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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담소설가 유관필 - 14부 ← 고화질 다운로드    토렌트로 검색하기
16-08-24 18:58 466회 0건
오세인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유관필의 품 속을 파고 들었다. 유관필은 자기 품 안의 아내가 참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턱 밑에서 아내의 동백기름 냄새가 났다. 알싸한 향기에 취해 아무 말 없이 어미 새처럼 아내를 품고 있던 유관필이 나직한 목소리로 저녁에 있었던 일을 말하기 시작했다.

"부인, 저기 말이오. 당 형님과 적 어르신과 나갔던 일은.."
"괜찮습니다. 상공의 뜻대로 하십시오. 일문 오라버니가 적요원의 동쪽 끝에 별당을 짓는답니다. 마을 분들도 도와주기로 했고요. 거기에 머물면 될 듯 합니다."
"예?"
"상공은 큰 뜻을 가진 분입니다. 큰 빛을 가진 사람을 사람들이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상공, 이처럼 따뜻하면 그만입니다. 상공의 품에 안기는 여인이 저 하나면 좋겠지만, 욕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아니, 그게 아니오. 부인. 내가 어찌 그러겠소. 다만, 여인이 안됐더이다. 결심을 이미 마친 것 같아, 내 부인의 허락을 얻지도 않고 경민이의 선생님으로 청했습니다. 그냥, 그렇게 하십시다."
"네? 경민이의 스승으로요? 어찌 그리 하셨습니까? 경민이는 상공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입니다. 고급주루라 하니 문식이 없지야 않겠지만, 상공의 아이를 어떻게 그런 출신의 여인에게.. 이건, 후일 경민이의 전정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걱정하는 바는 아나, 난 그 여인의 서체에서, 그녀의 필선에서 최학사의 그것을 보았다오."

언제나 여유로운 남편의 얼굴에서 절망감과 상실감을 본 오세인이 말없이 더욱 유관필의 품안으로 파고들었다. 유관필의 헛헛한 웃음이 뒤따랐다.

"그 사람, 최학사 말이오. 진짜 대단하지 않소? 달아나도 도망쳐도, 그가 있구려."
"아, 당가의 가모님이 왔다가셨어요."
“형수님이 왔다가셨다는 말은 들었소. 무슨 이야기를 나눈 것이오?”
“별 이야기는 없었습니다. 그저 옛날 이야기를 했어요. 어릴 적 전 당가의 대공자에게 시집갈 생각을 했었거든요. 그러다가 어떤 늙은 여자에게 빠져서 혼약을 맺었다는 소리를 듣고는 속상했었거든요.”
“그렇게 아쉬웠소?”
“아니요. 당가의 가모님께 고맙다 했습니다. 제가 당가의 가모가 되었다면 상공을 만날 수 없었을 테니까요.”
“좋았겠습니다. 부인. 어릴 적 사모했던 형님이 이제 무시로 유가장에 드나들테니 말이오.”
“상공, 혹시 질투를 하십니까?"
“난 그냥 보통 사내요. 내일 일문에게 말해서 대문에 당가의 가주는 출입금지라고 써붙이라고 해야겠소.”
“상공?”
“네?”
“전 상공이 진짜로 너무 좋습니다. 무작정 그냥 좋습니다.”

유관필과 오세인이 사랑을 속삭이는 유가장으로 들어선 사람이 있었다. 유가장의 대문은 잠겨 있었지만, 세가의 하인들이 머무는 동쪽 끝 숙소 곁의 곁문은 늘 열려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곁문이 열리는 소리에 추헌이 밖으로 나왔다가 조심스럽게 들어오는 당예인을 알아보고 아는 척을 했다. 당예인은 꾸벅 고개를 숙이고, 내원으로 향했다. 집에 있다가 머리가 복잡해서 밤거리를 걷다가 석죽산까지 달려온 참이었다. 높지 않은 담으로 둘러싸인 유가장은 특유의 안정감이 있었다. 유가장에 들어서자마자 기분이 좋아진 당예인은 콧노래까지 부르면서 내원의 자기 방으로 향하다, 담벼락에 쓰여진 당철기의 육필과 만나고 말았다.

“현경이 되어 돌아오마, 만약 그 전에 내 손녀딸을 어찌할 생각이면, 현경의 매운 맛을 봐야 할 것이야.”

풋, 웃음이 났다. 가만히 손가락으로 자기 입술을 만졌다. 꺼끌꺼끌했던 유관필의 입술감촉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닐 거야. 그럴 리 없어. 왜 집에서 머리가 복잡했는지 당예인은 할아버지의 걱정을 보고서야 알았다. 좋아하는 건가? 하지만, 선생님은 선생님인데. 그 때 멀리서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유관필과 오세인의 말이 들렸다. 부부간의 말을 듣는 것이 아닌데, 당예인은 자신도 모르게 청력을 집중해서 두 사람의 말을 들었는데, 역시 선생님과 선생님의 사모님은 다정하고도 다정했다. 부럽고 심술이 나서 훼방을 놓을까하다가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해선정에 올라 불어오는 바람을 맞고 있었다.

총관 일문과 유관필의 경쟁으로 담은지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매번 볼 때마다 무엇인가가 더해지고 있었다. 해선정에서 바라보는 담은지의 왼쪽 모서리에 제법 큰 정원석이 몇 개나 솟아올라 있었다. 경공을 쓰면 올라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저건 일문 아저씨의 취향일까, 아니면 선생님의 취향일까를 잠깐 고민하던 당예인의 눈에 붉은 물고기 한 마리가 보였다. 타는 듯 붉은 물고기는 검지 정도의 길이였는데, 무가의 딸인 당예인은 그 물고기가 만년화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년화리가 어떻게? 담은지에 동네 아이들이 잡은 물고기를 유관필이 사서 풀어놓는다는 사실은 당예인도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선생님은 만년화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알 턱이 없으니 모를 수도 있었다.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듯 연못 가장자리를 여유롭게 헤엄치던 화리가 당예인의 눈을 피해 담은지의 중앙으로 재빠르게 도망쳤다.

아버지나, 할아버지 아니 다른 누구에게 말하더라도 만년화리가 담은지에 있다는 것을 알기만 하면 당장 연못의 모든 물을 퍼서라도 잡으려 할 것이다. 자신만 하더라도 영물이나 영초를 실제적으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영물은 사람의 눈에 쉽게 보이는 것이 아니다. 기회인가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영물에 대한 욕심이 들지는 않았다. 당예인은 이제 더는 무인이 아니었으니까. 만년화리에 대한 욕심을 떨친 당예인이 스스로를 기특해하면서 해선정을 내려와 자신의 방을 찾아 누웠다.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 없었다. 외롭고 쓸쓸했다.

다음날 당예인의 잠을 깨운 것은, 한 사내의 뜨거운 눈길이었다. 유관필의 아들 경민이 문을 열고 들어와서 당예인의 코를 잡고서 누나 입으로 숨을 쉬는 자신을 뜨겁게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뭐해?”
“누나, 일어났어요? 엄마가 밥 먹으래요.”
“응. 나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누나 신발 밖에 있던데요.”

덮고 있던 이불을 개키고, 정리하는 동안 다섯 살 바기 경민이는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계속했다. 주로 유가장 내에서 일어나는 일들이었는데, 그 중에서 당예인의 귀를 번뜩이게 하는 말도 있었다. 다름아닌 경민이의 글씨 선생님으로 누군가가 온다는 이야기였다.

“경민아, 그러니까, 아예 여기 와서 사는 거라는 거야?”
“예. 일문 아저씨가 적요원 저쪽 끝에 새로 집을 한 채 짓는데요. 거기서 산대요.”
“누구래? 남자라던? 젊대?”
“아니요. 되게 예쁜 누나라고 그러던데요. 이름이 뭐랬더라. 아. 윤영 선생님이요. 윤영 선생님이라고 그랬어요.”

되게 예쁘다라.

당예인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당예인은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항상 온 세상의 관심을 받으며 살아왔다. 유가장에서만 하더라도, 선생님과 세인언니는 물론이고, 명진이나 추헌 같은 일꾼들, 심지어는 유가장을 가끔 드나들며 일을 도와주는 아낙들까지 자신의 발랄함을 사랑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새로운 젊은 여인이 유가장에 자리를 잡다니. 그것도 자신도 없는 단독 건물까지 받으면서.

심사가 뒤틀린 당예인은 당장 주방으로 가서 오세인을 잡고, 이 일의 부당함을 따지려다가 과연 어떤 여인이기에, 사람이라면 차별하지 않는 유가장에서 특별대우를 받을까에 생각이 미쳤다. 어쩌면 유관필이 경사에서 오래 살았고, 학식으로도 뒤처지지 않으니 전직 한림학사의 딸이라도 초빙한 것인지도 모른다. 어쩌면, 학사집안 쪽에서 선생님의 인품을 존경해서 누군가 도망쳐서 유가장에 발을 붙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유가장의 인근에 최근에도 경사에서 내려와서 자리를 잡은 가족들만해도 몇이나 되니 아마 그럴 것이라고 짐작한 당예인이 경민이를 식사상의 유관필에게 데려다 주고는, 힘을 쓰러 주방으로 향했다. 언젠가부터 당예인이 있을 때에는 무공을 익혀서 힘이 좋은 당예인이 부엌에서 대청까지 식사음식을 나르는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예인이 부엌으로 들어가자, 안에서 음식을 하고 있던 화영이가 제일 반갑게 당예인을 맞았다. 당예인이 아니면, 식사상을 나르는 것은 화영이 몫이었다. 화영이는 살갑게 인사를 나눈 후, 곧 아침상에 올릴 국솥에 정신을 집중했고, 사기그릇에 밥을 뜨고 있던 오세인이 주걱을 내려놓고 바가지에 무쳐놓은 나물을 조심스럽게 접시에 옮겨 담았다.

“잘 잤어? 저녁 때 집에 돌아간 줄 알았더니, 새벽에 왔나보네.”
“네. 경민이 글씨 선생님을 들인다면서요? 누구에요? 경사에서 모셔오는 게예요?”
“아니에요. 아가씨. 그 월향이래요. 아가씨가 좀 말려보세요.”
“예? 그 미월루의 그 기녀요? 그 여자가 뭘 아는 게 있다고. 아니, 그 전에 여기가 어디라고. 언니, 선생님이 청하신 거예요? 그 여자 기루 그만둔다더니. 감히 유가장에 들어오겠다는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언니. 제가 알아서 할게요. 선생님이랑 담판을 내서라도. 제가...”
“그러지 마. 좋은 선생님이 될 거야. 그리고 쫓아내서도 안 돼.”
“그 여자, 선생님 짝사랑 하는 여자잖아요. 그런 여자가 집에 있어도 괜찮아요. 언니는?”
“어차피 사실인데 뭘. 내가 우리 상공을 더 좋아하는 건. 사랑은 말이야. 누가 누구에게 이기고 지는 게 아니야. 누가 더 좋아한다고 부끄럽거나 자랑스러운 일도 아니고. 하지만, 말이야. 상공을 좋아하고 사랑하고 존경하는 거라면, 누가 날 당하겠니. 그리고 거슬리는 예쁜 여자는 더더욱 내 눈 앞에 둬야 해.”
“아! 감시를 하려는 거예요?”
“아니. 상공에게 느끼게 해줘야지. 내가 더 좋은 여자라는 걸 말이야. 난 지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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