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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군의관의 1년 - 3부1장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2 00:46 554회 0건
2009년 9월 7일 강원도 춘천 외곽 88사단 신병 교육대

“여기가 의무실입니다. 여기서 환자 보시고, 약주시면 됩니다.”
신교대장에게 찬수의 안내를 맡은 본부 3소대장이 찬수에게 보여준 곳은 신교대 막사 안의 조그만 방이었다.
진료용 침대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선반 몇 개가 안에 있었다. 생각보다 먼지는 쌓여있지 않았다.

“예...”
찬수의 뒤를 따라 들어온 의무병인 한종희 병장과 홍범우 일병은 주말 내내 챙긴 용품들과 약제들이 담긴 박스를 의무실 한켠에 내려놓았다. 그나마도 보좌관과 행보관이 못가져가게 태클을 걸려고 했지만, 북한 경비정이 한국 북방한계선을 넘어 내려와 경계 태세에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틈에 예정된 물자를 빠짐없이 챙겨뒀다. 물자와 달리 사람은 처음에는 3명을 데려가라더니 2명으로 줄었다. 일단 둘 다 제 몫은 하는 사람이기에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만일 북한 경비정때문 분위기가 어수선한 틈이 아니었다면 이만큼의 물자도 못가져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은 9연대 신세를 졌는데 이제 바로 환자를 볼 수 있겠네요.”
본부 3소대장은 살짝 신이난듯했다. 훈련병을 직접 맡을 소대장, 중대장들이 신이 난 것이라면 모를까 그들과 접할 일도 없어보이는데 왜 신이 나 있는지는 의문이었다.

"지금 훈련 1중대는 사격 나갔고, 금일 야간 사격도 예정되어 있습니다. 2중대는 명일(내일) 각개전투 나가고, 3중대는 정비중입니다."
본부 3소대장이 계속 말했다.

"스케쥴이 빡빡하네요."
"그리고 본부 3소대는 수요일에 사격 수류탄 교장 작업 나갑니다."

본부 3소대장인 남소위에게 들은바로는 88사단 신병 교육대는 기수별로 1개 중대씩 훈련중대가 3개 중대가 있었고, 운영을 맡는 본부 중대가 있으며 본부중대는 행정이 주임무인 1소대와 경비가 주임무인 2소대, 유지보수를 맡는 3소대로 나뉘어 있다고 했다.


2009년 9월 11일 춘천 Bar 라쿠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아르바이트생이 인사를 한다.
"어서오세요."
샐리라고 명찰을 단 여자가 바의 맞은편에서 주문을 받는다. 늘씬한 키에 포니테일, 귀엽지만 약간은 고집스러울듯한 소녀같은 얼굴. 보미와 서나래 중위를 섞으면 저런 느낌일까... 이런 생각이 들자 쓴 웃음이 나왔다.

구타 사건을 보고한 괘씸죄로 파견 나간 이후 찬수는 그녀들에게서 거리감을 느꼈다. 서나래 중위는 원래부터 찬수와 거리가 있는 편이었어도 오히려 이 사건에서는 믿을 수 있다는 느낌을 줬지만, 찬수에게 친하게 굴었던 보미는 갑자기 찬수와 가까운 티를 안내려고 애쓰는 듯 했다. 군인들의 세계에서 자신은 자신들의 질서를 무너뜨리려고 든 이교도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문하시겠어요?"
샐리가 물었다.

"맥켈란 15년, 과일세트."
길게 고민하지 않고 선택했다.

"오빠는 여기 처음이죠?"
친한척하며 지명 손님 만들려는 흔한 수법. 너무나 뻔하게 보였다. 굳이 신경전 벌이고 싶지 않아 가볍게 대꾸하기로 마음먹었다.

"네."
"회사가 이 근처예요?"
"뭐... 그런 편이죠."
별 의미 없는 그녀의 호구조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 형식적인 멘트에 질려갈 때 쯤 안주가 나왔다.

수도대학병원 의사들이 자주 찾을 병원 주변 바들은 조금 덜했지만, 다른 바 특히 이런 토킹바에 가서 호구조사에 의사라고 말하면 더 친한척하려는 속보이는 여자들이 있기에 찬수는 이런 곳에서는 일에 대한 말을 피했다.

기분을 달래러 왔지만, 샐리의 기분을 맞춰주느라 술은 맛없게 느껴졌다. 주의를 돌릴겸 한쪽 구석에 혼자 맥주를 마시고 있는 여자를 쳐다봤다. 균형잡힌 몸매에 어깨까지 내려오는 웨이브진 머리, 하얀 피부에 살짝 튀어나온 크고 쳐진 눈. 그렇게 낯설지 않았다. 아니, 찬수가 기억하는 얼굴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경희 누나?"
"저 아세요?"
여자는 경계하며 찬수를 쳐바다봤다.
"찬수요. 부장판사님댁..."
"... 아! 유석명 판사님 아들!"
"예, 여긴 혼자 왠일이세요?"
"후훗 그냥 한잔 하고 싶어서 왔어."
"형은요?"
"으응... 그렇지 뭐. 부장판사님 이야기는 가끔 들었었는데 넌 잘 지내는거니? 그때가 인턴이었지?"
"예, 지금은 레지던트 마치고 군의관하고 있고요."
"어머, 군인 아저씨였구나."
"아저씨라니 어감이 묘한데요."
"군인이면 아저씨지 뭐. 참, 나은이는 잘 있고?"
"아... 예. 잘 지내고 있어요."
"그때 고3이었지?"
"나은이는 그때 재수중이었죠."
"어떻게 발레 그만두고 먹는거 잘 먹는다고 그렇게 쑥쑥 크니? 지금은 꽤 크겠다?"
"170이예요."
샐리에게 자리를 옮겨달라고 하고 찬수는 경희와 합석했다.


"형이 춘천지법으로 가면서 못봤으니까 5년만이네요."
"응... 부장판사님은 변호사 마음에 드신데?"
"뭐... 오래 고민하셨던 일이니까요."
"Choi & Goh면 좋은데 아니니?"
"아버지는 현장에서 어느 한 쪽의 편을 들지 않고, 타당하고 마땅한 결과를 얻는게 보람이라고 하셨으니까요."

"...도 부장판사님처럼 신중하고 넓게 생각하는 사려깊은 분이면 좋겠다."
경희는 혼잣말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네?"
"아니 아니야. 술 먹자!"
"그동안 아이도 낳으셨나요?"
"아... 없어......"

잠시 경희는 어색한 침묵을 했다. 그리고, 분위기를 돌릴겸 찬수에게 물었다.
"아, 여자친구는?"
"... 지금은 없어요."
"어머... 언제 헤어졌는데?"
"작년이요."
"어쩌다가 그런거니? 예전 여자친구처럼 도망간거야?"
"아니예요. 그런건..."
찬수는 목이 타는지 입 안에 술을 털어 넣었다.

"오늘 오빠 안들어와."
"예?"
"골프 친구들하고 1박2일로 방금 나갔어."
"아... 그래서 아직 내 조카가 안생기는거구나..."
"아니."
"응?"
"이제 우리 아이 없어. 오빠 수술 받았거든."
분위기를 바꿔보겠다고 어울리지 않는 농담을 시도했지만, 분위기만 더 어색해졌다.


술이 몇 잔 돌면서 병이 거의 비어가고 있었다.
"찬수야."
"예."
"정관 수술 받으면 정말 아이 안생기니?"
"뭐... 정자가 배출되지 않으니..."
"......"
"정말? 임신 절대 못시키는거야?"
조금은 뜬금없게 말한 경희를 찬수는 의아한듯 쳐다봤다.

"......"
무슨 일이 있었던거구나... 찬수의 머릿속에 생각이 들었다.

"사실 작년에 오빠가 나도 모르게 수술 받았거든."
"......"
"그리고나서 나랑 그..."
말하기가 어색했는지 술을 벌컥 들이키고 계속 말했다."

"... 섹스를 했었거든. 피임 안하고."
"네..."
"그런데 임신했어."
"임신하고 오빠한테 그 얘기를 했더니 오빠 표정이 바뀌는거야. 자기는 정관 수술 받았다고."
"......"
"자기는 정관수술 받은지 몇 달 되었는데 왜 내가 임신이 되냐고. 어디서 바람... 핀 거냐고..."
"......"
아무말 없이 경희의 얼굴을 보았다.

"진짜야. 나 오빠 말고 아무하고도 섹스한 적 없어. 여기 와서 아는 남자는 이제 같은 학교 선생님들하고 학생애들 밖에 없는데..."
쳐져있는 눈꼬리가 더 아래로 내려가면서 경희는 금방이라도 울듯한 얼굴이 되었다.
"......"
"그런 적 없는데..."
"......"
"억울해. 아앙..."
결국 경희는 울기 시작했다.

찬수는 그 이야기에 문득 떠오른 내용이 있어다. 아마 본과 해부학 수업때였던 것 같았다. 그때 골반쪽 강의를 맡은 교수는 종종 보이는 천재쪽이었고, 학생들이 따라가기 벅찰정도로 자기가 아는걸 학생들에게 모두 전수할 기세로 강의를 했고, 그중 여담삼아 교수가 한 말이 떠올랐다.


"... ductus deferens(정관)의 이 부분을 cut하고 tie(결찰: 묶어주는 것) 하는 것이 남성 불임 시술로 많이 쓰이는 vasectomy(정관 절제술), 흔히 말하는 정관수술이죠. seminal gland(seminal vesicle. 정낭)와 prostate(전립선)는 정상이기에 semen(정액) secretion(분비)에는 지장이 없지만, testis(정소, 고환)로부터 sperm(정자)이 유입되지 않으므로 fertilize(수정: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것)를 시킬 수 없는 것이죠. 가족계획의 일환으로 예전에는 예비군 훈련 가서 이 수술을 받으면 그날 훈련을 면제해줬기 때문에 남자들이 받고 오는 일도 잦았죠. 그런데 이게 종종 연결되어서 다시 임신 능력을 갖는 경우가 생겨서 부부싸움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게다가 시술을 받고도 90일째까지도 남아있는 정자가 관찰 된 보고도 있지요. 특히 예전에는 유전자 검사조차 없었으니 이런 분쟁이 생겼을때 남자는 자기는 정관 수술을 받았으니 임신이 될 리가 없다. 아내가 바람 핀거다라는 주장을 해 아내측의 외도로 몰기도 했었죠. 그러니 여러분도 혹시 field(현장)에서 이런 경우를 보게 된다면 이와 같이 예외적인 case(사례)가 있음을 알아 두세요."


울음을 멈추고 말을 이었다.
"흑,,, 그래도 임신했으니까 그냥 낳으래. 임신 중절은 불법인데 했다가 문제 생길 수 없다고..."
"......"
법적으로 임신 중절은 몇 몇 특별한 사례에만 허용이 되었다. 이 경우는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하려고 하면 중절 수술 해줄 병원 찾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출세를 위해 경력 관리를 하던 그 형이라면 가능성이 있다고 찬수는 생각했다.

"그리고 올 봄에 아기 낳고나서는 이제 괜찮은 줄 알았는데..."
"......"
"두 달 전에..."
"......"
생각하기도 싫었지만, 봄에 아기를 낳았다면 아직 모유 수유를 할 여성이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다는 것은 설마 그건가 싶었다.

"하늘 나라로 갔어. 자다가 갑자기... 으흐흑..."
SIDS(Sudden Infant Death Syndrome: 유아 돌연사 증후군. 이름 그대로 12개월 미만의 아기가 갑자기 사망하는 현상. 주로 밤에 자다가 발생한다고 하며 조산, 부모의 건강문제, 주변의 흡연자등 환경적 요소를 비롯해 다양한 관련 요소와 심폐의 기능 이상등 여러 가지 원인을 의심되고 있으나 현재까지 정확한 원인은 알 수 없다.). 자기 주변에 이런 일이 생겼다니...

"흐흑... 도대체 어떻게 하고 살았기에 남의 애를 임신하고 이제는 애까지 죽이냐고..."
"......"
"그래서 홧김에 정말 바람 필까 했는데... 흑..."

아기가 죽고 한 달도 안되어 같은 학교의 남교사가 연락을 했다고 한다. 위로한다는 핑계로 경희를 찾은 그 남자는 기분 전환하게 드라이브하자는 말을 했고 상실감에 머릿속이 텅비어있던 경희는 아무 생각 없이 그 차에 올라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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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이야기를 완성하지 못했지만, 써두었던 2회 분량을 먼저 올립니다.

* 외전3이 이 에피소드에 연관되어지는 에피소드입니다.

* 뉴스를 보면 이번달의 한국은 시끄러운 그리고 부끄러운 이슈가 끊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 경희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요즘 말로 멘붕에 빠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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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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