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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3 22:22 597회 0건
*주의: 트랜스젠더/SM에 거부감을 느끼는 분들께는 이 글을 권하지 않습니다.





포근한 햇빛이 가득한 잔디밭에는 온갖 귀족들의 자제들이 모여 파티를 열고 있었다.

이미 본래의 취지는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망각된지 오래됐기 때문에

귀족의 자제들은 자신의 옆에서 끊임없이 음료수를 보충해주는 시종들을 이끌고는

자신과 다를바 없어보이는 다른 귀족자제들과 연신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었다.

그때마다 비워내는 음료수잔은 그저 살짝만 기울였을 뿐인데도

한손에 음료수병을 들고 또 한손엔 과일과 과자가 가득담긴 접시를 들고있던 시종에 의해

또다시 한가득 채워져 잔이 마를새가 없었다.


"하하하, 그런일이 있다니. 심심하진 않았겠군요."


"심심하다 뿐입니까? 내 그 녀석들을 다시 보게된다면 온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습니다."


포근한 햇빛이 비춰 움직일때마다 찬란하게 빛을 발하는 금발을 지닌 소년은

화기애애한 다른 귀족자제들과는 달리

이빨을 부드득 갈며 손에 든 잔을 세게 움켜잡았다.

그러나 맞은편에서 소년의 이야기를 들어주던 붉은머리색과 맞춘듯한 붉은 의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또 다른 소년은 그저 시원하게 웃고있을 뿐이었다.

그러자 금발의 소년은 못마땅하다는 듯이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의 앞에있는 소년에게 말하였다.


"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한 왕국의 귀족이 모욕을 당하였습니다! 그것도 천한 사막출신 녀석에게말이지요!

그것뿐인줄 아십니까? 초대 황제폐하의 업적마저도 능멸했습니다! 초대 황제폐하께서 설마 힘이 부족하여

사막녀석들을 가만히 둔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그저 녀석들이 미개하고 불쌍하며 지배한다 한들

제국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기에 가만히 두신게 아닙니까!"


"하하하. 그랬군요?"


"...그랬군요? 지금 절 놀리시는 겁니까?"


금발의 소년은 무엇이 그리 못마땅한지 자신의 앞에 있는 붉은머리의 소년에게 화를 내며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하지만 여전히 붉은머리 소년은 시원하게 웃으며 금발의 소년이 화를 내는것은 신경쓰지 않는지

어느새 비워진 자신의 잔을 옆에있던 시종쪽으로 살짝 기울였다.

그러자 맑기 그지없는 노란색의 액체가 붉은머리소년의 잔에 가득채워졌다.


"놀리다니요. 하하하. 당치도 않습니다. 제가 어찌 이갈룬을 통치하는 브란소백작님의 장남이자 차기 후계자 후보이신

루안님을 놀리겠습니까. 전 그저 방금말씀하신 초대 황제폐하의 업적이 제가 알고있던 업적과는 많이 달라서

그런말을 한것입니다. 이거이거, 실례되는 말이었다면 용서 해주시죠."


"제가 말한 초대 황제폐하의 업적이 어딘가 잘못되었습니까? 전 그저 들은대로 배운대로 말했을 뿐이고

저희 가문에서 소장하고 있는 수십, 수백권의 초대 황제폐하를 다룬 역사서에서도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제가 잘못알고 있는 듯 말씀하시는군요? 길리미안님."


금발의 소년-루안-은 자신의 앞에서 뭐가 그리도 웃긴지 연신 웃고있는 붉은머리의 소년-길리미안-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았다.

한 나라의 귀족의 자제라면 어릴때부터 좋던 싫던 책을 수천권씩 읽어야 했고

그 중의 대부분은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나 황제나 왕, 그외 큰 공을 세운 귀족들의 전기였다.


"꼭 그 얼굴표정은 제가 설마 역사서도 한권 읽지 않을리는 없다고 말하는것 같군요?

저도 어릴때부터 가정교사에게 교육을 받고 도서관에서 책을 읽었기 때문에 루안님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잘 알고있습니다. 허나, 루안님께서 보신책에 초대 황제폐하께서 사막을 평화적으로 통일한 이유가

적혀있던가요?"


루안은 머리속으로 자신이 읽어왔던 책의 내용을 다시한번 꺼집어 내었다.

대륙에서 가장 잘 쓰여지고 객관적이라는 역사서인 랑크란대륙전기 또한 원본은 아니었지만

사본을 수십번 읽은 루안이었건만 초대 황제가 어째서 사막을 평화적으로 흡수하였는지는

적어도 자신의 기억속엔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수백만에 달하는 군대를 이끌고 전쟁에 참가하여 연전연승을 거두던 초대황제에게

사막이란 지배를 하여도 크게 이익이 없는 먹으나 마나한 땅중에 하나라고 생각해 왔을 뿐이었다.


"이갈룬을 지배하시는 브란소백작가의 루안님께선 역사서를 소설책으로 보신것은 아닐테지만,

적어도 제가 알기로 초대황제폐하가 사막을 점령하지 않은 이유가 나와있는 역사서는 없습니다."


"책에 쓰여져 있지 않더라도 그 당시 초대 황제폐하가 사막을 그저 흡수 차원에서 끝낸 이유는

말할 필요조차 없지 않겠습니까. 초대황제폐하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정복이 가능한데도

사막을 점령하지 않은 이유는 단 한가지, 이익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대체 길리미안님은 무슨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길리마인은 여전히 웃으면서 루안을 쳐다보았다.

눈을 부릅뜨고 자신에 대한 생각을 거침없이 내뱉으며

초대황제의 업적에 대해 저토록 열을 내고 있는걸로 봐선

소문으로만 듣던 브란소가문의 성질머리와 충성심을 그대로 지니고 있는

브란소 가문의 후계자였다.

하지만 상황에 냉정하게 대처하지 못하는점이 익히 들은바가 있던 브란소 가문의 성격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전 그냥 루안님께서 역사서를 마음대로 해석하여 받아들이는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역사서는 그저 역사서에 있는 그대로 읽어야지 마음대로 해석을 하여 받아들이면

루안님처럼 잘못된 역사를 알게되기 마련입니다."


"그럼 제 해석이 잘못되었단 말입니까? 그렇다면 대체 왜

초대황제 폐하는 사막을 정복하지 않으셨단 말입니까?

아시는게 있다면 이야기를 해보세요. 제가 납득할수 있게."


"하하하. 글쎄요... 혹시 루안님은 사막에 가보신적이 있습니까?"


"가보진 않았지만 수없이 보긴 했습니다. 들은 얘기도 많기 때문에 가 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사막에 대해선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그것 참 유감이군요... 제가 만약 이갈룬에 살았다면 당장이라도 사막에 가보았을텐데 말이죠.

그렇다면 혹시 사막은 어떤곳인지 말씀해 주실수 있습니까?"


루안은 목이 마른지 자신의 손에 들려있던 음료수잔에 남아있던 음료를 한번에 들이킨후

자신의 옆에있던 시종의 앞으로 척하니 내놓았다.

그러자 음료수잔은 길리미안의 것과는 다른 약간은 어두운 붉은빛의 액체로 가득찼다.

손에 무게감이 적당히 전해져오자 루안은 입을 열어 길리미안의 말에 답하였다.


"위험하기 그지없는 곳입니다. 말조차도 달릴수 없고 하루에도 수십번씩 모래를 동반한 바람이 불며

낮엔 타들어갈듯이 덥기도하고 밤엔 귓볼이 떨어져 나갈정도로 춥습니다. 물은커녕 풀한포기 조차도

찾을수 없는 땅이지만 몇몇종류의 동물들이나 몬스터가 살고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것은 왜 묻습니까?

혹시 고작 이런이유때문에 사막을 점령하지 못한것이라고 말씀하고 싶으신 겁니까?

그 당시에도 수백만에 달하는 제국군이? 온갖 전장을 누비고 다니신 초대 황제폐하가?"


"물론 사막자체도 위험하고 무섭긴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때문은 아닐겁니다.

마음만 먹으면 그 정도 쯤은 충분히 이겨낼수 있겠지요. 아마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겁니다."


"다른이유? 뭡니까? 그 다른이유라는게 대체."


"음... 그럼 한가지만 더 묻겠습니다. 적당히 200명도 채 안되는 인간의 무리들이 사막 한가운데에서

몇일이나 생존할수 있을것 같습니까?"


"모르긴 몰라도 물과 식량이 넉넉하게 있다면 1년정도... 물과 식량도 없다면 한달도 안되서

자취도 찾아보기 힘들겁니다. 사막에서 인간이란 몬스터와 동물들에게 먹이뿐일 테니까요.

몬스터를 퇴치하기위한 경비단도 일년에 몇십명씩 죽어나가는데 말이죠."


루안은 말하면서 머릿속으로 일년에도 수차례 몬스터들이 대륙으로 침략하려는것을 막는

경비단의 모습을 떠올렸다.

브란소 백작가의 친위대보다 강하다고 해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경비단이었건만

일년에도 수십명씩 죽어나가고 수백명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렸다.

그때마다 죽은 경비단원들의 집을 찾아다니며

가족들을 위로하느라 몇날 몇일 자택에도 돌아오지 않는 아버지 였다.


"그런 사막에서 그 들은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지금도 살아가고 있구요.

그들은 생각보다 훨씬 강합니다."


루안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길리미안을 쳐다봤다.

하지만 길리미안은 별다른 부연설명없이 자신의 손에 든 음료수를 홀짝홀짝 마시며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무슨 말인지 잘모르겠군요... 사람은 어떤환경에서든 적응하는 법이라 들었습니다.

그들이 사막에서 살아남는법을 안다고 해서 그들이 우리들보다 강하다는건 도무지 이해가 안되는데요?"


"그렇다면 이갈룬 사람들의 살아남는법은 무엇입니까?"


"싸웁니다. 몬스터와 싸우고 사막바람과 날씨에 맞서 싸웁니다.

그것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고 생각했었고 지금도 그것밖엔 방법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막인들은 뭔가 다른방법을 쓰겠지만 그런것들에 대해선 들어본적도 없습니다."


"하하하... 다른방법이라... 그렇게 생각하시는군요? 하하하..."


길리미안은 어느새 모두 마셔버린 음료수잔을 자신의 뒤를 따르던 시녀에게 줘버리고는

다른 사람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루안은 여전히 이해할수 없다는 표정인채로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는

길리미안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느덧 태양은 서쪽으로 조금 치우쳐져 저녁까지 얼마 남지 않았음을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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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속일 2024-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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