다시 내껄로 만드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닐듯 싶었다.







며칠후..
부천 상동의 커피숍..
지하철역이 들어오는 이곳.. 오래전부터 개발붐이 불어 신도시가 생기더니..
근생과 주거용도의 오피스텔 빌딩들이 생겨났고.. 6년전 이곳에서 시행사가 부도난 건물을
헐값에 사들여 제2금융권 융자로 건물을 준공시키고 분양을 시작해서 대박을 터트렸던 지난날이
떠오른다.

커피숍문이 열리고.. 반팔셔츠에 면바지 차림의 [선영]이가 환한 웃음을 머금고 들어온다.

"자기.. 오래 기다렸어??..."
"..훗~... 아니..."

오전과 오후.. 이건물 9층의 휘트니스클럽에서 골프와 요가, 헬쓰를 배우는 [선영]이..
늦은 오후에는 피부관리실..주말에는 운전면허 학원도 다니며.. 나름대로 풍요로운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우아한 헤어스타일에 뽀사시한 화장실력도 제법 늘어난듯해 보인다.

"처제는.. 같이 안왔어??..."
"걔는.. 뭐.. 일때문에 요즘 바빠.."

"백조라며???..."
"백조는??... 요새.. 장사하려고 가게자리 알아보러 다니잖아.."

"가게 자리라....."

순간.. [선영]이의 돈들이.. 하나밖에 없는 처제에게 투자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지났다.
"씨바.. 내돈 35억이!!......"

"하하.. 처제가.. 가게 한대???...."
"응.... 한 70-80평짜리.. 요 근처에서.. 미용실 하나 준비하려 하거든..."

"70-80평??..."
"응.. 나랑 같이 하려구......"

"씨바....."
70-80평짜리 미용실이라면.. 가게 임대보증금에 인테리어에 기자재에 대충..
5억이 넘게 드는 돈이다..

"지금... 이것들이!!.. 내돈 35억을...T_T......"

"핫.. 하하.. 그런게 있었으면.. 나한테 말하지 그랬어???...."
"자기는 바쁜사람인데.. 괜히.. 가게자리 알아봐 달라고 말하기도 좀 그렇고.. 뭐.. 그정도야 우리
끼리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인데..."

"근데.. 미용실을 70-80평씩이나???..이동네..유동인구가 많긴 하지만..그래도.. 너무 크게 하는거
아니야???...."
"나야 뭐.. 살림만 하다보니.. 잘 모르긴해도.. 선미는 강남에서 디자이너 생활도 오래했고..
또.. 자기가 그렇게 자신있어 하는데...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인데.. 그정도는 뭐~ 내가 해줄수도
있는거지...."

"그..그래.. 하하... 동생인데... 하하..."
"호호.. 자기야.. 나 오렌지 쥬스 마실래..."

"씨바... 35억중.. 5억이 날아가려나 보다..T_T..."

음료를 마시며 [선영]이와 이런저런 얘기를 한참동안 주고 받았다.
며칠전에 있었던 [병태]형의 얘기를 전해주자.. 별시덥지 않은 얘기 정도로만 취급해 버린다.

슬슬~ 오늘 [선영]이를 만난 목적을 얘기해야 겠다.

"흐음.. 그리고.. 선영아.. 나.. 언제 이사가면 돼??..."
"응???....아~...호호...아직 집 못구했는데.. 당분간은 그냥..이렇게 밖에서만 만나면 안돼??..."

"...밖에서??......"
"자기도 알잖아.. 미연이가.. 안그래도 사춘기인데.. 걔한테.. 내가 얘기도 좀 해야 하고.."

"후우... 미연이 걔 유학보내면 안돼냐??..."
"뭐????......."

순간 [선영]이의 얼굴이 슬쩍 일그러지는게 보였다.

"이크... 씨바... 너무 서둘렀나??...."

"아니.. 유학전문 프로그램이 있는 학원 통해서.. 상담 한번 받아보고.."
"싫어??????..... 내새끼 내가 옆에서 키울꺼야. 그런소리 하지마....."

"아니.. 그것도 좋긴 한데.. 나중에 미연이를..위해서라면 어쩌면..그게..."
"희준씨!!!... 다신 그런얘기 하지말라고..!!....."

".........그래!!.. 알았다..어???......."
"................."

순간 분위기가 얼어붙어버렸다.
나역시 지금.. 못마땅하긴 마찬가지이다.

"........................"
"씨이... 착한 딸이라고 잘 키울꺼라며어~...."

"야.!!.. 그럼.. 니가 빨리 미연이 설득해서.. 나랑 살게 만들면 되잖아!!.. 이게 뭐냐고??..."
"씨이... 이혼한지 얼마나 됐다고....."

"에이......"
".........."

담배를 입에 물고 라이터불을 땡긴다.
하루라도 빨리 결혼해서 35억을 흔들어 돈을 불려야 하는데..
내가 봐둔 경기도 성남쪽 괜찮은 신축상가물건.. 한개층을 통째로 헐값에 분양받을 마지막 기회..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가 않은 상황이다.

언제나 말처럼 쉽게쉽게 해결되는게 없는 세상이긴 하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 갈께..."
"이시간에.. 무슨 일 있어??..."

"응.. 손님 만나러 가야해.."
"가면.. 오늘도 그냥 끝이야??..."

"그럼.. 뭐..??... 갔다가 너 만나러 이동네 다시와서.. 또 정 쌓자구???...그동안 모텔방 얻어서
정쌓은게 이만개는 넘었겠다....."
"씨이... 꼭 그렇게밖에 말 못해??..."

"선영아.. 나 진짜.. 피곤하고 힘들어.. 정말이지.. 너랑 미연이랑 한집에서 행복하게 살고싶어..
왔다갔다 하는것도 하루이틀이지... 너도 내 입장 좀 생각해주라..."
"...씨이... 희준씨.. 진짜.. 미워??...."

"하여간.. 나 간다..."
"..................."

[선영]이가 연신 못마땅한 표정으로 원망스런 눈빛을 나에게 보내고 있다.
나역시 [선영]이에게 못마땅 눈빛을 꽂아버리고 뒤돌어 섰다.

"씨바... 나좋자고 하는건가???..... 니미럴...."
"그돈 35억만 10배로 불려봐라.. 니나 나나 니딸래미나.. 평생을 외국여행 다니면서 돈을 펑펑..
써질러도.. 늘어나는 이자를 다 못쓸 정도일텐데....."


차를 끌고 혜화동으로 향하고 있다.
차를 세워놓고.. 꽃집에서 꽃다발을 사들고.. 소극장 앞에 표를 사들고 서있다.

[몽키홀]...

오늘로써 3일째.. [희진]이를 다시 내여자로 만들기 위한 나의 작전이다.
복수를 하기 위해서...
하지만 가슴속 깊숙한 곳에서.. 알수없이 흔들리는 내 부끄러운 심정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어쩌면 복수란.. 내 자신이 만들어 놓은 보기좋은 허울이 아닐까??
나를 버린 여자를 사랑하고 있다는 바보같은 내 자신을 속이기 위해서??? 만남을 합리화 시키기 위해서????

오래전.. 새까맣게 타죽어버린 줄로만 알았던.. [희진]이를 향한 내 가슴속 사랑..
혹시 그 빌어먹을 놈의 사랑이 [희진]이와의 뭉클한 재회의 감동의 빗물을 맞아 다시 살아나
매말라 버린 내 가슴속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기 시작하는건지도 솔직히 알수는 없다.

내 스스로가 처절한 복수를 위해.. 이 여자를 다시 내 여자로 만들어야겠다는 어거지의 거짓감투를 뒤집어
씌운채 이 여자를 만나는게 확실한것 같다.

그런생각을 하니.. 저 안을 들어가기가 어제처럼 쉽지가 않다.
무거운 발걸음..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설레이기까지한 복잡한 심정으로 계단을 따라 [쿵쾅~] 거리고
[웅웅~] 거리는 [희진]이의 공연장내로 한발..한발.. 내려간다.

묶은 하얀머리칼 비녀대신 꽂혀진 쌍젖가락.. 주름진 얼굴 분장.. 빠진 앞니.. 그리고
가슴까지 올려 입은 헐렁한 몸빼바지..

오늘도 [희진]이는 비중있는[?] 조연인 괴기스런 노파역으로 열연을 펼치고 있다.
어둠속에서.. 나를 보았는지.. 슬쩍 나와 눈이 마주치고야 말았다.

오늘도 여전히 썰렁한 객석.. 허리를 숙인채 앞쪽 자리에 가서 앉는다.

"뭬이야????..... 이히히히히히!!!.... 그렇다고 내가 니년놈들을 살려둘꺼 같아??????...."

3일째 같은 연극을 보다보니.. 대충 대사를 외울것만 같다.
나즈막한 목소리로 무대위의 [희진]이를 바라보며 입모양을 벌려본다.

"그래야 내가 살고 니년이 죽지..히히히..."
"그래야~... 내가 살고... 니년이 죽지????...이히히히히!!!!!!....."

"저놈도 죽고 다죽고 해야 내가 더 오래사는 법이쥐..히히히..."
"저놈도.. 죽고.. 다죽고!!.. 그래야.. 내가 더 오래 사는 법인게야...!!!!!..이히히히히..!!.."

이상하다.. 대사가 틀리다니... 순간순간 애드립이 바뀌는 건지.. 아님 내가 잘못 기억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희진]이의 빠진 앞니..
어제도.. 그제도.. 그리고 오늘 이순간에도.. 저놈의 앞니를 보니.. 가슴이 미어진다.

[희진]이의 꿈.. 열정.. 그리고 행복???.... 저렇게 이름없는 광대가 되어 환호하는 이 없는
썰렁한 무대위에서 열연을 펼치며 사는게 진짜 행복한건지..
저렇게 고통스럽고 피곤해 보이는 삶이 과연 [희진]이가 느끼는 아름다운 인생인건지..

"후우... 역시.. 어렵군..."

드디어 무대가 끝이났다.
불이켜지고.. 썰렁한 박수소리가 들린다.

[희진]이의 동료들이 나를 알아보고.. 슬쩍.. [희진]이를 콕콕.. 찔러대며 무대뒤로 들어간다.
오늘도 [희진]이는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피해 무대뒤로 쏙~!! 들어가 버렸다.

꽃다발을 들고.. 서성이는 분장실 앞..
20여분이 지난뒤.. [희진]이가 밖으로 나온다.

힙합스타일의 바지에 빈티지풍의 셔츠와 눌러쓴 모자..

"진짜.. 빈티 나는군..."

하지만 모자창 아래의 새하얀 얼굴과 긴 생머리칼은 여전히 내 심장을 울렁거리게 만들 뿐이다.
오늘도 역시.. 어제처럼 퉁명스러운 눈빛이다.

"자... 꽃..."
"..........."

마지못해.. 받는 꽃...
화사한 안개꽃으로 둘러쌓인 글라디올라스..
오래전..[희진]이가 좋아하는 꽃이었다.

"오빠.. 자꾸 이러지 말았으면.. 좋겠어.."
"내가 뭐??.... 그냥.. 나 좋자고 하는일이야.. 신경쓰지마.."

"..............."
"오늘 연기..정말 멋졌고.. 너의 무대위의 열정적인 모습.. 왠지 오늘따라 너무 좋았어.."

"... 고마워..."
"나.. 갈께..??... 나오지..마.. 어제처럼.."

"........."

꽃다발을 들고.. 고개를 떨군채 서있는 [희진]이를 뒤로 하고 출입구쪽을 향한다.
순간.. 생각나는게 있어 뒤로 돌아보았다.

여전히 그자리에 서있던 [희진]이가 자기를 갑작스레 뒤돌아 보는 나를 보며 살짝 놀래는 표정이
비친다.

"아..아니.. 뭐좀 물어보려구....."
"...뭐??............"

"하하.. 아까.. 니 대사중에 말이야...마지막쯤에.. 가위들고.. [오래사는법이지~]..아니었냐???...."
"........풋!!......"

[희진]이가 순간적으로 터져나오는 웃음을 억지로 참으며 고개를 돌려 버린다.

"근데.. 어제와는 틀리게 [오래사는 법인게야~] 하더라???....."
"호호..!!......큭크크...."

이제야.. 나를 바라보며.. 밝게 웃는 [희진]이..
장미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어딘지 모르게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느낌의 글라디올라스의 꽃망울처럼..
순수하게 웃는 [희진]이의 환한 표정..
새삼 오래전의 그 기억들이 다시금 떠오른다.

"하하하....너.. 실수했구나??..."
"호호호...씨이~.. 실수 아니야???...."

"에에.. 내가 니 대사를 다 외웠거든??...."
"치이.. 거짓말??..."





혜화동 근처의 선술집..
막창구이가 불판위에서 구어진다.

불판위 지글거리는 막창.. 그 열기가 솟아나는 아지랭이 건너편으로 보이는 [희진]이...
[희진]이가 만지작 거리는 쇠주잔을 한번에 입안에 털어버린다.

잔을 내려놓으며 오만가지 인상을 다 쓰고.. 서둘러 미역국을 그릇째 입에 가져다 댄다..
빨갛고 도톰한 [희진]이의 아랫입술에 착.. 붙어있는 미역조각..

"..훗.....귀엽군..."

"호호... 오빠 안마셔??..."
"..훗... 천천히..."

"어우.. 간만에 한잔 하니까.. 너무 쓰다.."
"한동안 술 안마셨어??...."

"응... 내일공연이 마지막이니까.. 내일 마지막 타임 끝나면 거하게 한잔 하겠지.."
"................"

[희진]이가 쇠주를 자작으로 따라붓고.. 하얗고 긴 손가락에 쥐어든 젓가락으로 깍두기를 집어
빨갛고 도톰한 입술속으로 쏙~ 집어넣는다.

"사각사각사각.... 쩝쩝... 오빠는 저번에 하던일.. 그일 계속 하는거야??..."
"응.........."

"이번엔 좀.. 잘 해... 저번때 처럼.. 망하지나 말구..."
"훗... 망할 일도 없어.. 그냥.. 안정적으로 분양대행정도만 하는거니까.."

내앞.. 쇠주한병.. [희진]이앞.. 쇠주한병..

이슬이 송글송글 맺혀진 이슬이 두병이 잡스런 안줏거리가 가득담긴 스텐판 원형 테이블위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실로 오랜만이다.
6년전.. 우린 언제나 이렇게 서로가 각자 일병씩 놓고 마셨다.

[드르륵!!...]

문자가 온다.
자켓속 핸드폰을 끄집어 내어 액정을 바라보았다.

[전화도 안하고..진짜 너무한다..]

"호호.. 오빠.. 애인 문자 오나봐??..."
"훗... 응..."

"애인 뭐하는 여자야??.."
"이혼녀..."

"호호호호...... 진짜???...."
"응.."

"몇살인데...?.."
"나랑 동갑....."

"호호.. 애는??.."
"중학생 딸래미 하나.."

"호호호호... 정말???.... 아 욱겨... 오호호호호..."
"치.... 뭐가 웃기냐??..."

"오빠가 왠일이야??.. 젊은 영계 아니면 쳐다도 안보던.. 그 양재동의 김희준이??.. 도대체 어떻게
된거야??..."
"훗... 그때는 그냥.. 철딱서니 없는 삶이었잖냐... 지금은 그때랑 틀리겠지..."

"호호.... 오빠 혹시.. 철들었나봐??.."
"사진 보여줄까???.... 자.. 봐봐.."

핸드폰에 저장되었던 [선영]이의 밝은 얼굴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어머~.. 이언니 진짜.. 이쁘다.. 진짜 오빠랑 동갑 맞아??...."
"훗....."

"오빠.. 옛날~ 그 애인들보다 훨씬 이쁘다.."
"에이.. 설마 그건 아니겠지..."

"근데.. 오빠는 그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나랑 시작하자고 그러면서.. 도대체 사람이 왜그래??.."
"뭐가...."

"그때도 그랬잖아.. 애인사진 보여주면서.. 나한테 자랑이나 하고... 근데 지금도 그러네??..."
"훗... 니가 잼있어하고 궁금해 하니까..그러지....."

"바보...거짓말 하면 안돼?? 애인없다고??..."
"나 솔직한거 알잖아.. 체질적으로 거짓말 못해..."

"치이.... 자~ 간만에 우리 건배한번 하자.."
"좋다.. 6년만에.. 쨘.. 하자.."

"치얼쓰!!..."
"간빠이!!..."

모자창 아래의 [희진]이..
어느덧.. 환하게 웃는 하얀 [희진]이의 얼굴의 길게 찡그려진 눈매의 옆.. 주름이 슬쩍 보인다.

"훗.... 격세지감이로세~....."



[사보이호텔]

나에게 기대어 비틀비틀.. 거리며 객실안으로 들어오는 [희진]이..
푹신한 트윈침대 안쪽에 쓰러지듯.. 엎드려 누워버린다.

"푸후우.... 나 술 많이 취했나봐...."
"그러게 적당히 마시라니까.. 니 나이를 생각해야지..."

"아하하하하!!!....치이... 미워.."
".........뭐가??..."

"지난 6년동안... 푸후.. 나 생각 안났어??...."
"훗.... 많이 났지.. "

"나 많이 미웠지??..."
"미울뿐이냐???......"

"나 찾아와서 막 때려주지 그랬어..??..."
"훗..쪽팔리더라..돈한푼없이..거지꼴된 주제에..그꼴 싫다고 떠난 기집애한테 어떻게 다시 가냐??.."

"바보....."
"대충 먹고 살만 하니까.. 널 찾아온거야.. 왠지.. 너앞에선 정말 당당하고 멋져보이고 싶었나봐.."

"바보....."
"그동안 너 원망 무지막지하게도 했었지... 하지만 내가 못나서 그렇게 된건데..."

"바보...."
"진짜..이씨이... 자꾸 바보 바보 할래??... 확!! 똥침을 꽂을까 보다...."

"바보.... 오빠는 바보야... 돈이면 단줄 알고...."
"이게 진짜.. 엉댕이는 커가지고.. 일루와.. 똥꼬 깊숙히..!!..."

"호호.. 야아~... 하지마아~...."
"하하... 이리와..!!...."

"아..옵빠아~....호호.. 간지러.."


샤워를 하고 욕실밖을 나서자.. 피곤한듯.. 팬티와 셔츠차림으로 침대위에 걸터앉아 있다가 일어나
나의 바톤을 이어받고 욕실로 향하는 [희진]이..

몸에 물기를 닦고 쇼파위에 알몸으로 앉아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와 재회의 사랑을 하기위해 욕실속 샤워를 하고 있는 [희진]이..

나는 분명히 [희진]이.. 저 기집애를 꼬셔 그전처럼 나의 여자로 만들고 이번에는 내가
뻥~ 내질러 차버릴 계획으로.. 접근한거였다.

하지만.. 절대.. 그게 아니었나보다..
어느덧.. 내가슴속.. 뿌리를 굳건히 내린 [희진]이의 사랑의.. 강한 줄기가 매마른 가슴의 벌판위로
치솟아 오르고 있다는게 느껴진다.

심한 괴리감에.. 기일게 담배연기를 들이 내쉰다.

"씨파.... 내가.. 진짜.. 저년을 좋아하고 있었군..!!..."


어느덧.. 욕실의 물소리가 멈췄다.
잠시후.. 환한 욕실문이 열리며.. 수줍은듯.. 가운을 몸에 두른 [희진]이가 다가온다.
젖은 머릿결.. 피곤한듯한 걸음걸이..

쇼파위.. 자지를 까고 앉아 와인을 마시는 나를 한번 흘끔 보더니 거울장앞에 앉아 머리를 말리고
있다..


----------------------------------------------------------------------
어느덧 제소설이 중반부로 치닫게 되네요..
[아름다운 인생]이 이달의 작품에 선정되었네요..

저번달에는 이달의 작가가 되더니.. 이번달에는 이달의 작품이라니...
제가 이런 상들을 다 받아도 되는건지..ㅠㅠ 오히려 미안하고 부끄럽기까지 하네요.

그래도 저의 부족한 글을 애독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여러분들 덕에.. 요즘 나름대로 아름다운 인생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어 다행입니다.

오늘밤도 행복하고 아름다운 저녁 되시길 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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