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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23:58 565회 0건
[SF]갈등(22)


"저희 마라주의 인공파도를 통해 대기를 순환시켜주는 것으로 유명하기에 바람을 빼 놓을 수 없습니다만 소문이 안나서 그렇지 여자 맛이 일품입니다."
"허, 여자 맛이라니."
"하하, 특산품이라고 감히 추천할 만한 아가씨들이 많다는 얘깁니다."
"그래? 마라주 하면 떠오르는 것이 인공파도와 바람이었다면 은밀한 자랑꺼리가 또 있었구먼?"
"상냥하면서 절도있는 여자들이 많아 주의 자랑거리랍니다."
"정절보다 절도가 더 맛깔스럽게 들리는 구먼."

고수영 주지사가 박수를 두어번 치자 팔등신의 늘씬하고 시원스런 아가씨들이 줄을 지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하, 마음에 드는 여자애를 고르시지요."
"난 여자를 고르지 않는다네. 보통 처음 들어온 아가씨를 택하거든."

"각하, 눈여겨 보시고 입맛에 드는 아가씨를 고르셔야죠."
"여자란 남자 하기 나름 아닌가.
고르고 또 고른다고 여자가 달라질게 뭐 있나."

"각하, 저기 쭉쭉빵빵한 다섯 번째 아가씨를 택하시지요."
"그냥 늘 택하던 방법대로 첫 번째 들어온 아가씨를 내 옆에 앉히라구."

"각하, 다섯 번째 아가씨의 재능이 뛰어나서 추천하는 것입니다."
"자네 눈빛을 보아하니 첫 번째 여자애와 뭔가 있는 눈치구먼."
"그럴리가요. 다만 각하를 편히 모실 아이를 추천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럴 요량이면 여러명을 뭐하러 불렀나?
눈속임 쓰지말고 자네 진심을 말해보게."

고 주지사의 얼굴이 똥씹 표정으로 순간적으로 굳어졌다.
사소한 여자 선택 문제를 확대하여 정치적 문제로까지 비화시킬 필요가 없다는 계산이 필요했다.
다섯 번째 들어온 아가씨를 마다하고 굳이 첫 번째 아가씨를 고집하는 것이 일상적인 선택 기준이라는데 꼭 다섯 번째 아가씨를 앉혀야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초청한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하지만 다섯 번째 아가씨는 주지사의 막내딸이며 이번 기회에 중앙정부로 자리를 옮길 요량으로 일부러 자신의 딸을 주겠다는 의중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첫 번째 아가씨를 고집하는 노인네가 야속하기만 했다.

"자네의 추천을 받아 들이겠네.
다섯 번째 아가야, 네가 오늘 내 시중을 들어줘야겠다."

순간 고 주지사의 표정이 밝아지며 좌석은 활기를 찾기 시작했다.

선택된 아가씨들은 고주지사와 내 곁에 앉아 정성스럽게 술 시중을 드는 한편 선택되지 않은 나머지 아가씨들은 룸에 마련된 공연장에 자리잡고 술자리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이기 시작했다.
"네 이름이 무엇인고?"
"제 이름은 진실이라고 하옵니다."
"음, 진실이라. 얼굴 만큼이나 이름도 예쁘구나."
"네 특기가 무엇이냐?"
"우주물리학이 전공이고 빛보다 빠른 원자를 만들어내는 것이 특기입니다."
"가치있는 학문을 공부했구나."
"아직 박사과정에 있어서 더 공부해야 합니다."
"우주물질의 근본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무 이옵니다."
"물질의 근본이 없다?"
"그렇사옵니다.
물질이라고 차마 부를 수 없는 더 작은 단위의 전자만 존재합니다."
"전자는 물질이 아니더냐?"
"전자가 물질이 되기 위해서는 양자와 중성자가 결합되야 근본원자가 만들어지는데 적어도 원자를 물질로 봐야한다면 그 이전 단계인 전자를 무의 상태라 할 수 있겠습니다."
"네 말뜻은 전자 조차도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라 어떤 기운이라는 뜻이더냐?"
"그렇습니다. 존재하는 것들이 이미 있어서 존재와 존재 사이의 공간을 마음대로 이동하는 전자가 있을 뿐인데, 만약 존재하는 것들이 없었다면 그들 사이의 공간을 헤메는 전자가 없었을터이니 우주의 근본물질을 감히 전자라 할 수 없고 물질이라 칭할 것도 없습니다."
"네 생각의 기본단위는 결국 원자인데, 원자를 구성하는 이전 물질인 무한 전자에 대한 존재를 물질로 보지 않고 기운으로 보기 때문에 근본물질이 없다는 얘기인데 맞는가?"
"그렇습니다. 원자이전의 물질은 물질생성 이전의 단위이므로 없다는 것입니다."
"아직 학생신분이라서 근본물질에 대해 막히는 부분이 많은 아이구나."
"저희 견해가 틀렸습니까?"
"아니다. 너의 지식을 뛰어넘는 이론들은 그저 탁상에서 겪을 일들이 아니다. 더욱 공부하여 네 스스로 우주물리학에 심취되면 알게 될 것일 뿐이다."

두 사람의 대화를 유심히 듣던 고 주지사는 딸 아이의 해박함에 싱글벙글 웃음을 잃지 않더니 마지막으로 지식의 유한함을 탓하는 소리를 듣고는 딸 아이의 협소함에 긴 한숨을 내 쉬고 말았다.

우주의 근본물질을 한때는 물이며 불이라 한 적도 있었다.
분자를 이해하고 원자를 이해하며 양성자와 중성자를 포함한 전자를 이해할 때 까지만 해도 우주는 가득찬 전자 에너지로 구성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지하국의 과학이 밝혀낸 바 역시 전자 이하의 단위로 세분할 어떤 실마리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며 다만 전자의 이동을 자유롭게 제어함으로써 원자를 마음대로 창조하고, 창조된 원자를 이용하여 빛의 속도를 능가하는 물질을 개발함은 물론 시간트랩을 넘나드는 기술 발전을 이룩했다.

"너는 진정으로 과학을 사랑하느냐?"
"그렇사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온 이유도 각하를 모시면서 제가 탐구해야 할 영역을 넓힐 기회를 얻고자 자청하였던 것이옵니다."
"호~, 그랬구나. 네 애비가 누구더냐?"
"저의 부친은 이곳 주지사이신 함자가 고수영이라 불리는 분입니다.
또 그분은 친히 저의 앞날을 위해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해 주신 분이기도 하지요."

"고 주지사,
자네의 여식이 물질에 흠뻑 빠진듯하오.
다만 경험의 세계가 짧아 편견을 갖고 있을 뿐인데 이참에 내게 주시구려.
내가 중앙에 갈 때 데려가서 식견높은 학자들과 더불어 연구할 기회를 주겠소."

"각하, 영광입니다.
딸 자식의 소원이 각하의 곁에서 학문에 더욱 정진하고자 하는 뜻을 여러차례 내 비친 마당이라 오늘 갑자기 왕림해주신 기회에 딸 자식을 이런 자리에 함께 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고 주지사,
이런 자리가 아니더라도 여러 경로를 통해 토론할 기회가 있을터인데 굳이 이렇게 어색한 자리를 만들어 놓으면 큰 실례가 된다는 것은 아시겠지요?"
"이 아이가 택한 일입니다.
존경하는 각하의 여자가 되겠다고 오랜시간 벼뤄온 일이라 애비로서도 굳이 막을 방법이 없어 차라리 이렇게 자리를 마련한 것이오니 마음 푸시고 분위기 살려서 재미있게 지내시지요."
"이 사람아, 애비 앞에 앉혀놓은 딸을 어떻게 재미있게 놀라며 부추키는가?"
"딸아이를 내치지 않을 요량이시면 마련된 처소로 옮기시지요."
"됐네. 천연음식이라며 여태 떠들며 자랑해놓고는 한점 입에 넣을 시간도 안되서 자리를 옮기라니 자네 심보가 여간 뒤틀린게 아닐세."
"하하, 죄송합니다.
얘들아, 신나는 음악을 연주하라.
오늘 딸 아이가 어르신의 아이가 된다니 혼례에 준하여 성대한 놀이 마당을 만들도록해라."

고 주지사의 명에 따라 분위기는 잔치집 분위기로 바뀌고 있었다.
급히 연락을 받고 도착한 고관들이 하례하며 분주히 자리를 채워가고 있었다.
술자리의 분위기는 떠들석한 목소리들이 뒤섞여 어느 장터를 연상시킬 정도로 고조되는 가운데 밤은 깊어만 간다.

손이 술잔으로 옮겨지는 내 손을 살며시 잡아채며 술잔을 만류하는 진실의 손길이 있었다.
"어르신, 피곤하실텐데 이만 자리를 옮기시지요."
"그래,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을텐데 너도 피곤하겠구나."

장내의 소란에도 불구하고 듯 연신 두 사람의 동태만 살피던 주지사의 눈빛이 의중을 파악한 듯 황급히 시중드는 사람들에게 잠자리를 봐주도록 지시를 내리고 있다.

"각하, 연회는 제가 이끌터이니 어서 딸 아이와 함께 잠자리에 드시지요."
"허, 주지사의 막내딸을 내가 얻어도 후회스럽지 않겠나?"
"각하, 스무살만 넘으면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결정하는 것입니다.
비록 제가 애비이며 주지사라 할 지라도 딸 아이의 인생은 딸 아이의 몫일 뿐입니다.
저는 이 아이가 스스로 결정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질 수 있도록 인성교육까지는 책임졌지만 성장하여 자신의 택한 진로에 대한 책임까지는 저의 몫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 아이의 오늘 선택은 저로서도 반겼던 일인지라 오히려 제가 몸둘바를 모르겠습니다."
"자네의 생각이 그렇다면 기쁘게 딸 아이를 받아 들이겠네.
내가 훌륭한 과학자로 성장할 때까지 돌보며 폭넓은 경험의 세계로 인도하겠네.
다만 오늘 자네의 딸 아이를 핑계삼아 장인 노릇을 할 생각이라면 절대 용납 못하네."

"각하,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실은 가슴속에 담아 두겠습니다."
"알았네. 자네를 좋게는 못해준다해도 나쁘게는 안하면 되겠지?"
"감사합니다."

사람들이 안내하는 방은 신혼부부가 사용하는 원앙금침이 놓여있었다.
두툼하면서도 포곤한 이부자리는 들면 가벼운 종이조각을 집어 들 듯 무게를 느낄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진 것이라서 그 자리에 누으면 따뜻하되 무겁지 않고 포근하되 불편하지 않는 아늑한 잠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진실아, 네 나이가 몇이더냐?"
"열아홉이옵니다."
"네가 남녀간의 잠자리를 이해하느냐?"
"제가 열살에 대학과정을 마치고 열셋에 대학원과정과 열여섯에 이미 박사과정을 이수하는 동안 나이만 적었지 아는 것은 많아 남녀간의 일들은 간접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사옵니다."
"너의 미래를 나처럼 늙은이에게 의지하려는 의도는 무엇이냐?"
"어르신은 세월속의 나이는 많지만 살아야할 날만큼의 나이는 무한하다는 것을 아옵니다."
"허, 네가 그토록 계산을 빨리 하며 살아왔단 말이더냐?"
"우주를 공부하며 막힌 부분은 시간이옵니다.
빛과 시간은 에너지이며 그 에너지를 자유롭게 통제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분은 어르신 밖에 없는 것도 압니다. 제가 배운 학문속에는 시간에너지는 분출은 되도 흡수는 안된다고 되어 있으나 어르신의 학문 속에는 시간에너지를 미래와 과거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카테고리를 파악하고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따라서 어르신이 마음만 먹는다면 세월을 거꾸로 이동시켜서라도 존재할 날 만큼은 존재하는 그런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지 네가 나를 택한 것이 시간에너지 조정에 관한 것을 알고 싶었던 것이더냐?"
"아닙니다. 진정한 사랑은 서로 같은 분야를 논하며 시간을 보낼수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럴 자격이 있다는 것이더냐?"
"아직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르신의 도움을 받는 한이 있더라도 학문에 열중하면 언젠가는 어르신의 진정한 말벗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된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택한 것입니다."
"네 용기가 가상해서 좋구나."
"제 뜻을 받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네 몸매가 어떤 아이보다 뛰어나던데 내게 보여줄 수 있겠느냐?"
"조명을 어둡게 해 주세요."
"아니다. 너의 용기에 걸맞는 몸도 함께 보고 싶구나."
"아이, 부끄럽사옵니다."
"그런 마음에서 어떻게 아까는 용감하게 내 여자가 될 생각을 하였느냐?"
"알겠사옵니다. 눈만 살짝 감아 주세요."

진실은 밝은 조명 아래서 자신이 걸쳤던 옷가지를 하나 둘씩 벗어 내리고 있다.
드러난 어깨 선을 따라 불빛이 너울거리며 눈부신을 비치고 있다.
어깨와 팔에 살짝 가려진 젖무덤 위에 살짝 솟아 오른 젖꼭지가 오똑 일어서서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다.
팔 아래 감춰진 젖무덤 밑은 늘씬한 허리가 놓여있다.
허리를 감싸던 끈이 풀리면서 미끈한 하반신이 드러난다.
풍만한 엉덩이를 밑으로 길게 쭉 뻗은 다리가 제 있을 곳을 찾지 못한 듯 안절부절하며 서로를 꼬아 살짝 가려진 삼각주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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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입일 2016-08-11
접속일 2024-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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